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 오브제, 오브제

Object, Object, Object展   2011_0708 ▶︎ 2011_0720 / 월요일 휴관

아담 톰슨 Adam Thompson_Untitled_Grand piano lid, Perspex, Lead ball_Dimensions variable_2010

초대일시 / 2011_0708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아담 톰슨 Adam Thomson (UK) 저스틴 가이어 Justin Gainan (USA) 요그 오버그펠 Jörg Obergfell (Germany) 요 오카다 Yo Okada (Japan) 강승희 Seunghee Kang (Korea) 박성연 Sungyeon Park (Korea) 박지혜 Jihye Park (Korea) 이윤미 Yoonmi Lee (Korea) 장유정 Yujung Chang (Korea) 최대진 Daejin Choi (France)

후원 / 서울문화재단 협찬 /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관람시간 / 화~토요일_10:00am~06:00pm / 일요일_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에이치 ARTSPACE H 서울 종로구 원서동 157-1번지 Tel. +82.2.766.5000 www.artspaceh.com

강승희와 9명의 작가들은 현대미술에 있어 중요한 쟁점이었던 오브제 object 문제를 동시대 맥락 속에서 환기시킨다. 20세기 오브제 문제가 불러일으켰던 예술에 대한 전복과 충격은 사물을 다르게 생각하도록 했고, 형식과 내용 모두를 외부로 확장시켰다. 과연 현대미술은 개성 있는 오브제로 넘쳐나고 있는가? 오브제의 반복과 과잉은 전환과 확장 외에도 진부와 소모라는 부가현상side-effects을 양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여전히 이러한 반전의 생산자가 자기 자신 이길 바라면서 또 다른 동시대의 확장을 욕망한다. 그리고 이들은 차이 나는 오브제가 우연히/필연적으로 충돌하고 융합함으로써 이번 전시가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이 되길 원한다. ● 이들에게 작업은 동시대의 정서를 대변한다. 또한 타자들의 이야기이기도, 주체적인 삶을 제안하는 상징으로서 사회문화적 기능의 실천적 담론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의미 있는 생성의 소통방식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오브제, 오브제, 오브제」는 10명의 작가들의 '모임 get together'을 전시한다. 10명의 작가에게서 유사성을 찾거나 계보를 이어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하다. 이 모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작가들은 유사한 형식과 내용의 전시를 의심한다. 어떠한 담론이나 쟁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는 전시보다는 가벼운 모임이라는 행위자체에, 이들 관계에서 작용하는 경험적이고 인지적 차원에서의 논의들에 집중하고자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떻게 모였는가라는 형식보다는 관계적 반향들이 생성하는 내용적 변주들에 집중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번 전시는 작가들 사이의 관계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것, 그리고 차이 나는 오브제들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반응들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겠다. ● 10명의 참여 작가 중 강승희 작가는 스스로를 이번 전시의 제안자로 칭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 전시의 연결고리이다. 국적을 떠나 작가로 만나 이번 전시로 맺어진 10명 작가들은 단단한 문화 실천적 연대tie를 형성하고 있다. 작가들이 만나는 경험적 환경과 여기서 수집된 감각 기억들은 예술의 물질성에 대한 저항으로도 또는 경험들의 간극에 대한 낯섦과 불안을 드러낸다. 작가들 모두 다양한 실천적 방법들을 취하고 있지만 신화에 저항하는 정서로 구분하자면 아담 톰슨Adam Thompson, 저스틴 가이어Justin Gainan, 요그 오버그펠Jörg Obergfell, 최대진은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고 강승희, 박성연, 이윤미, 요 오카다Yo Okada, 박지혜, 장유정은 후자로 분류해 볼 수 있다. ● 아담 톰슨이 발견한 지극히 주관적 일상의 사물들은 전시라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작가가 선택한 사물들은 교묘하게 현대미술의 클리셰cliche를 건드리면서 맥락 안으로 진입한다. 설치된 사물들은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물성의 문제와 그 예술적 변용문제를 해체한다. 아우라aura가 거세된 기하학 형태의 사물들은 온전히 그것 자체로 독립된 객체이면서 동시에 이것이 원래 있었던 상황에 대한 의문과 함께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물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다른 상황에 의한 질문의 교차는 오브제로서 작품에 대해 상처를 가한다. 그랜드피아노 뚜껑, 깨진 유리거울조각, 발포 고무판, 폴리에스터 필름 등은 산업사회의 산물들이며, 이것이 전시라는 새로운 환경에 가장된 포즈로 또 다른 예술에 대한 환영을 만들어낸다. 이 사물들의 조합이 생성해내는 정서는 근대화의 적나라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거세된 멜랑콜리melancholy의 모습이다. 또는 소외되고 타자화된 예술노동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유럽을 중심으로 작업하던 그가 한국 창동스튜디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려 낼 오브제-환경 스터디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동시에 한국의 미술계, 한국의 관객들이 아담의 수집품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자극적이지 않고 소심해 보이는 이 '서있는' 사물들은 우리가 다소 익숙한 온전한 물성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도 않고, 남성적인 주체를 대변하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저스틴 가이안 Justin Gainan_Let's move this land_Color print_2011

