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꿈

2011_0119 ▶︎ 2011_0131

초대일시 / 2011_0119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곽기쁨_김연중_양덕규_유수진_김정묘 인정훈_황병원_신선애_정재훈_김주현_전송이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 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기억되는 일상 ● 예술은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과 매력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러한 점에서 철학과 유사하다. 이성을 일깨워 방황하게 만드는 철학이 결국은 우리를 도망칠 수 없는 일상에 머물게 하듯 예술은 일상을 벗어난 지점에서 인정받지만 결코 일상을 초월할 수 없으며, 초월 없는 일상이 우리 모두를 예술로 이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친숙하고 확고한 우리의 일상은 기억 속에 위치지어 지는 순간 각자의 꿈처럼 왜곡되고 변형되어 버린다. 그래서인지 일상은 기억을 통해 지속되지만, 기억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친숙함과 낯설음의 경계에서 우리는 일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011년 『단꿈』展은 일상이 기억으로 자리매김되는 매커니즘을 확인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 곽기쁨은 모호한 흔적들을 찾아다닌다. 익숙하게 규정할 수 있는 완결된 형태를 부정하기 위해 애매한 형상과 우연적인 기법들을 결합시키지만 서로 다른 성질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것은 기억의 환기이며, 익숙한 무언가와 닮아가고 있다. 버려진 철판을 부식시키거나 절단함으로써 원본을 변형시키는 행위는 일상이 단절되고 왜곡된 형태로 기억 속으로 침잠되어 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정재훈에게 일상은 자신에게 각인된 타인의 시선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의식과 타인의 시선을 향하고 있는 무의식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순간이며, 화면은 이러한 일상에 대한 기억이 절제와 표출이라는 욕망의 이중적 구조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결코 유의미하게 기억되지 않을 충동적 순간을 강렬한 색과 대담한 포즈로 묘사한 이미지 위에는 흐리고 가는 선들이 가랑비처럼 내리고 있다. 그려진 이미지를 지우는 듯한 부정적 그리기를 담고 있는 이 선들은 멀리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으며 그림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갈수록 서서히 드러난다. 그것은 마치 명확한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현재라는 일상이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것과 같은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위◁ 곽기쁨_untitled_금속에 유채_46×61cm_2010 위▷ 정재훈_untitled_캔버스에 유채_50×50cm_2011 아래◁ 신선애_In the Fores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0×200cm 아래▷ 전송이_altered landscpe 3_캔버스에 유채_130×130cm_2011

신선애에게 드로잉은 일상적인 행동들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방식이다. 밑작업 없이 직관적인 붓터치로 크로키하듯 그려내는 화면은 주관적인 색감과 흔적이 넘쳐나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했음직한 평범한 행위들로 채워져 있다. 화가가 선택한 대상화된 일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눈으로 본 일상의 풍경들을 형상화한 그림 속 장면들은 보는 사람에게 작가의 기억 속으로 들어오도록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억으로 나아가도록 환기시킨다. 전송이는 인간을 둘러싼 삶의 공간을 그리고 있지만 그의 화면 속에는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 그것은 기억된 공간이다. 기억이란 사람들의 의식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도 각인되는데, 전송이의 그림은 공간 속에 각인된 기억들, 즉 장소성의 소멸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픔이 담겨 있다. 과거라는 기억을 모두 덮어버리려는 듯한 푸른 장막이나 거대한 타워크레인들의 불안하게 서 있는 모습은 지금 그것들이 지워버린 과거만큼도 기억되지 않을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횡으로 이어지는 색면이나 색선들로 구획된 김정묘의 화면에서는 색의 대비가 일으키는 경쾌한 운율이 생성되고 있다. 이러한 리듬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를 어떤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하나도 닮지 않은 이미지들 속에서 누군가는 산이나 강이나 호수, 내지는 들판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작가는 자신의 이미지가 하나의 기억으로 고착되는 것을 막기라도 하려는 듯 이질적 재료인 테이프를 색면 위에 덧붙여 놓았다. 테이프 아래의 색면은 이미 이전에 기억된 색이 아니며, 테이프가 내는 광택이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빠져들던 관객에게 순간적인 빛의 번뜩임으로 작용하면서 이내 우리를 현실로 되돌려 놓는다. 김주현은 풍경을 그린다. 그런데 그 풍경은 현실적인 공간이라기보다 어떤 기억이나 추억을 연상시키는 비현실적 공간이다. 익숙한 듯 낯선 공간은 특정 장소로 환원되지 않는 일상의 기억이 존재하는 어딘가 이며, 파편화된 기억들이 비유기적으로 중첩된 공간이다. 물감을 쌓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행위로 구축된 색면들은 단일한 형이나 색으로 정착되지 않으면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렸다가 다시 묻어버리는 기억의 재생과정을 보여준다.

