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이애미에서 길어올린 최영욱의 달 항아리 그림

최영욱展 / CHOIYOUNGWOOK / 崔永旭 / painting   2011_0119 ▶︎ 2011_0215

최영욱_Karma_혼합재료_70×70cm_20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가가 갤러리 개관 2주년 기념展

관람시간 / 10:00am~07:30pm

가가 갤러리 GAGA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1-1번지 Tel. +82.2.725.3546 www.gagagallery.com

기억과 이미지의 층위 ● 최근 달항아리에 관심을 가진 한국 작가들이 부쩍 많아졌다. 김환기, 고상봉을 비롯한 작가들을 비롯해 강익중, 구본창등과 지금 글을 쓰려는 최영욱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소재나 주제로 다루어왔고 글로서 달항아리에 대한 예찬을 남겼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 갤러리에서 달항아리를 주제로 한 전시회도 열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도대체 무엇이 달항아리 현상이라고 할만 한 이런 일들을 일어나게 했을까? 미술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달항아리는 예술작품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빚어진 작품이 아니다. 달항아리는 조선시대에 한국음식인 장을 담아두기 위한 도구로서 만들어졌다. 이른바 백자대호라고 불리는 백자 달항아리는 18세기 즉 영조, 정조 임금이 재위하던 시기에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금사리 가마와 분원가마에서 제작되었다. 보름달처럼 둥근 형태의 항아리로 높이 40센티미터 이상 되는 큰 항아리를 말한다. 당시의 수동 물레로서는 그러한 크기의 성형이 불가능했기에 두 개의 큰 대접을 만들어 이어붙인 달항아리는 때문에 형태가 어딘가 일그러져 있고, 간장을 담았을 경우에는 간장이 표면에 배어나오기도 했다. 일상용품으로서의 달항아리는 많은 시각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그 찬사의 공통점은 대개 미술사가 유흥준의 지적처럼 "따뜻한 순백의 색깔, 너그러운 형태미, 부정형의 정형이 보여주는 어질고 선한 맛과 넉넉함, 그 모두가 어우러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다. 달항아리의 예찬자이자 많은 작품을 남겼던 김환기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의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있지 않을까."(수화, 김환기, 1963)   아무튼 달항아리는 시대를 뛰어넘어 작가들을 자극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한국적 심미감의 원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최영욱의 작업들 역시 그 오래된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영욱_Karma_혼합재료_70×70cm_2010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일종의 오마쥬이다. 그 오마쥬는 달항아리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달항아리에 내재하는 한국 특유의 심미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한국 특유의 심미성이란 위에서 수화나 유흥준이 언급했듯이 인공성과 자연성 사이의 조화와 균형과 긴장에서 발생한다.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사물에 자연의 힘인 불과 중력과 기타 다른 힘들이 작용한 결과가 달항아리이다. 때문에 달항아리에는 중국이나 일본의 대형 자기들이 보여주는 인공적 완벽성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일그러짐 내지는 불균형이 있다. 그러나 그 일그러진 아름다움은 인공성을 뛰어넘는다. 인공성을 뛰어넘을 때 빚어지는 형태상의 긴장은 팽창해 터지려는 항아리와 그것을 붙잡는 흙들의 친화성에서 온다. ● 색채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백색들의 변화는 형태와 맞물려 마치 닭이나 다른 조류가 낳아놓은 알과 같은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때문에 달항아리라는 이름과 더불어 인간의 손으로 빚은 것이 아니라 자연이 낳은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최영욱의 달항아리에 대한 예찬 혹은 탐구는 그 형태와 색채를 평면위에 모방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호학적으로 말하자면 삼차원 기호를 이차원의 평면에 옮겨 오면서 개인적인 해석들이 가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물감이 항아리는 빚는 태토이고 유약이며 동시에 불을 지펴 열을 가하는 가마인 것이다. 그 접근 방법은 조심스럽다. 마치 껍질 얇은 달걀을 한 바구니 옮기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캔버스 위에 형태와 색채를 구사한다. 그 결과 흰색의 화면에 흰색의 달항아리가 달처럼 드러난다. ● 최영욱의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빙열에 대한 관심이다. 빙열은 얼음처럼 갈라진 자기 표면의 유약의 균열이다. 그 균열은 물론 인공적인 것이 아니다. 자연의 힘이 작용한 결과이다. 최영욱의 달항아리는 외견상으로는 달항아리를 재현하면서 형식적으로는 색채와 선이라는 기본적인 조형요소들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거기서 입체적인 전통 예술품으로서의 달항아리가 최영욱 식 달항아리로싀 전화가 이루어진다. 최영욱의 작업에는 또 하나의 층위가 있다. 최영욱은 "나의 그림은 기억의 이미지화다."라고 말한다. 이때 기억이란 달항아리에 대한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기억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기억들은 달항아리가 품고 있는 조형적인 요소들을 만나 일종의 승화가 이루어 지는 것이다. ● 최영욱은 항아리의 선들과 빙열을 더 밀고나가 추상적인 것들의 언저리에 두기도 하고 때로는 흰 항아리를 검은 항아리로 바꾸기도 한다. 검은 항아리는 사실 달항아리가 사라진 어둠이며 달이 뜨지 않는 그믐밤과 같다. 밝음과 어둠의 사이에 달항아리는 존재하여 빙열은 달항아리에 대한 시간의 간섭과 흔적이기도 하다. 최영욱은 작가노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도자기의 선은 인생의 여러 길 같다.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비슷한 듯하며 다르고, 다른듯 하면서 하나로 아우러진다." 물론 이 선은 도자기를 이루는 몸체의 선이기도 하고 빙열의 선들이기도 하다. 빙열의 선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최영욱이 말하는 "삶의 질곡과 애환, 웃음과 울음, 그리고 결국엔 그런 것들을 다 아우르는 어떤 기운..."이 그 안에 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그린 달항아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상징이자 은유이며 자기 자신의 삶이기도 한 것이다.

