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파편들

2010_1203 ▶︎ 2010_1216 / 월요일 휴관

이소정_face each other_순지에 분채, 방해말_20×100cm_2010 김애정_화곡동 활화산_장지에 분채_160×130cm_2010 김정은_위안 위한 행위_장지에 분채, 아크릴_53×45.5cm_2010 박설아_도봉로 608_장지에 분채_91.4×72.8cm_2010 한은혜_내면_장지에 채색, 목탄_166×134.5cm_2010

초대일시_2010_1203_금요일_05:00pm

Artspace H 기획초대展

참여작가 파편 하나 미술평론 이선영 / 김애정_김정은_박설아_이소정_한은혜 파편 둘 인터알리아 아트컴퍼니 전시팀장 윤상훈 / 구주연_김주희_박세리_장유진 파편 셋 갤러리 스케이프 큐레이터 심소미 / 김소희_김윤_이경진_함유미_홍영주 파편 넷 학고재 갤러리 디렉터 김지연 / 김선영_노미진_윤혜준_채효진_최영희

후원_Artspace H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_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 대한 단상 ● 미술계 현장에서 평론활동을 하다보면 특정 장르의 포트폴리오나 전시 자료를 몰아서 보게 되는 경험이 종종 있다. 동양화과에 다니거나 그 과의 출신들의 작가 노트나 작품의도 등을 읽다보면 늘 등장하는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전통과 현대의 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그들은 거의 강박관념처럼 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하기야 계몽주의 이후, 전통의 무게를 떨궈 내려 노력한 서구의 근대 역시 '새로움의 전통'으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전통이란 순수한 현재만을 분리하기 힘든 문화적 상황에 얽혀 있는 문제이다. 서양화에서 쓰는 붓이나 캔버스보다 민감한 도구를 사용하는 동양화는 동양미학이라는 첩첩의 장막에 둘러싸인 신비의 영역에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전통이라는 것이 표류하는 현대 속에서 '오래된 미래'같은 훌륭한 가치가 될 수 있을까. 필자 또한 그것이 궁금하여 유독 집요하게 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동양화과 출신들의 작품을 눈여겨본다. 그러나 개념이나 작품을 통해서 이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변을 발견하는 경우는 흔치않다. 한편 질문을 던지는 자에게만 답변에 근사한 그 무엇이라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필자 또한 그들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려고 애쓴다. 16명의 학생 또는 예비 작가의 전시를 지켜보면서, 그들 또한 이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구주연_격랑기_장지에 채색, 금분_150×76cm_2010 장유진_Under the sea_장지에 분채, 파스텔, 오브제_116.5×92cm_2010 김주희_폭포_천에 반짝이가루, 과슈_115×101cm_2010 박세리_Player_장지에 과슈_116.8×91cm_2010

아직 학교의 문턱을 나서기 전인 16명의 예비 작가의 작품들에는 그 동안 갈고닦은 한국화 기법에서 녹아있을 전통의 요소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작업을 하고 살아갈 자신과 그 주변에 대한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있다. 전통과 현대의 문제란, 결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거대담론 중의 거대담론 인듯해도, 결국은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어쩌면 그 실마리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전시의 작품들의 미덕은 정체성이나 일상 등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약 '전통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기 힘들다면, 무엇이 전통이 아닌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도 편리할 것이다. 전통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화석 같은 것, 가령 이전에 실재했던 것으로 가정된 이상적 원형을 그대로 복사할 수 있는 인간문화재 같은 것일까. 그것은 원형/복제의 이원론에 입각한 재현의 논리에 속하며, 재현은 플라톤의 철학이나 기독교적 전통이 강한 서구의 전형적인 논리이다. 그러나 이항대립에 근거하는 재현의 논리는 시뮬라크르의 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대의 추세와 동떨어진 것이 되었다. 전통을 현대화한다고 하면서, 전통도 현대도 아닌 임의적인 혼합물의 범람 또한 심란하다. 종합이 이루어지기 위한 선결 조건은 양자의 차이와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소희_memories_장지에 먹_130×162cm_2010 홍영주_콘테이너_장지에 혼합재료_23.5×60cm_2010 이경진_태풍휴우증_장지에 혼합재료_162×130.3cm_2010 함유미_감정차단_장지에 분채_112×145.5cm_2010 김윤_부재_순지에 먹, 호분, 은분_194×130cm_2010

