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전람회

2011_0118 ▶︎ 2011_0123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118_화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규원_김유진_김채영_박소정_신재민_신혜수_조윤경_현지연

부대행사 '전시 방담放談' 일시 / 2011_0123_일요일_04:30pm 장소 / 서교예술실험센터 1층 방담 / 전시출품 예고생 8명 + 반이정(미술평론가)

관람시간 / 09:00am~10:00pm / 월요일 휴관

서울문화재단 서울시창작공간 서교예술실험센터 SEOUL ART SPACE SEOGYO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9-8번지 Tel. +82.2.333.0246 cafe.naver.com/seoulartspace

서울예고생의 『아무도 모르는 전람회』가이드 : "의도를 격려한다." ● 전적으로 고교 재학생만으로 편성된 전시회가 대안적 미술공간에서 열린 건, 국내 화단사를 통틀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예고 재학생 8명으로 구성된 『아무도 모르는 전람회』가 개최된 발단은, 작년 10월 서울예고 2학년 재학생이라 밝힌 어린 학생으로부터 받은 이메일 한통에서 비롯된다. 내용을 약술하면 의기투합한 2학년 학생 8~9명이 학교를 벗어나 교내 관계자보단 외부 미술계인사에게 선보일 전시 개최를 계획 중이라는 것과, 자신들의 출품작을 혹독하게 평할 비평문을 내게 청탁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런 발상의 단서는 세계화단을 평정한 yBa의 플랫폼이 된, 1988년 데미안 허스트와 골드스미스 미대생이 주축이 된 『Freeze』전에서 발상의 전환을 얻었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신혜수_ㄹㅕㅁㄴㅏㅗㅎ_단채널 비디오_00:02:46_2010

매해 입시철 전후로 '전국에서 서울대 합격률이 가장 높은 특수목적 사립고'로 보도되는 입시 우등고교 출신자들의 집단적 시도는 다듬어지지 않은 패기로 보고 치부할 만 했다. 그렇지만 제도권 화단에서 활동 중인 평론가의 환심을 사로잡을 지점이 발견되었다.

조윤경_뜻하지 않았던 것_캔버스에 유채_70×38cm_2010

기계적으로 구분하자면, '(예술)고교 - 미술대학 - 제도 미술계'는 끊기 힘든 연관성을 갖는 공동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상호 관계의 유기성이 배제된 채, 상향식 단계들로서 일방향성만을 지닐 뿐이다. (예술)고교는 미대 입학을 위해 기교를 배우는 양성소의 일방주의를 띠며, 뜻밖에도 어렵게 입학한 미대는 현장미술을 향한 갈망 혹은 체념적 포기라는 양극화된 경험을 하는 곳이 되었다. 미술계는 거의 '완성된 수준에 이른' 극소수 미대졸업생에게만 이따금 시선을 던질 뿐이다. 예고와 미대 그리고 미술계는 이 세 공동체는 각기 고립된 채 존립한다. 때문에 나처럼 제도권 평론가가 (제 아무리 명문고라 한들) 언젠가 극소수의 예비 작가로 성장할 예고생의 과제전을 품평할 기회란 전무하며, 기대감조차 없이 산다. 마찬가지로 예고생도 현장 미술의 주류가 어떻게 변하는지, 미학적 지형의 어디 쯤 와있는지 가늠조차 못한 채, 입시를 위한 최적의 기교를 숙련하느라 3년을 달인처럼 생활한다. 사방으로 높다란 벽을 자기 주변에 쌓고는 인내와 숙련을 배우는 예술고교 3년. 이 기간이 의심 없는 하나의 통과의례로 이해되는 환경이 진짜 비극이다. 왜냐하면 미대에 들어간들 사정이 나아지진 않기 때문이다.

현지연_융합_연필로 드로잉_48×65cm_2010

그런 사정을 대략 아는 처지에서, 교감을 기대하기 힘든 둘(예고-제도권 평단)사이의 연결을 요청한 서울예고생의 의도가 사소한 일탈로 치부되지 않았다. 그림의 주제, 크기, 규격 등 정형화된 교육을 반복적으로 받은 학생들에게서 획기적인 조형적 변화를 기대하긴 어려웠다. 발상 전환의 시도 혹은 훈련을 접할 기회가 차단된 구조이니 당연하다. 학생들의 작품을 보니, 미대 저학년 과제전 출품작의 유형들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즉 출품작은 크게 두세 유형으로 나뉜다. 소재 찾기의 마르지 않는 우물로 자의식에 기대는 작품(현지연, 김채영, 신재민, 김유진, 신혜수)과, 대중문화에 민감한 시절의 감성이 투영된 작품(김규원, 조윤경). 그리고 형식실험에 대한 갈증(박소정)까지.

김규원_품안품밖_혼합재료_120×97cm_2010

우연히 서울예고 57주년 미전 2학년 도록을 구해봤는데, 내 짐작이 틀리진 않았던 것 같다. 학생들 모두의 조형적 기교는 동년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있었다. 하지만 그 유능한 기교가 정형화된 프레임에 묶여서 완성되고 있었다. 아직 입시 준비생이라는 양해를 구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 대학(의 전형)도 변하고 있다. 대략 수년 전부터 거의 모든 미대의 입시에서, 당락을 결정짓던 전통적 잣대인 기교적 완성도는 차츰 밀리고 있다. 그보다 지원자의 남다른 상상력에 가중치를 둔다는 얘기를 관계자로부터 들은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깔끔하게 마감한 과제를 제 시간에 맞춰 제출하는 예술가 지망생. 그들을 오늘날 주류 화단이 필요로 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다. 예고 출신자가 많은 미대일수록 실험작의 개수가 적고, 예술을 전공 '과목'으로 냉정히 선 긋는, 이른바 모범생들이 유독 많다는 불평이 학내에서조차 쏟아지는 형편인 점을 무시해선 안 되겠다.

박소정_현실엔 존제하지 않는 날 잡고싶은 넌 안타까워_혼합재료_45.5×53cm_2010

내가 받은 첫 제안 메일에서 보듯, 출품한 여덟 예고생들이 내심 가장 바라는 건 제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의 서늘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주저하게 된다. 제도 평단에서 닳고 닳은 사람은 입시전문 교육으로 닳고 닳은 학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위치에 있지 못하다. 그렇지만 입발림이 아닌, 해줄 수 있는 객관적 격려와 응원은 있다. 보호망에 갇힌 사유를 야전에 내놓겠다는 의도, 급기야 그 의도를 실행에 옮긴 패기. 자칭 타칭 예술가들이 타성에 젖어 무너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의도와 실행에 주저해서다. 이건 나의 주관적 견해가 아니라, 미술사적 정설이다. 그리고 국내 예술고 재학생 여덟이 유사한 과정을 지금 통과했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내가 얻었다. 진부한 마무리지만 당부로 글을 마친다. 향후에 미술을 업으로 삼으면(또는 미대생이 되면), 미술이 현재적 삶에 동력을 주는지 항상 자기점검 하길 바란다. 이번 전시를 추동한 집단화된 의도도, 전공 공부가 현재적 삶에 동력이 되는지 회의한 결과라고 나는 본다. 건강한 회의주의는 좋은 예술에도, 좋은 삶에도 유익하다. ■ 반이정

Vol.20110116d | 아무도 모르는 전람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