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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展 / LEEBORAM / 李보람 / painting   2011_0304 ▶︎ 2011_0323

이보람_희생자 3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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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304_금요일_05:00pm

후원 / 서울시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재)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09:00am~06:30pm / 주말_11:00am~05:00pm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3448.0100 www.songeun.or.kr

보도사진에 담긴 전쟁이나 테러의 희생자들을 본다. 피부 위로 흐르는 피, 속을 드러낸 상처들, 오열하는 얼굴들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고통에 대한 동정, 슬픔은 이내 가볍게 사라진다. 이미지들은 계속해서 이전의 이미지들을 갈아치우고 나 또한 감정들을 값싸게 낭비하고는 그만이다. 전쟁보도사진의 소비가 이미지와 감정의 소비로 전환되면, '희생자'는 고통스러운 표정과 붉은 피로 대변되는 은유적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 된다. 사진 너머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은 그들이 이미지로서 얼어붙음과 동시에 잊혀지고, '고통', '희생자'와 같은 단순화된 카테고리로 편입된다. '희생자'들은 각자의 이야기와 무게와 존재감을 박탈당한다. 그들은 박제화된 상징, 의미를 잃어버린 채 떠도는 껍질과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이보람_희생자 2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0
이보람_희생자 4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0
이보람_희생자 5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93×130cm_2010

나는 사진 속 희생자들의 모습을 이미 네모로 한계 지어진 주변부의 상황에서 또다시 잘라낸다. 그들은 나의 그림에서 인종에 상관없이 회색의 딱딱한 피부를 갖게 되고 눈들은 모두 생략된다. 얼굴은 고통스러운 표정만을 보여준다. 가끔씩 서로 다른 사진들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완벽한 '희생자'모습을 갖추게 된다. 원본의 색과 명암은 단순화되어 극적인 명암이 가져오는 무게감은 가벼운 것으로 치환된다. 이들은 마치 형제들처럼 똑같은 피부와 표정과 무게감을 가지고 똑같이 붉은 피를 흘린다. 간혹 이들은 제단이나 무대처럼 연출된 배경에 놓인다.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담은 사진들은 '희생양'이라는 종교적 주제와 연결되면서 「피에타」나 「애도」, 「십자가에서 내려짐」과 같은 성화들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작업을 위해 모은 사진들을 분류할 때 위의 주제들이 포함된다. 고통을 '볼 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러한 주제들은 어느 한편으로는, 현대사회에서 미디어를 통해 실제의 고통을 허구적인 것으로 소비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나는 현실의 고통을 승화되거나 추상화된 상태로, 리얼리티가 배제된 무력화된 상태로 -그래서 어느 한편으로는 볼 만한 것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때문에 본래 제단이 지니는 비장하고 압도적인 분위기 또한 나의 그림에서는 제거된다. 단지 기념되는 대상과 감정의 파편화된 이미지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보람展_송은 아트큐브_2010
이보람展_송은 아트큐브_2010
이보람_피흘리는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163×130cm_2010

작품에서 주로 쓰이는 분홍색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분홍색은 일반적으로 우정이나 사랑과 같은 따뜻한 감정을 상징한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상업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이기도 하다. 감정이 담겨있는 듯 따뜻해 보이지만 사실은 텅 비어있는 색인 분홍색은 대중이 소비하는 얄팍한 감정들을 닮아있다. 붉은 피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그려진다. 옷감 위에 무늬를 그려 넣는 것처럼 희생자의 딱딱한 피부 위에 흘리고 튀고 번진 피를 정교하게 그려 넣는다. 나는 이들의 이미지를 작업을 위해 개인적으로 이용하는 셈인데, 이것은 이중의 죄책감을 가져온다. 때문에, 결과물로서의 붉은 피 무늬들은 피를 재현하는 이미지 이상의 것이 된다. 모든 것이 표현되고 정돈된 후에 그려지는 붉은 피는 피의 재현된 이미지인 동시에 그리기 행위를 통해 희생자 이미지 위에 올려진 붉은 물감 자체이기도 하다. 이렇게 감정들과 그리는 행위자체를 포함하면서 나의 작업은 자화상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림 속에서 나를 대체하는 이미지는 붉은 색 물감을 묻히고 있는 붓들이다. 희생자를 향해 공격적으로 세워져 있는 붓들은 나의 행위와 시선을 대변한다. 붓들은 마치 희생자들을 찔러 상처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엔 나의 사소한 불편함, 가볍고 사라지기 쉬운 죄책감이 담겨 있다. ■ 이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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