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infinitely comfortable lifestyle

마사야 치바展 / Masaya Chiba / painting   2011_0708 ▶ 2011_0807 / 월요일 휴관

마사야 치바_An arrow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1

초대일시 / 2011_0708_금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1_0708_금요일_05: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현대_16번지 GALLERY HYUNDAI 16 BUNGEE 서울 종로구 사간동 16번지 Tel. +82.2.2287.3516 www.16bungee.com

허구와 환상 사이: 마사야 치바(Masaya Chiba)의 이중초점(Bi-focal)의 상상력1. 원시적 풍경과 인위적 무대설정 마사야 치바는 흰 얼굴 없는 조각상들과 가면들만이 서식하는 황량한 장소를 보여주는, 한번 보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 풍경을 그린 회화 작품으로 유명하다. 대재앙을 겪고 나서 원시적 상태로 돌아간 듯 폐허가 된 유적지를 연상케 하는 그의 풍경은, 허구의 자연을 나타내고 있다. 작품에 나타난 자연이 허구인 것은 흰 조각상과 가면을 받치고 있는 나무 막대기와 같은 인공적인 소품들과 작품에 그려진 풍경과 닮아있는 사진들을 통해 드러난다. 이러한 상반된 요소들의 병치는 "초현실주의"를 능가하는 독특한 효과를 생산해내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의식의 끝에서 유보되고 있는 꿈을 전달하기도 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 지각하는 환상을 제시하는 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히 살아 숨쉬는 리얼리티 또한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작품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작품이 전달하는 이 같은 환상은 구성된 자연을 드러낼 계산된 순간에, 분석적인 태도로 작품에서 거리를 유지하며 감상하고 있는 관객의 마음에 침투하여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2004년에 그려진 두 작품을 예로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바위가 많은 산에 있는 친구3 A Friend in the Rocky Mountain 3」, 「오본(일본의 추석을 일컫는 명칭) 중에 등산 Mountain Climbing During 'Obon'」 이 두 작품 중 전자의 경우, 하얀 얼굴 없는 인물은 바위가 많은 산을 뒷 배경으로 하여 서 있다. 흰 인물은 한쪽 팔을 길게 뻗고, 주먹은 아래로 향하게 한 수수께끼와도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여, 후자는 비슷한 흰 인물이 또 다른 산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나, 그 인물을 지탱하는 나무 막대기가 이 인물상이 인형처럼 조작되고 있는 상태를 관객에게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어 앞의 작품과 차이를 드러낸다. 회화적 재현에 있어서 위와 같은 초점의 변화는 작품이 가지는 기능과 영향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데, 전자에서 착각을 일으키는 실제를 볼 수 있었다면, 후자에서는 마주하고 있는 작품이 실제가 아님을 환기하게 된다. 이렇듯 초점의 변화를 통해 관객은 마술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전자의 작품과는 달리, 후자의 작품에서는 대상이 가지는 매우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특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치바의 환상의 역설적인 거리 두기 방식의 정도 변화는 「평화로운 마을 Peaceful Village」이라는 시리즈에서 가장 눈에 띄게 잘 나타난다. 2006년에 처음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이 시리즈에서 토템적 기념비와도 같은 8개의 가면과 서있는 물체들은 원시적 숲과 푸른 호수 반대편에 놓여 있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은 2007년과 2008년, 2011년에도 변형되어 제작되었는데, 이러한 작업들은 작가가 얼마나 끈질기게 폐허가 된 곳에 대한 상상을 지속해왔는지, 또한 그의 작업에서 인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폭로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2007년에 제작된 작품은 노란 사막 앞에 가면들과 인물들이 놓여 있는 테이블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작품에서는 두 개의 테이블과 검은 사무용 의자가 등장하는데, 그 위에 작은 사이즈의 그림들과 더불어 더욱 다양한 물체들이 놓여 있다. 뒷 배경에는 거대한 강이 폭포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2011년 작품은 붉고 바위가 많은 산의 산등성이에 40개 이상의 작은 물체들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는데, 이는 마치 움직이는 인물들과 같이 보여진다. 새로운 빙하기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구현해내는 캐릭터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사야 치바_Study for Village_캔버스에 유채_130.3×162cm_2008

