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무리

김지아나展 / KIMJIANA / 金志我懦 / ceramic   2011_0107 ▶︎ 2011_0313 / 월요일 휴관

김지아나_빛 폭포_세라믹, LED, SUS(Hair Line), 조광기_2000×8100×7cm_2011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407i | 김지아나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환기재단 역사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4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환기미술관 WHANKI MUSEUM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1길 23번지 Tel. +82.2.391.7701~2 www.whankimuseum.org

빛과 흙의 프로메테우스적 조응 ● 근래 들어 시각 인식에 의존하는 이미지 중심의 시대가 대두되면서, 예술에 있어서 유일한 원본(original)의 창작 보다는 익숙함과 반복 또는 인용이, 즉 기존 이미지의 아낌없는 소비가 무한정 허용되고 있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여파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예술 행위에 대한 개념도 흔들리며 탁월한 '원본의 창작자'라는 작가의 위상이 관대하게도 '창조적인 이용자'에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그만큼 항상 새로움을 일관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인지라 애석하게도 근래에는 두드러지게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작가를 찾아보기가 드물게 되었다. 김지아나는 견실히 독창적인 추상 조형의 세계를 탐구하는 설치 예술가이자 매력적인 실루엣의 형태를 창조하는 디자이너로 소개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의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작가가 작업 재료로 가장 즐겨 사용하는 세라믹스(ceramics)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자연계에 속하는 무기 재료인 대부분의 흙과 돌에 열을 가하여 화학적인 변성으로 만들어 낸 물건으로 통칭되는 세라믹스는 극한의 온도를 견디며 내열성과 견고함을 획득한다. 최근에는 전자 산업을 비롯하여 고도 기술을 요구하는 공업용 첨단 소재로서 각광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 작가가 고되게 반복되는 노동으로 무수히 만들어낸 세라믹 오브제의 쓰임새를 생활에 실용적인 그릇이나 다른 물건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로 한정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작가가 만들어낸 세라믹 도편(陶片) 자체는 마치 백합과의 단단한 꽃잎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이 아름다운 조각들을 거꾸로 화가의 물감이나 붓과 같은 창작을 위한 유닛(unit)이나 도구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점은 일반적인 도예의 한정된 영역을 넘어서서 순수 미술의 독특한 조형성에 도달하는 비상한 차원의 실험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녀의 작업은 가까운 지점과 먼 거리 사이에서 각각 관객에게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서 작가의 친밀한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작가의 작업을 대할 때, 우리가 본다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보통 그만한 여유가 없어서 진정으로 그것들을 바라보기가 어려워진다고 여기기 쉽다. 그래서 김지아나의 작업과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한다면 마치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 것처럼 때로는 천천히,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물론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것의 기하학적 패턴, 색채, 질감, 조명, 요소 간의 상관 관계 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즉, 소통을 의사나 감정의 전달 정도에서 한정하지 말고 행위의 영역에서 이해한다면 그녀의 작업과 소통한다는 것은 단지 이미지의 전달이 아니라 신체의 노동이 작동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녀의 손과 맞닿는 촉각적인 몰입의 단서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상성의 수수한 매력을 극적으로 발견한다.

김지아나_빛 폭포_세라믹, LED, SUS(Hair Line), 조광기_2000×8100×7cm_2011

우리가 모니터를 통해 보는 모든 색은 광선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빛은 색의 기원이다. 김지아나는 대지로부터 길어온 흙에다가 우주로부터 기원하는 빛을 담고자 한다. 그래서 거기에 프로메테우스(신화적 인류 문명사의 해석에서 빈번하게 언급되는 티탄족의 신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선각자'이라는 의미의 이름에서도 지적인 면모가 잘 드러난다. 인간에게 불을 준 죄를 물어 제우스는 그를 코카서스 산의 바위에 묶어두고 30,000년 후에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될 때까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내렸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는 님프 아시아를 아내로 맞아 대홍수 후 인류의 조상이 되는 자식을 낳는다.)가 제우스로부터 훔쳐서 인간에게 되돌려준 불을 가하여 세라믹으로 소성한 것이다. 불은 엄청난 에네르기이며 집중된 힘이자 빛의 다른 형태이다. 표면 온도가 높을수록 밝은 푸른 빛을 띠는 항성처럼 그녀의 작품은 가장 뜨거운 곳에서 태어났지만 서늘하게 빛난다. 매우 얇고 단단한 세라믹 조각들이 물에 적신 직물처럼 은근하고 미묘한 빛을 머금었다가 조용히 내뿜는 듯하다. 그래서 단지 시각만을 동원해서는 작은 도편들을 축광성(蓄光性) 유제를 묻힌 종이 조각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작업에 조응하는 빛은 저 먼 외계로부터, 그리고 표면 아래에서, 이렇게 두 갈래로 온다. 허상을 조영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실체를 포착하고 그것의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여타 회화적 환영을 불러일으키는 작업과 뚜렷이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정도의 모호함은 감정의 반응을 촉발한다. 가령 전통적인 중국이나 한국의 산수를 표현한 고전풍의 계곡, 바위, 수목을 담은 그림을 보면 무작위적인 농담의 선 또는 얼룩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의 외면을 묘사한다던가 질감을 흉내 내는 것과는 확연하게 거리가 멀지만, 그것이 전체적으로 그린 이의 내적 면모, 달리 말하자면 정신성을 함축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현대의 인지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역시 고전화에 대한 유사한 분석이 가능하다. 형태를 비교해보면 유사한 점이 많은 비늘 같은 껍질로 덮인 소나무나, 혹은 갈라지는 두꺼운 가죽 피부를 가진 늙은 악어를 떠올려 보면, 김지아나 작가의 편린들은 보다 식물성에 가깝게 다가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김지아나_호수에 비친 달_세라믹, LED, SUS(Hair Line), 조광기_100×100×5cm_2010

