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의 부재, 공간에 놓이다

변선영展 / BYUNSUNYOUNG / 卞善映 / painting   2011_0406 ▶ 2011_0522 / 월요일 휴관

변선영_the house in the painting the painting in hte ho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60cm_2008

초대일시 / 2011_0406_수요일_05:00pm

기획 / 아트사이드 갤러리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통의동 33번지 Tel. +82.2.725.1020 www.artside.org

가치 없음에 대한 헌신 ● 집안풍경이다. 거실이자 실내인 이곳은 여러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곳은 마치 상점이나 갤러리와도 같다. 작가는 달콤하고 안락한 가정의 실내풍경, 스위트홈을 연상시키는 공간을 인위적으로 설정하고 연출했다. 보편적으로 모든 가정의 내부풍경, 인테리어는 유사하면서도 동시에 각자의 취향과 기호, 미의식과 생활수준 등을 반영하는 예민한 척도로 진동한다. 변선영이 가공한 실내풍경은 벽지와 가구, 그리고 액자와 달력, 화병과 사진프레임, 쿠션과 일상을 살면서 필요로 하는 꾀나 잡다하고 자잘한 물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과잉으로 소비되고 수집되는 이미지와 물건들, 정신없이 빼곡한 문양과 화려한 색채가 안기는 시각적 강도, 더구나 그 모든 것을 수공으로 채워나간 아득한 시간과 노동의 양까지 얹혀져서, 화면은 숨가쁘다. 이질적인 이미지와 색채, 문양들은 정신없이 혼재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기준이나 미적 감수성을 일관되게 드러내기 보다는 혼성적이고 다층적이며 취향과 기준의 위계를 의도적으로 거스른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시대 가정을 채우고 있는 이미지의 무차별적인 혼재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허구적으로 연출된 이 실내풍경은 동시대의 보편적인 실내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소 이상한 것은 정작 화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특정 기물이나 사물, 더러 사람의 모습은 비워둔 채 나머지 부분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텅 빈 여백 그대로 두어버린 것이다. 정작 눈에 띄는, 주목되어야 하는 중심 부분은 남겨둔 채, 그리지 않은 채 나머지 부분, 그 주변을 너무 많이, 자세히 그려내는 이상한 접근이다. 그것은 기존에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정물화를 그려나가는 방식에서 좀 벗어난 편이다. 일반적으로 정물화란 테이블 위에 놓인 화병, 꽃, 과일을 중심으로 놓고 묘사한 후 그 나머지 부분은 간소하게 처리하는 편이라면(그런 식으로 교육받았고 그렇게 그려왔고 보아왔다면)이 그림은 그와는 정반대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작가는 가치를 부여받던 정물의 중심부분이 아닌 주변에 주목했다. 가치 있다고 여겨졌던 그 무엇들에 너무 싫증이 나있었다고 한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과연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무엇일까?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이기는 하는 걸까? 누가 그 가치를 명명할까? 하는 질문으로 옮겨갔다.

변선영_the house in the painting the painting in the ho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61×61cm_2009
변선영_the house in the painting the painting in the ho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120cm_2008

변선영의 그림은 그 가치의 전도를 시각적으로 연출한다. 우선 그림 안에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죄다 차용되었다. 그것들은 우열 없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아울러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다양한 시각이미지들이 죄다 호출되었다. 사물을 보는 눈, 미술을 접하는 시각에서 작동하는 가치의 위계를 의도적으로 지워나갔다. 이른바 고급미술과 저급미술,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구분이나 경계를 문제시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새삼 변선영은 팝아트의 전략에서 더 나아가 그 둘의 극단적인 세계 자체를 일상의 사물, 이미지와 두루 섞어 그것들로 이루어진 일상의 삶의 공간을 다시 보여준다. 제시한다. 팝아트에 유사하면서도 디자인과 장식성의 극단으로 올라가는 패턴, 문양의 치밀한 묘사는 무척이나 낯설고 기이한 회화를 보여준다. 이 여성적 감수성과 장식성의 과도한 노출 역시 남성적 미술관에 대한 역설적 대비일 것이다. 아울러 미술을 보는 관점의 차이나 구분, 경계 역시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모더니즘이 그토록 갈망한 ‘질의 문제’는 이 그림에서 의도적으로 흐려진다. 취향과 기호는 뒤죽박죽이다. 어쩌면 그것이 정작 작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혼성적 이고 다층적인 기호 말이다. 고급미술과 저급미술, 동양화(서예)와 서양화, 키치그림과 기하학적 벽지문양, 전단지와 팝아트그림이 실린 달력, 레이스와 미니멀한 소파천의 스프라이트무늬, 그리고 민화 등이 한 자리에서 숨 쉰다. 여기에는 서양미술사(문화)를 당연하게 주입받고 교육받아 형성된 동양인(작가 자신)의 갈등, 문화적 혼재감이 드리워져 있다. 또한 문양과 패턴 사이로 한 쌍의 사람들이(누워있거나 앉아있거나 걸어가는)말풍선처럼 자리하고 있는데 역시 사람들은 실루엣으로 처리되고 주변 배경만이 자리하고 있는 기이한 형국의 풍경이다. 위치의 전도다.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정체성을 상실하고 부유하는 존재들 같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정교하게 그려져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에 의해 자의적으로 처리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연출되었다. 예를 들어 달력 속의 숫자가 더러 빠져있기도 하고 전단지 안의 상품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거나 틀리게 기재되어 있고 동양화 속 한자도 오기가 있는 식이다. 기능을 상실한 것들이자 작가의 위트와 장난이 숨 쉬는 부분이다. 본래의 문맥에서 이탈되어 나온 그것들은 착종된 전통이나 오역된 서구문화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로도 다가온다. 아울러 이 같은 정신없는 실내풍경은 오늘날 우리의 문화적 초상이자 정체성의 혼돈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다. 사실 이 같은 분열증이 우리의 정체성일지도 모른다.

변선영_the house in the painting the painting in the hous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75×300cm_2008
변선영_L.I. of V.(Lost Identity of Valu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0
변선영_L.I. of V.(Lost Identity of Valu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5×120cm_2010

궁극적으로 작가는 주변을 채우는 모종의 패턴을 공들여 그리고 있는 셈이다. 부차적인 장식이자 잘 눈여겨보지 않는, 그러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온갖 문양과 패턴들이 사물을 비우고, 중심에 놓여지는 가치 있는 물건들을 대신해서 역전되어 다가온다. 작가는 마치 직접 레이스를 짜듯이, 인쇄하듯 꼼꼼히 그려내고 있다. 이 지루한 노동,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요구되는 그리기는 어쩌면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는 놀이, 일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그렇게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일을 의도적으로 감행한다. 스스로 그런 무가치한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문양과 레이스를 그려나가면서, 마치 실의 코를 잣듯이 나가면서 가는 펜촉으로 점을 찍고 가는 선을 그어나가면서 패턴을 디자인한다. 이어간다. 패턴은 모든 가치를 하나로 꿰어나가는 일이다. 생각나는 대로 계속해서 증식해나가는 그림을 그린다. 패턴을 따라가면서 공간을 채우고 여백을 지우면서 모종스토리를 만들어나간다. 엮어나간다. 여러 가치들을 섞고 흔들고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를, 훈육 받은 가치와 무가치의 경계와 금기 속에서 착종된 자신의 의식과 몸을, 정체성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다. ■ 박영택

Vol.20110406e | 변선영展 / BYUNSUNYOUNG / 卞善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