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알레고리 Allegory of the moment

황정희展 / HWANGJEONGHEE / 黃楨喜 / painting   2011_0105 ▶ 2011_0213

황정희_Cool Vacance I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2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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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105_수요일_06:00pm

주최 / 가비화랑 기획 / 최현요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가비화랑 GABI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2번지 2층 Tel. +82.2.735.1036 www.gallerygabi.com

'순간의 알레고리'에 대한 다섯 개의 각주 화가의 글쓰기 ● 투영. 화가가 앉아 있는 검은 방 안에 렌즈에 반사된 이미지가 투영된다. 밖은 화창하고 강렬한 햇빛이 있고, 화가는 그 투영된 이미지를 빠르게 그린다. 고전시대의 화가들의 모습은 매개체를 통해 예술을 더욱 선명히 부각시킨 예를 보여준다. 잘 투영될 수 있는 매끈한 볼록렌즈. 여기에 투영된 이미지를 구성하여 화면을 만든다. ● 화가의 글쓰기는 또 다른 볼록렌즈에 무엇인가를 투영하는 일. 투영된 언어에 윤곽과 색채를 입혀 곧 사라져 버릴 이미지처럼, 곧 사라져 버릴 상념의 편린片鱗을 고정하는 일. ● 나는 회화를 대신하는 글쓰기의 렌즈를 통해 이미지의 투영을 경험한다.

황정희_Allegory of the Moment 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120cm_2010

순간의 알레고리 ●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높은 천장의 공기 속에 사라졌다 들려오는 가느다란 찻잔 소리, 낮은 피아노음, 앞으로 벌어질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듯 한 빈 의자, 묻히고 또 묻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 공간을 울리는 연주와 그와 상관없는 듯 한 연주자의 흐릿한 모습, 사물의 질감과 색채를 삼키는 역광의 빛, 밝음으로 더욱 어두운 실내, 모호함에 대적하는 듯 명확히 공간을 가르는 직선의 사각기둥. ● 밝은 대낮과 어두운 밤의 불빛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작품 '빛의 제국'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조용히 그리고 깊게 충돌하는 혼재의 애매한 느낌. 이 순간을 회화로 중첩한다. ● 현실에서 분명함과 명확함보다 더 많이 느끼며, 더 자주 마주치는 모호한 순간들. 명쾌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 다른 것들 의미하는 듯 한 알레고리의 이 순간들. 그러나 너무나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경험들. 순간의 한 겹을 걷어 내는 회화를 통해 그 실재성에 접근한다. 휴양지 ● 잔잔한 물살에 일렁이는 수영장의 타일, 하얀 선 베드와 파라솔, 작열하는 태양와 삽상한 바람, 아무런 방해가 없는 인적 없는 장소. 그리고 맑은 공기를 주는 숲. ●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을 걷어내고 싶은 고요하기만 한 곳. 끊임없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현재를 분석하며 확신을 갖지 못하고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하는 현실의 삶과는 분명 대적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더더욱 비현실적인 장소를 그린다. ● 그러나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한 부분에 있는 일상의 탈출지점. 평안과 휴식의 욕망이 집결된 휴양지.

황정희_Allegory of the Moment II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0×72cm_2009

예술 옹호 ● 삶은 비평이 필요한 현상. 알랭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예술에 대해 정리를 다음과 같이 한다.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로서 늘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소설, 시, 희곡, 회화, 영화 등 예술 작품은 은근히 또 재미있게, 익살을 부리기도 하고 근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우리의 조건을 설명해 주는 매체 역할을 한다. 예술작품은 세상을 더 진실하게, 더 현명하게, 더 똑똑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안내해준다. ● 그렇다면, 나는 이 부분에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회화를 하고 있는가. 삶에 대한 비평을 꼭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왜 끊임없이 회화를 생산하고 있는 것일까. 혹, 진정 답을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끊임없는 물음의 과정을 통해 회화 지속의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회화적 장치- 표면 ● 인정한다. 우리의 모든 삶의 현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흘러가는 표면일 뿐이라는 것을. 캔버스의 이미지는 표면일 뿐이라는 것을. 잡으면 아무것도 아닌 비 물질의 영상처럼 빛이 아니라 물질로 결합된 표면일 뿐이라는 것을. ● 너무 사실적인가. 그래도 우리 삶에는 약간의 눈속임이 있고, 환영도 있고, 확실한 무엇을 붙잡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은가. ● 그러나 삶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회화 그 자체가 이미 약간의 눈속임이고, 환영이고, 물질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낭만적이다. 한 겹, 두 겹, 세 겹으로 겹쳐져 있는 얄팍한 레이어의 표면층에 심혈을 기울인다. 캔버스의 하얀 표면 위에 겹쳐진 세 장의 레이어. ● 맨 위에 보여 지는 마지막 표면 이미지. 반복과 수열로 표면화한 이미지보다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 황정희

Vol.20110106g | 황정희展 / HWANGJEONGHEE / 黃楨喜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