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xtinction of everyday values

이승희展 / LEESEUNGHEE / 李承禧 / installation   2011_0228 ▶︎ 2011_0306

이승희_20kg of Louis Vuitton_설치_녹말가루_2010 / 스페이스 15번지

초대일시 / 2011_0228_월요일_05: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공휴일_10:00am~05: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쑥고개길 34(서초동 1355번지) 한전아트센터 Tel. +82.2.2105.8190~2 www.kepco.co.kr/gallery

틈새로 진출하려는 은유의 힘 ● 우리에게 '징후(symptom) '라는 말에 대해서 처음으로 성찰시킨 사람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행동할 뿐이다"라는 문구야말로 그의 제1의 공식이다. 자기가 속해있는 시대에 관해서는 그 누구라도 맹인이기 마련이다. 자기가 속해있으며 자기 삶과 맞물려서 돌아가는 현재의 시대 의미에 관해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때문에 반대로 과거의 시대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에 관해 모든 것을 안다. 다만 그들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가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해서는 지식이 열려있고 행위가 닫혀있다. 현재에 대해서는 행위가 열려있고 지식은 닫혀있다. 미래에 대해서는 양자 모두 불허된다. 이러한 시간의 속성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서 감지만 할 수 있다. 막연한 감지, 그러나 어떠한 정의도 내릴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암중모색을 우리는 다만 시대의 징후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불온한 무거움과 경쾌한 가벼움이 교차되는 이 시대에 대한 징후와 속성의 묘사, 그것은 이승희가 채택하는 최초의 주제 의식이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에 대한 경멸도 아니고 찬사는 더더욱 그 종류를 달리한다. 이승희의 평면 작품에는 물질계의 한없는 분열, 중심의 상실, 즉 중심적 가치의 소멸, 혹은 시대 사명의 실종 등 우려할만한 느낌들이 팽배해있다. 이러한 느낌을 총체적으로 센티멘탈리즘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시대를 이끄는 축(axis)으로서의 중심이 상실되었다는 점, 다만 알길 없이 분열되는 물질계의 파동만은 온몸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물질이 벌이는 활극에는 서사도 없고 목적도 없다. 단지 수많은 관객(spectator)이 저 장엄한 구경거리(spectacle)가 수여하는 거부할 길 없는 감각적 향유에 지배되는 것이다.

이승희_20kg of Louis Vuitton_설치_녹말가루_2010 / 스페이스 15번지
이승희_20kg of Louis Vuitton_설치_녹말가루_2010 / 스페이스 15번지

확실히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의 분석처럼 고흐가 그린 촌부의 신발과 대도시 캐리어 우먼이 신는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Diamond Dust Shoes) '은 존재론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사투와 고독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고흐의 신발이다. 반면 워홀의 그것은 저 댄스 홀에 굴러다닐, 해석의 여지가 그다지 없어 보이는 감각적 표면이다. 여기에서 이승희가 그간 그려왔던 신발과 가방, 화장품 등의 여성용품들은 확실히 워홀의 그것을 닮아있다. 그러나 그 동안 이승희는 확실한 개인적 전략을 수립해왔다. 나는 이승희 작업을 일상적 요소와 일상을 초극한 감각 세계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수립하려는 세계 해석으로 받아들인다. 이승희의 일상적 작업은 확실히 워홀의 '다이아몬드 가루 신발'을 닮았는데, 일상의 요소들이 갖는 진부함과 덧없음을 우리에게 고지해주려는 수단으로 읽을 수 있다. 반면에 전분가루로 공간을 모두 채워 몽환적 감각으로 형질변경시키는 설치작업은 진정 일상을 벗어나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 일례로 우리는 조르주 바따이유(G.Bataille)의 저 유명한 '이종성(異種性, the heterogeneous) '이라는 개념에 대해 상기할 수 있다. '이종성'이란 일상적 세계에 체류하는 모든 감각적 요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동질성(同質性, the homogeneous) '과 반의어이다. 이는 그가 삶의 부르주아 형식과 일상생활로 진부화되는 모든 경향을 거부하려는 의도에서 발전시킨 개념으로, 특히나 도취(intoxication)와 꿈이 갖는 본능적이며 충동적인 황홀경이 전통적으로 생겨난 경험과 지각의 양상을 흔들어버리고 이겨내는 어떤 힘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승희는 자기 작업과 세계관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 설명을 유보한다. 다만 우리말로 '사이'나 '틈새'에 해당하는 일본어 개념 '즈레(ずれ) '라는 표제로 이승희가 2010년에 기획했던 전시회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이승희와 일본 작가들과의 그룹 전시회였는데, 일상의 진부함을 벗어나려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있었다. 거울을 이용해서 연출한 기이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나 수만 가닥의 고무줄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하면서 얻은 몽환적 공간, 전분가루로 그 의미가 형질변경된 일상의 테이블 등이 눈에 띈 전시였다. 이승희의 의도는 '사이'나 '틈새' 속으로 진출하려는 시도, 즉 바꾸어 말하면 일상과 가상의 경계를 지우고 세간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언어를 구축하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이승희_100kg of starch powder_설치_녹말가루_2010

