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A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   2011_0226 ▶︎ 2011_0330 / 월요일 휴관

오숙진_14th Louis-5_캔버스에 유채_91×116.7cm_20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1019b | 오숙진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1_0226_토요일_04:00pm

박수근 미술관 창작스튜디오 5기 입주작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131-1번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Part Ⅰ여기 이 곳 – 정림리 ● 지리학과를 다니던 시절 답사를 위해 양구에 온 적이 있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에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구비구비 산을 넘어 도착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어 다시 찾은 양구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오는 길 내내 마치 기나긴 숲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이 길을 분주히 다니겠구나 하는 애정 어린 시선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강원도 산골짜기 어느 작은 도시로 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흔하디 흔한 야산과 나무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제부터 숲을 그리게 될 거라고. 이렇게 나의 양구 정림리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오숙진_Bhopal_캔버스에 유채_60.6×41cm×4_2010

양구에 오는 길에는 숲을 만나지만 양구에 도착하면 군인을 만나게 된다. 최전방 군사지역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양구는 군인들로 넘쳐난다. 군인들이 편의점에 들어가 간식거리를 사고, 장날이면 얼굴을 검정 칠로 위장 한 채로 장을 본다. 군대용 트럭은 흔하게 도로 위를 지나가고 아침 등교 시간이면 군인이 통학용 버스를 운전하며, 운이 좋을 땐 탱크와 마주치기도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그들은 너무나 인간적이고 평범해서 내가 평소 군인에 대해, 아니 더 정확히는 군이라는 조직에 대해 갖고 있던 반감이 오히려 커지고 만다.

오숙진_정림리_캔버스에 유채_116.7×91cm_2010

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향해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을 TV에서 본다. 반전 운동을 하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용감하게도 이스라엘군의 총부리 앞을 막고 서서 무장하지 않은 아이들에게까지 행해지는 폭력에 거세게 항의했다. 그 여성의 놀라운 행동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그 모든 장면들이 현실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실적이라고 자랑하는 전쟁 영화 속에서, 혹은 컴퓨터 게임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흔하게 그런 장면을 보았고 그래서 인간이 인간에게 총을 겨눈다는 것에 대한 폭력성과 비극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일종의 도덕성의 마비 상태가 된 것 같다. 실제 전쟁을 하는 군인들도 자신들이 겨누고 있는 대상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지도 모르겠다. 대량 살상 무기인 폭탄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다. 자신이 누르는 것은 버튼 하나 이고, 그 결과는 너무나 추상적이게도 적에 대한 '승리'나 '세계의 평화와 안전'일 것이나 폭탄이 떨어진 곳에는 이념이 도대체 무엇인지도 모르며, 알아야 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의 사지가 처참하게 찢겨져 나갈 것이다.

오숙진_정림리_캔버스에 유채_53×45.5cm×3_2010

무엇이 군인들을 그토록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일까. 이스라엘의 군인도,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미군도 양구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던 군인처럼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평범한 청년이었을 텐데 말이다. 지하철에서 본 말 가면을 뒤집어 쓴 어떤 남자는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쳐다보자 "희잉~"하며 말 울음 시늉까지 낸다. 단지 얼굴을 가렸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어 행동하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변화무쌍한' 인간의 적응력에 새삼 놀라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말 가면 속에 숨기는 순간, 그는 자신을 버리고 말이 되었다. 군복이라는 것도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군복을 입고 군인이라는 역할이 주어지는 순간, '합법적으로' 인간에게 총을 겨누어도 되는 순간, 자신의 판단보다 국가의 판단이 우선시 되는 순간, 벌레 한 마리 쉽게 죽이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도 살인을 저지르는 하나의 전쟁 도구가 된다. 용맹을 자랑하는 특전사 부대의 훈련에는 붉은 색 액체로 가득 찬 플라스틱 용기를 머리처럼 쓰고 있는 마네킹을 사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성공적으로 사격 할 때 마다 그 붉은 액체는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선혈이 낭자할 실제 상황에 익숙해지도록 그것마저도 훈련시키는 모습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 저런 훈련을 강요하는 군대는 그리고 국가는 얼마나 폭력적이며 잔인한가. 이 모든 일들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 다행히도 아직 양구는 '대체로' 평화롭다. 비인간적인 훈련일지라도 훈련에서 끝나니 말이다. 그래서 아직 이곳은 디스토피아(Dystopia)가 아니다. 양구의 군인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한다. 개인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그 어떤 거대한 힘이 욕심을 거두어들인다면 양구에도, 저 멀리 가자지구(Gaza Strip)에도 유토피아(Utopia)가 올까.

오숙진_14th Louis-1_캔버스에 유채_50×72.7cm_2010

Part Ⅱ 그 어느 곳 – 14th Louis "프랑스에서는 열 세 명이 모인 것을 파티가 시작된 후에야 알았을 경우, 돈을 주고 열 네 번째 사람을 데려 올 수 있으며 이것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시카고의 한 호텔에서는 이 같은 위급 상황을 고려하여 사람 크기의 인형에 적합한 옷을 입혀 준비시킨다. 이 인형의 이름은 루이스라고 한다."- 「미신사전」중에서 루이스(Louis)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루이스라는 이름도 예쁘고 그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마네킹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날카로운 혀가 없어서 마음에 들고, 그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거나 그로 인해 실망하지 않아도 되어서 또한 좋다.

오숙진_14th Louis-5_종이에 과슈_29×34cm_2010

기독교의 예수와 대조적으로 드라마틱한 삶이나 한 인간으로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는 붓다는 투명한 존재로 여겨진다. 붓다는 죽어서 니르바나에 올라 선도 악도 기쁨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간다. 루이스는 그런 붓다를 닮아있다. '존재하지 않는' 루이스는 이미 니르바나에 살고 있을 것이다. 반면 루이스를 초대한 열 세 명의 인간들은 탐욕과 쾌락과 배신의 아비규환 속에 있다. 13이라는 평범한 숫자에 어리석을 만큼 집착하는 모양새도 우스꽝스럽다. 그래서 나의 그림에서 루이스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그려진 반면, 인간들은 원숭이가 되었다. 내 그림 속은 루이스와 원숭이 인간들이, 그 어떤 이상적인 세계와 이해관계와 욕심으로 얼룩진 현실 세계가 충돌하는 곳이다.

오숙진_Utopia-Dystopia_캔버스에 유채_116.7×91cm×2_2011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작가는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방문하는 말들의 나라를 이상적인 세계, 즉 유토피아로 그려내고 있다. 그 곳에는 위선, 배신, 살인 같은 인간 사회에 만연한 어둡고 추악한 악행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걸리버는 남은 생을 그가 존경에 마지않는 말들과 함께 보내도 좋을 거라 생각했고, 우연히 그 곳을 벗어나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는 인간에 관한 모든 것을 강하게 거부하며 다시 말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즉 작가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인간 사회가 가진 악덕들이 '없는' 그 곳이었다. 루이스와 그의 세계가 유토피아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그에게 외형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면모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의 모든 악덕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 유토피아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그 유토피아 속에 인간이 살고자 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유토피아는 인간이 존재할 수 없는 곳, 영원히 우리 인간은 찾아 갈 수 없는 곳이다. 루이스만 이를 수 있는 그 어느 곳. ■ 오숙진

Vol.20110226c | 오숙진展 / OHSUKCHIN / 吳淑眞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