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Room 전시장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4인 그룹展   2011_0701 ▶︎ 2011_0717 / 월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1_0701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 손혜민_윤주희_이봄순_이민경

오프닝 퍼포먼스 차갑게 친절한 그녀-외부 / 2011_0701_금요일_06:00pm 기획 / 윤주희 출연 / 민정희_박현태

주최 / 인천아트플랫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금,토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인천아트플랫폼 INCHEON ART PLATFORM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218번길 3(해안동 1가) Tel. +82.32.760.1000 www.inartplatform.kr

보여주는 곳에서 보아야 할 곳으로 ● 일반적으로 전시장 하면 어떤 심상이 떠오르는가? 네모난 큐브형 공간, 흰 벽, 작품의 중심이 바닥으로부터 110~130cm 높이에 오도록 일렬로 걸린 액자들, 작품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안내도와 전시 홍보물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형식이 자리잡기까지는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1772~78년에 조파니(ZOFFANY Johann)가 그린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부나'(조한 조파니 Johann Zoffany, 우피치 미술관의 트리부나 The Tribuna of the Uffizi, 캔버스에 유화, 154.9x123.5cm, 1772-78, 왕립 컬렉션, 윈저)만 봐도 확연히 다른 전시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들은 벽을 꽉 채워 주제나 기법, 연대기와 상관없이 크기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조각이나 공예품들도 크기별로 세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과연 현대의 방식과 18세기의 것 중 어떤 전시 방식이 올바른 것일까? 1958년에 프랑스의 아티스트 이브 클렝(Yves Klein)은 파리의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Galerie Iris Clert)에서 '공허의 전시(l'exposition du vide)(공허의 전시 L'Exposition du vide, 파리 이리스 클레르 갤러리, 1958)'를 개최하였다. 갤러리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깨끗하게 청소된 갤러리의 벽은 지난 전시의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얗고 말끔하게 칠해져 있다. 관람객은 갤러리가 비어있다는 '상태'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공허'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말한다. 과연 이것도 전시라고 할 수 있을까? 인천아트플랫폼 2기 입주작가 손혜민, 윤주희, 이봄순, 이민경이라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 2011년 7월 1일부터 17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는 'Showroom-전시장'展이 개최된다. 참여 작가는 앞서 언급한 4인이다. 전시의 최초 아이디어는 이봄순에게서 나왔다. 이봄순은 공간 안의 간과되기 쉽거나 무시되는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 작가이다. 이봄순은 동기 입주작가들 중 특정 공간의 성격, 공간의 구조적 형식미, 공간에 부여된 권력, 즉 공간성에 주목하는 작가들에게 '전시장' 자체를 소재와 연구대상으로 삼는 전시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대개 작가들은 전시장을 채울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반해, 이 4인의 여성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담기는 그릇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시장은 작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는 기회의 장이자 통로이다. 그렇다고 작가는 늘 기존의 관 주도의 정형화된 전시 방식을 묵묵히 수용하고 이 공간이 행사하는 권력에 담담히 휘둘려야 하는가? ● 이번 전시는 '작품을 '보여주는 장소(쇼룸)'로서의 전시장' 혹은 뮤지엄의 고정된 개념에서 벗어나 보고자 기획되었다. 전시장의 새로운 장소성을 모색하고 탐구하는 4인의 참여작가는 통상적인 전시 구성 방식, 작품을 보여주는 정형화된 패턴, 전시를 감상하는 관람객의 행동 양식, 그리고 이를 통제하는 미술관의 관리 형태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이를 통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고정된 해석에 대한 2차 해석과 비판이 시도된다. ● 뮤지엄과 전시장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아도르노는 「발레리 프루스트 뮤지엄」이라는 에세이(테어도어 아도르노 Adorno, T. W., 발레리 프루스트 뮤지엄 Valery Proust Museum, MIT Press, 1983)에서 전시라는 행위가 일어나는 주요 장소인 뮤지엄(museum)과 거대한 무덤 모졸레움(mausoleum)의 유사성을 살핀다. 