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HEAVEN

이준형展 / LEEJOONHYUNG / 李俊亨 / painting   2010_1222 ▶︎ 2011_0115 / 주말,공휴일 휴관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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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222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그문화 갤러리_SPACE OF ART, ETC. 서울 마포구 당인동 28-9번지 Tel. +82.2.3142.1429 www.artetc.org

Made in Heaven ● 이준형의 전작인 「다이빙」 연작은 스포츠 경기에 임하여 높은 곳에서 수면을 향해 뛰어내리고 있는 인물들을 그린 것이다. 다이빙은 극히 짧은 순간 동안 이루어지는 스포츠로서 불과 2-3초 이내에 일어나는 움직임을 극도로 세분화하여 완성시키는 기술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짧은 순간 동안 다이빙 선수는 자신에게 주어진 협소한 공간을 일련의 정지된 장면들로 채워 넣는다. 이 장면들이 재현하는 자유로움과 해방의 정도는 그가 얼마나 중력과 최후의 충돌, 즉 입수(入水)의 순간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지에 따라 측정된다. 다이빙이 스포츠인 것은 오직 바닥이 물인 경우에 가능하다. 선수는 반복하여 그것의 표면을 향해 뛰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이빙은 일종의 시뮬레이션, 즉 비상과 필연적 추락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결말을 체육학적, 심미적 과정으로 다루는 가상적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다이빙 종목은 이러한 가상태(the virtual)로서의 추락을 더욱 더 정교하고 잘게 나뉘어진 장면들로 밀어붙이고 있다. '고속촬영' 혹은 '슬로우 모션'을 통한 움직임의 세분과 지연은 짧은 순간의 추락을 정지에 가깝게 늘임으로써 다이빙에 대한 우리의 경험적 인식에 영향을 주고 있다. 다이빙은 느린 스포츠가 되었다. 시청자들은 원하는 만큼 반복해서 추락하는 인물의 상태를 관찰함으로써 그것이 지닌 속도와 일시성을 진부한 것으로 바꿔 버렸다. TV에서 보여주는 추락하는 인물은 정지화면에 의해 노출의 대상이자 관음적 시선에 의해 뒤덮인 공공의 장소가 된다.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최근에 이준형이 그린 그림들은 여성들의 얼굴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인물들은 「다이빙」연작에서처럼 모두 고통이나 감정적 격동, 혹은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격렬한 내적 움직임을 표정에서 드러내고 있다. 가슴 윗부분에서 화면에 의해 잘린 나신(裸身)은 이 여성들이 성적인 절정의 순간을 맞고 있음을 좀 더 분명하게 알려준다. 높은 곳에서 이제 막 떨어지고 있는 다이빙 선수들처럼 이 여성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도 감각의 정점이다. 이 고점(高點)에서는 '모든 것이 녹아버린'다. 여기에서는 주체와 객체가 뒤섞이고 정지와 움직임이 혼재하며, 관찰과 표현이 교차한다.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일종의 속도가 이 점을 지배하고 있다. 관객이 보고 있는 것은 그러한 속도가 일어나고 있는 장소로서의 인물이다. 이준형은 이 흐릿함(blur)을 그리기 위해 대상을 신중하게 선택한다. 동시에 그러한 속도를 자신의 회화적 태도에 기재해 넣는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인물은 빠른 스트로크들에 의해 그려지며 그에 따른 회화적 사건들, 즉 뭉개짐, 흘러내림, 번짐, 지워짐, 생략 등의 기호들이 인물에 대한 기술을 구성하는 것이다. 흰색의 배경 위에 역시 고립되어 있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은 명시적으로 감각의 고조(高潮)와 몰아(沒我)를 지시한다. 고원(高原, plateaus)의 기호로서 제시된 여성의 얼굴은 회화적 사건의 장이 되면 될수록 더욱 더 그것의 선택에 충실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자유낙하를 하고 있는 인물이나 오르가즘의 정점에 머물러 있는 인물에게는 그들이 처한 외적 현실 혹은 외양 이상의 것이 있다. 아마도 그것을 잠재성(the possibl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인물들의 상태가 우리의 일상적 상태와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중력 혹은 그것의 효과로부터 벗어나 있거나 일상의 모든 감각들로부터 탈구(脫臼)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떠있는 인물들은 아직 지상 혹은 수면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사진이나 영상에 의해 기록된 다이빙하는 선수의 정지된 모습은 스스로 허공에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 못지않게 자신이 두 개의 벡터들(비상-추락) 사이에 놓여있는 팽팽한 지점이라는 사실에 대한 긴장된 자각으로 가득 차 있다. 절정의 상태에 놓인 인물 역시 이제까지의 혹은 앞으로의 모든 경로들로부터 완전히 일탈된 순간적 의미들로 채워져 있다. '가득 차 있다'라는 표현으로 인해 이 인물이 한껏 부풀어 오르지는 않는다. 이 인물은 반대로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인물이 가리키거나 상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그저 일순간 체공(滯空)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는 허공에 고정된 정점(頂点)이자 기호일 뿐이다. 이러한 정점의 의식이 대상을 관음적인 포르노로부터 분리시킨다. 관객은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사유화하는 대신 거리를 발견하고 사유로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모든 벌거벗은 대상들에 대한 회화적 지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이준형은 이 인물들을 드로잉에 가까운 속필(速筆)과 강한 콘트라스트, 그리고 차가운 인디언 옐로우 밑으로 비치는 격렬한 보색들로 표현한다. 붓질의 속도와 캔버스 위에서의 혼색(混色) 때문에 관객은 인물이 공간 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컨대, 「다이빙」 연작에서는 그리는 과정에서 흘러내린 물감의 방향이 수직으로 움직이고 있는 인물로부터 비롯된 감각으로 이어진다. 인물들은 아직 미완성이거나 감각을 최대한 기록한 상태에서 정지되어 있다. 묘사의 세부를 살펴보면, 어떤 부분들은 그저 윤곽선의 상태로 남아있거나 물감이 뭉개져 있어 사실적인 재현 대신 오히려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고, 또 다른 부분들은 극도로 압축된 원근과 더불어 형태의 명확성이 의도적으로 생략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물에 대한 의도적인 불충분한 묘사는 반대로 회화적 조건에 대한 주목을 강조한다. 심지어 이 인물들은 회화적 제스츄어를 드러내기 위한 장소들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이준형에게 있어 회화란 무엇인가? 무엇이 회화에 이르기 위해 추락하거나 체공하는 인물들을 선택하게 하는 것인가?

이준형_made in heaven_린넨에 유채_91×116cm_2010

이준형의 회화에서 정점에 대한 의식은 회화적 지각과 혼재한다. 그것은 관능적인 제스츄어 혹은 그러한 상태에 놓여있는 대상의 재현을 통해 각각 표출된다. 초점은 그것이 내재적인(immanent) 것인지 아니면 극적 재현의 문제인지를 가리는 것이 될 것이다. 회화의 물질적 기록이 고원을 이루는 것은 작가가 그것을 어디에서 보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순간의 의식 혹은 극적인 정점은 회화의 경우 작가가 그것을 의식하는 방식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작가 스스로 내부에 형성하는 강렬함, 속도, 의식의 결정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회화는 그것의 현재성을 규정하는 조건들로부터 '다른 장소'로 이전된다. 이준형은 이것을 'made in heaven'이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그리는 인물들이 위치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회화가 생산되는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 유진상

Vol.20101214c | 이준형展 / LEEJOONHYUNG / 李俊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