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del of Architecture

이헌정展 / LEEHUNCHUNG / 李憲政 / sculpture.installation   2011_0120 ▶ 2011_0302 / 월요일, 구정 연휴 휴관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1전시장_2011

초대일시 / 2011_0120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화~금_10:00am~06:30pm / 월요일, 구정 연휴 휴관 토_01:00pm~06:30pm / 일_01:30pm~06:30pm

일우 스페이스 ILWOO SPACE 서울 중구 서소문동 41-3번지 대한항공빌딩 1층 Tel. +82.2.753.6502 www.ilwoo.org

가설假說의 도시: 건축적 사유의 소극장 - 이헌정의 다섯 가지 주요한 조형언어-빛, 색채, 움직임, 물성, 명상성-에 관하여 1. 막전(幕前)의 사색 ● 이헌정의 이번 근작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있는 사유의 계기를 던졌다. 허버트 리드(Herbert Read)가 '예술의 의미'를 사유했다면, 나는 '조형의 의미(The Meaning of Formation)'에 대해 재음미하게 하였다. 물질을 빚어 형태를 만든다는 것, 노동이 예술적 가치를 담보한다는 것, 자연의 질료가 인공적 예술생산물로 전환된다는 것, 유희적 행위가 개념적 의미를 발생시킨다는 것 등에 대해... 이헌정은 조형의 극점(極點), 표현가능성의 최대치를 향해 미답의 땅을 개척해가는 탐험가의 시선 바로 그것과 같다. 그것은 이미지로, 허상으로 채워진 욕망의 지도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단지 상상의 광장에서 포착된 현실 너머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는 현실의 지평 속에서 무의식의 심연과 잠재적 기억의 강물에 조형의 그물을 드리우고 싱싱한 물고기와 같은 스토리를 건져냈다. 복잡성과 다양체의 질주. 그의 이번 근작들은 하나의 줄기에서 뻗어 나온 계열성의 미학을 보여준다. 마치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가 언급했던 리좀(Rhizome)적 구조처럼 이질적인 것들 간의 연결성을 지니고 있다. "리좀은 기호계적 사슬, 권력 기구, 예술이나 학문이나 사회 투쟁과 관계된 사건들에 끊임없이 연결 접속시킨다. 기호계적 사슬은 덩이줄기와도 같아서, 언어 행위는 물론이고, 지각, 모방, 몸짓, 사유와 같은 매우 잡다한 행위들을 한 덩어리로 모은다." (질 들뢰즈, 펠릭스 가타리,『천개의 고원』, 김재인 역, 서울: 새물결, 2001, pp. 19-20.) 이헌정의 근작들은 "건축의 모델(The Model of Architecture)"이라는 전시주제가 암시하듯이 원형제작을 위한 에스키스(esquisse)와 같은 형태로 읽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자체가 의미를 발생시키는 독립적 포기들이다. 난삽하게 뿌려진 듯이 보이는 야채 씨앗들이 자체적인 포기를 형성하듯이, 그의 사유에서 빚어진 개체의 군집(群集)들은 하나의 조형적 농원(農園)을 구축하고 있다. 형태도, 질감도, 빛깔도 다르지만 유기농 야채라는 기호계적 사슬들은'건축'이라는 명제성의 덩어리 속에 서로 연결되고, 긴밀하게 접속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적 사유의 조형적 파종(播種). 그의 근작들은 원형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지만 원형의 페르소나(Persona)이며, 다른 가계(家系)의 사람처럼 보이지만 같은 가문에서 파생된 동종(同種)의 이마쥬(L'Imaginaire)들인 것이다. 건축은 우리 인간을 둘러 싼 빛, 색채, 움직임, 물성, 명상성 등과 같은 물리적, 정신적 요소들을 아우르는 조형의 복합체이다. 이헌정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의 조형적 사유를 건축이라는 테마 속으로 전이(轉移)시키려 하고 있다.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1전시장_2011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1전시장_2011

2. 서사(敍事) 너머의 시선 ● 도예가 그에게 있어서 하나의 대지라면, 가구는 그 곳에 지어진 집의 뼈대와 같은 구조이며, 설치적 형식들은 완성된 어떤 집에 초대된 이들과 벌이는 수수께끼 놀음과 같은 '집들이 축하연'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쿠르드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948)가 자신의 집에 설치한 '메르츠바우(Merzbau)'와의 어떤 연관성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슈비터스가 꼴라쥬 기법과 설치적 형식의 비예술적 장소에서의 전위적 실험이었다면, 이헌정은 예술적 제도 공간에서 벌이는 모던(Modern) 속의 포스트모던(Post-modern)적 일탈이다. 그러한 구체적 사례가 쵸코렛으로 만든 만다라(Mandala) 상(像)(만다라는 행자가 명상을 통하여 우주의 핵심과 합일하고자 하는 깨달음의 안내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본질(mandala) + 소유(la) 로 이루어진 말이다. 즉 우주의 본질이 가득한 원형의 바퀴를 말한다. 밀교에서는 깨달음의 경지를 도형화한 것을 일컬었다. 그래서 윤원구족(輪圓具足)으로 번역한다. 윤원구족이란, 낱낱의 살(輻)이 속바퀴 축에 모여 둥근 수레바퀴(圓輪)를 이루듯이, 모든 법을 원만히 다 갖추어 모자람이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티벳 만다라의 구성은 원과 사각형을 기본으로 하며, 자기 삶의 중심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또한 영원성과 역동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2차원의 도형이지만 다차원의 시간과 공간이 복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출처: http://www.ko.wikipedia.org))이며, 가설의 구조물 안에 설치한 흔들리는 빛의 방이다. 이 두 개의 설치작품은 이미 그의 개인전에서 시도된 바 있었던 것의 2011년도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먹을 수 있고, 녹아 없어져 버릴 수 있는 쵸코렛 과자가 만다라 상이 되고, 시각예술의 한 조형적 표현재료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사고는 대단히 전위적이라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이 가진 영원성, 항구성, 불변성에 대한 반예술적 개념은 현대미술에 있어서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존에 존재하는 인공적 사물성을 비틀어 예술적, 정신적 의미로 대치시키는 의미적 환원성이다. 어차피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동물적 행위(예술가들조차도 이 피할 수 없는 사건의 지속성 속에 놓여있음으로)는 사라지고, 변화하는 시간적 질서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일회적인 쵸코렛으로 만든 만다라상이나 영구적인 물감으로 그려진 만다라상이나 만다라상의 의미를 구현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는 없다. 