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나는 누구 인가

원덕희展 / WONDEOKHEE / 元德禧 / photography   2011_0105 ▶︎ 2011_0129

원덕희_사랑 그리운 밤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6×102cm_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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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_갤러리덕

윈도우갤러리로 24시간 관람 가능

갤러리덕 gallery DUCK 서울 종로구 부암동 159번지 Tel. +82.2.6053.3616 www.galleryduck.com

갈매기 종일 울며 날고 그 위로 흩어지는 바다의 비린 내음들. 한가닥 사연도 없는 듯한 포구에 슬그머니 버린 짤막한 시간들이 모여 다가오는 저녁 어스름이 내려 앉자 보리밭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했다. 어두워질수록 바다는 가라앉았지만 잠들지 않았다. 어느새 보리밭가에 앉은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보리밭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이 시원했다. 바람이 때려도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보리밭 뒤에서 바람이 불고 바람후에는 나는 달 길을 걸어 그리운 것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먼 바다 끝만 바라보다 바다에 내려 앉은 별들을 눈에 담고 뜸벅뜸벅 돌아온다. ■ 원덕희

원덕희_꿈꾸는 비상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51cm_2005

잃어버린 시인의 바다를 찾아서작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땅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풍경들, 이곳이 아니면 다가오지 않을 바다 내음, 이 모든 것들을 내 방식대로 정리하는 기쁨. 그래서 암실에서 인화된 사진을 볼 때 나는 진정 행복을 느낀다. 비록 가난하지만 나만의 것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행복을 서랍 속에 놔두고 불행만 느끼며 사는 이가 얼마나 많을까?" 라고 자신의 노트에 적고 있다. ● 그러나 작가가 보여주는 바다는 결코 자기만족을 통한 삶의 예찬이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기억의 흐린 단편들이 위장하는 현실의 피난처일 뿐이다. 바다는 작가의 고향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가 삶의 굴곡과 물질의 유혹을 지나 홀연히 찾은 곳, 삶의 육중한 갑옷을 던져 버리고 영원히 지우지 못할 죽음과 생의 진실을 찾아 떠난 곳 그리고 어두운 암실에서 스스로의 만족과 희열을 발견한 곳, 바로 그곳이 바다이다.

원덕희_문을 연 바다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76×102cm_2006
원덕희_푸른 가슴으로_젤라틴 실버 프린트_28×35cm_2006

말하자면 그에게 바다는 삶의 여정에서 침전된 일종의 감정의 잔여물로서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담을 쓰듯이 적어도 삶의 회한과 아쉬움이 투영된 삶의 잔영(殘影)이나 자화상적인 무언극이 된다. 왜냐하면 사진 메시지는 작가 고유의 내부적 경험으로 소급되어 올라가는 특별한 이미지 읽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 자신이 반-미학적인 사진가로 자처하면서 흔히 전통적인 소통 개념에서 "아름다운사진" 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 사실상 작가의 사진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특별한 사건이나 특이한 형상이 전혀 없다. 어딜 봐도 푼크툼(punctum) 하나 없는 무광의 현실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바다와 구름 그리고 아무렇게나 핀 하찮은 풀과 나무만 보여 줄 뿐이다. 이러한 밋밋한 이미지들은 사건-사고의 장면에 익숙한 의미의 눈으로 볼 때 적어도 응시자의 입장에서 사실상 해석 불가능한 수수께끼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백의 톤으로 은은히 드러나는 바다는 갑자기 우리로 하여금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듯이, 혹은 시를 읽을 때 그 시를 구성하는 단어의 조합으로만 읽지 않듯이,

원덕희_은모래 빛나던_젤라틴 실버 프린트_40×51cm_2003
원덕희_허리 굽은 바람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51×76cm_2006

우리는 사진 이미지 내면에서 발산되는 순수 그 자체에 어떠한 논리적 근거를 달지 않는다. 게다가 어딜 봐도 사람이 출현하지 않는 황량한 장면들은 이상하게도 그 누가 말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 않는 익숙한 장소로 나타난다. 이와 같이 장면은 관객 자신의 경우로 재구성하는 연극과 같이 슬며시 응시자 각자에게 불현듯 잊혀 진 기억을 호출하는 일종의 자극-신호(stimuli-signaux)가 된다. ● 결국 작가의 렌즈를 통해 은밀히 드러나는 것은 진술을 위한 재현이 아니라 삶의 편린에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진실 예컨대 인적 없는 거리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비닐봉지, 누군가의 죽음을 위해 땅을 파다 버려진 곡괭이,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할머니의 무표정한 얼굴과 같이 출현과 부재 그리고 존재와 허무 근처에서 맴도는 삶의 시뮬라크르(simulacre)이다. 이럴 경우 작가의 바다는 사진으로 전이된 신호의 순수 서정시임과 동시에 어느 음유시인의 노래와 같이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피안(彼岸)의 장소로서 위대한 바다가 된다. ■ 이경률

Vol.20110106b | 원덕희展 / WONDEOKHEE / 元德禧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