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혁림이다-작고 1주기 특별展

故전혁림展 / JEONHYEOKRIM / 全爀林 / painting   2011_0708 ▶ 2011_1002 / 월요일, 추석당일 휴관

전혁림_새만다라1050개 New Mandara 1050_나무에 유채_각 20×20cm_2005

초대일시 / 2011_0707_목요일_06:00pm

주최,기획 / 이영미술관 용인시청 2011 박물관/미술관 운영지원사업

관람료 일반_5,000원(단체_3,000원) 학생_3,000원(단체(2,000원) 어린이(미취학)_2,000원(단체_1,500원) 미술관 회원은 동반 1인에 한하여 무료관람 단체는 20인 이상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관람 종료 1시간 전 / 월요일, 추석당일 휴관

ICAM 이영미술관 Ieyoung Contemporary Art Museum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221번지 Tel. +82.31.213.8223 www.icamkorea.org

"나는 전혁림이다." ● 앞서나간 소수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곁눈질 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과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뜻을 알아 그것을 목숨처럼 지켜낸 결과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때론 누군가의 업적 뿐 아니라 그 삶 자체도 흡사 예술과 같은 감동을 주는 것을 우리는 종종 목도하게 된다. ● 구십의 나이에 한 치 손 떨림 없이 붓을 들어 신작전을 펼쳤고, 수차례 국전 수상을 독학으로 이룬 화가가 있다. '위대한 화가는 스승이 없다'는 자기 소신, 그리고 그림이 전부인 열정을 굽히지 않고 살아온 삶이 있다. 故 전혁림 화백의 이런 삶이 아내에겐 '나쁜 남자', 자식들에겐 '이기적인 아버지'란 마음의 빚을 만들었겠지만, 이것이 한편 우리에겐 감동의 무대를 주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인생의 아이러니이다.

전혁림_새만다라1050개 New Mandara 1050_나무에 유채_각 20×20cm_2005_부분
전혁림_기둥사이로 보이는 한려수도_캔버스에 유채_200×700cm_2005
전혁림_한려수도_캔버스에 유채_300×600cm_2005

전 화백을 '통영화가'로서 일괄하거나, '색채의 마술사'로 매끈하게 신격화시키는 매너리즘적 반복들은 작고(作故) 작가의 남겨진 작품들이 현재 살아있는 자와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 큰 아쉬움이 있다. 해석의 자유는 예술의 특권이자 매력이다. 때문에 특정 예술을 하나의 관점에 가두는 잣대는 되려 예술의 순수성을 타락시키는 정치적이고 세속적인 욕심일 수 있다. ●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오방색'과 '민화'적 요소는 그의 작품을 '전혁림의 것'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이지만, 달리 주목해 볼 것은 'Made in Korea' 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보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를 관통시킬 수 있는 모티브를 찾아내어 평생을 몰입한 그의 통찰과 끈기다. 또한 '통영화가'라는 다소 감상적이고 선전문구적인 타이틀 뒤로, 그의 통영그림들에대한 미학적 가치가 얼마나 치열하게 다루어졌는지 화단의 게으름도 반성해 볼일이다. 그것이 열정으로 살다간 화백에 대한 예의이며, 이 예의를 잊지 않고 지킴이 우리에게도 득이 될 터이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 세상에는 많은 화가가 있다. 그들을 바라보고 평가하는 기준은 다양하지만 정답은 없다. 허나, 칠십이 되어서야 가난을 벗는 고통 속에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고, 남의 도움 없이 홀로 그림에 매진하여 국전의 관문을 뚫었으며, 구십 나이에 신작전을 펼친 활화산 같은 정열의 故 전혁림 화백, 그는 '화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증한 이정표를 제시해줌에 전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화업을 목숨처럼 여기고 실천한 그는 늘 자신있게 외쳤다. "나는 세계적인 작가다." 그러나 이 한마디로도 충분하리라. "나는 전혁림이다." ■ 김소원

전혁림_누드_나무에 유채_2005_부분
전혁림_누드_나무에 유채_2005_부분
故전혁림展_ICAM 이영미술관_2011

"I am Jeon Hyeok Rim." ● Those that are ahead of the pack do not look to the side. Achievements are a result of realizing one's purpose in life and being able to guard it as if one's life depended on it. At times, not only do one's achievements touch us, life itself as if it were art moves us and from time to time we are able to witness this. ● There is a painter who made new art work with not even the slightest of shaking of the hand holding the brush and won numerous National Art Exhibition awards all achieved through self-education. He had the belief that "The greatest painters do not have teachers" and the life of never forsaking passion. The late painter Jeon Hyeok Rim's life was just this life and this life branded him as a "bad" husband to his wife, and an "egotistical" father to his children, which left him with a heavy heart; however for us this life provided us with touching moments which is ironic in every sense. ● The late painter Jeon as a "Tongyoung Painter", "Color Magician" smoothly deifying the repetitive mannerisms felt a sense of frustration at the possibility of dialogue in the "here and now" between works of art from deceased artists and the living will be cut off. The freedom of interpretation is the privilege and the appeal of art. Because certain art caged in a criterion of one perspective can be seen as political and secular selfishness corrupting the purity of art. ● "Obangsaek" (five traditional colors of Korea) and "folk painting" elements are define "Jeon Hyeok Rim's" works of art and created the artist we now know of. Rather than the notion of the "Made in Korea" national pride, we should take note of his insight and determination throughout his life in extracting motifs penetrating east and west, past and present. Moreover, behind the sentimental and commercial "Tongyoung Painter" title, it is important that the art community self-reflect on how he intensely dealt with the aesthetic value regarding his Tongyoung painting; that is showing courtesy towards a painter whose life was full of passion and we should not forget this fact because it will be beneficial to us all. ● There are many painters in the world. There are various ways of looking at them and standards of assessment, but there are no answers. Only at the age of seventy was he able to escape from poverty, however, he still continued to paint. Without the help of others he passed through to the national art exhibition by engrossing himself in his paintings. Even at ninety years old, he displayed new works of art with a passion akin to an active volcano; he gave us clear directions like a sign post on the question of "What is a painter?". He valued the work of painting as if it was his own life and he confidently exclaimed, "I am an international artist." However, these words are enough, "I am Jeon Hyeok Rim." ■ KIMSOWON

Vol.20110717b | 故전혁림展 / JEONHYEOKRIM / 全爀林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