2. 알레고리의 구체화와 시각적 정보의 상호연결장치 ● 치바의 작품은 원시적인 풍경의 우화적인 묘사와 분석적인 설명 가운데에서 어느 하나로만 규정지을 수 없는 유연한 특성을 가진다. 그의 작품은 또한 촉각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두 개의 핵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10에서 15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페이퍼 마셰(펄프에 아교를 섞어 만든 일종의 종이)로 만든 물체들을 실제이거나 혹은 사진으로 찍은 풍경의 배경 앞에다가 위치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작가가 가공의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우화적 묘사 혹은 분석적 설명 이라는 두 양극단 사이에서, 촉각적 물징성과 순수한 허구성은 작품을 두 개의 다른 스타일과 테마를 가지도록 돕는다. 이러한 양극화는 특별히 슈고 아츠 (Shugoarts) 에서 열린 두 개의 갤러리 전시에서 잘 나타나는데, 2008년 12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열린 "미쯔쿄 Mitsukyo"와 2011년 1월부터 3월까지 열린 "내가 살아있기에 볼 수 있는 멋진 세상 The Wonderful World I Got to See Because I was Alive"이 그 두 전시이다. ● 그의 초기 작업에서 주로 사용하던 조각상과 같은 인물과 뒷 배경으로 사용한 원시적 풍경 모티브에서 떠나서, Mitsukyo 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더욱 기념비성과 물질성이 강화되었다. Mitsukyo 에서의 재현적인 작품들은 두 개의 캔버스가 하나의 큰 캔버스로 연결되어, 259 센치에 330 센치 정도 되는 거대한 사이즈로 만들어졌으며, 그러한 작품은 높이 70센치의 받침대 위에 놓여진다. 작품에는 원시적인 숲이 있는데, 그곳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매우 빽빽하고 무성하게 들어서있다. 보라색과 분홍색의 팔레트에는 물감이 두텁게 발라져 있는데, 거친 붓 자국이 더해져 더욱 무성한 느낌을 주고, 회화 표면에 촉각적 특성을 부여한다. 흰 인물상은 3차원적 입체성을 강조해주는 빛의 사용과 역동적인 자세로 제작되어 마치 인물상들이 실제 삶으로 튀어나오는 듯한 기이한 인상을 남긴다. 작품에 등장하는 허구의 이미지들은 과장된 촉각성과 의인화된 설치 재료들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위반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는 얼굴 Crying Face」에서는 조각의 얼굴 없는 머리 부분이 제시되는데, 이는 커다란 나무의 연장된 가지 반대쪽에 위치되어있고, 눈물 방울로 보이는 것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로봇이 멸종된 문명에 대해 슬퍼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통해 디스토피아(반이상향)를 구체화하지만, 나무 테이블과 머리를 지탱하는 막대기, 머리 뒤에 연결된 호스와 같은 추가적인 요소들은 이것이 이상한 분수에서 시작되어 물을 공급하는 인공적인 장치임을 알려준다. 동시에, 이 작품은 받침대 위에 설치되어 있고, 나무 프레임이 둘러져 있어, 작품의 전체 높이가 160 센치 정도에 이른다. 이를 통해 머리 이미지는 일반 성인 관객의 평균 눈높이에 맞추어지게 되고, 마치 실제 인물상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작품의 이러한 육체적인 영향은 물감의 두꺼운 적용을 통해 심화되는데, 이는 작품의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거친 질감을 표현해내, 바위투성이의 돌과 같은 촉각적인 효과를 만들어낸다. ●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멋진 세상 The Wonderful World I Got to See Because I was Alive」 이 작품은 대조적으로, 침착해 보이는 실내 환경을 나타내고 있다. 부드럽게 발린 물감과 치바의 창조 과정을 모방하는 듯한 성격을 강조하는 이미지는 이러한 대조적인 특성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 이미지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연결한 것으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인공적인 야생의 꿈을 구현하고 있다. 「교활한 Sneaky」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에서 사용되었던 작은 장식적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각각 소파, 테이블, 그리고 다른 인테리어 소품들 위에 올려져 있다. 인물상들은 작은 사진들과 함께 놓여져 그의 작품에 배경으로 사용되었던 풍경을 상기시킨다. 소파를 장식하고 있는 종이 뱀이 백 스테이지의 환경을 강화하는 반면, 위협적 존재의 암시를 약화시키고, 각각의 작품은 원시적 자연에 대한 암시적 창문과도 같이 기능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기저가 되는 여러 다른 종류로 이루어진 층을 암시한다. 마술적인 것과 역설적인 것의 병치는 「50명의 거실 A 50 Person Living Room」에서 잘 나타난다. 작품에서 관객은 작가가 사용하는 방의 인테리어와 그 곳을 가득 메운 페이퍼 마셰 물체들과 사진들, 크고 작은 진행 중인 작품을 볼 수 있다. 화면을 동등하게 비추는 빛은 각각의 물체에 알레고리로서의 중요성을 부여하는데 이는 마치 북구 르네상스 작품에 나타나는 효과와 동일하다. 