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심연

이채영展 / LEECHAEYOUNG / 李彩瑛 / painting   2011_0330 ▶︎ 2011_0412

이채영_새벽 2시_장지에 먹_130×162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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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33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밤이 열어 보이는 세계, 마술적인 밤 ● 어릴 적에 곧잘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한 적이 있다. 술심부름을 위해선 숲길을 지나쳐가야 한다. 낮에도 지나다니는 길이지만, 밤에는 왠지 같은 길이 아닌 다른 길처럼 느껴졌다. 동네 청년들이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개를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실제로 허연 뼈다귀가 발견되기도 했다. 동네어귀를 지나쳐 그 길에 접어들 때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긴장하기 시작했고, 긴장은 숲길을 빠져나올 때쯤이면 최고조에 이른다. 그리고 긴장감은 낮에 그 길을 매일같이 지나다니는 것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반복되는 술심부름에도 불구하고 전혀 반감되거나 줄어들지가 않았다. 이상한 것은 그 길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던 머릿속이 밤이면 어김없이 하얗게 지워져버려 매번 새 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길에 대한 기억이 오히려 상상력을 부추겨 긴장감을 고조시켰던 것 같다. 세월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고 환경도 변했지만, 모든 것을 어둠 속에 품어 들이던 그때의 밤의 질감이나 그 질감이 자아내는 두려움은 지금도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채영_새벽3시10분_장지에 먹_97×130cm_2011

이채영은 밤을 그린다. 서울의 밤이며 도시의 밤이다. 필자에게 작가의 밤 그림은 유년의 밤을, 유년이 형성시켜준 밤의 질감과 정서와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했다. 흔히들 도시의 밤 풍경을 그리지만 대개는 인공조명으로 휘황하거나 그 속에 도시의 욕망이 탑재된 번잡한 것들이기 마련이다. 밤의 침범을 밀어내기라도 하듯 오히려 낮보다도 밝거나, 아니면 마치 꿈을 꾸듯 가물거리는 별빛처럼 아예 먼 조망으로 표현한 것들이다. 작가의 밤 그림은 이 휘황하고 번잡한, 그리고 때로는 몽롱한 그림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시점으로 치자면 도심 속으로 지나치게 밀착해 들어가지도 않고 동떨어지지도 않는다. 아마도 대상을 더 잘 조망하게 해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데, 미학적인 용어로는 심적 거리두기 혹은 미적 거리두기가 유지되고 있다. 대상에 지나치게 근접되면 의미가 결정적이기 쉽고 다른 의미들에 배타적이게 되기가 쉽다. 반대로 대상으로부터 지나치게 동떨어지면 의미는 오리무중에 빠진다. 대상으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작가는 대상이 자신의 성질을 발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드러난 성질에 저마다의 감정을 이입하게 하는 상호작용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 최근 수년 내에 특정화된 장르 페인팅으로 소위 도시회화가 있다. 일찍이 인상파 화가들이 카페문화에 매료되어, 그리고 팝 화가들이 소비문화에 혹해 도시의 정경을 즐겨 그린 적이 있지만, 최근의 도시회화의 경향은 이것들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아이콘 내지는 아이템을 도시에서 발견한 경우인데, 그 가운데에는 아파트와 연립 같은 생활공간도 있고, 재개발 현장이나 청계천과 같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의미가 강한 장소도 있다. 그런가하면 흔히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오히려 독특한 정서를 자아내는 도심의 변두리에 주목한 경우도 있다. 이채영의 그림은 이 도시회화의 한 부류로 범주화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작가만의 특유의 정서를 매개로 도시의 또 다른 국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채영_밤 12시 35분_장지에 먹_72.5×60cm_2010

