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심리학-우리를 말한다

2011_0701 ▶︎ 2011_0920 / 월,공휴일 휴관

김준_banya_영상_2004

초대일시 / 2011_0716_토요일

참여작가 김준_김현수_유정훈_이국현 이완_이진영_최윤정_데비한

주최 / 가일미술관 후원 / 경기도_가평군 기획 / 홍성미

관람료 / 대인 2,000원 / 소인 1,500원 만 65세 이상, 7세 이하 및 장애인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가일미술관 GAIL ART MUSEUM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삼회리 609-6번지 Tel. +82.31.584.4722 www.gailart.org

욕망이라는 파르마콘에 관한 여덟 개의 변주곡 ● 욕구는 요구를 통해서 요청되지만 그 욕구는 모두 충족되지 않고 결여를 남긴다. 그리고 욕망은 이 결여에서 발생하게 된다. 결국 욕망이란 무언가에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존재자들의 마음, 그 모자람을 채우려는 의지인 셈이다. 따라서 빠진 것에 관한 권력 의지 또는 힘의 의지, 자본의지라는 충족의지가 커질수록 인간은 본능적으로 능동태를 유지하게 되며, 이론적으로 이는 그만큼 풍요로운 물질에 다가설 수 있는 기회를 넓힌다. 더불어 일정한 목적성 분동을 쥘 수 있는 계기도 비례해 확장된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욕망이 그리 관대한 성격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 욕망은 만족감을 누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크 라캉(Jaques Lacan)의 주장처럼 인간은 언제나 대타자를 끊임없이 요구할 뿐 욕망의 독(匵)을 수평화 할 수 있는 재량은 우리에게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세계에서 발현되는 욕망은 위상을 달리하며, 때로의 과도함은 야욕이 되어 목도(目睹)를 일상토록 한다. 나아가 넘치는 욕망에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일수록 부정성은 심화된다. 그때에 이르면 그것이 설사 비양심적, 본질 외적이라는 마음 속 시그널(signal)이 발산될지라도 스스로 합리화 한 벽을 넘지는 못한다. ● 허나 주지하다시피 욕망의 과잉은 종국에 이르러 정신을 포박한다. 세기말 데카당스한 기록들처럼, 소비시대인 오늘날 상품 논리가 물질의 생산 뿐 아니라 노동 과정을 넘어 심지어 인간관계까지 지배하도록 용인하고 스스로 함몰되는 추악한 자본종속에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흥미로운 건 이와 같은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서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용인된 상징과 반복강박 내외에서 빚어진 욕망이 우리 예술가들에게 좋은 소재로 흡입되어 왔음에도 예술이라는 언어의 육화된 의미를 배척하는 지점에선 되레 그들의 헛헛한 욕망 또한 잠에서 깨어난다는 점에 있다.