위◁ 김정묘_Rendering#8_혼합재료_60×162.2cm 위▷ 김주현_무거운 소풍_캔버스에 유채_97×222.2cm_2010 아래◁ 유수진_기억의 상자를 열다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2cm_2010 아래▷ 김연중_Road No.39_프리즘,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5cm_2010

유수진의 작업은 기억의 재형성 과정을 보여준다. 경험은 사건 그 자체의 내러티브로 기억되기보다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더 크게 좌우된다. 따라서 기억은 우리의 일상을 조각내어 또 다른 기억된 일상으로 재구성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건이나 사물의 이미지를 조각내고 분열시킨 뒤, 그 조각들을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형상은 부분적으로 남아있고 가려지고 삭제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분들이 더해지면서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이전의 일상에 대한 기억이자 새로운 일상으로 유전된다. 김연중은 어린 시절 자신만의 비밀장소였던 '장롱 안에서의 유토피아적 몽상'이라는 기억의 공간을 자동차 안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표지판과 도로 풍경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의미전달 수단으로서의 차갑고 획일화된 사회적 표식에 주관적인 기억을 가미하자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 이어주는 통로이자 안내자가 되었으며, 빛과 어두움, 무채색과 유채색, 보색 대비와 원색의 기호들이 펼치는 새로운 공간은 유토피아적 몽상과 일상적 기호가 만나서 몽환적으로 기억될 공간을 생성하고 있다. 인정훈은 전통적인 그리기 방식이 아닌 불기(blowing)로 작업한다. 단순한 행위의 반복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것을 이분법적인 가치들이 공존하는 현실에 대한 자기성찰적인 수행 과정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물감을 떨어뜨리고 갑작스럽게 바람을 응사하는 동일한 행위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사방으로 흩어진 물감들은 결코 같은 형태가 아니다. 이때 작가의 반복되는 단순한 행위는 되풀이되는 일상과 닮아 있으며 그가 만들어낸 닮은 듯 닮지 않은 이미지들은 각자의 기억 속에 각인된 일상의 모습으로 환원된다.

◁위 인정훈_Untitled_나무에 페인트_45×45cm_2010 ◁아래 양덕규_Time killer_단채널 영상_00:02:30_2010 ▷ 황병원_resistance ⅳ_캔버스에 유채_160×130.3cm_2010

양덕규는 이미지프로세싱 기법을 통해 시간에 대한 본능적 행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번 출품작인 「sonar flowers」나 「gravity of memory」 역시 시간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하루 동안의 일상이나 일정 기간 동안의 여행, 사랑이 지속되는 순간과 같은 어떤 사건이나 경험에 대한 시간적 분포도를 새로운 패턴의 움직임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단순하게 반복하는 추의 움직임은 최면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몽환적인 순간들이 중첩되는 경험을 환기시키고, 이러한 과거시간에 대한 기록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가상현실에 대한 일상적 체험으로 승화된다. 황병원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인물을 그린다. 화면은 인물의 몸통으로 가득 차 있고, 이들 인물은 '포즈없음'이라고 해야 할 동일한 자세로 입만 드러낸 채 서있다. 눈빛도 몸짓도 사라진 인물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뿐인데, 모노톤의 색상이 암시하듯 그저 읊조림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귀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은 읊조림에 대한 귀 기울임은 구겨지고 구멍 난 상의와 편편하게 처리된 하의 사이의 질감의 대립과 흐리고 짙은 명도차가 만들어내는 작은 차이를 통해 지속된다. 그리고 이 작은 차이는 얼굴 없는 유니폼의 익명성 안에 숨어 있는 화면 속 인물이 누구인지를 기억해내야 할 것 같은 개인에 대한 역설적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 앞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에 공유되어 있는 의식은 일상에 대한 관심이며,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일상에 대한 상투적 물음이 아니라 일상에 대한 기억과 기억을 통해 환기되는 일상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기억을 통해 특별한 순간들로 재탄생하듯 기억된 일상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 환기된 과거이자 현재를 통해 미리 보는 미래가 될 것이다. 기억된 일상을 통해 특별한 내일을 꿈꾸듯 2011년 『단꿈』展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이 꿈꾸는 '단꿈'들이 내일의 일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변청자

Vol.20110118h | 단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