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희_이상미展   2011_0219 ▶︎ 2011_0310 / 월요일 휴관

이남희_Wall project_혼합재료_설치_2010

초대일시 / 2011_0219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큐리오묵 GALLERY CURIO MOOK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5-1번지 한양타운 1층 Tel. +82.2.3443.5523

The Wrapping : 실타래가 지어낸 포용의 언어 한 올의 실을 따라 니트 속으로 ● 전시회를 앞두고 이남희 작가에게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교통사고라고 한다. 삼중추돌 사고에서 작가의 차량은 가운데 있었고, 차량이 앞뒤로 많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차량 파손에 비하여 작가는 놀랍게도 건강했고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전시회를 생각하면 없던 힘도 난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우린 만남의 아쉬움을 달래며, 전화기를 통해 작품과 전시회에 대해 할 말 많은 연인처럼 오랜 대화를 나눴다. 작가는 소박하고 담담한 언어로 자신의 생각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겸손한 말투와는 달리 그녀의 최근 '니트'를 재료로 한 작품들의 얼개를 한 꺼풀씩 벗기고, 올올의 실을 풀어 본다면 말하고 보이는 것처럼 그리 단순한 일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일상적 삶을 통해 얻은 깊은 사유,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 그리고 배경 지식에 대한 연구가 총망라되었다. 이 깊고 넓은 작품 속으로 한 올의 실을 잡고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 걸어 보자. 알록달록 색색별의 실로 돌, 벽돌과 같은 일상적 사물을 예쁘게 감싼 작가의 니트는 소중한 물건이 닳거나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덮어놓은 감싸개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많은 사물 가운데 값진 사물들을 뒤로 하고 돌, 벽돌 같은 사물일까? 작가는 사물이 가진 속성에서 느낀 연민의 감정이 그들에게 맞는 니트를 선사하게 된 시발점이라 말한다. 작품 「무제 Untitled」에서 나타나는 둥근 돌은 보기에도 한 손에 잘 잡힐 듯 견고하고 매끄럽게 마모되었다. 작가는 모난돌이 거친 풍화작용 끝에 둥근돌이 되기까지의 고통과 시간을 이해했다. 돌에 연민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 작가는 어떤 계기가 있기보다는 나이가 들면서 사물과 사람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사물을 읽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우러나왔다고 말한다. 작품의 주인공이 될 돌을 찾는데도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기간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열정이 쏟았다. 작가는 잘 마모된 돌을 찾기 위해 강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경기도 여주까지 발을 디뎠다. 수 많다던 여주의 돌들마저 한강준설공사로 인해 대부분이 자취를 감췄고, 약 7-10일 동안 돌을 채집하였다. 작가는 돌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수거되어 간 수많은 돌들이 돌이 아닌 가루가 되고 공사장에서 존재감 없이 사용되었을 생각에 가능한 많은 돌을 가져와 옷을 입히는 것이 돌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한다. 작가의 사물에 대한 연민은 「담벽 프로젝트 Wall project」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혜화동에 위치한 한 가옥의 높은 담벽을 배경으로 한다. 누구의 가옥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높디 높은 벽의 위엄은 그 집 앞을 지나가기에도 부담스러웠고, 주변 건물을 위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높은 담에도 틈이 있었다. 배관공사로 인해 뜯었다 붙인 벽돌로 인해 생긴 틈이었다. 그 길을 지나는 며칠동안 작가의 시선은 틈 속에 머물렀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에 깊이 앓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을 먹고 제의를 치루 듯 천연덕스럽게 차가운 벽돌의 속성에 대비되는 노란빛의 털실을 틈이 난 벽돌 위에 니트를 입혀주었다. 그렇게 그곳을 메운 후 사진을 찍고 나서야 작가는 비로소 그 틈에 대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렇다면 작가의 니트는 단순히 사물에 대한 헌정물에 불과한 것일까? 이 물음에 단정을 짓고 대답하기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이작가의 니트들은 제작구상에서부터 제작을 마치기까지 의식적으로 여러 단계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는 「방울drop」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시장 천정에서 내려온 한 개의 빨간 방울은 하강하는 혈액을 연상시킨다. 액체 형태가 가진 피의 섬뜩함은 사라지고, 작품 속에는 체중의 7~8% 정도를 차지하는 혈액의 소중함과 친근함이 남아있다. 혈액을 주제로 한 계기에 대해서도 묻자 작가는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있었고, 인체의 고통을 통해 피의 소중함을 인지했다고 한다. 덧붙여 그녀는 피가 가진 속성에 대하여 "칼에 베이거나 넘어졌을 때 피를 흘리는 것은 피로 인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피가 가진 정화와 치유의 힘을 보며 저 역시 피가 제 역할을 하고 응고되듯 상처를 덮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이 작가는 어질고 선한 어조로 말한다. 이렇듯 작가는 작품의 과정을 치유와 정화의 과정으로 간주한다.

