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pués...Que? 그리고...그 이후는?

이진휴展 / LEEJINHYU / 李鎭休 / painting   2010_1207 ▶︎ 2010_1216 / 월요일 휴관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116.7×91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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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210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7:30pm / 월요일 휴관 / 전시종료 50분전까지 입장가능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SEONGNAM ARTS CENTER 경기도 성남 분당구 야탑동 757번지 본관 Tel. +82.31.783.8141~6 www.snart.or.kr

이진휴 - 그리고... 그 이후는? (¿Después... Que?)이진휴의 화면은 어떤 흔적들만이 단서처럼 자리하고 있다. 여러 재료들은 다양한 효과를 겹성으로 지른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들의 상충으로 인한 에너지가 흐른다. 다채로운 연출로 이루어진 매혹적인 화면에는 신비스러운 형상과 오브제의 비밀스러운 등장, 불명확한 이미지와 문자의 배열, 지극히 암시적인 배경과 전경에 위치한 독립된 이미지들이 혼재되어 부유한다. 어디론가 흐르고 뭉치고 몰려가는 기이한 힘들이 그 위로 떠돈다. 물감이 이룬 질료성의 연출과 그 위로 부착된 오브제들이 결합되어 알 수 없는 음성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징후를 읽게 해준다. 그러나 명료하지는 않다. 다만 모호하고 불길하고 낯선 세계가 펼쳐진다. 분명 익숙한 사물과 문자, 기시감을 안기는 상처들이 벽처럼 자리하고 있고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화면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무도 낯선 벽이자 풍경이다. 그림이자 조각(저부조)이고 환영이자 실제(오브제), 이미지이자 문자이며 손맛으로 어지러우면서도 동시에 기계적 이미지인 사진이 충돌한다. 그러니까 그려진 그림이자 부착된 오브제로 인해 부조적, 조각적이며 그려진 손의 흔적과 기계적인 영상, 사진의 충돌이 뒤섞여있고 다양한 문자들이 장식적으로 출몰하고 어둡고 밝은 부분의 날카로운 대비가 긴장감을 부여한다. 아울러 두텁게 칠해진 화면 바닥을 암각화처럼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흔적을 만들고 있다. 그것은 그려진 그림이라기 보다는 절박한 몸짓, 신체적 움직임으로 화면에 매달려있던 어떤 실존의 내음을 강하게 환기한다. 뭐라고할까. 상처투성이인 마음, 개인 내면의 상처 역시 연상시켜준다.

따라서 이진휴의 그림은 손이 아니라 몸, 마음이 여러 재료, 오브제와 함께 만나서 이룬 흔적, 마찰음이다. 그는 그러한 재료들을 반죽하고 뒤섞으면서 무엇인가 혼돈스럽고 불길하며 어두운 세계의 내막을 표상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꼭 어둡지만은 않다. 강한 빛, 밝음이 어둠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한다. 그러니까 그의 화면은 여러 차원의 이질성이 충돌하고 뒤섞인다. 추상과 구상, 그림과 사진, 평면과 입체, 이미지와 다양한 문자, 쓰기와 찍기, 그리기와 만들기, 서양과 동양, 과거와 현재 같은 것들이 화면 곳곳에 출몰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은 어딘지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역사를 통해 만들어 놓은 자취와 흔적을 암시한다. 그것은 결국 인간 역사의 '무덤'들이고 그 모든 잔해들이다. 흔적들이 이룬 알 수 없는 무덤이다. 그는 그 사이에서 "그리고...그 이후는?" 하고 질문한다. 그 질문은 다분히 역사적인 질문이다. 앞으로 인간의 삶과 미래는 무엇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질문한다는 생각이다. 다소 무겁고 추상적인 이 질문이 작품으로 해소되거나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작가는 그런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자신의 작품을 다룬다는 인상이다.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97×130.3cm_2010

이진휴의 작업은 다양한 양식과 방법론이 절충, 혼재된 형국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후 다시 이국땅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오랜 시간 서양미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경계인으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게 된 그의 작업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하는 쪽으로 풀려나간다. 그 양 세계에 걸쳐 있는 자신의 문제, 서양과 동양, 현대와 전통, 그림과 오브제, 사진과 문자. 평면과 입체, 형식주의와 내용주의, 물질의 연금술과 역사와 현실에 대한 메시지 등이 그의 작업의 속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는 사진이나 오브제 하나를 통해 무수한 영감과 상상력을 길어 올린다. 작가는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오브제를 끌어들였다. 그것은 어떤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그 오브제 하나로 촉발된 원초적인 발상이 작품으로 인도한다. 그는 그런 사물과 자취를 통해 꿈을 꾼다. 몽상을 한다. 그 오브제나 형상, 문자, 물감의 흔적, 상처는 다분히 상징적인데 그는 그것들로 인해 야기되는 다양한 감정, 연상 작용을 건드려주는 화면을 연출한다. 주어진 오브제는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기능적인 측면이 잠시 지워진 상태에서 또 다른 소통의 통로를 만들어내고 매개가 된다. 작가란 존재는 그런 능력을 부여하는 이들이다. 사물에 대해 지니고 있는 완강하고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날카로운 감각의 힘을 벼리는 일이다. 미술은 바로 그런 지점에 개입하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이의 감각을 만나고 이해해 보는 일이자 기존의 상식적이고 틀 잡힌 생각에서 벗어나는 충격을 접하는 일이 예술을 향유하는 일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그 의미를 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과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예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새로운 시각으로 오브제를 발견하고 그것에 새로운 에너지를 부여하고 표현해내고자 한다. 주변 일상의 익숙함으로 둘러싸인 것들의 외피를 벗겨낸 것이다.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80.3×100cm_2010

