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휘展 / SEOLHWI / 薛輝 / painting   2011_0714 ▶︎ 2011_0726

설휘_당신의 감정은 안정되었나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218×33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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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714_목요일_06:00pm

2011 설휘 정동갤러리 초대展

기획 / 공간 루 (SpaceLou)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공간루 정동 GALLERY SPACELOU 서울시 중구 정동 1-23번지 Tel. +82.2.765.1883 www.spacelou.com cafe.naver.com/spacelou.cafe

사람과 사람 사이에 떠오른 태초의 섬 ● "그것은 벽이다." 설휘의 첫 번째 개인전 도록에서 발견한 그의 고백이다. 소리 없이 스러져가는 마른 잎새와 들꽃, 공중을 날고 있던 길 잃은 나무들, 같은 궤적을 그리며 떨어지는 몇 개의 빗방울, 그리고 상형문자와 다를 바 없었던 태양과 파도의 흔적들. 그는 뜨겁게 현실과 대립해야 할 젊음의 한 때를 주목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것들에게 할애했었다. 다분히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시선이 묻어나는 애잔한 고백이었다. 처음엔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캔버스에 불이 들어오자 모든 것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생소하고 도발적인 붓자국이 요동치면서 처연했던 삶의 비늘들을 단숨에 집어 삼켰다. 강렬한 원색을 등에 업은 폭발하는 에너지가 화면을 압도한다. 애초의 서정적인 껍질들이 끝 모를 깊이로 곤두박질치고, 극히 짧은 시간에 산화된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후, 불이 꺼졌다. 다시 조용한 평온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처음과 다름없되, 더 이상 처음이 될 수 없었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단단히 걸려들었던 까닭이다. 전시장을 빠져나와 걷던 광화문의 늦은 햇살이 무표정한 행인들의 그림자를 희롱하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설휘_감성의 내외-섬_LED 라이트 박스에 아크릴_80×175×6cm_2011
설휘_감성의 내외-섬_LED 라이트 박스에 아크릴_80×175×6cm_2011
설휘_감성의 내외–섬_LED 라이트 박스에 아크릴_80×175×6cm_2011

때론 과묵하고, 때론 큰 소리로 웃을 줄도 아는 설휘는 어지간한 지근거리에서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단단한 문고리이다. 쉽게 속내를 드러낼 것 같지 않은 강렬한 그의 눈매는 항상 매서운 듯하지만,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따뜻한 눈길을 숨기기에 충분치 않다. 그가 사랑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개인전을 치룬 설휘가 자신의 내밀한 속내를 드러내고자 다시 작품들을 모은 것은 2006년의 일이다. 수년 전, '사라져 가는 것'과 '감춰진 것'에 관한 이야기를 화두로 삼았던 그는, 이제 조금 더 직설적인 화법으로 관객과 교감하고자 한다. 두 번째 주제는 "현대인-자유 찾기"였다. 비둘기가 날고 있는 한가로운 일상. 빈틈이 많은 가로수와 중첩된 두 마리의 비둘기에게서 설휘의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궁금해 한다. 다시 불이 켜지고, 처음보다 훨씬 더 광폭해진 색상과 붓질이 화면을 반전시켰다. 설휘는 길들여진 '날 것'과 집단에 귀속된 '자유'라는 주제를 두 번째 개인전을 풀어가는 물음표로 삼았다. 그것은 일견 무겁고 어려운 해석이며 우리가 잊고 있던, 아니 잊고자 했던 매우 껄끄러운 질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집단에 쓸려가는 몰개성의 현대인. 길들여짐을 알아채지 못하고 스스로 인간과 동거해야만 하는 날 것의 포기. 설휘에 있어 비둘기는 피상적인 온순과 평화의 상징이기 이전에, 원초적 자유의지를 포기한 우리들의 초상이다. 다시 되돌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그리하여 스스로 날개를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 우울한 오늘이었던 것이다.

설휘_당신의 감정은 안정되었나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73×91cm_2011
설휘_당신의 감정은 안정되었나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60×98cm_2011

그러고 보면 설휘의 작업은 진실, 혹은 사실이 무엇인지를 더듬게 하는 질문의 연속이었다. 집요하리만치 일관 되었던 삶에 대한 의문이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근자에 몰두하고 있는 '섬 시리즈'는, 그간 그가 걸어왔던 궤적을 따르는 순항의 연장선에 올려져있다. 흔히 사람들은 설휘가 풀이하는 섬을 두고서 인간의 고독과 삶의 공허를 떠올리지만, 그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설휘의 섬'은 그리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역만리 스페인에서 열렸던 2009년의 개인전. 그를 인터뷰하던 방송국 기자에게 설휘가 했던 말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섬은 잊혀진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실의 의미가 아니라, 제게 있어 꼭 찾아야만 하는 희망의 봉우리이지요." ● 매우 혼란스러웠다. 섬을 봉우리로 이해하고 접근한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봐야할 설휘의 섬은 우리가 흔히 상상했던 잃어버린 고향도, 힘겨운 삶속에서 꿈꿀 수 있는 이상향도 아닌, 하나의 평범한 육지로 전락되어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좋을 듯하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모든 작업들이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지는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는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관객에게 요구하는 무례를 범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설휘가 풀어놓은 부동의 섬은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건 가변적 해석이 가능한 우리 곁의 '무엇'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설휘_당신의 감정은 안정되었나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혼합재료_40×80×4cm_2011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무심한 발견으로 시작된 설휘의 시선이 어느 사이 '무엇이 진실이냐'는, 그리고 '당신의 감정이 안정되었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지기까지, 그의 검은 외딴 섬이 얼마나 많은 꽃과 나무와 새들을 그 속에서 피워내고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근작들에 나타난 작은 변화에서, 이제 자신의 섬으로 우리를 데려가고 싶어 하는 그의 적극적인 구애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태초의 순수를 간직한 돌들이 붙어있는 그의 캔버스. 정교하게 그려 넣은 또 하나의 돌. 설휘는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질문을 가지고 다시 우리 앞에 섰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함인지 묻지 않았다. 그럼에도 설휘는 그 돌들이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모조품이라는 사실과 함께 바람과 파도에 길들여지던 그들이 점점 부피를 줄여나가, 종내에는 보이지 않는 섬의 역사로 편입될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 때론 달빛에 흔들리고 안개를 휘감기도 하는 설휘의 섬을 구경하는 데는, 어떤 요구조건도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그가 만들어 놓은 섬에 가기를 희망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섬과 자신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어떤 '실체'를 찾아내야만 한다. 설휘가 진작부터 보아왔던 그것! "그것은 벽이다." 섬이 길이 되는 그날을 꿈꾸며... ■ 김용대

Vol.20110712f | 설휘展 / SEOLHWI / 薛輝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