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3 Cruel Fairy Tale 3

소현우展 / SOHYUNWOO / 蘇炫佑 / sculpture   2011_0708 ▶︎ 2011_0727 / 토,일,공휴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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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관람시간 / 09:00am~06:30pm / 토,일,공휴일 휴관

송은 아트큐브 SongEun ArtCube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2.3448.0100 www.songeunartspace.org

죽음의 문화를 누비는 전사들 ●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용접하여 만든 캐릭터들이 장착하고 있는 막강한 무기들은 귀여움과 폭력성, 감정이입과 무심함,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등 서로 대조되는 가치들은 연결시킨다. 소현우는 동화 속에 내재된 따뜻함, 행복, 사랑 등을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로 변화시킨다. 그러나 신화처럼 한 사회의 무의식과 이데올로기가 투사되어 있는 동화는 마냥 따뜻하고 우호적인 세계가 아니다. 삶 자체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또한 인형이나 무기는 인간이나 자연과는 다른 존재라는 점--인형은 유사(類似) 인간이고, 무기는 인공적인 것이다--에서 한데 묶어질 수 있으며, 인형과 무기는 모두 아이들의 공통된 환상이며, 여성적이거나 남성적 환상이 물신화 된 산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소현우의 작품에서 캐릭터와 무기는 무심하게 수행되는 폭력성을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작업과정 자체가 '잔혹 동화'적이다. 예술작품은 실재가 아니라 상상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동화적일 수 있지만, 작고 얇은 스테인리스스틸 판들을 일일이 용접으로 기우는 '스틸 퀼트' 작업에 투여되는 엄청난 육체노동은 그 자체가 잔혹한 과정이다. 그의 작품은 모형을 주물 공장에 맡기거나, 오브제를 조합하는 식의 작품과는 다른 치열함이 있다.

소현우_잔혹동화 3-1_스테인리스 스틸_170×120×320cm_2011

용접으로 기워진 부분들은 그대로 노출되어 구성 요소들이 퍼즐처럼 조립되어 만들어지는 문화상품의 면모가 드러나 있다. 어떤 형태라도 조합할 수 있는 삼각형 조각들은 여러 가지 모양새로 등장하는 동질이상(同質異像)의 대상을 구성하는 입자가 되며, 온몸이 박살나는 어떠한 공격에도 잔해물이 다시금 엉겨 붙어 되살아나는 좀비들 같은 모습을 연출한다. 타자를 죽이거나 때로는 스스로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캐릭터들의 표정은 동화속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며, 이러한 무심함이 폭력성을 배가한다. 그것들에는 무한경쟁을 촉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죽고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보는 작가의 비관적인 관점이 투사되어 있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생태계에서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인간의 분신이다. 의인화된 캐릭터들은 매우 위험한 존재인 인간을 상징 한다.

소현우_잔혹동화 3-2_스테인리스 스틸_180×95×80cm_2011

보드리야르는 삶을 자본화하기를 권하는 체계에서 죽음의 충동은 유일한 선택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는 면밀하게 조정되는 세계, 죽음조차도 제작되는 세계에서 유일한 유혹이란 파괴에 의해 모든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죽음을 부여하는 것은 체계에 의해 포위된 삶에 남아있는 마지막 아름다운 탈출이라는 것이다. 근대 진보주의의 끝자락에서 점차 강력해 지는 현상들, 즉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대중문화에서 더욱 화려해지고 막강해지는 죽음의 퍼레이드, 그리고 제국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해방군들의 자살폭탄 테러 같은 행동은, 단지 물리적인 죽음이라는 코드로 연결되는 것을 넘어서, 상징적 차원으로 고양된다. 화끈한 대중문화의 폭력적 양식이나 테러 행위 같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이러한 상징적 교환 행위에다 우리는 고통이자 열락의 과정인 예술을 덧붙여야만 할 것이다. 소현우의 작품은 캐릭터나 무기 같은 상품의 형식을 차용하면서도 상품교환에 근거를 둔 체계의 붕괴를 예시한다. 그것은 대량생산과 소비를 추동하는 거대한 욕망의 틈에서 얼핏 드러나는 죽음의 충동이 의미하는 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 이선영

