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Home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   2010_1229 ▶︎ 2011_0113 / 월요일 휴관

민재영_休日 Holiday_한지에 수묵채색_130×17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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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0_1229_수요일_06:00pm

본 전시는 2010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창작발표활동 지원기금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가회동60 GAHOEDONG60 서울 종로구 가회동 60번지 Tel. +82.2.3673.0585 www.gahoedong60.com

복수(複數)성에서 도약하는 단수(單數)성, '그들' 속의 '나'와 '너' 민재영은 도시의 일상-말 그대로 일상이다-, 도시인이라면 누구라도 모를 리 없는 경험들, 반복되고 반복되는 순간들을 그린다. 민재영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린다. 그 세계 어디에도 우리가 전혀 듣도보도 못 했던 차원이나 지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이 익숙함, 낯익은 거리의 행렬이나 인파, 이 '특별히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일상성으로 인해 감상을 방해받는가? 당신은 예술이 마땅히 어떤 낯섬에서 비롯되는 정서·심리적 충격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편향된 관점이나 편협한 시각의 소유자일 개연성이 높다. 당신이 어떤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익숙한 세계를 그린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새로움', '새로운 것', '새롭다'의 도그마(dogma)에 매몰되어 있지만 않다면, 삼라만상을 오로지 새것과 헌것으로만 분류하고, 미의 영역은 아방-가르드(avant-garde)와 아리에르-가르드(arrière-garde)로 양분하며, 모든 행위와 반응양태를 전통과 혁신의 이분법 안으로만 전치시키려는 인식 체계에 볼모로 붙잡힐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못미더울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한 것은 우리를 끊임없이 우리가 '전혀' 몰랐던 신세계로 인도한다고 허풍을 떠는 부류의 지식들이다. ● 민재영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군중을 그리고, 일상의 범주 안을 서성이는 집단을 묘사한다. 반면 개인은 거의 언제나 그들의 일원으로서 등장한다. 개인은 봄 거리의 인파나 귀가하는 학생들 가운데서만 존재하고 언급된다.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가 동원되는 경우에도 개인은 군집 속으로 숨거나 사라진다. 하지만 그 집단은 '역설적이게도' 한 개인에 대한 인식을 전적으로 포섭한다. 그 복수(複數)성 속에서 도약하는 것은 오히려 단수(單數)성이다! '나'와 '너'는 '그들' 의 복수성 속에서 그러리라고 가정하고는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바라본 적이 없는 단수로서의 자신과 대면한다. 실업자들과 기자들과 청중, 심지어 학생들에서도 자신과 만난다. (기혜경, '일상의 행렬 : 민재영의 퍼레이드', "우리들은 지금은 비록 일정한 거리를 두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결국 그림 속 군상들을 바라보는 나 역시 그리고 우리 역시 때로는 얽혀서 힘겹게 또 때로는 무덤덤하게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화면 속 군상들과 다를 것이 없기에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cat. 민재영展 / 2009. 09. 16~ 2009. 09. 27) ● 이러한 인식체험에 대해 도로시 세이어즈(Dorothy L. Sayers)는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그를 따르면, 예술가(시인)가 자신이 겪은 통절한 경험을 형상으로 빚어 넣는 덕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사건이지만, 우리가 한 번도 이해한 적이 없고, 스스로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한 적도 없어서 실질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없는 사건 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가 시를 읽거나 연극이나 그림을 볼 때 혹은 음악을 들을 때 갑자기 우리 내면에 전등이 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 바로 그거야! 내 속에서, 또는 내 주위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 정체를 확실히 몰랐고, 표현할 수도 없었던 거야. 그런데 저 예술가가 나를 위해 그 형상을 만들어 줘서 -그것을 형상으로 빚어주어서-내가 그것을 붙잡아 내 것으로 만들고, 지식과 힘의 근원으로 변모시킬 수 있게 되었어!..." (도로시 세이어즈/홍병룡역, 『기독교교리를 다시 생각한다』, (서울:Ivp, 2009), pp.184~185.) ● 민재영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아는 것, 그것에 의해 우리 모두가 하나의 실존에 함께 가담하고 있는 동료요 가족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그런 지식을 인식시킨다. 그의 경험, 곧 직접적인 지식이 형상을 부여해, 그것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것으로, 즉 그가 겪은 경험의 형상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의 형상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민재영_PM 6:00_한지에 수묵채색_75×51cm_2010
민재영_횡단 Crosswalk_한지에 수묵_110×150cm_2010
민재영_여배우 An Actress_한지에 수묵채색_100×74cm_2010

