내밀과 노출, 그 임계선 위에서

장하나展 / JANGHANA / installation 2010_1203 ▶︎ 2010_1209

장하나_내방의 역사_벽지, 못_200×300×200cm

초대일시_2010_1203_금요일_06:00pm

2010 HIVE Camp Asian Residency 인큐레이터쉽(Incuratership) 프로그램

주최/주관_HIVE Camp

후원_충청북도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02:00pm~07:00pm

하이브 스페이스 에이_HIVE Space A충북 청주시 상당구 내덕 2동 109-22번지 B1Tel. +82.43.211.6741club.cyworld.com/hivecamp

내밀과 노출, 그 임계선 위에서 ● 처음 나는 장소라고 할까 경계라고 할까?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은 임계(臨界)로 결정했다. 「내 방의 역사」, 「우리 집」, 「이력서」, 「From Cheongju to Cheongju」. 장하나 작가가 4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고 싶어 한다. 네 작품 모두 전혀 다른 양태를 보여 주고 있다. 세우고, 깔고, 걸고, 붙이고. 설치, 인쇄, 몸짓 드로잉. 각 작품 별로 소재와 주제도 상이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작품 모두를 묶어 내 볼 수 있다. 네 작품 모두 작가의 내밀한 세계가 이루어진 장소들이다. 작가는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는 네 가지 방식을 한 곳에 모아 옴니버스 형식의 연출을 하고 있다. 「내 방의 역사」에는 켜켜히 쌓인 시간의 층을 뚫고 들어가는 고고인류학적인 발굴의 못질로 인해 한 겹 한 겹 드러내는 과거의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자신의 지금 여기에서 여러 겹의 자아를 포함하여 과거에 같은 공간을 점유했던 이들에게 말걸음을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과거는 현재로 되살아나고 생명을 얻게 된다. 시간에 묻힌 내밀한 이야기가 고고인류학적 발굴로 지금 여기로 노출된다.

장하나_우리집_아크릴상자에 시트지, 가변설치_300×300×2.5cm

「우리 집」은 작가의 신체적 동선뿐만 아니라 작가의 내밀한 심리의 흐름, 사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욕망들을 병치 형식으로 조합해 놓은 노출의 장소이다. 내밀함을 단순히 노출하는 행위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적 알레고리들을 조각 메모지 위에 노출시키고, 다시 읽힐 수 있는 형식으로 기능하도록 만들었다. 해소되지 않은 개별 욕망을 모아놓은 장소로 변형된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읽어 줄 것을 요청하는 텍스트가 된다.

장하나_이력서_종이, 액자_69×81cm

「이력서」에는 더욱 대담하게 자신의 얼굴을 노출시킴으로써 노골적으로 읽어주기를 요청한다. 이 작품에서 이번 전시가 노골적이고 의도적인 노출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사진 이미지의 노출을 통해 이력서 내용이 허구가 아님을 설득하는 장치로서의 기능을 부여한다. 이력서 내용은 실패 사례로 점철되어 있고 사회적으로 좌절된 욕망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러나 각 욕망들은 작가와 사회 사이에 있었던 과거사를 밝힘으로써, 이 문제가 더 이상 사적 내밀함이 아님을 증명한다.

장하나_from cheongju to cheongju_종이, 액자_50×400cm

「From Cheongju to Cheongju」 역시 장소의 알레고리이다. 흔들리는 버스 좌석에 앉아 펜을 지면에 두고 외부로부터 주어진 물리적 흔들림을 그대로 받다 적고 있다. 마치 지진파 기록과 유사해 보인다. 작가 몸짓의 기록이다. 이들 지면 위에 기록된 작가의 몸짓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움직인 궤적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흔들린 몸짓이다. 버스를 선택하고 청주라는 노선을 선택한 것은 작가 자신이지만 작가의 선택 이후부터는 작가가 통제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외부로부터의 힘들이 작용함으로써 내밀한 욕망이 외적 힘과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시 읽혀지길 원하는 내밀한 욕망이 노출된 장소이다.

장하나_삽니다_종이, MDF_119×150×31cm

위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작가는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과 그 속에 있었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노출하고 싶어 한다고 추리해보는 것이 큰 무리일듯 싶지 않다. 작가는 왜 자신의 내밀함을 노출시키려 할까? 작가는 왜 노출의 장소를 만들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더 생긴다. 정말 장소일까? 16절 모조지 위가, 벽지가, A4용지 위가, 아크릴 상자와 인쇄 도면 위가 미술적 행위가 벌어진다는 장소의 알레고리일까? ● 장소는 일차적으로 무엇을 두는 곳이다. 그럼으로써 무엇과 장소는 성격을 얻고 경계가 발생한다. 수저와 젓가락은 식당이라는 장소에서 먹는 도구의 성격을 얻는다. 애초부터 식당이 아니고, 애초부터 먹는 도구로서 수저와 젓가락이 아니라 그 것들이 만나서 종합적으로 성격을 만들어내고, 그 장소에서 분명한 성격으로 제한된다. 만남이 해체되면 그들 각자의 성격 또한 잃는다. ● 장하나 작가가 옴니버스 구성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분명히 사적 고민, 사적 좌절, 사적 대화, 사적 심리의 흐름을 보여주는 장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노출의 전략에 의해서 더 이상 사적 장소로서의 성격이 해체되어 사회적 논제로 변형될 수 있다. 그래서 네 작품 모두는 각기 정지된 장소가 아니라 내밀한 사적 장소와 노출된 사회적 장소 사이에 있게 되고 그 지점을 나는 임계(臨界)라고 글머리에 이름했다. ■ 박종석

Vol.20101203d | 장하나展 / JANGHANA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