이남희_Untitled_혼합재료_설치_2010
이남희_Drop_혼합재료_42×24×24cm_2010
이남희_U.F.O-unfinished object_혼합재료_설치_2010

한 올의 실을 따라 니트 밖으로 ● 끝나지 않을 듯한 작가와의 대화는 시계의 분침이 몇 바퀴를 돌고서야 마침표로 향했다. 어쩌면 작가의 '포용과 치유'라는 주제는 쓰다 남은 실과 더 이상 짜나아 갈 수 없어 망쳐버린 니트를 결합하여 제작한 「유에프오 U.F.O」(각주: UnFinished Object의 약자로 편물에서 사용되는 용어로서, 끝내지 못한 채 진행을 잠시 멈춘 뜨개작업을 일컫는다)라는 한 작품에서 함축적으로 살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에는 '산'을 주제로 시를 쓰던 이성부 시인의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산을 오르다보면 바위가 말을 걸고 생물로 인지된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이성부 시인의 이야기는 어느덧 모든 사물이 인간과 함께 호흡한다는 이남희 작가와 맥이 닿아있었다. 작가는 작업이 끝나갈 때쯤 되면 마음 속에 남았던 앙금은 어느덧 사라진다고 한다. 대화가 끝난 후 '그녀는 작업 제작 과정을 마치 샤머니스트들의 치유로 여긴 것은 아니였을까?'라는 의문이 혀 끝에 남고, 지금쯤 어떤 사물에 마음 앓이를 하고 있을지 괜시리 궁금해진다. (작가와의 대화 중) ■ 이창숙

이상미_소소한일상_캔버스에 실_72.7×50cm_2009

겹을 쌓고 있는 손은 지금까지 실의 특성에 갇혀 재료가 주는 에너지에 익숙해졌고 어느덧 길을 텄다. 접착제의 지저분함을 조심하며 실이 가는 길을 찾아 드로잉을 하고 있다. 하나의 선이 참으로 진지하고 지루한 시간을 묵도하게 만든다. 시간은 실과 같고 그 실은 그늘을 갖고 있다. 이 그늘이 사물의 무게를 만들어 실재하도록 한다. 감정은 지극히 가까운 곳, 일상에서 발생하는 마찰과 같다. 일상은 반복되고 있다. 큰 변화가 있기보다는 익숙한 길과 같다. 그렇게 사물성에 고착된 그늘은 시선의 외면에서 ‘시선의 행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상미의 작업에서 진정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미_My Studio 09_캔버스에 실_33.4×24.2cm_2009
이상미_Sunnyside 40-05 #101_여행가방 가변설치, 실, 캔버스에 실_130.3×162.2cm_2009

캔버스 화면에는 실의 드로잉이 있다. 누구든 부담 없이 사적인 시선이 가능하면서 드로잉을 쫓는다. '포착'(prehension)이다. 포착된 이미지는 평면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시선이 이미지를 포착할 때 이미지의 단면을 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시선은 장소성을 이미지에게 바라고 있다. 포착은 순간에 가깝고 재현은 지루하다. 궁극적으로 일상이 체험되기 위해서는 현실이 되어야 하는데 캔버스 화면은 더 이상 스틸 컷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일상을 구성해 내었다. 더군다나 무게를 갖는 사물이 입체가 되어 현실공간에 화면의 일상을 재현하고 있다. 현실공간에 오브제가 등장하면서 실의 드로잉은 감는 것으로 바뀐다. 사물을 감는 드로잉은 그 도구적 기능성을 잃게 하면서 일방적으로 화면을 향하도록 요구한다. 또한 그 오브제로 말미암아 주어진 화면의 기억과 교차되길 바라고 있다. 그 오브제는 평면의 풍경에서 입체로 튀어 나온 중요한 실마리로, 그것은 형태라는 것이며 그것으로 관객은 화면에 참여하게 된다. 사적이지만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사물의 형태를 통하여 우리의 시선은 다시 화면으로 돌아가게 된다. 비로소 흥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평면에서의 사물 이미지와 공간에 놓인 사물 오브제에서 오는 유비였다. 이 둘은 동일한 형태를 갖고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포착되어 있다. 전시공간에 있는 의자나 여행용 가방은 평면에서 포착되어 나왔으며 화면이 암시하는 사적 내러티브를 읽을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이 '단면'에 대한 고민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 역시 시간의 단면이다. 그의 풍경은 평면이며 단면이다. 단지 실재성을 갖고 있는 단면이기에 사물을 거리와 면적으로 파악한다. 평면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으나 벽을 타고 불쑥 튀어 나온 정도에서 그친다. 즉, 일상의 포착이다. ■ 김용민

Vol.20110219b | 이남희_이상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