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청구展   2011_0105 ▶ 2011_0118

위정희_캔버스에 유채_235×45cm_2008

초대일시_2011_0105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_위정희_이승연_이은향_조은수

관람시간 / 09:30am~07:00pm

국민아트갤러리 KOOKMIN ART GALLERY 서울 성북구 정릉동 861-1번지 국민대학교 예술관 2층 Tel. +82.2.910.4465 art.kookmin.ac.kr/site/fine.htm

웃을까 울까 망설였다네 ● 그저 눈앞에 놓인, 반복되어 내 일상처럼 지루한 풍경들 중에는 종종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들이 숨어 있다. 계획적으로 배열된 단순한 도시풍경의 규칙이 어긋나면서 우연히 발생한 흔적이나 얼룩들이 어떤 모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바르트가 말한 punctum을 나의 경우에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에서 겪게 되는데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개인적인 감정의 반향뿐 아니라 이러한 발견에서 보물찾기나 숨은 그림 찾기에 성공했을 때 느끼는 즉각적이고 천진한 기쁨이 선행된다. 이런 감정이 매일 움직이는 동안 내가 발견한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장소에 쌓이는 기억이나 시각에 따라 변화하는 공간의 punctum이 매번 조금씩 다르게 퇴적한다. 그 과정에서 처음 동반된 즐거움은 퇴색되지만 그 풍경이 불러일으켰던 감정의 연쇄는 계속 일어나, 처음 경험했던 감정의 색채는 생명력을 가진 듯 차츰 변화한다.

위정희_캔버스에 유채_130[1].3×97cm_2010
위정희_캔버스에 유채_145[1].5×112cm_2010

결국 그 감정의 덩어리들로 이뤄진 풍경의 내면의 이미지는 조금은 기괴해 보인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그날 그날의 것들이 뒤섞여 그 규정지을 수 없는 감정 앞에 무기력한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고 느끼면서도 우울하다고 느낀다. ■ 위정희

이승연_lung ago_캔버스에 유채_92×117cm_2010

담담한 도시, 담담한 고독 ● 사람들이 북적이며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헌대도시의 모습은 개별적 감상이 아닌 '고독' 그 자체를 그리려는 이승연에게 적절한 소재로 주어진다. 고독이라는 매우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감정을 구체적인 정물, 풍경화로 그려낸 것은 매우 흥미롭다. 그 정물, 풍경 하나하나가 고독이 아니라 그림 전체가 유기적으로 고독의 이미지를 풍기는 것이다. 고독한도시의 모습은 매우 자연스럽게 캔버스에 녹아들어 있다. 이승연에게 고독은 하나의 유기적인 덩어리이다. 각자의 개인적 고독이 모여, 개개인이 이루는 유기적인 도시, 수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몸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캔버스 안에서 도시의 이미지는 유기적 흐름으로 술에 취한 듯 뒤섞이고, 몸은 개인으로서가 아닌 하나의 유기체로서 개별적 뼈와 내장으로 분해된다. 작가는 자유롭게 고독의 덩어리를 해부하고 뒤섞으며 고독의 본질을 찾는 행위를 계속해간다.

이승연_the glow in Boston_캔버스에 유채_130×193cm_2010

이러한 고독의 본질은 결국 문명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연적인 그리고 이미 생활화되어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타지에서 태어나 잦은 이민으로 인해 여러 도시의 고독을 느끼고 자란 이승연은 여전히 담담한 관찰자이다. 오히려 그런 관찰자적인 담담한 태도는 작가로 하여금 고독이 결국 미시적인 한 감정을 넘어 삶 자체이고, 현대도시들의 특징이라고까지 여기도록 한다. 이런 담담한 고독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흡사 우리가 '무의식'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일상풍경과 정물, 우리가 평생 달고 살지만 직접 보기 어려운 본인의 장기 속에도 스며들어 있다. 결국 현대도시가 지닌 고독의 본질을 찾고자 하던 그녀의 그리기 행위는 일상의 감성을 그리는 행위 자체이자 우리가 몸담고 살고있는 담담한 도시 자체가 된다. ■ 김미교

이은향_나비넥타이 달마시안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이은향_안경물고기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0

접시 위에 어떤 음식이 놓이는지를 살펴보면 개인이나 사회의 문화와 통념을 읽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환경적 요인이나 사회적 관습 또한 엿볼 수 있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던 점은 문화권, 혹은 나라별, 개인별'먹을 것'에 대한 수용정도의 차이였다. 어떤 동물이든 목을 완전히 잘라 피를 다 뽑아내지 않고 조리한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아랍인, 자신은 채식주의자지만 어패류는 먹는다고 얘기하던 영국인, 눈알까지 생생하게 붙어있는 채로 방금 가죽을 벗긴 양머리를 보기 좋게 진열해 놓은 스페인의 정육점들이 나에게'먹을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은향_쥐 통조림_캔버스에 유채_97×130.7cm_2010

'먹을 것'과 아닌 것을 종교나 문화적 이유 또는 개인윤리에 의해서 결정짓는 지점이 개, 돼지, 소 또는 핏기가 있는 붉은 고기, 흰 고기, 젖, 알, 열매, 씨앗 등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에 대한 잣대와 기준, 어느 것까지가 먹을 것이고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명을 어느 관점에서 바라보는가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그 중 어느 입장이라도 생명의 가치 정도를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까. ■ 이은향

조은수 엄마아빠놀이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0

나는 7년 전 상영된 영화『스캔들』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다. 당시 큰 이슈를 일으켰던 이 영화는 조선시대 양반들의 성(性)을 관능적이지만 조금은 풍자적으로 제작되었다. 과거 점잔은 모습으로 책만 볼 것 같은 선비가 옆 집 미망인을 유혹하고 체면을 가장 중요시 하지만 뒤에서는 숨길 수 없는 성의 본능을 거침없이 표출해내고 있다. 또 조신한 양반의 안방마님들은 뱃놀이를 즐기면서 그녀들만이 모이는 다과 자리에서 그녀들의 성을 거리낌 없이 토로(吐露)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장면들로 하여금 인간의 본능인 성이 조선시대 이전부터 억압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은수_똘똘이1_라쿤, 석고, 아크릴_85×50cm_2010 조은수_똘똘이2_라쿤, 석고, 아크릴_30×50×110cm_2010

독일출신 미국 철학자 마르쿠제(Marcuse Herbert, 1898-1979)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필요 이상으로 성이 억압되고 착취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우리나라 과거 조신함을 강조했던 여인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는 성이란 음란한 것으로 간주되어 입에 담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양반들이 보던 야한소설이 있었다는 것과 당대 최고의 화가 김홍도도 야한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고 있다. 『스캔들』 흥행에 성공한 이유도 조선시대라는 보수적인 시대에 양반들의 성을 은밀하고 풍자적으로 담아내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 작가는 그런 억압되어 있는 은밀한 성에 대해 작품으로 재해석 하고 있다. 음란하거나 퇴폐적이지 않고 작가의 이념적 시각으로 보여 지는 남자와 여자의 몸, 그 몸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다르지만 평등한 성을 유머러스하게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억압된 성을 풍자적으로 그려내어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거부감 없이 공감할 수 있는 실마리를 끌어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매개체로 작가가 생각하는 성과 관객이 생각하는 성의 공감대를 형성하여 관객과 소통하려고 한다. ■ 배한나

Vol.20110105g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전공 석사학위 청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