아담 톰슨과 함께 저스틴 가이어에게 오브제는 붕괴된 로맨티시즘romanticism의 잔존물들이다. 말없이 남겨진 철, 아스팔트, 플라스틱들과 그 뒤로 보이는 남자의 행동은 반전이다. 아담이 영리하게 사물들을 수집-세워둬,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신화화됨과 기억이 재조합 해낸 사물에 대한 상황 모두를 해체하고 있다면, 저스틴은 보다 경험적 행위 자체에 방점을 찍는다. 사진이 증명하듯 작가는 공사장 같은 현장의 흙더미 또는 돌무더기 위에서 양팔 벌려 껴안는 듯 포즈를 취하면서 익살스런 미소를 띠고 있다. 작가는 진보를 향한 발걸음들이 도처에서 발견되는 공사현장과 같은 곳에서 그 상황들과 교섭한다. 그런데 그 교섭 장면이란 것은 어이없다. 대화하는 작가의 행동도 대화하고자 하는 상황도 말이 안 된다. 왜냐면 주변에 사람은 저스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사진 앞에 놓인 저스틴의 사물들은 전시장 내부에서 작가가 저지른 행동의 증인으로 참여하고 있으나 말이 없다. 이 사진은 예술로의 변용체로서 역할이 부여된 사물임을 드러내고 동시에 즉자 대자한 물성으로서의 일회성에 치명적 상처를 가한다. 공사장에서 전시장으로 운반되어 왔을 법한 이 말없는 사물들은 증인이기 이전에 시공간 속 작품인체 존재한다. 저스틴의 오브제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a면서 실천적 역할이 부여된 경험의 산물이다. 이중으로 분리되고 해체된 상황은 환영이 만들어내는 극적 상황의 로맨티시즘을 제거한다. 근대화의 산물이자 복제된 오브제는 억지스런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한 명의 주체로서 유머humor 넘치는 실천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머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합리화하는 방법이자 작가로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요그 오버그펠 Jorg Obergfell_Triptychon_3 pigment prints_150×60cm

저스틴과 함께 도시의 신화와 싸우는 또 다른 작가는 요그 오버그펠이다. 요그도 역시 위의 두 작가처럼 도시쓰레기debris에 집중한다. 아니 집착한다. 플라스틱 병, 과일상자, 옷 조각들은 모두 메트로폴리스가 만들어내는 신화에서 제외된 부산물들이다. 이 부산물들로 재조립된 작은 규모의 미니어처들은 부산물들의 상황을 반복한다.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건물들은 프린트로 복제되어 킹콩의 발 밑에 놓여지고 - 마치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 한 킹콩기념비 같다 - 플라스틱 페트 안으로 넣을 만큼 작게 제작된다. 도시건물이 프린트로 복제되어 이미지로 남아 작아지는 규모의 전환은 요그가 주로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또한 런던의 카보 스퀘어Cabot Square와 같이 다국적기업 콤플렉스건물 입구에서 점프하는 두 젊은 남자나, 비닐봉지 깃발이 펄럭이는 삼단연작사진은 중세미술의 신화적 맥락을 끌어들인다. 규모의 반전으로 상황을 전복-해체하는 요그의 작업은 작가적 실천으로 아담과 저스틴의 그것과 유사한 전략을 취한다. 이러한 전략들은 이중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관객을 집중시키고 하이퍼텍스트의 여러 층위에서 유희하도록 만든다.