비록 그녀의 얼룩이 겹쳐지는 작업에서 특정한 형태를 추출해 낼 수 없다고 하더라도 불규칙하게 연속되는 빛과 그림자의 패턴은 구성의 차원 내지는 물성을 뛰어넘어서 우리의 인식을 자연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의미의 상상 체계로 데리고 간다. 비정형적 프랙탈(fractal)의 형성 원리에 부응하는 불특정적인 형태의 도편들과 그 조각들의 조합이 표면에 형성하는 게슈탈트 그루핑(gestalt grouping)과 마찬가지로, 같은 몰드로 주조한 볼 역시 작가의 의도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곡면이 살짝 찌그러지고 제각각 촉수들이 형성되면서 모두 다른 형태로 탄생한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은 계통학적 유형의 유사성을 확립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 고유의 창조적 유전 정보인 DNA가 입력된 염색체가 그녀의 손에서 태어난 모든 오브제에게 탑재되어 있음을 강하게 상징하며 비로소 비밀의 베일로 감추어왔던 원형질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그의 작업 전체를 바라볼 때 직소 퍼즐을 맞출 때처럼 상호 관계로 파악하여야 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거기에서는 간섭과 착시가 유발된다. 귀퉁이가 딱 맞기 보다는 미묘한 겹침으로 공간의 결이 자아내는 그림자의 부드러운 호흡의 리듬감을 갖게 한다. 그것에 더해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빛과 그림자의 현상학적 조응과 변화에 대해서 우리가 마치 자연에서 그러하듯 영감을 자극하는 투사적 기법으로 엄청난 집중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깊숙한 몰두를 위해서 망막에 걸러지는 정보를 뇌로 내보내야만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의식하기 힘든 숨은 정보들을 즐겁게 찾아낼 수 있다. 그 결과 자연계의 숨겨진 기하학적 법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1170경~1250경) 수열의 알고리즘((Algorism)과는 전혀 다른 미세한 매크로-스케이프(Macro-scape)를 자아내어 우리에게 보여준다. 사실 이것은 은하계를 포함한 우주적 경관을 작은 규모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김지아나_달빛아래_세라믹, LED, SUS(Hair Line), 조광기_90×90×5cm_2010

흙과 빛으로 비유되는 물성과 비물성의 동거로 말하자면, 어쩌면 우리가 상반되어 보이는 모순적이고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요소들을 동시에 제시하는 작가의 중요한 표현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은 흙의 부드러움과 그것을 감싸는 철제 외연의 강인함, 빛과 그림자로 연출되는 관념과 현상의 대비적인 조응에서도 파악할 수 있지만,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상징적인 존재인 몬드리안(P. Mondrian, 1872~1944)을 연상케 하는 작가의 절제된 형식에서도 이와 같은 정보는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전달된다. 때로는 센서의 작용에 의해, 작가가 기하학적 기호에 담아 송신하는 전자적 신호는 원색의 컬러 코드의 프레임이나 단단한 외골격으로 유지되는 작품의 외연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미시적 암호 코드를 담는 견고한 용기로서의 셀이면서 동시에 세상과 우주의 신비를 바라보는 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때로는 또 다른 선적 조형의 빛이 더해진다. LED의 빛의 궤적으로 그린 단순한 직선과 원은 지평선과 일식의 장엄한 광경을 함축하거나 행성과 다른 행성이 교차하는 우주적 운동을 되풀이 반복하며 경과하는 시간을 목도하게끔 한다. 여기서 오래된 경구를 빌리자면, 빛은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지혜로 다시 한 번 번역해 볼 수 있다. ■ 최흥철

Vol.20110313h | 김지아나展 / KIMJIANA / 金志我懦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