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ode Yi Sang (이상을 풀다)

권연정展 / KWONYEONJUNG / 权娟祯 / photography   2011_0103 ▶ 2011_0206

권연정_건축무한육면각체2_디지털 C 프린트_125×10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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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이상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展

관람시간 / 10:00am~11:00pm

진선북카페 JINSUN BOOK CAFE 서울 종로구 팔판동 161번지 1층 Tel. +82.2.723.5977,3340 www.jinsunart.com

권연정의 사진 행위와 사진 이미지의 역설 - 사진의 태생적 한계 ● 사진이 탄생한 지 1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은 두 가지 상반된 이유 때문에 '예술작품'이라는 이름이 진부하거나 어색하게 들린다. 사진은 '예술'의 씨를 받았으나 '과학'의 자궁에서 비로소 그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빛을 기록하는 감광판의 발명과 더불어 카메라는 세상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다. 사진이 탄생하는 순간, 보들레르는 사진을 예술의 적자(嫡子)로 인정하지 않고 호적(戶籍)에 올리기를 단호히 거부하면서 독설을 쏟아 부었다. 과학의 양분을 받으며 탄생을 준비했던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라는 사진 매체의 고유성을 잠시 망각한 채, 회화 예술의 구성방식과 미술 아카데미의 엄격한 전통을 계승하면서 예술의 반열에 끼어들고자 갈망한다. 그러나 사진의 탄생을 둘러싼 '예술논쟁'의 국면은 사진의 거장들에 의해 해결된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의 변신으로 인해 논쟁의 핵심 사안이 해소되게 된다. 사진의 입장에서는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과학적 객관성과 태생적 저주를 피해 얻고자 했던 주관적 손맛이라는 버리고 채우는 방향이 역전되는 역설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사진의 독자적 길 ● 픽토리얼리즘(Pictorialism)을 추구하면서 '예술'이 되고자 했던 사진의 유년기는 이렇게 지나가고,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있는 계기가 사진사의 거장들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사진은 '회화'의 그늘을 벗어나 본격적인 '예술 사진'의 길에 들어선다. 사진의 청년기는 그 힘이 강해서 아방가르드의 돌풍이 휘몰아치는 20세기 초반 서구 미술계를 뒤흔든다. 사진은 아방가르드 혁명적 예술가들로부터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예술' 그 자체의 개념을 전복시킨다. 사진의 독자적인 길은 18세기 탄생한 근대 '예술' 개념의 파괴와 탈-근대 '예술'개념의 탄생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혁명적 거장들에 의해 마련되었다.

권연정_거울3_C 프린트_100×125cm_2003
권연정_삼차각설계도_C 프린트_100×125cm_2003

예술 사진으로 ● 이처럼 사진의 독자적 예술성은 근대적 예술 개념을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사진을 예술 작업으로 실천하는 많은 작가들이 지금도 개념적 혼란을 겪고 있다. 사진사의 거장들이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동시대의 미술이 예술의 휘장(揮帳)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예술계'의 인정이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의 휘장을 두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작업이 더 필요하다. 모두는 아니지만 사진 중 많은 것들이 "이 정도면 나도 찍을 수 있는데!"라는 관객의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사진의 매체가 함축하는 자동 기록, 기계적 완성, 비인격성, 그리고 카메라의 일상적 도구성이 사진의 예술적 자격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진은 이러한 의심을 잠재울 때 비로소 예술의 반열에 오른다. 의심을 잠재우는 길은 여러 가지다. 맹목적 기록성을 거부하거나, 예술 개념을 조롱하거나, 새로운 예술 개념을 개척하거나, 그 방법이 예술계의 수긍을 이끌어 낼 정도로 독창적이면 된다. 결국 동시대 사진가들은 기술적인 트릭보다는 예술 개념을 반성하고 그 개념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예술 사진의 길을 개척한다. 디지털 혁명: 예술사진의 자유인가 무덤인가 ● 현대 사진이 만난 새로운 복병은 디지털 혁명이다.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의 자유이자 무덤이다. 그러나 사진사에서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패러다임의 변화는 자유와 죽음이라는 개념적 충돌과 배척 관계를 넘어선다. 디지털 패러다임으로의 진입은 기록적 도구성, 일상적 유희성, 폭력적 확산 속도 등 한층 더 복잡한 변수들로 사진의 예술성 자체를 또 다시 뒤흔들어 버렸다. 디지털 사진은 무한대의 자유를 누리지만 또 다시 혼란에 빠진다. "사진이 예술인가?"라는 의심은 디지털 시대에 한층 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사진 행위의 의미 ● 인간은 실존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을 버리고 욕망을 승화시킬 때 자유의 길을 열 수 있다. 권연정의 사진에는 혼란과 갈등, 좌절과 희망이 숨어있다. 디지털 세대가 겪고 있는 좌절의 장벽은 치열함의 부족에서 오는 존재의 가벼움에 기인한다. 그러나 권연정은 사진으로 존재의 가벼움을 깨닫기 전 겪었던 혼란과 좌절을 한 수 한 수 복기(復碁)한다. "그 틀을 부숴버려야지!"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녀의 사진은 요절한 이상(李箱)의 시를 읽고 느꼈던 충격에서 탄생한다. 그녀의 사진은 탈출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사진행위의 결과물이며, 비상구의 흔적 이미지다.