만다라는 형태화된 표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 속에 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헌정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극단적 표현을 통한 본질적 개념에 대한 환기적 태도는 물론 조형적 질료 자체에 확장된 시각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가설의 구조물 속에 전등을 설치하고 흔들리는 빛의 형상성에 주목한 작품의 경우를 보자. 이 설치작품은 우선, 빛이라는 물리적 현상 자체를 조형적 대상으로 조율하면서 그 자체의 존재성, 의미의 텍스트성을 실험하고 있다. 빛에 의한 사물의 그림자가 흔들려 보이는 것은 물질적 구체성을 갖지 않은 허상(虛像)의 실상(實像)이다. 이는 환영(Illusion)과 실제(Reality) 사이에 대한 차이 혹은 존재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존재의 실체가 보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각적 실체성과 추상적 사유성은 그래서 확실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문제제기와 만나면서,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규정짓는 한계점의 기표(記表)로 다가서는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은 시간성의 추이(推移)를 조형적 표현 요소로 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움직임'혹은'가변성'이라는 명제가 조형예술에 도입되어 시도되었던, 특히 키네틱아트(Kinetic Art)와 같은 조류가 있어 왔지만 이헌정에게 있어서 움직임의 문제는 건축과 관련하여 중요한 맥락을 차지하고 있다. 움직임은 대상 자체의 움직임도 있지만, 빛에 의한 지각적 변화도 있으며, 대상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적 움직임에 따른 새로운 의미발생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변성의 문제는 시간의 흐름과 연동되어 조형적 실체조차도 고정된 하나의 시선만이 볼 수 없는 다각성, 다변성의 미학적 사유에 근거해야 함을 지시하고 있다. 우리 삶의 공간을 지배하는 움직임, 가변성, 시간성은 고정된 실체의 불완전성, 시작과 끝에 관한 불가지성(不可知性)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추동시킨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헌정의 이번 전시는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서사성(敍事性)에 대한 조형적 비틀기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건, 행동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해 나가는 방법적 태도로서 서사성을 그는 다시 사실, 신화, 전설적 맥락으로 재귀환시키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해석적 입장에서'서사의 귀소회귀성(歸巢回歸性)'은 그의 작품을 읽는 하나의 통로일 수 있다고 본다.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1전시장_2011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1전시장_2011

3. 건축 속의 조형, 조형 속의 건축 ● 이헌정의 이번 개인전의 특징은 그간 그가 다루어 왔던 표현재료, 주제의식을 종합한 작은 회고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조형적 사유의 지평이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져 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도해(圖解)가 되지 않을까 한다. 이 이헌정의 조형적 탐사의 도해를 통해서 우리는 그가 지향하는 조형적 세계관의 미래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헌정을 '유목적 예술가(Nomadic Artist)'라 부르는 것이 그리 부적합하지 않음은 그가 '여행(Journey)'이라는 타이틀로 전개해 온 그간의 개인전이 암각화처럼 말해 준다. 도예그릇전, 설치작품전, 조형도자전, 가구조형전 등 전시형식의 다양성, 드로잉과 회화작품, 도판, 타일과 같은 장르적 변주성, 흙, 시멘트, 철물, 나무, 기성오브제 등과 같은 재료적 복합성 등 현대미술의 수평과 수직을 가로지르며 자유로운 조형의식을 발현해 왔던 것이다. 이번 개인전은 바로 그러한 조형적 활동의 종합적 포개짐이자 새로운 조형세계의 전개를 지시하는 깃발의 펄럭임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이번 근작들을 조망할 때, '건축적 사유(Thought on Architecture)' 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측면을 담보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몇 개의 섹션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풍경들이 우리의 시각적 관심을 유발하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선사하려는 건축적 풍경은 다음과 같다. 1) 하나의 독립된 공간으로 이루어진 하얀 색의 방 2) 콘크리트로 구축된 광장에 세워진 작은 도시 3) 두 개의 추상표현주의적 화풍으로 그려진 회화작품이 놓여 진 공간 4) 어린이 놀이용 기차를 변용하여 영상카메라를 장착한 기차를 통해 보여주는 실시간 화면이 중개되는 무대의 방 5) 실험용 비이커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순환적 흐름을 보여주는 탁자 6) 마치 무쇠주물과 같은 빛깔로 구워진 건축적 구조물의 도자조형물들 7) 쵸코렛으로 만들어진 만다라상 8) 흰색 입체타일이 설치된 벽면 등으로 구성된다. 앞서 언급한 빛과 움직임의 문제와 더불어 물성과 명상성의 문제는 그의 이번 근작에서 주목을 요하는 비평적 기제이다. 물성은 재료 그 자체가 가진 표면의 표정이기도 하지만, 이헌정은 그것에 데포르망(Deformation)함으로써 원형 자체의 물성을 눈속임(Trompe-l'oeil)하거나 전사기법을 통한 나비, 새, 꽃 등을 도자표면에 비밀스럽게 포치해 놓았다. 이것은 이번 전시에서 다양한 재료들, 즉 베니어합판, 시멘트, 앤틱 기성품들의 혼합적 구성에서도 물성 자체가 드러내는 예술적 의미읽기에 관한 그의 개념들이 생생하게 포착되고 있다. 또한 명상성은 그의 이번 전시의 중심축으로 설치된 방에서 극대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하얀 색의 방에 놓여진 의자에 홀로 있는 관객은 그 공간이 주는 환상성, 단일성, 흰색이 주는 색의 침묵성에 의해 색다른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명상이 주는 의미들이 각자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게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겠지만, 이헌정은 이 불완전한 미궁의 방에서 존재의 자각에 이르는 하나의 계기를 제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어있으므로 무언가를 채울 수 있으리라는 조형적 사유는 그릇이나 건축이나 동일한 시선에서 같은 하늘을 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헌정은 이러한 입장에서 우리에게 현대인들이 가진 어떤 동심적 유희성 혹은 일탈적 사유가 가능한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우리가 끝없는 순환과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이 하나의 바퀴살과 같은 의미임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작은 도시로 우리를 초대하여 그러한 철학적 가설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그 서사의 재귀환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미궁의 방에서. ■ 장동광