좋은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의 차이는 국가, 인종, 성별, 직위를 떠나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의 갖춘 심미적 기제의 획득 여부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심미적 기제란 통시적 세계와 공시적 세계 양차원에서 서로 당기는 팽팽한 긴장을 조성해내는 힘, 바로 그것에 다름 아니다. 이승희는 과거로부터 이제까지 침묵으로 이어져있는 통시적 가치와 아직까지는 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이 공간으로 밀려드는 광대한 양의 감각과 사연의 물결, 그 징후들이 발산하는 낭만적 수사들과 불온한 실재에 대해 드러내는 능력을 우리에게 충분히 확인시켜준다. 이 양자의 내밀한 균형이 이루기란 쉽지 않다. 이승희가 30대 초반의 나이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나는 작가에게 37세 즈음에 더욱 강력한 힘의 기제가 다가올 것이며,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단순한 현재 여기가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병존하는 여기의 의미를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징후'를 손으로 더듬어 찾는 단계가 아니라, 세계에 기존하지 않았던 새로운 메타포를 던지며 해석하게 요구하는 의미체계의 서사가 된다. 나는 이승희의 몇 년 후를 진정으로 기대한다.

이승희_동경예대 미술관_2009
이승희_동경예대 미술관_2009

끝으로 아방가르드의 조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승희의 세계에 대해 명찰하고 싶다. 아방가르드는 역사 내에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문화 양상과의 충분한 대화와 교류를 가진 후 얻어 낸 교감과 비전을 바탕으로 기존의 축적된 문화 양상에 제출하는 자기 이름표인 셈이다. 더구나 자기가 속해있는 시대와 공간의 정황과 부딪히며 깨어진 파편의 무수한 감수성을 재조합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시적 보편성이 뒤따르며 공시적 혜안이 크로스오버된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이승희가 속해있는 영역은 아직 광활하다거나 사회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지니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승희가 살아온 80년대 생들의 세대정신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솔직히 아직 80년대 생들이 쟁취하고 확립한 보편적 형식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나 사회가 나아가는 길에 대해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더욱 추구하게 만든 기층 세대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관심, 라이프스타일, 사적 스토리, 사소설적 감성, 특수한 취미, 신경질적 반응, 지향점을 모르는 맹목적 감각 향유 등으로 이들의 특성에 대해 나열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면 이들은 확실한 형식이 구축할 것이며 중심적 위치를 점유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적어도 이승희는 세계, 특히나 현대사회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시종을 전개시키는 작가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2011년 전시회에 또 한번 중간 점검의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승희가 다루는 사진, 회화, 영상, 설치 등 변환자재한 매체적 속성은 일반적 일상의 범속함과 꿈의 충동이 누릴 수 있는 위반의 묘미, 이 양자의 '틈새'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인 것 같다. ■ 이진명