몇몇의 작품들, 사진들, 조각상, 장갑, 접시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정렬되어 두 명의 인물이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 있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인간의 정체성이 다양한 정보의 조각들로 이루어짐을 침착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아이팟, 컴퓨터, CD, 책, 비디오 테잎의 존재는 이러한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각각의 대상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능한 의미들의 편재성은 연합된 우주의 확장과 애매한 상징들의 불협화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의 상실, 이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진다. 이러한 일상적 현실의 비-안정화와 실재성과 정신성 사이의 보류는 모든 평범한 사물에 완곡한 알레고리적 특성을 부여한다. 평범한 사물의 사용은 치바의 작품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는 New-matter-of-Fact라는 종류의 바이마르 공화국의 회화 작품과 유사한 것으로, 한 예술 평론가에 의해 이렇게 기술된 바 있다. "리얼리즘은 평범한 일상의 사물을 그리는 것이지만, 그것들에 내세의 빛을 불어넣어 형이상학적이고 공상적인 장소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마사야 치바_Fairy #3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3. 미술사와 그것에 대한 불만들 ● 알레고리와 아이러니 사이에 있는 치바의 작품은 후기 모더니즘 작가들이 미술사의 무거운 짐에 대항하여 원본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점과 딜레마를 지칭한다. 그가 사용하는 "작품 안에 있는 작품의 프레임"은 이전의 예술작품들에 진 빚과, 그를 둘러싼 풍부한 시각적인 소재들을 상징한다. 그는 이러한 시각적 재료들을 다시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재료들이 가진 인위성에도 불구하고, 치바의 이미지들이 가지는 정신적인 호소력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폐허를 암시하는 꿈의 반복된 구성이 한 문명의 끝과 새로운 문명의 시작의 가운데에 있는 상태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이는 창조적 능력의 부활에 대한 강한 갈망을 전달하며, 불필요한 문화적 기억들을 떨쳐내는 기능을 한다. ● 그가 기존에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적용한 것과, 문화적 타불라 라사 (tabula rasa '아무 것도 안 쓰인 흰 종이' 라는 의미)에 대한 갈망을 담은 것과 더불어, 그는 마마 앤더슨 Mamma Andersson 이라는 스웨덴의 컨템포러리 작가와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 앤더슨은 작은 프레임들은 작품 안에 포함하는 작가로 종종 과거의 대작들을 그녀의 작품에 담고 있다. 동시에 그녀는 익숙한 리얼리티의 소멸을 제안하는데, 특별히 문화적 기억이 담긴 기록보관소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나 미술관에서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의도는 특정 패턴으로 희미하게 표현된 인물이나 풍경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어지러운 효과를 만들어내어 말 그대로 인물 이미지가 점과 부분들로 녹아 내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앤더슨의 2005년 작품 「신에 의해 만들어진 Touched By Gods」을 예로 들어보면, 도서관의 바닥은 귀신과도 같은 인물들에 의해 침입되는데, 그러한 귀신들은 용해된 이미지들의 범람 속에서 발생된 것으로, 그 방의 중앙 벽에 부착된 회화 작품에서 누락된 내용이 현실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옆면의 벽에 부착된 작은 패널은 뭉크 Edvard Munch와 피터 도이그 Peter Doig, 앤더슨 Andersson 의 작품을 지칭하는 것이다. 디스플레이 케이스를 바라보는 관객의 몸은 점점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귀신과 인간이 같은 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을 암시한다. 혹은 이러한 시뮬라크르가 실제 삶을 넘어서서 더 중요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치바의 「50 Person Living Room」에서 인간의 존재는 다른 매체들로 대체되는데, 이는 시각적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서 인간성의 소멸을 상징한다. 「Peaceful Village」의 2011년 버전은 광활한 자연이 작가의 스튜디오에 침범하는 모습을 시각화 하는데, 이러한 명백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빛은 산등성이에 내리쬐며 딱딱하고 울퉁불퉁한 질감을 드러내준다. 이를 통해 환상의 정신적 실제성을 강조하며, 환영을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물질적인 것으로 만든다.