이헌정展_일우 스페이스 제2전시장_2011

A City of Hypothesis: A Vaudeville Theater of Architectural Notions - On the work of Hunchung Lee and five key elements in it: light, color, movement, physicality and meditation 1. Thoughts Before the Curtain Opens ● The recent work by Hunchung Lee gave me a chance to go over meaningful thoughts. I pondered on the meaning of formation as Herbert Read pored upon the meaning of art. It was about yielding forms from materials, the labor involved in the value of art, transforming materials from nature into man-made artifacts, playfulness generating conceptual meanings, et cetera. Hunchung Lee has the eye of a pioneer who explores an untrodden land, reaching the zenith of formation and the maximum possibility for expressions. Some may think the map in his hand is of desire filled with illusory images and mirage, but in fact it is completely on the ground. He cast a net over a river of memories and subconscious thoughts from a solid ground of reality and captured stories as fresh as flopping fish. Complexity and variations in Lee's recent series display aesthetics of variations that are stemmed and extended from a source. There is a relation between disparate things like Gilles Deleuze (1925-1995), who analyzed the structure of a rhizome, said. "A rhizome ceaselessly establishes connections between semiotic chains, organizations of power, and circumstances relative to the arts, sciences, and social struggles. A semiotic chain is like a tuber agglomerating very diverse acts, not only through linguistics, but also perceptive, mimetic, gestural, and the cognitive." (Gilles Deleuze and Fe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Translated by Jaein Kim, Seoul: New Wave Publishing, 2001, pp. 19-20.) Inferred from the exhibition title, The Model of Architecture, his recent work can be seen as a sort of esquisse or rough draft of a prototype. Nevertheless, each work has an individual significance just like a head of a cabbage or lettuce. Like vegetable seeds seemingly thrown at random grow to be individual heads, a cluster of individual pieces of his thoughts and notions create a garden of forms. Being different in shape, texture, and color, the semiotic chain of organic vegetables establishes close connections within the concept of "architecture." Planting formative seeds of architectural notions, Lee's work is suggested to be a model for a prototype, and yet a persona of the prototype. It looks like a member of another family and yet it is an image of the same kind. Architecture is a compound of varied forms involved in the physical and mental elements surrounding us, such as light, color, movement, physicality, meditation, and so forth. This is where Hunchung Lee anchors his interest and from there he tries to transfer our concepts of form into the theme of architecture. 2. Looking beyond Narratives ● If a piece of ceramics is thought of as a plot of land to Hunchung Lee, furniture is like a house built on the land, and installation elements are like a housewarming party with guests in his newly finished home. It shows us a kind of association with Merzbau, the transformation of the artist's own house by Kurt Schwitters (1887-1948). However, whereas Schwitters made an avant-garde experiment in non-art spaces as an extension of his collage and installation practice, Lee's approach in an authorized art space is rather a postmodern aberration in modernism. The specific examples would be a mandala (Mandala is a visual guide for Buddhists to unite themselves with the core of the universe while in