김현수_Mermaid_폴리에스터 레진, 유채_2008

이는 대개 두 가지 현상, 즉 사물의 속성과 사회의 근본적인 기능에 대해 고찰하여 미적 제고의 주제로 삼거나, 이 둘을 하나의 틀에서 형성된 관념성을 개념화하는 경우로 나타난다. 일례로 물질과 연관된 저속성을 키치적으로 해석해 그 자체가 미학적 견지를 지니도록 영리하게 유도하는 제프 쿤스(Jeff Koons)나, 다카시 무라카미(Murakami Takashi), 동시대미술의 시스템을 날카롭게 흡수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이오니아로 활용해 오고 있는 데미안허스트(Damien Hirst)와 같은 예가 그 첫 번째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자신이 욕망한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것들이 사실은 타인들이 욕망하는 것을 내면화한(자기의 내부로 받아들인) 결과들일 뿐임을 예술로 치환해 선보인다. ● 반면 폴란드 출신 독일 사진작가 요셉 슐츠(Joseph Schultz)는 두개의 고가도로가 만날 듯 가까워지지만 이내 다른 길로 끝도 없이 펼쳐져있는 형상을 담은 「form no="No"」과 같은 작품을 통해 무엇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를 언어화함과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욕심을 보다 솔직히 가리킨다. 이윤추구나 자본축적의 욕망보다 더 발칙한 욕망아래 신체를 예속시키며 몸과 삶을 무화시키고 그것들이 놓이는 대지를 파괴시키려는 형이상학적 욕망, 곧 이성적 근본주의를 직시하게 만드는 리차드 필립스(Richard Phillips)의 그림들도 같은 선상에 서있다. 이밖에도 니체의 권력 욕망, 마르크스의 식욕, 프로이트의 성욕 등을 미적으로 다룬 동시대미술을 비롯해 일정한 욕망 아래 개봉된, 현실과 이상을 담은 차이적 시피니앙(signifier)이 반복되어 드러나는 예는 현대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시공의 지층을 뚫고 탈출한 이 욕망의 기괴함은 표현을 다루는 예술가들에게조차 피해갈 수 없는 내적 게으름과 외적 자본의 유혹 속에서 권력, 명예, 자본 등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파각된다. 그들 역시 반은 체제인(현실인)이기에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신뢰할 수 없는 대중적 속성에 예술을 의탁하거나 경박한 금전에 휘말리는 비자각적 지향을 탐하며, 예술작품에 내재된 고유한 기능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예술작품에 관한 고민의 결여를 완성하는데 욕망을 투영한다. 시인 고은이 "욕망의 팽창으로 사는 인간과 욕망의 허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인간이 뒤섞인 어제오늘의 이 사회는 '시장'이라는 본능만으로 소유욕과 지배욕의 카오스를 이룬다."고 말한 것처럼 오로지 시장에서의 성과에 목말라한다.

이국현_Package_캔버스에 유채_2009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가일미술관이 기획한 이번 전시인 『욕망의 심리학-우리를 말한다』 전(展)은 우리네 삶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물질적 과도함에 대한 당대 일그러진 표정과 욕망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미지화 하도록 하는 여러 지층의 알레고리(Allegory), 심리적 근원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다. 겉으로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징후들을 미술작업을 통해 읽고,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과잉생산-중독-욕망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매체의 한계 없는 젊은 작가들의 자유로운 조형언어를 관통해 우리시대의 본모습과 이성성에 대해 조명해 본다."는 취지를 갖고 있지만 그 자체로 욕망성에 대한 분자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실제로 김준, 김현수, 데비한, 유정훈, 이국현, 이완, 이진영, 최윤정 등 모두 8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욕망의 심리학-우리를 말한다』 전은 미개시대보다 훨씬 더 욕망의 인성을 적나라한 문명의 세계, 모든 것이 비만해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과 욕망을 각기 다른 언어와 방식으로 풀어낸다. 과도한 욕망을 이루기 위해 절대성을 자처하지만 자본과 예술을 일종의 숙명적인 파르마콘(parmacon)으로 보는 현실, 이리절욕(以理節慾)에 대한 견해, 기타 세속적 시소의 기울기를 달리할 수 있는 비중 있는 원소는 무엇인지 등에 연관된 다양한 개념들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곧 어떻게 예술로 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목소리를 내보인다.

