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과 애도

2011_0701 ▶ 2011_0716 / 월요일 휴관

박자현_소녀_비디오_00:01:05_2011

오프닝 및 작가와의 대화 / 2011_0701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다인_박상은_박자현_송진희_왕덕경_이지현_전희영_최은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 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애도(불)가능 ● 원치 않는 이별 앞에 남겨진 사람은 떠난 사람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그 사람을 잡으려 하지만 타인은 내 마음과 다르다. 그 잡히지 않는 타인, 아니 '나'의 마음을 다독이고, 그 사람을 보내주기 위해 스스로를 감내하는 '애도'의 과정이 무사히 지나가야 하지만, 사실상 그건 불가능하다. 그 상처들은 온전히 개인의 삶을 아로새기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불안하며 때로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빠지게 된다. ● 개인의 이별 말고도 우리는 수많은 결별들을 보게 된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렇지만 전혀 다른 타인들이 사고, 자살, 테러, 전쟁, 재해 등으로 희생되는 것을 매체를 통해서 보거나 듣거나 할 때, 우리는 매번 두려움과 이 '불확실한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연민을 느끼지만 그 '애도'는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어떤 이별이나 죽음이 국가적인 '애도'의 과정을 거치게 될 때, 그 '애도'는 질서나 안정을 되찾는 방식으로 재빨리 흡수되어 버린다. 그 방법과는 다른 애도,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한다. ● 모든 이별 앞에 마음껏 슬퍼하는 것은 '애도'를 잘 하기 위한 과정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이 '애도'의 과정이 단지 자기애적이거나 자기보존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가 겪고 목격한 수많은 결별들이 '나'를 뒤흔들어 놓고, 마음껏 슬퍼할 있다면. 오히려 도처에서 들리는 고통을 애써 묵인하며 사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마음껏 슬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예술가들은 간혹 그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이 전시는 참여작가들 각자가 직면한 이별과 애도를 통해서 불확실한 삶(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던진다. '그녀'들은 여러 가지 목소리로 말한다. ● 그녀에게 박자현의 「소녀」 영상 안에는 웃으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엄마'가 있다. 그리고 그것을 찍는 '나'는 계속해서 큰 소리로 웃으며(울며) 좋아한다. 엄마가 기분 좋을 때, 그녀는 춤을 춘다. 엄마는 다른 아저씨를 만나 '나'를 떠났다. '내'가 준비할 틈도 없이 엄마는 떠났지만 아니 떠나도록 보내줬는데 엄마는 행복할까. '나'와 함께 살 때, 그리고 좋아하는 아저씨를 만나서 새로운 집에서 살 때, 다른 장소이지만 엄마는 웃으며 춤을 춘다. 그래서 '나'도 웃는다. 엄마는 늘 행복하면 좋겠지만, 그건 우리들의 기도일 뿐일까.

김다인_이별 후에 남겨진 것들_혼합재료_2011

기억과 마주하기 ● 김다인의 「이별 이후에 남겨진 것들」은 그녀의 과거 남자친구들에게 받았던 선물들을 모아 놓은 제단이다. 과거의 특정한 순간을 담고 있는 이 선물들은 무한한 관심과 사랑의 증거였지만 결국 과거의 기억 안에 멈춘 것들이다. 사연을 갖는 각각의 물건들은 과거의 연인이었던 관계들에 대한 증언이지만, 그 기억들은 물건으로만 치환되어서 나타난다. 기억에 대한 흔적으로서의 물건들. 작은 제단을 만들어 잠깐, 아니 조금 긴 호흡으로 안녕! 이라고 기도해 본다.

왕덕경_빈 집_태운 종이_2011

폐허에서 ● 왕덕경의 「빈 집」은 불이난 집을 모티브로한 설치작업이다. 건물 형상을 하고 있는 종이들은 모두 타 버려 재가 된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타다 남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어두운 전시장 그리고 작은 불빛들, 종이가 타서 나는 냄새. 바람이 불어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작업은 마치 화재 이후 모든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어떤 도시의 밤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아무도 살지 않는 정지된 밤은 차갑지만 따뜻하다. 모든 것이 잠들어 버렸지만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그리고 그 잔해들은 벽면에 고스란히 흔적을 남긴다.

