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ogue sculpture

2011_0706 ▶︎ 2011_0712

초대일시 / 2011_0706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강슬기_김민_김성윤_김옥구_김정민_김현지_명윤아_민재홍 박훈하_선해창_송지은_원지애_윤혜선_이민엽_이은경_이재익 임승균_정희경_조덕상_천은준_최은영_최지환

후원/협찬/주최/기획 / 홍익대학교

관람시간 / 09:30am~06:30pm

갤러리 라이트 gallery LIGHT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7번지 미림미술재료백화점 2, 3층 Tel. +82.2.725.0040 www.artmuse.gwangju.go.kr

"dialogue – sculpture", "대화-조각" ● "담론-조각"모델에서 "대화-조각"모델로 이른바 '현대적 조각'이라는 표현을 가만히 살펴보면 오늘날의 미감과 전통적 범주간의 불편한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 조각을 현대적으로 만드는가. 조각이라는 범주를 고수한 상태에서 과연 현대적일 수 있을까. 조각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러한 표현은 미학적 새로움보다는 예술의 반복된 자기최면을 의심케 한다. 이를테면, 이미 쇠락한 범주를 '새로움'의 수사로 끊임없이 되살리고자 하는 모종의 의지나 예술이 여타의 창의적인 문화형식들과 마주하여 취하는 자기방어적인 태세를 느낄 수 있다. 조소과나 조각회 등의 제도적 산물, 그리고 새삼스럽게 조각을 주제로 반복되고 있는 전시관행은 그런 의미에서 합당한 실천이라기보다는 미학적 수사로 비춰지기 쉽다.

강슬기_The old memory that is still fresh and vivid_2011 / 김민_Dasein : 거기에 있음_2011 김성윤_drawing on retina_2011 / 김옥구_Spot_2011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조각이라는 이름을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다.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 지망생이 조각의 테두리 속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처럼 교육과 감상, 비평 등의 요소들이 여전히 조각의 범주를 토대로 기능하고 있다. 이 전시 역시 표면상 현대적 조각을 표방하는 전시에 가깝다. 이 전시는 조각을 고민해온 젊은 예술가들의 단체전이며, 애초에 전시개념과 관련해서 조각에 방점을 찍은 채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시, 즉 몇몇의 젊은 작가들을 필두로 조각에 관한 담론을 개진하고자 하는 기획은 비평적으로 주목받을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각각의 전시가 풍기는 야심찬 담론이 실제로는 현대미술의 첨예한 맥락을 건드리지 못한 채 상투적인 전시관행에 그친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전통적인 조각 범주의 모더니즘적 연구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각적 실천이 오브제와 의미의 자의적인 결합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비평적 접근을 어렵게 한다. 다시 말해 여전히 일부 조각은 즉자적인 대상을 위해 특정한 의미를 각인시키는 방식으로 제작되며, 감상자는 조형적 특이점과 숨겨진 의미를 별개의 영역으로 체험한다. 이는 매체와 표현내용이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관조적이고 수동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라는 점에서 현대적이지 못하다.

김정민_outside equipment + memory_2011 / 김현지_나는 나에게 속고 있다._2011 명윤아_流_2011 / 민재홍_짜증나는_2011

커뮤니케이션의 측면에서 보자면, 조각 고유의 영역에서 파생되는 논의와 작품들은 대체로 '담론적' 특성을 띤다. 어떤 정보가 담론적이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정보의 생산과 전달, 저장의 과정이 일방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각과 같은 예술의 경우, 일반적으로 저마다의 '영감'이나 '창의적 과정'에 의지하여 새로운 선행 정보를 생성해내고 그것을 수용자에게 완결된 형태로 전달하기 때문에 담론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다양한 문화형식간의 통섭과 상호작용, 그리고 수용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오늘날의 상황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술적 정보의 생산과 전달방식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모델이 필요하다. 사실상 새로운 정보는 창조 된다기보다는 조합되는 것에 가깝다. 예컨대 '뉴턴적 세계상'이라는 새로운 정보는 뉴턴(Newton) 개인의 창안이기에 앞서 갈릴레이(Galilei)와 케플러(Kepler)의 역학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다.(빌렘 플루서) 마찬가지로 현대철학과 미술사의 숱한 산물들 또한 동시대 문화 사이의 '대화'가 낳은 결과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담론적 조각의 대안으로 '대화-조각'모델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정보가 대화적이라는 것은 곧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파편적인 정보들 사이의 대화가 새로운 산물을 만들어 내듯이, 조각에 대한 새로운 논의 역시 다양한 실천 사이의 대화를 통해 가능하며, 생성된 정보는 수용자와의 대화 과정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합성되고 변형된다.

박훈하_노르아드레날린 [noradrenalin]_2011 / 선해창_Oh, no. It's hot in here_2011 송지은_찜_2011 / 원지애_untitled_2011
윤혜선_닭 그리고 달걀_2011 / 이민엽_흡연구역_2011 이은경_untitled_2011 / 이재익_pincers 1, scissors, pincers 2, pork 1, pork 2_ 15×15×30cm, 13×7×25cm, 12×12×20cm, 15×12×20cm, 16×12×23cm_2011

이 전시의 의미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젊은 조각가들의 다양한 작업들의 병치는 대화를 위한 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들이 탈-모던 맥락의 조각개념을 전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를 비롯한 미니멀리스트들의 담론은 대상(objects)에 대한 논의를 상황(situation)에 대한 논의로 이전시킨 바 있다.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이 공간적 체험을 위한 매개변수로 이동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개념은 사물의 현전(presence), 상황, 매개, 공간, 체험, 관람자의 신체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선행 정보로서 우리가 대화를 나눌 지평인 이른바 '확장된 장의 조각'이라는 기본적인 참조지점을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포스트미디엄post-medium'(로잘린드 크라우스), '포스트프로덕션post-production'(니콜라 부리요)와 같은 개념들은 그러한 참조지점을 바탕으로 생겨난 '대화-조각'의 역사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 다음 논의가 필요하다.

임승균_실험kew-34_2011 / 정희경_착한여자_2011 조덕상_무제_2011 / 천은준_Trip3-flow in/720P_단채널 비디오_00:02:10_2011
최은영_수의-3학년 19반 38번_2011 / 최지환_UTOPIA_2011

따라서 이 전시가 낳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조각 범주와 현대적 조각개념에 대한 개방적인 대화일 것이다. 개별 작품들이 지닌 주제의식과 조형방식, 전시 공간, 관람자, 그리고 이론과 더불어 이 전시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제도적 조건들은 일종의 매개 변수로서 서로 다른 맥락의 의미와 가치를 산출해내는데 관여하고 있다. 이 상호작용의 망이 작동하는 구조를 이해하는 동시에 앞서 언급한 현대조각의 역사적 모델을 염두에 둔다면, 아마도 조각에 관한 대화가 그 대상의 해체를 유발하는 흥미로운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 손부경

Vol.20110706k | dialogue sculptur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