그는 뮤지엄이 뮤즈가 사는 생기 넘치는 집인 동시에 박제된 작품들로 인해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죽음의 성소라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내포한다는 점을 포착한다. 이 두 상반된 견해는 발레리와 프루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고, 아도르노는 두 견해에 대한 변증법을 시도한다. 발레리는 뮤지엄이 작품의 죽음을 야기하는 공간, 무질서와 제약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뮤지엄에서 작품은 그 기원과 컨텍스트로부터 분리되고, 관람객들은 작품을 경배하고 신성시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뮤지엄은 '예술 작품의 가족 무덤(family sepulchres of works of art)'이자 '명상적 공동묘지(meditative necropolis)'라는 것이다. 반면 프루스트는 뮤지엄에 작품이 놓임으로써 작품은 비로소 그것을 압박하던 환경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확보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작품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활성화되고 의식의 움직임이 생겨나게 되므로 뮤지엄은 작품이 생존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견해를 종합한 아도르노는 작품이 뮤지엄에 놓인 순간 작품은 본래의 목적과 환경에서 이탈하여 1차적으로 죽음에 이르지만, 새로운 생존 조건과 환경을 부여 받음에 따라 독자성을 획득하고 부활하게 된다고 말한다. 뮤지엄은 작품의 삶과 죽음이 반복, 교차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뮤지엄은 작가와 작품에게 거대한 위협인 동시에 궁극의 기회이다. 뮤지엄이 휘두르는 권력은 매우 위협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위치할 곳은 뮤지엄(전시장)이며 그곳에서 작품의 생명은 강화되고 지속된다. ● 이번 전시의 제목은 전시장이라는 뜻의 '쇼룸Showroom'이다. 그리고 '전시(展示)'의 뜻은 '펼쳐 보인다'이다. 전시장은 이렇게 인간의 '보여주기 욕망'에게 탄생되었다. 자신이 수집한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 경이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망 말이다. 근대 미술관의 탄생 배경과 과정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장소들을 살펴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탈리아어에서 '작은 방'을 뜻하는 스투디올로(studiolo), 독일어에서 '경이의 방'에 해당하는 분더캄머(wunderkammer), 영어와 프랑스어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y, cabinet de curiosité)'이 그것이다. 이 방들은 왕족과 귀족들이 수집한 자연물(나투랄리아 naturalia : 광물, 식물 표본, 박제 동물 등에 해당), 인공물(아르티피시알리아 artificialia : 금은세공품, 유리세공품, 무기, 서적, 메달과 동전, 그림, 판화, 조각 등 예술품에 해당), 과학 관련 도구들(시엔티피카 scientifica : 시계, 천구의, 온도계, 자물쇠, 망원경, 현미경 등의 광학도구들에 해당), 이국의 물건들(엑조티카 exotica)을 '배치하여' '보여주는' 곳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경이로움을 유발하는 물건들(미라빌리아 mirabilia)'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경이의 방'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보헤미아의 왕이었던 로돌프 2세의 수장고에 이르러 비로소 '예술의 방'이라는 뜻의 '쿤스트캄머(Kunstkammer)'라 불리며 현대적 의미의 전시장과 뮤지엄의 시초가 된다. 로돌프 2세의 쿤스트캄머는 크라나치, 티치아노, 브뤼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파르미쟈니노, 코레조 등 쟁쟁한 화가들의 예술작품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 사실 쇼룸은 자동차나 패션과 관련된 마케팅 용어로 더 많이 쓰인다. 스펙터클함과 화려함을 '보여주고' 소비자의 구매욕을 이끌어 내는 것이 목적이다. 미술 관련 전시가 규모가 커지고 전시를 '쇼'라고 부르고, 전시장을 '쇼룸'이라고 통칭하는 것에서 '보여준다'는 행위 - 때때로 과시적인 - 의 중요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보여준다'는 방식은 과연 제한적일까? 이렇게 보여줌으로써 작품이 드러내려는 바가 잘 전달될까? 보여주려는 대상 말고 보여주는 장소, 그릇, 기표(시니피앙signifiant)는 이때 어떻게 작용할까? 이렇게 4명의 작가는 전시장의 욕망과 권위와 힘을 뒤집어 보기를 바란다. 전시장이 비어있을 때의 모습, 작품이 없을 때의 전시장의 기능, 전시장 내부의 잉여 공간 혹은 여백이라 간주되는 부분에 주목한다. 더불어 전시장 안에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물건 혹은 작품을 끌어들인다. 전시장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들, 현상들과 작품 자체가 아닌 작품을 둘러싼 환경에 시선을 둔다.

