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수영展 / SONGSOOYOUNG / 宋秀英 / installation   2011_0207 ▶︎ 2011_0302 / 일요일 휴관

송수영_회색눈-비둘기_2011

초대일시 / 2011_0207_월요일_05:00pm

2011 Shinhan Young Artist Festa

프로그램 미술체험 / 2011_0212_토요일_03:00pm 런치토크 / 2011_0218_금요일_12:00pm 참가신청 www.shinhanmuseum.co.kr에서 행사 프로그램 신청하기 버튼 클릭 모든 프로그램 참가비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신한갤러리 SHINHAN MUSEUM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62-12번지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4층 Tel. +82.2.722.8493 www.shinhanmuseum.co.kr

멀리 있는 타자 : 송수영의 작품에 대하여 ● 송수영의 작품이 항상 문제 삼고 있는 주제는 타자에 대한 윤리의식이다. 우리는 어떠한 타자에 대해서는 윤리의식을 갖지만, 어떠한 타자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예컨대 여성, 어린이,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타자에 대해서 우리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그들을 존중하고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만약 타자이기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타자 가운데 이와 같은 윤리의식이 적용되는 부류는 많지 않다. 사실, 여성, 어린이, 외국인 노동자 또한 애초에는 윤리의식의 바깥에 방치되어 있었던 타자였다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끝에 가까스로 윤리의 보호구역 속으로 편입되었다.

송수영_죽은 지렁이들_2006
송수영_-지렁이 묘비 겸 가드레일_2006

송수영은 이처럼 윤리의식 바깥에 방치되어 있는 타자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 속에 부각시킨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와 가장 멀리 있는 타자라 할 수 있는 동물의 모습을 형상으로 만든다. 송수영은 소, 양, 고양이, 비둘기, 지렁이의 모습을 작품 속에 옮긴다. 그들은 우리와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 이외에는 교감할 방법이 없으므로, 따지고 보면 타자라고 부르기에 애매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멩이나 연필이나 지우개와 같은 사물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존재이다. 그들은 생명을 가지고 있고, 자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윤리의식의 보호가 필요한 타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의 시선 밖에 방치되어 있다. 그들이 겪는 고통과 죽음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우리는 가끔씩 도로가에 동물의 시체가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본다. 사람의 시체가 방치되는 것은 죄악이지만, 고양이나 비둘기의 시체가 방치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저 불쾌감을 주는 정도이다. 송수영의 작품은 방치되어 있는 그들의 고통과 죽음을 소환하고 재구성한다. 그는 이미 고통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 사물이 되어 버린 소, 양, 고양이, 비둘기, 지렁이의 모습을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처럼 관객 앞에 내어 놓는다. 보다 정확히 묘사하면 관객의 익숙한 일상이 영위되는 곳에서 그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게끔 유도한다. 즉, 검정 비닐, 전단지, 나무젓가락, 지저분한 눈구덩이, 비 온 뒤의 보도 등과 같이 우리의 안온한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사물과 풍경에 방치된 타자의 고통과 죽음이 명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송수영_나뭇잎-도시_나뭇잎_2009
송수영_비닐봉지- 고양이_비닐봉지_2009

하지만 송수영의 작품은 동물에 대한 윤리의식 캠페인이 아니다. 그가 동물을 작품의 주제로 택한 이유는 단지 그들이 가장 멀리 있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송수영 작품 속에 중요한 논점은 우리가 타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윤리의식이 무척이나 선별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타자에 대해 헌신하고 배려를 아끼지 않는 만큼, 멀리 있는 타자에 대해서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이는 우리가 현재 지니고 있는 타자에 대한 윤리의식이 여전히 '우리'라는 동심원의 기만적인 확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송수영의 작품은 우리에게는 너무 먼 곳에 위치해 있는 타자의 고통과 죽음을 보여주고, 우리에게 그것을 받아들일 윤리가 부재함을 깨닫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현재 만족하고 있는 안일한 윤리관을 버리고, 보다 근원적인 타자에 대한 윤리관을 모색하도록 자극한다. ■ 강정호

송수영_전단지-나방_전단지_ 2009
송수영_젓가락-나무_나무젓가락에 조각_2010

'아슬아슬한' 즉 '오래 지속되지 않고, 간신히 유지되는, 그리고 부서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은 이 작품이 성립되기 위한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은 나의 작업 속에서는 비닐봉지를 예술로 만들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우리 삶을 빛나게 하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자갈로 아슬아슬한 돌탑을 쌓았을 때, 그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게 되듯이 말이다. 이렇게 대상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순간의 희소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가치가 있다. 강하고 오래가기 때문이 아니라, 약하고 금방 무너져버리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된다. 현대인들은 물감이든, 건물이든 간에 더 강하고 영구불변한 것을 만들고자한다. 그 결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아크릴 물감, 철근콘크리트 건물이 개발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여전히, 혹은 갈수록 붉은 꽃을 만든 붉은 색, 자재를 계속 갈아줘야만 하는 목조 건축에서 매력을 느낀다. 그것들은 머무름 없이 계속해서 변화하기에, 들풀과 같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싹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또 지고 죽는 들풀처럼 변화하는 것들의 매 순간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러한 것들을 영구불변하게 지속되게 만든다고 상상해보았을 때, 그 가치가 변색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그 것을 영구불변 만들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자연법칙을 거스르고자 하는 무지, 탐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생각은 나의 작업에서 '단단하고 강한, 안정적인 상태'를 만들지 않고자 하는 방향으로 드러났다. ■ 송수영

Vol.20110207c | 송수영展 / SONGSOOYOUNG / 宋秀英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