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엮다

박석신展 / PARKSEUKSHIN / 朴錫信 / painting.installation   2011_0103 ▶ 2011_0128 / 주말,공휴일 휴관

박석신_시간엮기-꿈꾸는 시간_한지에 천연안료_210×57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주최_재단법인 이랜드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 휴관

이랜드 갤러리 E-LAND GALLERY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시간을 엮어내는 회화 ● 정사각형으로 제작된 작은 큐빅들을 엮고 엮어서 거대한 화면을 만들고 있다. 동양 전통회화의 한 형태인, 세로로 길게 늘어뜨린 족자그림 같기도 하고, 여러 개의 이미지를 조립해 거대한 화면을 만들어내는 페미니즘미술의 전형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미지들은 납작한 평면에 들러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된 영역이자 공동의 작품으로써 공중에 떠 있다. 또한 한지라는 동양적인 물성을 극대화시켜 만든 작은 큐빅들은 다분히 기계적이고 공예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작가는 10여년이 넘도록 이 작업을 일관되게 진행해왔다고 하는데, 박석신만의 이 독자적인 방법론은 매력적이다.

박석신_시간엮기-날기연습_한지에 천연안료_220×70cm_2010
박석신_시간엮기-몸짓_한지에 흙, 숯_220×70cm_2010

박석신의 설치적 회화, 회화적 설치작업은 두꺼운 종이에 한지를 씌운 후, 이것들을 나무끈으로 엮어낸 화면이다. 작가는 이 작은 큐빅을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노동집약적이고 공예적인 이 행위를 통해 물리적인 시간을 화면 안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단단한 지지대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움직임이 가능하고, 공간에 떠 있는 화면은 설치와 회화의 개념을 아우르면서, 그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다. 순간 그것은 회화와 입체, 설치 사이에서 공존한다. 박석신의 작품이 일정한 평면에 일루젼(illusion)을 준다는 점에서 회화이지만 3차원의 공간 안에서 작품이 어우러진다는 점은 설치의 영역임을 증명해주는 단서이다. 그러니까 회화이면서 설치이고, 설치인 동시에 다시 회화로 수렴되는 그런 작품이다.

박석신_시간엮기-신화속 시간_한지에 천연안료_220×70cm_2010
박석신_시간엮기-신화속 풍경_한지에 흙, 아크릴채색_220×70cm_2010

작가는 한지로 제작한 단단한 작은 화면에 흙이나, 숯, 천연안료 등을 이용해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작품의 주된 색상인 황토빛은 대지를 연상시켜 주는 색채이다. 작가는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흙과 천연안료를 미디엄과 섞어 자신만의 컬러로 만들어 내고 있다. 흙이 가지는 다양한 색채는 채취 당시의 사연을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연들은 작품 안에 들어와 추상화같은 문자, 혹은 기호적인 이미지로 환원되고 있다. 또한 박석신은 작가 개인의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소망을 이미지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작품에는 '새'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 새는 날기연습을 하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집을 짓기도 한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집을 짓는 꿈을 많이 꾸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작가의 심리가 투영되어 작품 안의 '새'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스틸이미지가 연속된 영화필름처럼 생긴 화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시간엮기-윤회」는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나무가 되고, 이 나무가 다시 씨앗이 되는 순환적인 구성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작가가 지닌 동양적인 사유체계가 시각화된 작품인 것이다. 작가는 앞으로 시간성에 관한 작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 작업은 앞으로의 작업방식에 단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석신_시간엮기-윤회_한지에 흙, 아크릴채색_170×47cm_2010
박석신_시간엮기-퇴적_한지에 흙, 아크릴채색_230×90cm_2010

박석신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문자추상같은 표현방식은 서양의 회화나 동양의 회화에서도 익숙하게 봐왔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문자를 작품에 응용하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전통적인 문자도(文字圖)는 작품에 기호화시킨 여러 이미지를 문자와 결합한 작품이다. 무릇 문자도란 문자 자체를 즉물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으로써 텍스트와 그림을 결합하여 문자 자체가 갖고 있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 모두를 살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서양의 미술에서도 문자는 자주 사용되었는데, 현대미술에서 본격적인 등장은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많은 작가들이 작품에 사용하거나, 자신의 드로잉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문자를 사용하였다. 이들은 문자 혹은 숫자를 포함하여 복합적인 기법을 창출하기도 하였고, 낙서같은 표현방식을 연구하여 문자와 칼리그래피(calligraphy)기법 등을 복합적으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박석신은 문자를 조형적인 이미지로 연출하기도 하고, 한지와 발라진 안료 사이에서 문자가 각인되어 이차적으로 드러나게 하기도 하였다. 문자추상, 초서체(草書體) 같은 인체드로잉, 혹은 숫자를 연상시키는 여러 기호들은 박석신만의 조형성을 부각시킨다. 그러니까 공예적인 수고스러움으로 만들어진 화면과 이 위에 그려진 기호적인 형상들은 작가의 조형적인 감성을 극대화시키면서, 하나의 거대한 심상일기로 환원되고 있는 것이다. ■ 고경옥

Vol.20110103b | 박석신展 / PARKSEUKSHIN / 朴錫信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