이민경_하얀 벽 sk 001, a white wall sk 001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68×100cm_2011

예를 들어, 이민경은 '화이트 월 A White Wall' 시리즈를 통해 사립 미술관들의 하얀 벽들이 형성하는 조형미와 그것이 발산하는 부정적 권력과 건축적 파워를 표현했다. 아직 작품이 걸리지 않은 준비 상태의 전시장을 촬영한 사진작품이다. 이민경은 특정 공간을 사진으로 촬영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니어처를 제작한다. 그리고 이 모형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최종 작품을 완성한다. 미니어처에 1차로 찍은 사진의 일부분이 포함되기도 한다. 하지만 1차 사진 기록에 기반하여 제작된 미니어처는 그 모태를 충실히 따르지 않으며 작가의 전지적 시점으로 변형되고, 작가 자신의 표현에 따라 '조작(manipulate)' 된다. 창작 과정 중 하나인 미니어처는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적이 없으며, 설명이 없다면 그의 사진 안에서 모형을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민경의 기법은 문학으로 치면 액자소설에 해당한다. 소설 속 소설의 기법처럼 그의 사진 안에는 또 다른 사진, 또 다른 재현물이 담겨 있다. 순간을 포착하여 진실을 전달한다는 사진의 미덕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화이트 월' 시리즈 역시 전시장 내부를 촬영하고 미니어처를 만든 뒤 그것을 다시 촬영하는 과정을 거쳤다. 재현에 재현을 겹쳐 재현을 거부하는 이민경의 작업을 통해 공간을 대하는 또 다른 태도를 만나게 된다.

이봄순_뮤지엄 포트폴리오 No.1 Museum Portfolio No.01_단채널 비디오_00:01:36_2011

● 전시장 자체를 작품 소재로 한 것은 이봄순도 마찬가지이다. 이봄순의 영상작품 '뮤지엄 포트폴리오 Museum Portfolio' 시리즈는 오랜 미술의 역사 동안 화가들이 그토록 시도하고 노력했던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라는 과제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작업이다. 일견 색면 추상화처럼 보이는 그의 작품은 실제 국립현대미술관의 벽과 칸막이를 찍은 것이지만 카메라의 프레이밍에 의해 공간감은 사라지고 단순한 평면의 분할로만 나타난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 화가들이 원근법을 통해 2차원 평면 안에 3차원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구현하여 일루전을 일으켰다면, 이봄순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공간을 평면화 시키는 역(逆)원근법을 시도한다. ● 작가의 시선이 닿은 곳은 전시장 안에서도 특히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지점이다. 기둥과 칸막이,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등 실재 공간의 경계는 그의 작품에서 평면의 경계가 된다. 작가의 시점에 따라 작품을 보면 실상의 모습과 다른 형태를 보게 된다는 점에서, 즉 우리가 작품으로 대면하는 것은 착시현상으로 인한 일루전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이봄순과 원근법을 사용하는 르네상스 화가들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관람객의 지각 능력을 흐리는 이봄순의 작품들은 평면이 도드라져 보이게 하고 회화에 공간감을 부여하려 고안된 '눈속임(트롱프 뢰유 Trompe l'œil)'기법의 역발상이다. 더욱이 실제의 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봄순의 영상은 면에 따라 확연한 색의 차이를 보여준다. 일조량과 빛의 방향에 따라 찬연히 다른 색을 드러내는 루앙 대성당을 그렸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봄순이 런던의 테이트 모던 갤러리를 촬영한 사진 작품 '추상의 형태(Form of Abstract)' 시리즈를 통해 이미 시도한 바 있는 이러한 '역(逆)트롱프 뢰유' 기법은 이번 작품 뮤지엄 포트폴리오를 통해 더욱 발전하였다. 하지만 이봄순의 의도는 관객의 눈을 속여 유희하자는 것이 아니다. 영상에 미묘한 움직임과 소리를 부여하여 관객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도록 한다. 관객 스스로 면밀히 관찰하고, 또 다른 감각을 일깨워 공간을 새롭게 인지하기를 기대한다.