이승희_YAMAGUCHI gallery_2009

The Metaphorical Power Proceeding to a Gap ● Karl Marx is known as the first person to lead people to think about the word, 'symptom.' The sentence, 'We don't know anything. We just do,' is his first formula. Everyone is bound to be blind about their own times. No one can define the current times with which their lives are engaged. On the contrary, you can declare that 'you know everything about the past. However, we cannot behave as such.' For the past, knowledge is open, but behavior is closed. For the present, behavior is open, but knowledge is closed. For the future, neither is allowed. Within these traits of time, we can sense something. We can only call such a vague sense - an attempt to find something in the dark that cannot be defined - a symptom of our times. ● The perception of the first theme Lee Seunghee adopted in her work is a description of the symptom and nature of this century, a mixture of disquieting heaviness and cheerful light. She does not have contempt for later capitalism, but is far from praising it, either. Her pieces are filled with worrisome feelings, such as infinite division and lack of center; in other words, an extinction of central values or a lack of mission for our current time. We might generally express these feelings as sentimentalism. With only our instinct and body, we feel the loss of a center as the axis leading our time―a wave of the material world that is endlessly being divided. However, this play of action created by materials has no plot or purpose. It is conquered by an irresistible sensible enjoyment that a sublime spectacle gives to numerous spectators. ● As in the analysis of the cultural theorist Fredric Jameson, the shoes of a country woman painted by Van Gogh, or 'Diamond Dust Shoes' by Andy Warhol, which urban career women wear, are clearly distinguished in terms of ontology. The shoes by Gogh contain a desperate struggle and solitude, as if being thrown into the world. On the contrary, the shoes by Warhol are a sensible surface that seems to simply roll in a dance hall and do not have content to be analyzed. The articles for women, such as shoes, bags, and cosmetics, painted by Lee are clearly similar to those of Warhol. However, Lee has established her own concrete strategy. I accept her work as a unique world that she tries to establish by dividing the elements of daily life and the sensory world that transcends everyday life, in terms of dualism. Her daily work obviously resembles 'Diamond Dust Shoes' by Warhol and it can be read as a tool that informs us of the triteness and empty nature of daily elements. On the other hand, her installation, which changes the space with a dream-like sense by filling it with starch, can be analyzed as a serious will to escape daily life. ● Here, we can recall the famous concept of 'the heterogeneous,' from the French writer Georges Bataille. Heterogeneous, an antonym of homogeneous is a concept opposed to all sensible elements in the daily world. She has developed this concept with the intention to refuse all tendencies that turn into cliché bourgeois forms and daily life. In particular, she explains it as a certain power in which an instinctive and impulsive ecstatic state found in intoxication and dreams shakes and beats the traditional experiences and perceptual aspects. However, she reserves such a direct explanation for her work and artistic world. We can simply witness certain clues from her exhibition, which was held in 2010, with the Japanese tile, 'zure', which means 'gap' or 'crack.' This exhibition was a group exhibition with Japanese artists, and was filled with original ideas that break away from the triteness of daily life. Particularly notable pieces in this exhibition are the practically non-existent space created by mirrors, a dream-like space created by geometrically arranging a great number of rubber bands, and a table of daily life, the meaning of which was changed through starch. Lee's intention can be seen as an attempt to enter into a 'gap' or 'crack,' which is to say, an attempt to remove the border between daily life and virtual reality in order to establish a new language that does not exist in this world. ● The difference between good and bad artistic pieces depends on the acquisition of an aesthetic mechanism equipped with a universality that is accepted everywhere regardless of nationality, race, gender, and position. And the aesthetic mechanism is none other than the power that forms a tension pulled by two sides, that is, the diachronic and synchronic worlds. Lee has yet to discuss the diachronic values that are quietly connected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However, we can satisfactorily view her ability to reveal the wave of boundless senses and stories flowing into her space, romantic rhetorical words emitting symptoms, and disquieting substances. It is not easy to make a secret balance of the two sides. This is more understandable when considering that she is in her early 30s. I told her that when she turns 37, a more powerful mechanism will approach her, and she will be able to find meaning in which the present does not exist here, but the past, present, and future all co-exist. When she turns that age, she will no longer stay at the step in which she touches symptoms with her hands, but she will reach a point at which she will establish an epic, organized with meaning, that can be interpreted about its new metaphors. I sincerely look forward to her future work. ● Lastly, I want to think about Lee's artistic world, explaining the conditions of the avant-garde. Avant-garde might be thought of as the nameplate of an artist that is submitted to the existing accumulated cultural aspects, based on the communion and visions obtained after plentiful dialogues and exchanges with the cultural aspects accumulated from the past to the present. Furthermore, this is to re-combine the countless sensibilities of fragments broken by a collision with the situation of the time and space to which an artist belongs. For this reason, the avant-garde is followed by diachronic universality and is crossed with synchronic insight. In this point, there might be a criticism that the area in which Lee stands is neither wide nor responsible to society. However, her artistic spirit may be called the spirit of the generation born in the 1980s. Actually, that generation has yet to witness any universal form that it will gain and establish. This might be attributed to older generations that make younger generations pursue a personal lifestyle rather than the manner in which history or society must proceed. You can see the characteristics of young generations in such aspects as personal interest, lifestyle, personal story, personal emotion, peculiar habits, nervous reaction, and blind sensual enjoyment without directivity. However, I believe that as time passes, they will build solid forms and conquer a central position. At the least, Lee Seunghee will develop her artistic world based on her clear perception of the world, in particular, her perception of current society. To this point, I hope that this 2011 exhibition will be an opportunity to be an intermediate check of her work. The nature of convertible media such as photographs, painting, video images, and installation seems to be her inevitable choice to describe the subtlety of violation that the commonplace of daily life and the impulse of dreams can enjoy, and to establish a new world that exists within the gap of daily life and dreams. ■ Lee Jin-myung

Vol.20110220d | 이승희展 / LEESEUNGHEE / 李承禧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