최영욱_Karma_혼합재료_70×70cm_2010

모든 사물들은 필연적으로 기호이다. 기호를 이루는 기표와 짝을 이루는 기의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는 정서적인 묶음이 있다. 달항아리가 우리에게 주는 심미적 감흥이 바로 그러하다 그 감흥이 최영욱을 흔들어 캔버스 위에 달항아리를 닮은 이미지들을 만들도록 했다. 그 이미지들은 외견상 재현적인 것에서부터 추상적인 선 드로잉들의 집적에 까지 이르른다. 최영욱은 달항아리의 형태와 색채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는 인화문, 귀얄문을 인용하고 추상적인 선드로잉의 집적으로 달항아리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달항아리를 그리지 않으면서 달항아리를 그리려는 시도를 한다. ● 오래전에 노자가 말했다. 인간은 그릇의 몸을 사용하는게 아니라 그 빈 공간을 사용한다고 달항아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달항아리의 몸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지만 실제로 쓰는 것은 그 빈 공간이다. 물론 감상품으로서의 달항아리는 실용적인 그릇이 이미 아니다. 실용성이 사라진 역사적 미술품으로서의 달항아리는 순수 미술품에 근접한다. 최영욱의 작품의 언어가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실제적 사용이 멈춘 지점에서 시작되는 달항아리의 심미적 실용성과 변용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조형적으로 탐색해 보는 것. 물론 이것은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작업들이 달항아리를 매개로한 소통의 통로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 통로는 과거와 현재, 나와 타자를 아우르며 새로운 관계의 정을 만들려는 시도이다. 물론 어떤 미술작품도 그러한 시도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 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길이 달항아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놓여있을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 강홍구

Vol.20110109e | 최영욱展 / CHOIYOUNGWOOK / 崔永旭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