마사야 치바_Crying face #2_캔버스에 유채_70×83cm_2011

4. 심오한(deep) 이미지와 시뮬라크라 ● 치바의 원시적 자연 이미지는 정서적인 리얼리티를 전달하는데, 이는 '시적인 이미지'로, 다른 말로는 "심오한 이미지(Deep Image)"라고도 불린다. 이 개념은 미국의 동시대 시인인, 로버트 블라이 Robert Bly 나 제임스 라이트 James Wright에 의해 1960년대에 정의되고 또 발전되었다. "심오한 이미지"는 인지의 무의식적 패턴을 포착해내는 원형의 이미지로, 개인의 자아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정신이 외부적 현상과 살아있는 물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일상의 모습과 풍경에서 찾아질 수 있는 두 개의 구체적인 사항은 시인에 의해서 축적되는데, 그 시인은 그것들을 은유적으로 변형시키고 요약하여, 단순하지만 다양한 가치를 지닌 이미지로 만든다. 이는 정신의 깊이에서 우러나와서 진행되는 작업인 것이다. ● 수많은 치바의 이미지들은 "심오한 이미지"로 불리기 적합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손으로 만든 물체와 실제 풍경 그리고 프린트되거나 그려진 소재의 병치와 축적을 통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순한 이미지는 흰 얼굴 없는 조각상이라는 고립된 인물로서 표현된다. 이런 인물상이 원시적인 자연을 방문한 듯한 치바의 작품은 수많은 해석을 이끌어낸다. 특별히 그의 작품은 인간의 유한성 이라는 알레고리를 제공해주는 바니타스(Vanitas) 의 현대적 변용으로 기능한다. "심오한 이미지"는 초기 작업인 2006년 「예쁜 엠 Pretty M」에도 잘 나타난다. 이 작품에는 커다란 눈이 벽의 윗 부분에 그려져 있는 빌딩이 등장하는데, 건물의 파사드(facade)는 땅거미가 지는 배경과 함께 제시된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시골 지역에 있는 이 빌딩 주변에는 세 개의 개별적인 캔에서 불이 붙어 있다. 이는 즉각적으로 안과의사의 간판에 관련한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라는 소설을 연상시키는데, 이미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감정적, 혹은 과학 공상적 문맥을 환기시켜, 관객의 기억에 입각한 범주를 확장시킨다. 치바는 초현실적인 회화기법을 기반으로, 실제로 Niigate 현에 존재하는 Fukutake House 빌딩에 눈을 그리고, 불이나 다른 디테일들을 각기 다른 문맥에서 발췌하여 그것들을 조합한 것이다.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내부적인 상상력을 가장 잘 번역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 치바의 작품은 또한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시뮬라크라의 개념을 구체화 해냈다. 그는 시뮬라크라를 "자각의 행위"라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정신적인 형성이 논리적 인과관계나 개인적 감정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우주의, 비인격적인, 그리고 전-개인주의적인 특이성"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고대 철학에서 이루어진 시뮬라크라의 두 개의 정의를 비교해보면, 플라톤이 시뮬라크라를 단순한 복제본으로 정의하는 것과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현존하는 현상의 유일성이 온전히 정신적인 것에서 기원한 것임을 주목한다. 초기 단계에 있어서 에피쿠로스의 시뮬라크라는 소리, 냄새, 맛, 온도, 색채와 형태와 같은 시각적 구성요소 와 같은 물질적인 영향과 혼합되어, 원래의 원본의 사물에서 동떨어진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더 진화된 단계에서는 원본과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자율적인 "환영"을 형성하게 된다. 이는 "꿈의 상상"으로 꿈을 꾸는 주체가 가진 내적 욕구에 적합한 요소들이 그 주체에 의해 선택되고 또 농축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권리를 적용하는 공상에 적대감을 조달한다.")

