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청구展   2010_1222 ▶︎ 2011_0103

이여진_The thing 08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80cm_2010

초대일시_2010_1222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_박진영_이여진_정예랑_허나래

관람시간 / 09:30am~07:00pm

국민아트갤러리 KOOKMIN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2층 Tel. +82.2.910.4465 art.kookmin.ac.kr/site/fine.htm

subtle movement_이여진이여진의 캔버스 안에 있는 형상은 기존의 작고 세밀한 유사한 개체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 이 형상은 개체와 유사한 그러나 전혀 유사하지 않은 형태로서, 얼핏 보면 그 혼돈된 상태의 공간적 구조로 기하학적이고도 규칙적으로 나타난 프렉탈 구조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프렉탈 아트로 설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작은 캔버스 안에 존재하는 여백과 마주하는 형태와 여백의 관계 때문이다. 여백에 의한 구도에서 그 공간을 더 채워나갈 수 있는 형태의 가능성은 구성개체들이 가지고 있는 확장성을 강조하고 있다. 빈 여백은 작품의 단순한 과정적 미완성의 의미가 아니라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형태에 생명력을 불러 넣고 있는 것이다. 즉, 형태의 확장성은 형태의 유동성과 생명력으로 연계된다.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개체들의 촘촘한 구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형태를 하나의 유동적이고 유기적인 생명체와 같이 인식하게 하는 입체적인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 김미교

이여진_The thing 09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80cm_2010
이여진_The thing 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5.1×50cm_2010
허나래_untitl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62.2cm_ 2010
허나래_untitle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0cm_ 2010

UNFAMILIAR TIME_허나래 우리가 알고있는 익숙한 일상의 풍경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너무도 낯설다. ● 그대부분의 일상적 풍경들은 대개 평화로운 이미지로 연상되어지며 그것은 사람들이 특정 시간대와 공간을 연출하는데 부터 시작한다. 그 시간과 공간은 내가 정말 생활 속에서 경험했을수도있고, tv나 잡지같은 광고매체 속에서 흔하게 보여지는 사회적 상상의 이미지로 익숙해져 왔을수도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 우리가 상상하는 평화로운 일상은 후자 쪽에 가까운 연출된 상황이다. 매체 속에서 보아오던 잘 정돈된 거실이나 정원에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위치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위치에 전혀 어색하지 않을 자세로 자리잡고있다. 그 연출된 상황은 우리의 상상된 이미지 안에서 완벽하게 친숙하면서 편안하다. 그러나 그 시간과 공간에 묘한 틈이 존재한다. ● 나의 경우 거의 매일 보는 사람들과 공간들 속에서 언제나 잠깐의 순간 그런 틈을 경험한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대로 상황을 만들고 행동하지만 가끔씩 알수 없는 긴장감과 어색함을 느낀다. 그 갑작스러운 긴장감과 어색함의 원인은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상상된 이미지들이다. 우리가 대부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들은 대부분 사실 자연스러운것은 아니다. 시회권력은 특정 집단을 만들고 유지하기위해 개인들로 하여금 상상된 이미지들을 만들어 그안에 스스로 소속되기를 원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인륜적인 가치들은 특히 사회적 개인의 자발적 희생을 강요한다. 자신들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개인성을 헌납하고 서로를 감시하고 있다. 그 안에는 사실 진정한 자연스러움은 없다. 상상된 모델 상황 안 에서 행복해하고 있을 어색한 개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은 비대칭적인 시선에서 시작된다. 너무도 완벽하게 연출된 일상적인 공간 안에서 가구처럼 제자리를 잘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서로를 쫒고 있다. 그 시선들은 서로 만나지 않으면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 속 틈에서 사람들은 악의 없는 감시의 시선들을 주고받으며 익숙한 듯 낯선 한 때를 공유하고 있다. ■ 허나래

박진영_혼자서 핀 꽃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박진영_바람이 불지 않는 언덕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SPF 24/7 PA+++_당신의 피부는 안녕하십니까?_박진영 빠르게 돌아가는 거대한 정글인 사회 속에서 현대인은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듯 카멜레온처럼 피부갑옷을 입고 있다. 내면을 가꾸기 보다는 이중 삼중의 가면을 쓰고, 이렇게라도 두꺼운 갑옷을 입어야만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요즘 문제되는 가면성 우울증은 몇몇의 연예인들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으며, 몇 해 전 실직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에게 어느 지인은 재미있는 일이 있어 보인다는 말을 건네왔다. 전혀 유쾌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페르소나는 타인에게 여전히 웃는 얼굴만을 선사하고 있었다. ● 피부는 다른 신체부위에 비해 해부학적으로 가장 얇지만, 지각적인 두께로 전체를 대변한다.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자아'에 따르면, 피부는 자아를 감싸는 싸개다. 즉 피부는 표피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심리의 표면(지표)이며 세상과 나의 경계이다. 나의 작업은 웃는 근육의 표피로부터 출발하여 피부-대지(풍경)로 나타나는 '인형풍경'이다. 나로부터 출발한 창백하고 확대된 피부는 이상향의 세상으로 어우러져 있지만 무언가로 인해 불편하다. 내면과 외부세계가 만나는 접점에서 심리적 와해의 불안이 신체로 전환되어 자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타나는 피부 발진은 다른 이미지들로 대체되어 피부에 돋아난다. 나의 피부는 위장과 변신이 자유자재로 일어나면서 스스로를 방어하지만, 실은 타인의 애정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이다. ● 지금 우리의 피부는 자아를 향한 온전한 내 것일까? 어쩌면 직장상사가 요구하는 참신한 회사원, 혹은 부모님의 착한 아들딸, 아니면 매력적인 애인의 아바타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피부를 갖고 감각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피부를 사용해야한다. 겹겹이 쌓여있는 층위 속에서 나의 피부는 어디 있는 것일까? 알튀세르의 최종층위에서처럼, 나만의 자아의 고독함은 오지 않는 것일까? ■ 박진영

정예랑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30×160cm_2010
정예랑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130×160cm_2010

IDIOSYNKRASIE 정예랑 타인 지향적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타인의 기대와 선택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반응과 자세를 정립함으로써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사회라는 구조 속에 소속되어 끊임없이 사람들과의 소통을 경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특히 현대사회의 인간은 복잡해진 사회 공동체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식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온몸에 촉수를 단 듯 예민해져 있다.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격적인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타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공포는 공격 본능으로 전화되고,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개인들은 타인을 공격할 때 비로소 신변의 안전을 보장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은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고 소외당하게 만든다. 말미잘인간은 소외당한 동시에 타인을 상처 입힌 존재이다. 하지만 타인과 떨어져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간절히 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 정예랑

Vol.20101222b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청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