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할 일부터

노주환展 / NOHJUHWAN / 盧主煥 / sculpture   2011_0708 ▶︎ 2011_0721

노주환_먼저할일부터_사랑_압축스티로폼_130×140×14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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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70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아트파크 ARTPARK 서울 종로구 삼청동 125-1번지   Tel. +82.2.733.8500 www.iartpark.com

문자로 우리 삶 그리기·조형하기 ● 낯익은 풍경처럼 우리 생활에 익숙한 소리인 "먼저 할 일부터"·"천천히"·"영혼의 자유"·"말, 몸조심"·"관심"·"자비"·"사랑"이 벽 한 면에 부유한다.(그림 1 「먼저할일부터」) 이는 활자 조각가로 알려진 노주환 작가가 생활신조로 일상에 품고 다니는 글귀들이다. 그 주변엔 우리의 지혜를 어느 때보다 불멸의 존재로 만든 인쇄술을 가능케 한 금속 활자에 대한 작가의 오마주인 일련의 활자 책들이 보인다. 영롱한 지혜가 수면 위로 떠오르듯 무작위로 배열된 활자를 배경으로 다양한 높낮이로 올라 온 문자들은 경구를 그려낸다.(그림 2「사랑은, 납활자」) 그는 자신의 생활신조와 활자 책이 펼쳐 보인 경구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단어와 문장을 엮어 이번 전시를 풀어내고 있다. 우리 역사와 지형을 품은 활자 조각이 그동안 만들어낸 장대한 풍광과 달리 여기의 문자들은 활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모습으로 우리 삶을 마주한다.

노주환_사랑은_납활자_22×30×5cm_2011
노주환_속담기둥_압축스폰지_450×65×65cm_2011

질그릇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작가 자신의 생활신조는 아래층에 설치된 속담 기둥과 조응한다. 4m 높이의 기둥은 계단참에서 바라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원형 기둥을 연상시킨다.(그림 3「속담기둥」) 기둥에 다가설수록, 흥미롭게도 그것의 마다마디마다엔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우리 귀에 친숙한 속담들이다. 약 170여개의 속담이 원형기둥을 완성한 것이다. 그리스의 석공들은 인체를 토대로 해 기둥을 올렸다면, 작가는 인류의 삶의 지혜를 토대로 해 기둥을 올렸다.

노주환_꿈_압축스티로폼_260×50×35cm_2011

속담 한 구절 한 구절 원형 기둥의 마디를 회전시키며 읽다보면, 속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네델란드의 화가 브뤼겔의 그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지나간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에서 볼 수 있듯이, 브뤼겔은 붓으로 섭정 시대의 네델란드를 비웃고 인간의 어리석음과 교만에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 한편 노주환의 속담 기둥은 브뤼겔의 속담 그림처럼 사상을 설교하고 있지 않다. 그는 우리 삶과 문자가 만나는 지점을 조형하기 위해 속담 기둥을 올린 것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네 삶의 지혜를 문자로 집약해 전승된 속담은 다름 아닌 민간 문화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 속담 기둥 주변에 흐드러진 "꽃"과 "꿈"은 키 큰 억새가 바람에 출렁이듯 휘어진다.(그림 4「꿈」) 이곳에 피어나고 있는 "꽃"과 "꿈"은 사전적 정의를 넘어서 우리가 삶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저 너머의 상징이다. 작가는 "꽃"과 "꿈"이라는 단어에 왜상(anamorphosis) 기법을 이용해, 단어의 이미지는 볼 수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기 어렵게 변형시켰다. 개념미술가들과 달리 활자가 만들어 내는 텍스트보다 활자 그 자체의 조형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노주환은 밝힌 바 있다. 표음 문자인 한글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이미지인 것이다. 이미지로서 문자를 차용한다는 것은 그가 이미지로 사유하는 시각예술의 본질을 잊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노주환_다라니_나무_2×700×1cm_2011
노주환_사랑탑_압축스티로폼_145×80×50cm_2011
노주환_어디로_납활자_18×25×5cm_2010

이렇게 속담 혹은 단어를 우리 삶의 기표로 그려낸 노주환은 두 개의 층 벽에 부착한 『다라니경』에서 시각적 사유의 대상인 이미지의 경계를 촉각적 사유로의 확장을 시도한다. (그림 5「다라니」) 마치 돌담벽을 스쳐가는 손끝마디의 감촉으로 『다라니경』의 한 글자 한 글자를 관람객은 탐독하게 된다. 이는 문자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삶의 지혜가 관조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기 앞 서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체험케 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노주환은 이번 전시에서 속담과 같은 경구를 통해 우리 삶과 문자가 만나는 모습을 그려내고 조형함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의사소통의 시각적인 기호 체계로서가 아닌 인류의 삶의 표징으로 문자를 조망하게 한다. ■ 이재은

Vol.20110710d | 노주환展 / NOHJUHWAN / 盧主煥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