윤주희_차갑게 친절한 그녀_오프닝 퍼포먼스 리허설 이미지 중 하나_2011

반면 윤주희는 전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행위에 주목한다. 특히 작품을 설명해 주는 전시장 가이드 혹은 도슨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윤주희가 보기에 가이드는 통(번)역자(Interpreter)와 같다. 전시와 작품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그 의미를 관람객에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윤주희는 그간 여러 작업을 통해 통(번)역자나 가이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 왔다. 스스로의 활동을 통(번)역자의 역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통(번)역이라는 것은 제1언어(출발어)를 '해석(interpret)'하여 제2언어(도착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제1언어와 2언어 사이의 등가물을 찾아내어 1언어의 메시지(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행위이다. 윤주희는 제1언어의 수신자로 출발 메시지를 이해하고(어의론 semasiology의 단계 - X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what does the X mean?), 제2언어의 발화자로서 표현(명칭론 onomasiology의 단계 - X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how do you express X?)한다. 하지만 윤주희에게 언어라는 것은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인은 시각 언어, 몸짓 언어 등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그는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표현의 계기를 주고, 이를 통(번)역 하여 그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소통의 폭을 확장하고 공통의 배경지식을 늘려간다. 전시장 가이드는 전시와 작품의 내용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강요하는 이른바 가이드라인은 작품 감상의 방식을 패턴화시킨다. 그리고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음성언어로 바꾸는 과정에서 의미의 축소와 다른 의미의 침입이 발생한다. 윤주희는 이러한 상황들을 텍스트라는 문학적 수단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극화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 전달이라는 통(번)역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검토한다. 그의 퍼포먼스에서 실제와 극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가이드라는 행위에 대한 가이드 즉 메타 가이드의 행위가 벌어지는 지점이 생겨난다.

손혜민_한시적 이동. 오르막. 내리막. Temporary Movement. Incline. Slope_HDV_00:05:11_2011_부분

윤주희가 전시장에서 일어나는 의미의 전달이라는 행위에 집중했다면 손혜민은 전시장에서 발생하는 의미망의 형성에 주목한다. 그의 작업은 공공장소에 세워졌으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는 각종 바위 조형물(기념석)에서 출발한다. 인천아트플랫폼이 위치한 중구 일대를 돌며 각종 기념석을 찾아내고 그것들의 공통적 형태를 추출하여 유사 조형물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기념석을 전시장 안으로 유입시킨다. 전시장에서 본래의 기념석이 세워진 계기나 그 메시지는 찾을 수 없다. 메시지(기의, 시니피에signifié)가 사라지고 공허하게 남은 껍데기(기표, 시니피앙signifiant)인 가짜 돌 앞에서 관람객은 당황하거나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작품인 퍼포먼스 영상을 보고 이 작품과 저 작품을 연결하기 시작할 것이다. 영상은 월미도에 전(前)인천중구청장이 세운 '이별의 인천항 비' 뒤에서 행해진 퍼포먼스를 담은 것이다. 기념석의 뒤편이라 표제는 읽을 수 없고, 좌대가 없었다면 해안의 돌들 중 무엇이 기념석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곳에서 손혜민은 작은 돌을 여기 저기 놓았다가 치운다. 인천에 기념석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으나 그 존재감이 무상한 것과 비교된다. 카메라의 시점에 선 관람객은 월미도의 일반 행인과 마주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다시금 전시장 안의 가짜 기념석과 대치한다. 관람객이 영상 속의 돌과 전시장 안의 돌을 번갈아 보기 시작하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분명 새로운 이야기가 생성될 것이다. 이렇게 작품들은 의미의 그물을 엮는 씨실과 날실이 된다. 손혜민의 가짜 기념석은 전시장 안에서 그저 장식적 조형물로서 기능한다. 최초의 의도를 거세당한 작품에 아우라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관객이 들어와서 작품을 바라보는 순간, 그리고 이 작품과 저 작품을 둘러보는 순간 기표는 기의를 획득한다. ● 인천아트플랫폼의 전시장은 여타 화이트 큐브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거친 천장, 한 번의 시선으로 커버할 수 없는 구석진 공간과 통로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전시장에 '전시장'을 이야기하는 작업들이 배치되고 감상과 고찰의 대상이 된다. 4인의 작가들은 작품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중립적으로 무미건조하게 조성된 흰 벽의 전시장, 그 흰 벽이 휘두르는 권력, 전시장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행위들, 전시장에서 시선을 끌지 못하고 소외되는 부분들, 작품을 작품이게 하는 전시장의 공간성에 주목한 작업들을 바로 이 전시장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 손혜민, 윤주희, 이봄순, 이민경의 작업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리고 정반합의 단계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그들의 작업은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뿌리와 같은 형태로(rhizomatic) 뻗어가고 그 사이사이에 긴장과 에너지가 발생한다. ■ 이영리

Vol.20110703b | Show․Room 전시장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