그가 다루는 사물, 이미지(흔적)는 대부분 기억의 파편들로 흩어져 있다. 그것은 역사나 민족, 정체성의 흔적이자 자신의 편린들이다. "진정한 작가란 끊임없는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로서 또 다른 작업을 위한 준비를 시작해본다."(작가노트) 근작에서 그는 새삼 역사를 생각해본다. 제1, 2차 세계대전과 레닌의 초상, 낡은 철모와 탄피가 그려져 있고 '사상', '몽상'이라는 한자가 낙관으로 찍혀있다. 악기와 과일, 책과 나무, 금속성과 꽃 등도 어우러져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레닌의 초상은 빛바랜 회색의 건물을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인류가 고대로부터 꿈꾸어 온 낭만적인 이상 사회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몽상가, 혁명가다. 지구상 처음으로 공산주의혁명을 실현한 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주의는 붕괴되었고 레닌은 이제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 꿈이 망각되어서도 곤란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에 대항할 세력, 대안이 사라진 후 인간의 삶과 세계는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인간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은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포기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모순과 대결하는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작가란 존재 역시 그런 질문을 부단히 던지며 그림을 통해 희망과 미래, 혁명을 꿈꾼다. 사물과 오브제를 통해 그림을 이루는 물질들을 통해 혁명의 꿈을 키워보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절실한 흔적을 남기면서 말이다. 이진휴의 그림도 그럴 것이다. ■ 박영택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91cm_2010

지금-여기, 당신의 꿈은?이진휴의 캔버스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고 서양과 동양이 만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지금-여기' 즉, 시공간 좌표 상의 어느 특정한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지금'은 단절된 순간이 아니라 과거의 흔적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꿈이다. 그의 '여기'도 서양이면서 동양인 곳이며 한자와 알파벳이 대화하는 장소이다. 이진휴가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는 '¿ Después...Que?(그리고...그 이후는?)' 연작은 바로 그의 '지금-여기' 변주곡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KIAF 2010에 출품된 이진휴의 최근작들은 이전 작업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이다. 전작들이 개인적 경험과 전망의 토대 위에 서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작품들은 지난 20세기의 악몽, 불안한 현재, 미래에 불투명한 전망을 좀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80.3×100cm_2010

팸플릿 앞면에 실린 그림을 보자. 화면의 윗부분은 뒤집어진 낡은 철모가 점령하고 있다. 이 철모는 세계대전과 국지전이 끊임없이 이어진 세기, 놋숟가락까지 탄피로 바꾸어 버리는 '총력전'의 세기를 겪은 인류의 기억이다. 그것은 또한 "20세기의 하늘에는 태양이 아니라 거대한 철모가 걸려있었다"라는 고통어린 전언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20세기는 인류가 거대한 꿈을 꾼 시기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철모 아래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앞만 보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레닌과 그를 반 발짝 뒤에서 따르며 뒤를 돌아보는 사내가 있다. 화면 아래 양 끝에는 '사상' '몽상'이라는 한자가 낙관처럼 찍혀있다. 레닌은 인류가 고대로부터 꿈꾸어 온 낭만적인 이상 사회를 현실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몽상가이기도 했다. 20세기는 땅을 딛고 서서 꿈을 이루고자 했던 원대한 몽상이 피어났다가 몰락한 시간이었다.

이진휴_¿Después...Que?_캔버스에 혼합재료_72.7×91cm_2010

그렇다면 21세기는 우리에게 어떤 꿈을 요구하고 있는가. 낡은 철모 테두리를 따라 노란색의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 액체는 아마도 과거에 붉은 색이었을 것이다. 노랑색의 불안은 그것이 다시 붉은 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예감에 따른 것이다. 환영으로 나타난 20세기의 몽상가가 걷는 오늘날의 땅은 노랗고 갈라지고 기울어져 있다.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힘든 21세기, 우리는 악몽을 되풀이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꿈을 꿀 것인가. 작가는 위에서 내려오는 흰 줄에 희망을 새기고 싶었던 것 같다. 깨알 같은 글씨로 한문이 적혀 있는 밧줄을 타고 과연 우리는 위로 올라갈 수 있을까? 아뭏든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여기'에서 무엇을 꿈꾸고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또 감상자들에게 던지고 있다.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 김광재

Vol.20101209g | 이진휴展 / LEEJINHYU / 李鎭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