散調-九九消寒

이만수展 / LEEMANSOO / 李晩洙 / painting   2011_0209 ▶︎ 2011_0219

이만수_산조1010_캔버스에 채색_91×72.5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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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1:00am~05:00pm

장은선갤러리 JANGEUNSUN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번지 Tel. +82.2.730.3533 www.galleryjang.com

이만수의 근작은 '산조'(散調)란 제목을 달고 있다. 흩어진 소리, 허튼 소리라! ● 그래서인지 그림들마다 잔잔하고 시정이 넘치면서 은은한 운율과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들로 무성하다는 느낌이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음악이 있다. 우리네 가락과 운율이 짙게 베어 나오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가 보다. 정악에 반한 자유로운, 파격에 가까운 음으로 모든 자연의 소리와 인간세의 소리가 다 들어와 무르녹은 그런 음의 시각화, 아울러 이미지와 소리가 하나로 고인 그림을 길어 올리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그 소리/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유년의 기억과 고향에 대한 추억으로 몰려 이를 시각과 청각 모두를 가볍게 흔들어대면서 흩어진다. 그림이 무척 허정하고 스산하다. (중략)

이만수_산조1012_캔버스에 채색_118×91cm_2010
이만수_산조1013_캔버스에 채색_118×91cm_2010

눈발마냥 꽃송이 흩날리는 적막한 봄날, 잔잔한 바람에 마냥 흔들리는 대나무 숲, 누군가의 등에 비치는 오후의 햇살, 마당에 내려와 무언가를 쪼아대는 새들, 느릿느릿 걸어 다니는 개가 있고 그런가하면 가물가물한 추억 위로 떠다니는 흐릿해진 어떤 이의 가물거리는 얼굴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더러 죽죽 그어놓은 자국이 폭포가 되고 계곡이 되는가 하면 이내 대관령 고개 넘어가다 보이는 주변 산의 울울한 나무가 된다. 하단에 흐리게 그려진 인물을 보니 옛사람이 그린 관폭도나 관수도 또한 아른거린다. 화면은 순간 경계없이. 대책없이 무한해서 마냥 황홀하다. 무척이나 '센티멘탈'하다. 그리고 감각적으로 세련되게 조율되어있다. 나로서는 이 장면의 설정이 다분히 그의 고향 강릉에 관한 추억에서 연유한다고 생각한다. 대나무와 매화꽃이 가득하고 바닷가와 호수가 자리한 곳, 집과 마당이란 장소성에 대한 기억을 몇 가지 상징들과 함께 아련한 색채로 펼쳐 보이고 있다. 아련하고 박락되어 문드러진 색감은 지난 시간의 아득함과 아련한 추억, 몇 겹으로 주름을 만들고 가라앉는 시간의 퇴적을 암시한다. (중략)

이만수_산조1014_캔버스에 채색_118×91cm_2010
이만수_산조1020_캔버스에 채색_118×91cm_2010

나뭇가지가 붓이나 칼, 연장이 되어 수직으로 흩어나간 자취는 마치 마당에 빗질을 해서 생긴 흔적 같다. 땅위에 새긴 무수한 인연과 시간의 자취, 지난 시간의 궤적과 뭇 생명체들이 대지/마당과 함께 했던 삶의 얼룩과 잔상들이 아롱진다. 그의 화면은 그대로 우리네 전통적인 마당이다. 그는 화면을 유년의 집 마당으로 설정했다. 바탕은 마당처럼 처리되고 붓질은 빗질처럼 구사되는 한편 마당에 서린 모든 흔적들을 촘촘히 그려 넣고 오려 붙였다. 그는 추억 속의 마당을 화면 위로 불러들여 재구성했다. 조감의 시선 아래 펼쳐진 세계는 자연과 사물, 인간이 바글거리는 기이한 풍경을 선사한다. 마치 산수화에서 접하는 시방식이 납작하게 평면화 시킨 공간 위로 스물 거리며 지나간다. 무엇보다도 작가의 내밀한 추억과 인성에서 차분하고 격조 있게 스며 나오는 이런 그림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만수_산조1029_캔버스에 채색_91×72.5cm_2010
이만수_산조1036_도판에 채색_41×41cm_2010

그는 납작한 평면의 종이/캔버스의 피부위에 동양화물감과 백토를 칭하고 빗자루질을 한다. 그것은 모필의 필력과 동일시된다. 골을 메꾸고 칠해나간 색들을 다시 벗겨내는 일이다. 비워내고 지우고 탈색을 거듭해서 만든 그야말로 허정하고 깊은, 모든 것들이 다 스친 후에마지막으로 남겨진 느낌을 만든다. 여러 번의 빗질/붓질은 사람 사는 일의 갈등과 고뇌, 무수한 사연의 겹침들이자 그것들을 씻고 닦아내는 일종의 해원과도 같다. 그는 새벽 혹은 해거름 그 사이의 지점에서 마당을 떠올렸다. 그에게 어린 시절 집 마당이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생겨나고 사라지는 삶이 욕망뿐 아니라 자연의 모든 것들이 관찰되고 사유되어지는 거울과 같은 장소"다. 그 마당을 쓴다는 느낌으로 화면에 붓질/빗질을 하면서 쓰는 것은 "무엇인가를 씻어내는 일이자 그곳에 묻혀있는 인연들을 반추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삶의 욕망과 집착의 반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행위"란다. ● 해서 채색과 탈색을 반복한다. 쓰고 지우고 칠하고 벗겨내기를 지속한다. 마치 산조의 리듬처럼 말이다. 긋고 칠하고 칠한 만큼 닦아내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작가는 "삶의 주름들을 긍정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고 리듬감 있는 선조와 투명한 색조의 희열"에 이르고자 한다. 그것은 "절정의 순간에 대한 서술이며 텅 비어있는 순간에 대한 체험"에 다름 아니기에 그렇다. ■ 박영택

Vol.20110210c | 이만수展 / LEEMANSOO / 李晩洙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