meditation. Mandala is a Sanskrit word that means essence (mandala) plus possession (la). It often refers to a concentric wheel filled with the essence of the universe. In esoteric Buddhism, it refers to diagrams that describe the state of enlightenment. Therefore, mandala is also translated into Yoonwongujok(輪圓具足), which means being complete and without want, realizing every Buddhist principle, just like a wheel whose circle is complete with a grouping of spokes. In the Tibetan branch, a mandala consists of a square and a circle that help people to discover the center of life. Mandalas also symbolize eternity and movement. They represent multiple levels of time and space even while being two dimensional. (Source: http://www.ko.wikipedia.org)) made from chocolate, sweets and cookies and a temporary house with a swinging light bulb in the middle. The two were tried out in his previous exhibition and the ones in this exhibition are to be called upgraded 2011 versions. It is quite avant-garde to think that edible and easily melting chocolate and sweets can serve as artistic materials and turned into a mandala. Anti-notion against eternity, permanence and perpetuity of art is no longer new in contemporary art. However, what values to him is the conversion of meaning by twisting the existing artificial physicality with an artistic and mental meaning. In his work, the very basic animal activities such as eating and drinking (even artists are bound to this survival mode.) are none of his concerns; what he proves here is that we are trapped in a circle of orderly time that simply ticks a step forward. If so, there can be no difference between what one mandala made from ephemeral chocolate represents and what the other in permanent paint stands for. It is because a true mandala is not in the symbolized sign but exists already in our life itself. This exhibition evidently demonstrates Lee's artistic intention to touch the essence of concepts through radical expressions and it also shows that the artist has expanded the scope of materials for his work. Let's take a look at an installation of a temporary house that is especially drawn into what light can create. First of all, employing a physical phenomenon, light as an object of formation, the installation piece explores the meaning of the created phenomenon and also a multi-textuality of meaning. That the shadow of an object, which looks as if it's being shaken by light, is the reality of an illusion that doesn't have a physical property. We can't help asking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illusion and reality, or a very fundamental question about what existing means. The reality of a being can be seen, but not always. The query between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and sensible substantiality and abstract reasoning finally arrives at a philosophical point and then leads to a matter of symbols, or how to define the boundary between the two. Another aspect we should pay attention to is the transition of time as one of the major formative elements in the work. The idea of movement or mobility was adopted in art, especially seen in Kinetic Art. Movement, in relation to architecture, also plays a significant role in the work of Hunchung Lee. When it comes to movement, we can first think of the movement of an object itself. There is also a change of sensory perception created by light and furthermore we will have to consider another kind of movement when a viewer changes his viewing angle on an object. Likewise, the matter of changeability is associated with the passage of time and therefore, it is why changeability is a matter of aesthetic reasoning of multiple perspectives and changeability in that even a solid object cannot be viewed from a single fixed gaze. Movement, changeability and time that control our surroundings engender a philosophical reasoning over the imperfection of a permanent object and the inscrutability of a beginning and an end. In this sense, I would say the exhibition of Hunchung Lee attempts a formal