최대진_Globe No.1_polyurethan, birdcage, playmobile, chain_213×67×65cm_2009

그리고 최대진의 작업은 다소 표현적이지만 전복적 입장 표명을 강화한다. 최대진의 경우는 제도에 대해 비판적이다. 특히 그의 드로잉작업은 세계와 접촉하는 몸적 통로로서의 주요한 매체이다. 그의 드로잉은 작가의 직간접적 개입이 이루어지는 지점으로서 힘의 분배와 (비)구조적 인식 모두를 가능하게 한다. 「globe」에서 그는 지구를 새장으로 구현하고 있고 갇힌 듯 보이는 플라 모델 인간들은 새처럼 살아가도록 배치된다. 여기서 상당히 전지전능한 시선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가의 개입이 확인된다. 새장을 삐쳐나간 하얀 폴리우레탄덩어리나, 구겐하임미술관을 쓰레받기로 쓸어 담아 버리는 듯한 「Bad Company」의 하얀 왁스덩어리 모두 세상을 하나의 역한 덩어리로 만들어 비판적으로 읽고 있는 듯하다. 세상을 읽고 사회를 향해 던지는 작가들의 시선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작가의 거슬리는 감각기억들은 드로잉이나 오브제로 수집되어 아카이브 되고 마지막으로는 무리constellation를 이루며 배치되고 있는 것이다.

요 오카다 Yo Okada_Not Human & Installation view of drawings_2010

요 오카다의 오브제는 최대진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문화적 맥락을 보여준다. 두 작가 모두 드로잉을 중요한 매체로 활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문화적 실천을 실현하는 요 오카다는 마스크에 집착한다. 가장하고 환영을 만드는 마스크는 존재론적 문화적 다름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미학을 확인하게 해주는 소재이다. 그의 특별한 털-마스크는 또 다른 존재하는 종-외계인을 확인해주는 증거물이 된다. 이 존재와는 이해를 공유할 수도, 소통할 수도 없다. 이는 픽션 속에 등장하는 희화된 캐릭터 츄바카Chewbacca이기도, 이미지 뒤덮인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껍데기이기도 하다. 블록버스터 영화인 스타워즈에 등장하여 널리 알려지고 굳혀진 이미지는 자본이 개입된 문화생산의 단면이지만, 허물처럼 벗겨진 지금의 모습은 일종의 털 그 자체로서 실재와 실제의 간극을 설명하고 있다.

장유정_수평선_잉크젯 프린트_106×140cm_2011

장유정, 강승희, 박성연, 박지혜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감각적 시선과 사물에 대한 몰입, 그리고 이를 통한 판단과 분석으로 기억의 감각물들을 수집한다. 각자의 가치 판단에 따라 구분되고 경험의 문제로 분류되어 익숙한 상황으로 마무리된 감각물들은 새로운 경험에 노출되면서 확장된다. 경험의 간극을 설명하는 장유정 작가는 사물, 사진, 그리고 그 위 드로잉으로 실재에 대한 문제를 해체한다. 여기서 경험의 다름이 변증법적으로 구현된다. 즉 작가의 소외된 시선, 또는 빗겨있는 시선이 사진작업에서 객체화된 중심적 상황으로서 극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의해 고스란히 조명된 상황은 다시 간극의 확대로 드러난다. 그리고는 경험의 간극이 가져오는 낯섦은 그 위 드로잉이라는 가장 작가적인 습관적 개입으로 마무리된다. 경험적 일상이 복제라는 개입으로 낯설게 되고, 여기에 작가는 또 다른 주관적 개입을 더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한다. 그리고 이 산물인 오브제는 젠더문제로도 담론화 되길 거부하는 듯 모호함의 극대치로 생산된다.

박성연_Installation View of Open Studio at ISCP, New York_2010

유사한 코드전개를 보이는 박성연 작가 역시 반복적이고 익숙한 몸짓인 손뜨개 작업을 보여준다. 이전에 보여주었던 다분히 타자화된 시선들과 미묘한 감성 표현들은 적극적 차원으로 전환되어 코드화 되었다. 더욱 나아간 비정형 형태의 오브제와 손뜨개라는 작업 방식은 시적이고 감성적인 수사 공간을 생성한다. 최근 해외 레지던시의 경험은 작업의 전환점이 되는데 일조하였다. 그녀는 타자들의 미묘한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수사 공간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가장 일상적이고 사적인 경험이 실천으로 코드화 되고 있는 것이다.

