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정화하다

윤자영展 / YOONJAYOUNG / 尹慈永 / video.performance   2011_0125 ▶︎ 2011_0131

윤자영_기억을 정화하다_단채널 비디오, 프로젝터_00:27:00_2010 Performance with 360lbs(16kg)salt / 36fit(11m)diameter circle / Bonneville Salt Flats ,Utah,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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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129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2층 기획전시실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평범한 하루를 지내다가, 문득 예전의 어두운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 준 말이 후회가 되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까 초조하기도 하다. 혹은 반대로 누군가에게 입은 끔직한 상처, 아니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서 느낀 아픔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시린 기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머리와 몸을 순식간에 헤집어 놓는다. 시간이 지나 이제 어쩌지 못한다는 절망감과 함께. 그런데 만약 시간을 지우는 지우개가 있다면 어떨까. 박박 문질러 지워버리고 싶진 않을까. 지우개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어두워진 감정까지 없어지도록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말이다. 이러한 과거의 시간, 부정하고 싶고 그 당시에는 참된 자아가 아니었다고, 나의 거짓된 모습이었다고 외치고 싶은 그 순간을 작가 윤자영은 조용히 지워나간다. '지금' 말이다.

윤자영_참 자아_2채널 비디오, 프로젝터_00:01:00_2010 Performance with twelve porcelain potteries in Colorado, USA

지우다. 그리고 비우다. ● 작가 윤자영은 한 인간으로서 내면 깊은 곳을 사색하면서, 이를 작품으로 제시해왔다.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춤을 추는 신체 이미지로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신체의 일부분인 머리카락으로 만든 장갑과 옷을 착용하는 친숙하지 않은 경험을 줌으로써 현재라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느끼게끔 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인간의 내면이 발현되는 신체의 일부로 자신의 사색을 나타내왔다면, 이번전시에서 선보인 작업에서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 모든 아픔과 고통, 분노, 질투를 내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정화하고자 합니다. … 그 기억을 모두 정화하기 위해 나는 조용히 걷습니다. 소금 사막 위에서... … 줌으로써 더욱 하얗게 변하는 소금사막처럼, 나의 마음 밭도 용서를 줌으로써 더욱 하얗게 변하기를 원합니다."(작가 노트) 「기억을 정화하다(Cleansing the Memories)」 시리즈 중 유타주(Utah)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 영상에서 범세계적인 세상과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둥근 원을 그리며 놓여있는 하얀 소금 더미가 놓여있는 중성적인 공간. 그곳에서 작가는 소금 더미를 들고 서있다. 그리고 원을 가로질러 걷는다. 이 느리고도 조용한 걸음과 함께 소금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 직선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느린 걸음은 계속 반복되고, 그러한 반복을 통하여 작가는 모든 아픔이나 고통과 같은 어두운 기억이 하얗게 지워지기를 소원한다. 마치 고행을 하는 수도승처럼 규칙적이고도 느린 그 걸음은 계속 이루어진다. 하나의 원이 하얗게 깨끗해질 때까지.

윤자영_마음을 비우다_단채널 비디오, 프로젝터_00:03:03_2010 Performance with four wearable hair sculptures in Colorado, USA
윤자영_마음을 바라보다_2채널 비디오, 프로젝터_00:01:13 2009_Performance with a wearable hair clothe

나를 비우다. ● 이렇듯 윤자영은 기억의 어두움들이 자신을 통하여 정화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자신'은 누구인 것일까. 작가는 특정한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하나의 인간으로, '거짓된 자아'를 버리고 '참자아'를 찾아가고자 하는 인간일 뿐이다. 「참자아(Non-Ego)」에서 자신을 구속하는 어떤 것(하얀 도기로 상징되는)을 마침내 깨고 한 걸음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작가는 관람객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하여 작품에 삭발을 하고 야윈 몸을 지닌 한 인간을 등장시킨다. 특정한 신분이나 성별을 알 수 있는 어떠한 의복과 장신구도 하지 않은, 벌거벗은 한 인간.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남지 않은 이 인간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그 누구든 스스로를 투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19세기 독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의 작품 속 작은 인간에 우리를 투영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화폭 속 거대한 자연을 느끼는 것처럼, 혹은 김수자의 영상 속 보따리를 담은 트럭에 타고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따라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감정이입은 윤자영의 작품 「마음을 비우다.(Emptying the Mind)」에서 심화된다. 멀리 눈이 내린 산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뒷모습. 눈밭에 앉아 고요히 바라보고 있는 그곳을 우리도 자연히 바라보게 되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작품 속의 사람처럼 우리 역시 마음을 비우게 되지 않을까.

윤자영_마음을 듣다_단채널 비디오, 프로젝터_00:09:00_2009 Performance with a hair sculpture in Maine, USA

그리고 다시.. ● 기억을 지우고, 마음을 비워내게 하는 작가 윤자영의 작업을 통하여 우리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안 좋은 기억을, 어두운 그늘을 하얗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 계속해서 지우고 또 지우며, 비우고 또 비워내어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다보면 껍데기만이 남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작가는 자신에게 있어 시간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단지 영원한 현재를 살아갈 뿐이라 말한다. 그리고 계속된 비워짐을 통해 참자아를 찾아가게 되며, 결국 더 충만한 긍정의 빛이 채워질지 모른다. "99개가 아닌 100개의 드로잉입니다. 한 장, 한 장 드로잉을 끝내면서 머릿속에 구름같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나의 기억들을 바라보며, 내 주변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정화했습니다." 「기억을 정화하다.(Cleansing the Memories)」의 드로잉 작업은 작가가 말한 '정화'가 현재도 이루어지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한다. 검은 원을 지워나가며 한 장 한 장 만들어낸 드로잉들은 그 끝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든 100개의 드로잉. 그 옆에서 우리도 함께 검은 기억을 하얗게 지워 가면 어떨까. ■ 허나영

Vol.20110116a | 윤자영展 / YOONJAYOUNG / 尹慈永 / video.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