소현우_잔혹동화 3-2_스테인리스 스틸_180×95×80cm_2011_부분

소현우의 조각-자본은 영혼을 잠식 한다 ● 잔혹동화. 소현우의 조각을 관통하는 주제다. 이 주제는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이다. 잔혹이 동화를 부자연스럽게 하고 비정상적이게 한다. 잔혹과 동화는 같이 놓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렇듯 같이 놓일 수 없는 단어가 같이 놓이는 상황이 불편하고 낯설다. 동화란 아동에게 들려주기 위해 고안된 어른들의 이야기다. 아동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답게 유아적이고 순진무구하다. 꿈의 이야기이며, 꿈꾸기에 바쳐진 이야기인 것. 세상이 이처럼 꿈만 같고 순진무구하기만 하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이야기는 현실인식의 결과가 아니며, 현실을 재확인시켜주는 과정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의 결과이며, 사실은 현실이 결여하고 있는 것을 욕망한다. 동화 속 서사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서보다는 아이러니 즉 반어법으로 읽으면 된다.

소현우_잔혹동화 3-3_스테인리스 스틸_185×150×60cm_2011

그러므로 잔혹동화는 사실은 자연스럽고 정상적이다. 모든 동화는 그 이면에 억압된 욕망을 그림자처럼 드리우고 있고,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의 계기며 잠정적으론 혁명의 계기를 내장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거짓임이 판명되는 순간 부지불식간에 드러나 보이는 실재계는 과잉과 잉여, 결여와 결핍으로 구조화돼 있는 만큼 현실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며, 현실원칙에 반하는 것이며, 나아가 현실을 위태롭게 하기조차 한다. 이 모든 일들은 동화가 일종의 거짓 이야기며 속이는 이야기라는 사실에서 예고된 것이다. ● 롤랑 바르트는 문화적인 사실을 자연적인 사실인 양 가장할 때 신화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데올로기를 인문학적 사실이 아닌 자연현상인 양 가장하는 것. 결국 살인무기들로 재탄생한 작가의 캐릭터들은 신화와 동화와 종교의 이름으로 대리되는 거대서사가 은폐하고 억압한 욕망을 폭로한 것이다. 유토피아 이데올로기가 작동되는 곳에서 디스토피아로서의 현실인식을 읽어내는 것. 그런가하면 감각적 쾌감을 자아내는 외관과 세련된 마무리 역시 자본의 상품화 논리에 부합하는 것. 이처럼 작가의 조각은 거대서사의 아우라를 돌파해 그 실체에 직면케 한다는 점에서 행간읽기 내지는 이면읽기와 통하고, 아방가르의 낯설게 하기 전략과도 통한다.

소현우_잔혹동화 3-3_스테인리스 스틸_185×150×60cm_2011_부분

자본은 욕망을 요리하는 산업이라고 했다.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촉발하는 산업이다.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순간 자본은 죽는다. 자본이 계속 살아있게 하기 위해선 욕망을 촉발하는, 즉 언젠가 욕망이 충족되는 순간이 온다는 환상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본은 환상의 산업인 것이고, 꿈의 산업인 것이다. 나아가 욕망 자체가 이미 잉여이며 과잉인 것. 그래서 현실 속에서 그것의 대응물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그러므로 이처럼 욕망을 매개로 한 환상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나는 자본의 기획에 동참하고 공모하는 것이 된다.

소현우_잔혹동화 3-4_스테인리스 스틸_190×51×75cm_2011

자본은 이처럼 부재하는 욕망을 매개로 꿈꾸게 하는 환상기계다. 그 환상기계는 더 많이 꿈꾸게 할수록, 그리고 그 꿈이 더 환상적일 수록 더 잘 작동한다. 그 기계가 현실인식을 지우고, 현실 자체를 사라지게 하고, 그리고 마침내 영혼마저 잠식한다. 게임을, SF를, 애니메이션을, 큐티를, 코스튬 플레이어를 연상시키는 작가의 살인병기들은 이처럼 부재하는 욕망을, 그리고 그 욕망에 기댄 자본의 기획을 증언하고 폭로한다. 더욱이 매력적인 상품과도 같은 감각적인 외장이 그 기획을 더 잘 숨기면서 더 잘 폭로한다. ■ 고충환

Vol.20110708h | 소현우展 / SOHYUNWOO / 蘇炫佑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