강승희_Melting Pot_Embroidered on digital print with mixed material_150×150cm_2010

강승희 작가의 각 캐릭터들은 살아 움직인다. 각 캐릭터들은 작가가 기억하는 문화적 감각물로서 주어진 상황 속에 다채롭게 그려지는데 이 역동적인 이미지 아카이빙은 전 화면에 고르게 퍼져있다. 여기서 강승희 작가에게 문화적 차이는 다양한 캐릭터 창조의 기술과 노동집약적 자수 작업을 관통하는 소재가 된다. 이러한 경험적 간극이 가져오는 어색함과 불안증은 가장 익숙한 몸짓으로 해소된다. 이 가장 익숙한 몸짓 자체가 다양한 캐릭터의 행동방식을 보여주는 드로잉으로 코드화 되는 것이다.

박지혜_Lost In The Fathomless Waters_단채널 비디오_00:03:48_2010

박지혜 작가 역시 빅토리안 시대의 산업화에 의한 번영의 이미지를 스크랩한다. 그녀의 스크랩 수집 방식은 섬세한 여성주의 이미지에 집중된다. 사회적으로 여성의 가정적 지위와 역할의 문제가 부각된 가장된 이미지들은 동화처럼 사랑스럽고도 동시에 기괴하기까지 하다. 부드러운 꽃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젠더의 문제는 박지혜 작가의 주요한 관심사로 보인다.

이윤미_Untitled_접시에 쌀_가변설치_2010

이윤미 작가의 작업은 위 작가들과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그녀는 회화의 평면성을 해체한다. 드로잉에서 시작되는 힘 있는 선의 표현들은 꽤 오랫동안 작업해온 작가의 내공을 반영한다. 작가가 작업을 전개하는 과정을 살펴볼 때, 2차원이자 동시에 3차원 공간, 경험적 공간으로의 모호성은 회화에 대한 현대미술의 맥락을 해체한다. 특이하게 그녀가 차용하고 있는 회화와 조각적 경향의 관계는 오래된 담론과 그 밖의 비담론을 모호하게 한다. 2차원이건 3차원이건 다소 장식적인 공간 구성은 맥락 화되어 담론 화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의 설치는 경험의 공명이기보다는 회화의 문제에 천착해있는 담론적 차원에서 읽혀지는 것이다. 반면 관습적, 습관적인 쌀을 이용한 쌀 드로잉 작업은 경험의 이야기를 던진다. 이는 경험적 내재와 형식적 외연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변용된 사물을 제시한다. ● 이렇게 10명의 다른 오브제 이야기들은 들여다볼수록 겹침 없이 스펙터클 하다. 이들의 경험적 층위는 다양한 코드로 전개되고 이들의 충돌과 융합은 다변화되었다. 상호 맥락을 이어가며 연계를 맺는 이들 10명의 이야기는 사뭇 진지하다. 가볍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깊이 없이 산만하게 뿌려지는 이야기들의 속에서 주목할 만하다. ■ 오세원

예술에 대한 동시대 예술가의 고민과 대응은 모두 다르다. 한 두 개의 폴더 안에 담아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그 유사성을 발견하여 연관 짓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시를 통하여 오브제라는 끈으로 작가와 작가들의 작품을 매듭지으려고 하는 이유는, 오브제에 담긴 그 반항적이며 전복적인 에너지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물감만큼이나 쉽게 사용되고 있는 오브제의 현재 위치를 염두에 두었을 때, 과잉에 따른 스타일화 되어가는 현상에 대하여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표현 매체로서의 오브제는 여전히 매력적이며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각자의 인식과 태도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지향한다. ● 오브제, 오브제, 오브제... 이 전시 타이틀은 반복하여 강조하는 행위를 뜻할 수도, 흥얼거리는 노랫말일 수도 있다. 오브제는 현대미술의 경계에서 재현과 전략, 대응 등 예술가 개개인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서 다양하게 접근되어 왔다. 지나간 쟁점과 이슈라며 진부성을 논하기 이전에, 새로운 예술이 앞선 예술의 후위현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다른 이에게는 새로움을 향한 자극이 되길 기대하며 여기 모인 작가들의 문제의식과 어법을 교차시켜보려 한다. ● 우리는 오브제를 구심점으로 모이지만 오브제의 가장 철저한 배반자 이길 꿈꾼다. 예술가들이 예술의 가장 철저한 배반자를 꿈꾸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 강승희

Vol.20110708i | 오브제, 오브제, 오브제 Object, Object, Object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