권연정_선에대한각서3_C 프린트_100×125cm_2003
권연정_오감도1_C 프린트_100×125cm_2003

텍스트와 이미지의 역설 뛰어넘기 ● 라캉, 데리다, 보드리야르, 부르디외와 같이 현대의 무수한 이론가들이 강조했던 것처럼 텍스트와 이미지는 그 의미를 자신 스스로 정박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와 이미지의 큰 차이는 텍스트의 '기호 의미'가 이미지의 '형상 의미'보다 좀 더 자기 완결적이라는 점이다. 텍스트는 비록 다르게 해석될 여지는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하나의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미지는 지시체의 인덱스가 없으면 하나의 의미조차 전달하지 못하고 무수히 방황한다. 권연정의 작업은 텍스트가 갖는 하나의 자기완결성마저 거부한 천재 작가 이상의 시를 이미지로 해석하고 그 의미를 정박시키고자 하는 험난한 작업이다. 그렇기에 작가의 자기 해석이 없이는 그 사진의 의미가 쉽게 전달될 수 없다는 난점이 숨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작가의 사진 행위가 내포한 자기 수행의 고통을 지켜본 평자의 입장에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사진이 결코 예술이라는 권위로 찍어 누르는 거만함이나 시류에 편승하는 무반성적 기교의 놀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행위와 사진 이미지의 역설을 다시 생각한다. ● 디지털 세대는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그만큼 사진은 생활의 일부분이 된 지 오래다. 지금, 사진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누구나 작가가 될 수는 없다. 현대의 과잉 생산된 이미지 대부분이 일각의 충격만 남기고 관객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권연정의 사진은 이미지 그 자체들만 볼 것이 아니다. 이미지 생산의 동기인 사진 행위의 구도자적 의미를 읽을 때 평범함 속에 함축된 의미가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사진이라는 매체의 익숙함에 속아 무심하게 지나치지 말고 그 이면에 꿈틀거리는, 사진 곳곳에 함축된 작가의 사진행위와 그 진통하는 파토스를 느껴 보기 바란다. 현대의 예술 사진은 대부분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를 생산하는 동기인 작가의 사진 행위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조진근

권연정_이상한가역반응3_C 프린트_100×125cm_2003
권연정_최후_C 프린트_125×100cm_2003

시(诗)에서 발견하는 세상 ● 권연정은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스물 여덟살의 작가로, 2003년 일본에서의 전시가 그녀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 부제는 『A tribute to Yi Sang (이상에게 헌정함)』인데 한국의 천재시인 '이상'에게 바치는 사진 작품 시리즈 중 18점을 선별해 전시하였다. 이상의 시가 개념사진으로 형상화되어 새롭게 탄생하여 전시장에서는 이상의 시가 전시장 가득 한국어로 낭독되고 있었고, 원문 (일본어)으로도 원작 시를 읽을 수 있도록 전시를 다각도로 구성하였다. 이번 작업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 접한 이상의 시가 그녀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영향을 주어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28살의 나이로 요절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상의 작품을 통해 일제시대의 여러 가지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시의 원문은 일본어로 쓰여졌고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내용과 리듬은 아주 현대적이다. 권연정은 유작시 한 구절 한 구절을 세밀히 분석하면서 마치 시인 이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시각으로 보기 드문 수작을 완성하였다. 사과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듯한 단순한 구도이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최후」는 이상의 동명의 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시를 인용하자면 '사과한알이추락하였다./지구는부서질만큼아팠다./최후,/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는 내용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거친 사과는, 먼저 작가의 눈을 통해서 시가 읽혀지면 사과가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 속에서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받아 격렬히 말라버리면서 푸른 사과가 노랗게 바뀌는 새로운 스토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이상의 「거울」이라는 시를 보면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질수 없는것이지만'이라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오는데, 권연정의 동명 작품을 보면 거울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직접 마주하려 하는 젊은이의 고뇌와 갈등이 깊은 전율로 전해져 온다. 권연정의 사진 이미지와 이상의 문학 텍스트를 나란히 함께 봄으로써, 어느덧 시공을 초월한 28살의 두 작가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눈에는 분명 난해한 시이지만, 암호 같은 시는 젊은 작가의 시선으로 단어가 분리되어 마치 손을 찌르는 가시처럼 싱싱한 생명력을 얻었다. 사진을 차분히 보고 나서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고, 작품과 시를 동시에 감상하면서 전시를 보고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진도 문학도 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기에 두 가지가 조화롭게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 ■ 하라 히사코

Vol.20110117e | 권연정展 / KWONYEONJUNG / 权娟祯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