마사야 치바_Crying face #3_캔버스에 유채_68×71cm_2011

치바의 이미지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시뮬라크라 초기 개념과 진화된 단계에서의 개념 그 중간에 있는 듯 하다. 그의 작업이 상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것과 촉각적인 것을 만들에내는 것, 양 극의 욕구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다양한 시각적인 자료의 축적을 통해서 그의 이미지가 구성되고 있는 반면, 치바는 항상 손으로 대상을 만드는 촉각적인 과정을 포함시키고 있다. 손으로 직접 만든 물체는 실제 풍경이나 사진 앞에 세워지고, 이 두 요소간에 거리와 존재성을 부각하며, 그는 물리적 영향을 전달하는 상상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촉각성, 혹은 물질성은 치바의 꿈의 환상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주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실제 우리가 꾸는 꿈의 경험과 비슷한데, 꿈에는 우리가 몸소 겪었던 일들이 나타나지만, 그것은 이상한 상황들로 변모되어 현실에 그 기원을 두지만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과 같다.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정신이 실제로 경험한 사건에 영향을 미쳐 생생하지만, 원래와는 다른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이는 특별히 치바가 그린 불타는 집의 이미지에서 잘 나타나는데, 2003년부터 치바는 불타는 집 시리즈를 제작해왔다.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서, 그는 작은 집의 모형을 만들었고, 실제로 그것을 태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치바는 실제로 타는 집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절실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낭만적으로 묘사된 불타는 집의 이미지를 뒤엎는 것이었다." 불타는 이미지는 그의 여러 작품에서 보여지는데, 몇몇은 작품에 매우 상징적인 함축성을 부여하기도 하고(Pretty M, 2006), 몇몇은 작품에 자연주의적인 촉각적 특성을 주기도 하며(Jungle, 2006), 어떤 경우에는 상징적인 것과 촉각적인 특성을 결합시키고 있다. ● 치바의 "심오한 이미지"의 제작은 동시대 작가들 중 몇몇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데, 그들은 개인주의적 특성이 잘 나타나는 Mamma Andersson 과 Peter Doig 이다. 이 둘은 치바와 마술적 리얼리스트적 환경과 익숙한 세상의 소멸에 대한 집요한 환상을 공유한다. 이 "소멸"은 단순히 주제별로 나타난다기 보다는, 육체적으로 전달되는데, 이는 인간과 다른 점이나 선의 패턴으로 표현된 인물들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빛나고 깜박이는 시각적 효과가 만들어지는데, 관객은 그들의 시야가 분산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Doig의 1995년 작품인 「Figure in dots and fold-like patterns」에서 인물의 얼굴은 선으로 녹아 반짝이는 패턴으로 이루어진 주변의 풍경과 대응되는 듯하다. Doig는 또한 그의 수수께끼와 같은 이미지를 책, 앨범, 영화, 광고와 같은 다양한 시각적 재료들에서 모아서 농축시켜 만든다. 그의 이미지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내적 요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이미지들은 종종 심리적인 호소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는 그의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치바도 그의 작품을 영구적인 경험을 하기 위한 매개로 사용한다. Miysukyo 작품에 나타난 그의 다양한 장치들은 3차원적 환상을 부여하고, 물질성을 전달한다. 물감의 두터운 적용, 캔버스의 가장자리를 늘려서 틀 바깥으로 확장시키는 것, 그리고 받침대 위에다가 작품을 설치하는 것 등은 2차원적 환영에 감금된 작품을 자유롭게 하려는 그의 노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의 "Wonderful World" 작품들은 반대로, 직접적 접근 방식에서 은유적 접근방식으로, 그의 귀환을 잘 나타냈다. 은유적 접근 방식을 통해 작품은 관객이 동등한 리얼리티와 외부 현상과 작가의 마음 속에 있는 내부의 상태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철학적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마사야 치바_Crying face #10_캔버스에 유채_56×72.5cm_2011