transformation of narratives that have been established in our world. In other words, Lee takes an approach of deducing an event or action in the order of time; that is, he attempts to bring narratives back to a factual, mythological and legendary context. In this sense, I interpret "the return of narratives" as a way to read his work. 3. Formation in Architecture and Architecture in Formation ● This exhibition is a kind of mini-retrospective of the artist, putting together all the artistic concerns and much loved mediums he has been drawn into. It will provide a unique opportunity for viewers to understand how the artist has developed and expanded the horizon of his thoughts and produced work depending on the surroundings he has lived in. From this understanding, we will be able to surmise where he is heading in his world of creation. His preceding solo exhibitions titled The Journey clearly show, like prehistoric cave paintings, that Hunchung Lee is not practically a nomadic artist. Lee has dealt with a variety of everything, freely crossing different areas of art; with a multitude of exhibitions ranging from ceramic wares, installation, ceramic sculptures and furniture; with a diversity of genres from drawing, painting, ceramics and tiles; and with a plentitude of mediums such as clay, cement, metal, wood and ready-made items. This exhibition marks not only a summing-up of such varied styles and method but as a fluttering flag indicating the direction to his up and coming artistic exploration. "The thought on architecture" has much significance in his recent work. This exhibition draws our visual attention into unique architectural scenes which can be categorized as follows: 1) a white room as an independent space, 2) a small concrete city in the middle of a plaza, 3) a space that has two abstract expressionist paintings, 4) a wooden box theater that plays a real time screening of what a mini-camera captures while moving along on a children's toy train, 5) a table where laboratory instruments are connected to one another to show a certain circulatory flow, 6) an architectural installation of ceramic pieces that have been burned in a rusty iron-like tone, 7) a mandala made of chocolate and sweets, 8) a wall relief of white tiles. On top of the aforementioned matter of light and movement, physicality and meditation are two other critical issues that stand out in his recent work. Physicality generally refers to how materials are on the surface; however, Hunchung Lee takes an approach of deformation, using a Trompe-l'oeil technique or trans-printing butterflies, birds and flowers on the ceramic surface, thus disguising the original physical property. That the artist ponders on the artistic interpretation of physicality itself is unmistakable in the use of various mediums including veneer boards, cement, and ready-made antiques. Additionally, meditation, another key factor, appeals to the viewer in the main room of the installation. The viewer will be given a very unique visual experience, left alone in a chair in the middle of a completely white room that can be a fantasy, or unity, or absolute silence. Of course, everyone interprets what he learns while meditating differently. Nonetheless, I think Hunchung Lee is suggesting to us a way of reaching the enlightenment of being in the middle of an imperfect labyrinth. Found both in his architectural pieces as well as in his ceramic wares is the artist's study of forms; they can be filled with others because they are empty. From this standpoint, Hunchung Lee is presenting us with a small town where we can let our childlike playfulness and aberrant thoughts out. "Wishing that we could realize that today is like a spoke of a wheel in the endless cycle of Samsara…." He invites us to his small village and asks us to solve his philosophical hypothesis, right in the middle of a labyrinth where the advent of narratives is on its way. (January of 2011) ■ Chang Dong-k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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