이도저도 아닌 무분별 속에서 이전의 두 항을 지양할 새로운 것, 적어도 차이가 있는 것을 만들어 내기란 힘들다. 얼마 전에 유행했으며 벌써 낡은 것이 되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 우는 사조가 그러했다. 그것은 새로움과 진보라는 근대성의 끝자락에서 일어난 반동과 자기모순이 뒤범벅이 된 해프닝이었다. 현실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 전통은 세계 시장화로 귀결된 보편적 질서 속에서 상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국가가 급하게 다시 찾아내야하는 벼락부자의 족보 같은 것일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팽겨쳐왔던 것이 전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량공세와 속도전으로 아무리 거대하게 그리고 빠르게 복구하려 해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전통은 적당한 선에서 세계에 내놓을만한 이국적 문화상품으로 코드화 된다. 이 단계에서 전통은 장식으로 전락한다. 특히 위정자들은 자신의 허술한 정통성을 가리기 위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기력 화 된 전통이라는 알리바이로 필요로 하며, 이들에 의해 전통은 급조와 폐기가 반복된다. 전통은 어딘가에 잘 모셔져 있는 것, 우리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어떤 실체, 본질, 순수의 결정체 같은 것이 아니다. 전통은 자연이 아니다. 자연조차도 변화한다. 전통은 어딘가 신성한 말씀으로 적혀 있는 것도 아니다. 전통과 상보성을 이루고 있는 현대성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채효진_숨쉬는 70-1번지_장지에 채색_227.3×181.8cm_2009 윤혜준_별들이 속삭이는 밤에_장지, 연필, 먹, 아크릴_66×160cm_2010 노미진_dilatation_장지에 펜_130×162cm_2010 김선영_객관적 감정_디지털프린트에 혼합재료_76×51cm_2010 최영희_斐 향기_한지에 먹_181×227cm_2010

전통이란 그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후에도 그럴 것이듯, 창조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것이 아니라, 미지의 것이다. 창조라는 말이 신학을 비롯한 이전 시대의 형이상학을 떠오르게 한다면, 구성이라고 해두자. 구성은 끊임없는 선택과 해체의 과정 중에 있다. 그것은 하나의 명확한 중심이 아니라, 조금씩 탈 중심화 되면서 차이와 반복을 행하며, 영원히 회귀한다. 영겁회귀란, 겉보기의 진보 이면에 억압과 배제, 그리고 파괴를 낳은 서구의 단선적 논리에 대항하기 위해 니이체--그는 가장 현대적인 철학자에 의해 미래의 철학자로 추앙받았다--가 대안으로 내세웠던 고대의 혹은 동양의 논리이다. 이 영겁회귀의 과정 중에서 필연적인 것만이 회귀한다. 이러한 회귀를 위해 내세운 이 전시의 논리가 전통에 쉽게 가정되곤 하는 유기적 전체가 아니라, 파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것은 큰 덩어리가 전제하는 굼뜸, 정체, 경직된 체계를 벗어나려 한다. 단편들은 연결을 욕망한다. 그것도 끝없는 연결을. 이 단편들은 잃어버렸거나 복구되어야 할 전체의 일부가 아니다. 이 단편은 어떠한 선험적 총체성에의 가정이나 희망도 배제한 채 타자와의 직접적인 유대, 이질적인 것과의 접목, 순발력 있는 연결망을 원한다. 이 연결망에 실핏줄 같은 살아있는 흐름을 통과시키는 일은 빈사 상태의 전통과 외양만 그럴싸한 현대성에 동시에 활기를 줄 것이다. ■ 이선영

Vol.20101206d | 네 개의 파편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