5. 영원성과 유한성 – 거북이의 꿈 ● 치바는 압도적인 시각 문화의 무게와 창조의 위기에 맞서서 회화적인 방식이 동시대 미술로 유지될 수 있는 지에 대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구상적이고 거의 현실적인 재현방식을 사용해 그의 내적 환상을 구현해낸다는 사실은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미술사에 있어서 뒤늦게 회화를 시작한 사람임을 단호하게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선조들이 해왔던 작업을 극복하는 게임에 가담하기를 그만두고, 그 대신에 동시대 관객에게 더 적절한 방식을 찾는 일에 열중한다. 치바의 작품이 동시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그의 이중-초점의 제시방식이다. 그는 이야기가 있는 환상과 알로고리적 내용과의 열설적 거리두기 방식을 조합해내고 있다. 2) 그의 촉각적인 것과 상상적 요소들의 변증법적인 적용이다. 이 방식은 시뮬라크라를 순수한 환영으로 만들어내는데, 이는 다양한 시각적 자료들과의 접속에서 비롯된 정신적 구성이 변화되고, 리얼리티와 직접적인 관계에서 보호된 물질적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3) 원시적 자연의 문명화, 문명의 폐허,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통한 부흥을 꿈꾸는 세계의 중간적 상황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 ● 치바의 원시적인 자연과 물질성에 대한 추구에서 우리는 치바가 물질적이고 집단주의적 방식을 사용하는 동시대 일본 예술가들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Hiraku Suzuki 는 작은 단편적인 이미지들을 모아서 거대한 드로잉을 만들고, 댄스 그룹인 Contact Gonzo 는 공공 장소의 한 구석에서 새로운 춤을 즉흥적으로 춘다. 이들은 기존의 언어 시스템이나 개인적 저술에서 벗어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찾는데, 이는 익명의 크래피티에서 보여지는 함성의 기호 시스템이 가지는 언어적 몸짓을 찾는 방식이나, 레슬링이나 길거리 싸움과 같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대한 즉각적 반응들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움직임에서 비롯된다. 치바의 작품은 그들의 작업보다는 조금 더 보수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가면이나 조각상을 사용해서 얻어내고자 하는 효과는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치바는 관중에게 그가 만들어낸 장면이 가공의 것임을 드러냄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실재와 함께 있는 시뮬라크라를 경험하게 한다. Noh play 에 의해서 얻어지는 "꿈에서 깨는" 과정이 회복 되고, 관객들이 허깨비의 실존을 확신하게 된다. 백 번 이상 이것이 무대 위에서 보여진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은 Noh 가면, 춤과 몸짓과 미묘한 상호작용을 하게 되며, 이것들의 기능과 의미는 엄격하게 확정된다.

마사야 치바_Snakey #2_나무에 유채_가변크기_2011

치바가 가졌던 인위적인 생산물을 넘어선 지각적이고 가상의 경험에 대한 열망은, "Wonderful World"라는 전시에 출품되었던 「A Turtle's Life」라는 작품에서 잘 나타난다. 이 작품은 거북이와 작은 여성 조각을 담은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의 내부를 보여준다. 케이스의 세 면은 종이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이미지들은 흑인 여성 인물의 초상 사진이 그려지거나 붙여진 것이다. 밝은 빛을 내는 램프 수평으로 설치되어 케이스 위에서 모든 것을 상쇄시키는 듯 빛을 내뿜고 있고, 이미지와 케이스의 거리를 모호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삶의 여러 단계에 존재하는 의미들의 통합 하여, 개별적인 의식의 한계를 뛰어 넘고자 하는 멈추지 않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의적인 이해를 북돋기 위한 것처럼 거북이는 머리를 조각상 쪽을 향해 기울이고 있고, 이는 또한 조각상의 단호한 몸짓-주먹 쥔 오른 손을 가슴 앞에 둔 것-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이 자연적 과정의 영원성에 대항하는 인간 재현의 유한성을 제안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의미는 매우 불투명하다. 수많은 가능한 암시들은 단절되고 있고, 기호와 상징들은 거북이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거북이가 가진 고유한 지각의 영역에서는 말이다. 이 작품은 물건들의 세계 그 자체를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는 인간의 관점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구상적인 형태는 절대 관람객의 해석하고자 하는 의미를 막지 못한다. 거북이는 또한 Zeno의 역설에 대한 에피소드를 환기시키는데, 거북이의 걸음은 절대로 앞질러질 수 없다. 아킬레스가 영원의 상징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작품은 관객과 작가의 정복될 수 없는 거리를 암시한다. 비록 작가가 그가 작품 제작에 사용한 모든 기구들을 보여주어 그가 작품을 만드는데 사용한 방식들이 모두 노출된다고 할 지라도, 작가는 항상 관람객의 예상이나 기대보다 한발 앞서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어 깜짝 놀랄만한 방식으로 익숙한 대상을 연합해 무한한 세계의 변화가능성을 논증하는 것이다. ■ 미도리 마츠이 (번역_최정윤)

Vol.20110708e | 마사야 치바展 / Masaya Chiba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