이완_Trophy_이면지_2010

먼저 작가 김준은 본질적인 인간의 욕망이나 실체를 느끼게 하는 상징과 은유적 표현으로 조형성을 완성해 간다. 특히 우리네 현실과 통로를 잇는 신체이미지에 대한 실험은 그만의 조형언어로서 분별력을 구축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예술과 삶의 경계에서 오는 충돌과 동요를 문신이라는 표현어법으로 직설적으로 다뤄온 벨기에 출신의 작가 빔 델보예(Wim Delvoye)와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지닌다. 작가 김현수는 꿈과 이상의 판타지를 오가는 동화적인 모티프를 통해 마치 쉬르(Sur)적이고 신화적이다 싶은 이야기들을 조각으로 집필해간다. 그의 「인어이야기」나 「Dream」은 그것을 지시하는 구체적 명사로서, 외피적으론 약간 크리키한 매직리얼리즘조각의 형식을 따르지만 기실 그 속에는 일종의 염원과 기억의 회귀, 공통의 화두인 욕망이 내재되어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 작가 데비한은 포괄적 관점에서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 수면 밑에서 잠자고 있던 인간의 몸이 얼터 모던(Alter modern) 시대에서 어떻게 정체성을 획득하는지를 작품으로 지정한다. 마를린 듀마(marlene dumas)나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의 독백적 사유와 음울한 격정성과는 달리 페미니즘의-생물학적인 성(sex), 인간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욕망인 섹슈얼리티, 후천적으로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교육받은 젠더-관점 아래 직조된 상징성과 시대가 지정한 미의 기준까지 비판적 시각에서 두루 아우른다. 그것은 적어도 몸에 대한 표피적이고 일차원적인 관심을 넘어서기에 아쉬움이 없다.

이진영_Lobby Lounge_디지털 프린트_2006

작가 유정훈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도 그림을 통해 내일에 대한 꿈과 희망의 코멘터리(Commentary)를 녹여 낸다. 그런 까닭에 주요 모티프가 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들, 장소, 사물 등이며, 내용 또한 추억의 기층을 덮고 있는 것들이다. 그것은 대게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고통스러운 벽과 마주해야 했던 체감들, 삶의 기저에 놓인 다양한 감성들이며, 작가는 이를 특유의 상상력과 해학으로 빚어낸다. 일상의 화두를 내면으로 거둬들여 이를 가공한 후 다시 자유롭게 방출하는 형식을 갖고 있는 유정훈의 익살스럽고도 유쾌한, 그러나 삶의 아픔과 쓰라림, 그리고 쉽게 잊히지 않는 상처받은 기억들은 누구에게나 공감을 선사한다. ● 빼어난 묘사력과 관찰력을 지닌 작가 이국현의 작업은 기실 전통적으로 내려온 천박한 욕망의 제어와 제거라는 수순을 따른다. 욕망과 이성이 작금의 물질적 광기 앞에서 무의미해지지 않도록 하는 의식과 장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자문을 내포한다. 그것은 주로 「package」시리즈에서처럼 사회의 감춰진 이면을 고찰하고 현대 여성이 처한 사회구조와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지만 사회 밑바닥에 깔려있는, 우리들이 쉽게 의식하지 못하는 불유쾌한 부분들이 내재되어 있다.

최윤정_pop kids_캔버스에 유채_2010

이외에도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 이완은 대중의 욕망을 긍정함으로써 획득되는 트로피 등의 사물에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욕망의 결핍과 과잉에 대해 주목한다. 또한 작가 이진영은 호텔피아(Hotelpia: 호텔+유토피아의 합성어)라는 욕망의 기호를 대명사로 한 모델하우스작업으로 자신의 내면을 숨기고 포장하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표현한다. 이미 차단된 공간, 그 내부에서의 정돈된 듯 카오스적 구성으로 복잡한 시대의 우리를 말하고 자신만의 기호로 복합적인 심리성을 드러낸다. 특히 회화와 설치, 공간성을 휘도는 그의 사진작업은 층위의 간극을 종종 넘어선다. ● 마지막으로 최윤정의 「pop kids」는 현실과 욕망, 실제와 이상에 얹힌 신화성을 간접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작가는 그동안 가공된 이미지들의 모둠인 미디어를 통해 원본이 없는 이미지의 복제, 즉 시뮬라크라(simulacra)라는 생각에 방점을 둔, 가공되고 인위적으로 직조되어 보편적 인식마저 규정하는 현대 신화의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아 왔는데, 이는 재현의 문제와 미술의 정체성으로부터 자아의 정체성 문제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의 신화성, 드러남과 숨겨짐의 차이가 빚어내는 욕망의 프로세스(Process)가 우회적으로 유효화 된 작업들과 만날 수 있다. ■ 홍경한

Vol.20110709j | 욕망의 심리학-우리를 말한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