다시, 이채영은 밤을 그린다. 도시의 밤을 그리는데, 그러나 그 도시는 도심이 아닌 도시의 변방이며 변두리다. 주로 정적에 감싸인 주택가를 그리고, 주택과 주택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길을 그리고, 어두운 가로 위로 희미한 불빛을 흩뿌리는 가로등이나 반 지하방의 정경을 그리고, 대개는 버려진 쓰레기더미와 함께 주차된 차들이 어둠 속에 잠겨있는 막다른 골목의 귀퉁이를 그리고, 등이 발하는 조명이 가장자리에 갇혀 무슨 무대처럼 보이는 아파트 현관을 그리고, 적막감과 함께 다소간 생경해 보이는 구조물이 어떤 이질감마저 자아내는 텅 빈 놀이터를 그린다. ● 익히 보아왔고 알려진 정경들이지만, 그 위에 밤이 드리워지면서 정경들은 불현듯 낯설고 이질적이고 생경하게 다가온다. 밤이 되면서 친숙한 풍경이 낯설어지는 것. 이처럼 이질적으로 와 닿는 풍경이 캐니와 언캐니에 대한 프로이드의 논법을 상기시킨다. 두려움은 예기치 못하게, 부지불식간에 침범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은 진작부터 친근한 것 속에 이미 내장돼 있었다. 친근한 것이 어떤 사건을 매개로 낯설어지고 생경해지고 두려움을 자아내는 것. 작가의 경우에 그 사건은 밤이다. 밤은 사물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사물의 정서를 변질시킨다. 마치 벨벳 같은 어둠의 질감 속에 사물을 품어 들여 그 형태를 정서로 치환시켜놓는다. 즉 밤에 사물은 형태를 벗고 정서로 화한다. 그래서 두런거리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것 같고, 쳐다보는 것 같다. 그 응시에는 광기와 매혹이 묻어있다. 어둠이 쳐다본다. 광기와 매혹이 손짓을 한다. 밤이 낮과는 다른 세계, 낮에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세계,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세계, 낮이 결코 열어놓을 수 없는 어떤 미지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

이채영_새벽3시_장지에 먹, 혼합재료_97×130cm_2010

모든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명명백백해지는 낮에 세계는 하나다. 그러나 밤이면 세계는 사실은 양가적으로 구조화돼 있음이 밝혀지고, 사물과 사물, 정서와 정서, 의미와 의미간의 차이가 불현듯 불투명하고 애매해진다. 사물과 그림자, 빛과 어둠, 친숙함과 낯 설음, 광기와 매혹이 하나의 결로 직조되는 어떤 차원이 열리고, 타자와 타자가 서로 만나 삼투되는 이질적인 세계가 개시되는 것. 이처럼 밤이 열어 보이는 양가적 세계, 양가적 비전에는 그림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도맡는다. 광원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을 때 그림자는 사물과 공간을 부드럽게 감싸고, 무슨 국부조명처럼 가까이서 불빛이 비칠 때 그림자는 칼로 종이를 자르듯 공간을 가른다. 때로는 부드럽게, 그리고 더러는 급격하게 공간을 구획하면서 그림자는 사물을 변형시키고 대기의 질감을 변질시킨다. 작가의 그림은 이처럼 세계를 변형시키고 변질시키는 밤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대하는 것 같다. ● 일부 채색을 도입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작가는 이 모든 그림들을 대개 먹만으로 그리고, 흑과 백의 음영만으로 그린다. 그림들은 무슨 흑백사진처럼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붓질이 여실한데도 왠지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단순히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사실적인 감각과 느낌을 통해서 일루전 곧 실재감을 획득하고 있는 것. 이 실재감은 아마도 풍부한 하프톤 때문이 아닐까 싶고, 특히 먹빛으로 표현된 대기(밤?)의 습윤한 기운을 자기 내부에 머금어 들이는 종이의 질감 내지는 성질 탓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이 자아내는 밤의 질감을 감각적으로 캐치하는 작가의 남다른 감수성과 함께, 그 감수성에 형태를 부여해주는 표현력이 뒷받침되고 있을 것이다.

이채영_새벽2시20분_장지에 먹_97×130cm_2011

이로써 작가는 밤의 시간을 열어놓는다. 시간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밤은 낮과는 전혀 다른 도시의 생리와 삶의 질감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오히려 더 그 존재의 빛을 발하는 것들, 어둠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해 들이는 것들, 어둠 속에서 소생한 것들이 수런거리는, 친근하고 생경한, 감싸면서 두려움을 자아내는, 매혹의 그림자 속에 광기의 빛을 숨기고 있는 밤이 열어 보이는 세계로, 어쩌면 마술적인 세계로 우리 모두를 초대한다. ■ 고충환

Vol.20110330d | 이채영展 / LEECHAEYOUNG / 李彩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