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에로의 꿈

황효창展 / HWANGHYOCHANG / 黃孝昌 / painting   2011_0610 ▶︎ 2011_0626 / 월요일 휴관

황효창_상생도 Ⅱ_캔버스 유채_100×100cm_2001

초대일시 / 2011_061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샘터갤러리 SAMTOH GALLERY 서울 종로구 동숭동 1-115번지 샘터사옥 Tel. +82.2.3675.3737 www.isamtoh.com

필자가 황효창의 작업실을 찾은 것은 2007년 겨울, 눈이 많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얘진 어느날 오후였다. 겨울은 온몸에 눈이었다. 서울을 출발해 경춘가도를 달려 춘천으로 향하는 길은 전날 밤에 거의 폭설에 가까이 내린 눈으로 인해 어느 정도 흥분된 상태였다. 작가의 작업실은 춘천에서 화천 방향으로 30여분을 달리면 춘천댐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왼쪽방향으로 5분여를 춘천호수를 끼고 올라가면 아름다운 계곡과 물이 흐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몇 십 년 전만해도 이곳 서면 오월리 하면 춘천에서도 오지로 통하는 외딴곳으로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이제는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청정지역이 되어 있었다. 황효창 작가는 그곳에 있었다.

황효창_삐에로의 하늘_캔버스에 유채_53×33.4cm_2010
황효창_안녕하세요_캔버스에 유채_45.5×33.4cm_2011

80년대 『현실과 발언』, 『앙데팡당』, 『ESPRIT』, 『방법』 등의 활동으로 우리 미술에 거대한 반향을 몰고 온 민중미술의 중심에 있던 황효창은 강원도 산골 깊은 곳에 거의 은둔자의 모습으로 창작에 몰입하고 있었다. 황효창은 대학을 졸업하는 72년에 전국광, 김태호, 이일호, 노재승, 김광진 등과 함께 'ESPRIT' 동인을 결성해 전위적인 미술을 주도하게 되는데, 당시 그들의 관심은 실험적 양식의 탐구에 중점을 둔 새로움의 발견에 주목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미술의 공허함을 자각한 작가의 시선은 인간의 의식에 기인한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 79년에 결성되어 80년에 창립전을 가진 『현실과 발언』전의 활동은 우리 민중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으며, 수많은 민중미술 작가들을 탄생시켰다. 10여년이나 지속된 민중미술은 사회와의 불협화음과 비논리적인 선동적 미술 운동의 형식으로 몇 명의 스타 작가를 양산하는 결과를 만들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다. 하지만 민중미술이 한국 화단에 남긴 의미는 다시 되 집어 봐야 할 정도로 크다. 오월리의 아담한 작업실 어디에도 그가 우리 80년대의 현실과 발언의 멤버로 활동하였던 작가라는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아직 작가의 몸에 뼈 속 깊이 남아 있는 추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황효창_밤과 꿈_캔버스에 유채_27.3×45.5cm_2011
황효창_사랑_캔버스에 유채_53×91cm_2008

90년대 초 작가는 삼청동 작업실을 접고 춘천으로 낙향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지역에 기반을 둔 그림그리기에 전념을 하게 되는데, 다소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표현하게 된다. 이미 운명과도 같이 등장한 트레이드마크가 된 인형은 평생 동반자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삐에로는 다소 어둡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작가는 세련미와 능률을 숭상하는 모더니즘의 광포한 질주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가쁜 숨을 고르며 『느림의 미학』을 철저히 되새김 질 하고 있다. 이시절의 삐에로는 성장을 목표로 질주하는 현대 사회의 한복판에서 무엇도 할 수 없는 좌절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슬픔의 힘'을 상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슬픔의 미학으로 집약되는 일련의 작업들에서 그가 탐침(探針하는 것은 현실도피적인 발상에서 촉발되는 권태, 나태, 무위와 직결되거나, 현실을 초극한 자족적인 유토피아의 착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의 냉철한 반성을 통해 매개되는 올곧은 의식의 소산임을 뜻한다. ● 최근 황효창의 그림에 고루 스며 있는 자연과 사람을 아름다움의 표본실로 여기는 생각, 자연에는 섭리가 있고 인간이 배워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는 자연을 살아있는 유기체로 인식하는 낭만주의적 자연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는 듯이 보인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정신이 조화롭게 깃들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자연과 사물을 영적인 생명체로 여기고 보살피며 그들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황효창 작업은 그림이라는 마법을 통해 낮은 단계의 사물들을 절대적인 미의 세계로 승화시켜 완성하려는 낭만주의의 시도라 할 수 있다.

황효창_상생도Ⅰ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2001

황효창은 인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꿈꾸는 세상에 인형이 있었고 인형은 그의 대리인 역할을 벌써 수십 년 넘게 해오고 있다. 어느덧 그 어릿광대의 나이가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어 버렸다. 세상에 대해 도전적이고 냉소적이던 시선은 이제 꽃을 바라보거나 가족과 이웃의 건강을 걱정하는 시선으로 진화를 하였다. 황효창의 그림은 이제 완전한 동화童話가 되었다. 아침을 노래하고 새와 함께 날며, 지붕위에서 별을 보기도 한다. 황효창의 그림에는 시간이 보인다. 시간은 추억을 만들어내고 그 추억은 불멸의 그림을 만들어 낸다. 어느 시인은 노래에 "추억이란 마모되면 / 수만 년이 지난 어느 날의 또 다른 이름, / 어느 어두운 방의 방사선이 들여다보는 찰나의 化石"이라고 적었다. 오래된 것들을 더듬어 보는 일은 세월에 깃들인 발자국을 되짚어 걷는 것이다. ● 올봄에 다시 찾은 오월리의 작업실에는 연녹색의 봄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랜 시간을 자연에서 보낸 작가의 얼굴에는 따사로운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사물을 통하여 우리의 삶과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이제 그림을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듯이 보였다. 사물을 빌어 말하고자 했던 삶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그의 삶은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흐르고 있다.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작가의 그림들은 이순을 넘은 황효창에게 삐에로의 꿈으로 완성되고 있었다. ■ 이종호

Vol.20110612b | 황효창展 / HWANGHYOCHANG / 黃孝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