현실에서 '배후적 현실'로 ● 이렇듯 민재영의 세계가 자신이 경험하는 구체적 일상을 재현하는 단계를 넘어 세계의 직접적 형태를 띤 보편 지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의 형식적 전개에 의한다. 그 첫째는 그의 세계의 결을 이루는 '중첩된 가로선들'이다. 그 선들은 부단히 중첩되면서 명암과 톤을 조절하고 색과 풍요롭지만 절제된 떨림을 정착시키면서 형상들을 빗어나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중첩인 동시에 산포이기도 하고, 형성인 동시에 분열이기도 하다. 즉, 바로 그것들에 의해 인물들과 사물들과 상황들은 쌓이는 족족 흩어지는 것이고, 형성되는 동시에 쪼개어지는 것이다. ● 이러한 고유한 가로선들, 의사주사선들의 그 형식적 변증기제에 의해 민재영의 세계는 현실성의 급수가 조절된, 즉 '현실로부터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는 현실'이 된다. 그 형성인 동시에 쪼개짐인 것들, 결인 동시에 표면이고, 요인인 동시에 묘사며 톤인 동시에 톤의 지속적인 분열인 그것들이 사물과 인물과 상황들은 '예비하거나 대처할 수 없고, 정리해서 요약할 수도 없는, 모호하게 집성적이며 분열적인 하나의 층', 곧 풍크툼의 층을 형성함으로써 현실을 그 분석할 수 없는 여과 뒤에 놓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 이에 의해 현실은 그것들의 무수한 틈들 사이로, 그러나 비교적 용이하게 침투되는 시선들에 의해서만 인식가능한 '배후적 현실'로 재설정되는 것이다. 이 가로선들로 구성된 풍크툼, 곧 해독될 수 없고 불가사의한 전자적 현대의 아픔의 표피막인 그것과 그에 의해 현실이 '배후의 현실' 로 재구성되는 것을 전자시대, 진실조차 전자적으로 이해되고 소통되는 시대의 리얼리즘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재영_집에 가는 길 The Road Home_한지에 수묵채색_66×96cm_2010
민재영_접점 Contact Point_한지에 수묵채색_72.5×90.5cm_2010
민재영_퇴근길 Their Way Home_한지에 수묵채색_80×100cm_2010

성찰적 시야와 관찰적 인식의 완급조절 ● 민재영의 고유한 형상화의 두 번째는 상황을 조사하는 그의 시점에 있다. 민재영은 급격하거나 완만하게 비스듬한, 위로부터 아래로 흐르는 시선인 부감법을 통해 도시의 각종의 상황들을 조사하고 사람들의 군집과 마주한다. 시선의 각도는 부감의 규범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조절된다. 부감의 우선하는 미학적 미덕은 인식에 성찰적 차원을 제공한다는 점일 것이다. 즉 상황에 매몰되지 않을 만큼은 시야를 확보해줌으로써, 주관적 인식의 오류 가능성을 견제하면서 상황 속에 내재하는 세계, 일상 안에서 거동하는 역사를 주시하도록 하는 가능성의 급수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부감법은 자칫 세계를 자신이 끌어안거나 거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무관할 뿐인 비인간적이고 중성적인 지대로 만드는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잠도 안자고 웃지도 안고 오로지 자아에만 집중하는 것'은 분명 지옥의 표시일 것이지만(C.S. 루이스), 세계를 자신의 웃음이나 울음과는 종무관한 관념계로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존재의 지속적인 부재로 등치시키는 것 역시 천국과 거리가 멀긴 매한가지 일 것이다. 르네상스적 퍼스펙티브가 방종한 개인주의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면, 부감법은 자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허의 범주로서의 세계와 역사 가까이에 있다 하겠다. ● 하지만 민재영의 세계에서 부감법에 따르는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다. 대상과의 거리의 수준에서 작용하는 시선의 또 하나의 조절에 의해 화면 속의 인물들의 머리 바로 위까지, 때로는 그 행렬의 한 동행인 듯 할 때까지 스치듯 가까이 다가서기도 하기 때문이다. 민재영의 시선은 이렇듯 전통적 부감이 허용하는 관조의 리얼리티 결핍을 자주 관찰적 인식으로 보완해 나간다. 세계에 가까이 다가서거나 뒤로 물러서고, 관찰과 관조의 사이를 좁혀 나가고, 부조리극 속의 등장인물로부터 전지적 제3자를 오가면서 말이다. ■ 심상용

Vol.20101229h | 민재영展 / MINJAEYOUNG / 閔才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