최은효_아이스크림 고문_퍼포먼스 영상_2011

아픔을 재연하기 ● 최은효의 영상 「아이스크림 고문」은 눈이 쌓인 공원에서 장갑을 끼고 외투를 껴입고, 맨발로 콘 아이스크림 하나를 다 먹는 아주 조용한 퍼포먼스이다. 슬픔과 공허한 순간이 찾아 올 때마다 아이스크림으로 스스로를 달래야 했던 시간들. 작가는 그 아픔들을 애도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의연히, 그리고 끝까지 열심히 먹는다. 하지만 그 고통들은 결코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녀는 잠깐 연기를 한다.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혼자서. 그런데 그 공원이 쉼터였던 새와 다람쥐들이 불쑥 불쑥 나타난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에게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외부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말이다.

송진희_eat into_비디오_00:08:30_2011

타인의 고통 ● 송진희의 영상 「eat into」, 방 안의 모든 것이 하얗다. 한 여성이 걸어 들어온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물을 마시는 등 일상적인 행동을 한다. 서서히 그녀를 향해, 흰 공간을 향해 시멘트 더미들이 날아온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한다. 그녀의 일상과 외부의 침투는 무관한 듯 말이다. 서서히, 온 방과 그녀는 까맣게 젖어 버린다. 외부의 폭력이나 억압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일상을 담은 장면일까. 아니면 작가의 말처럼 타인의 죽음이나 고통을 접하고도 나와 무관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방기하는 장면일까. 물론 둘 모두 정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박상은_homosexual love_비디오_00:06:30_2011

다른 사랑 ● 박상은의 「homosexual love」에서 작가는 성적 소수자들을 가리키는 언어나 기호를 몸에 새긴다. 가슴에는 les와 다리에는 homo라는 단어를 새기는 것은 다른 사람의 손이다. 레즈비언과 호모를 낮추어 부르는 이 단어는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편견에 대한 손가락질과 같다. 그래서 작가는 이 단어들을 직접 문지르며 지워 버린다. 그리고 스스로가 배에 새긴 람라라는 기호는 사회적으로 억압되고 배제된 레즈비언이나 게이들에 대한 작은 애도이다. 반짝이는 색과 람라라는 기호는 결코 지워지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사랑법을 말해준다.

이지현_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_확성기, 밧줄_2011

목소리들 ● 이지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은 자살을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관련이 있다. 밧줄에 묶여 매달려 있는 확성기. 죽기 전에 혼자 끙끙 앓아야 했지만, 사실은 세상을 향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꽤나 많았지만 하지 못했던. 고장이 난 확성기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대신 여러 목소리들이 방 안에서 울린다. 자살에 대한 조금은 직접적이지만, 그럼에도 그 타인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

전희영_재개발Ⅰ-새총시위진압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1_부분

사회적 초상 ● 전희영의 평면 작업은 용산참사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를 재현한 작업이다.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는 사건들은 여러 입장들을 대변하지만, 대부분은 돈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의 승리로 이어진다. 생존권을 위해 사투를 벌이지만 그것을 쟁취하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세상. 그녀는 그 당시의 어떤 상황을 담담히 재현한다.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사건과 일단락이 된 사건들이 다시 회자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그런 싸움들이 지속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곳에 손을 들어주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이 전시를 함께 만들면서 열 번이 채 안 되는 만남을 가졌다. '이별'과 '애도'라는 큰 주제였지만 각자의 경험을 그리고 외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결별에서부터 사회적인 결별들을 담아내고 있는 그녀들의 목소리 다르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삶들을 증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 작업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묶기는 어려울 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성작가들로 한정한 것은 여전히 위태로운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결과물 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으로, '불확실한 삶'에 놓여 있는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건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별 앞에서 한없이 슬퍼하고, 그리고 한없이 애도하려 발버둥치지만 애도가 (불)가능하더라도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타인'과 손을 잡는 일이길. ■ 신양희

Vol.20110703j | 이별과 애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