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뉴웨이브 예술의 젠틀맨

치우준展 / Qiu jun / 邱军 / painting   2011_0718 ▶ 2011_0814

치우준_그림자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173×137cm_200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이장욱 후원 / 제니스제약

관람시간 / 11:00am~05:00pm

팡조우아트센터 중국 북경 통조우구 송주앙 시아오푸춘 Tel. +86.13521002357

지금 중국 미술품 경매시장에서는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시장성에 영합하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와는 별개인 작가들이 있다. 치우준과 같이 작품을 통해 내면에 충실한 작가들이다.

치우준_마스크(面具)시리즈_수채_12.7×17.8cm_2010

남경에서 태어난 치우준은 이듬해 문화대혁명(1966년~1976년)을 맞이했다. 당시 일반인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부친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업의 경리(간부)로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어린 치우준의 부친은 붓글씨와 남경 주위의 풍경 및 정물을 취미로 즐겨 그렸다. 모친 역시 예술을 즐기는 분위기로 부모의 미술에 대한 이해 아래 성장하였다. 문화대혁명시기 부친의 그림에서 풍경과 정물은 사라지고, 마오저뚱 주석으로 그리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생활에 크게 변화는 없었다. 학창시절 치우준은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컸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어 했는데, 부친의 1달 급여에 달하는 가격이라 쉽게 사달라고 하지 못한 일화가 있었다. 학창시절 만화책을 보며 따라 그리기에 열중했다. 당시 10살의 어린 치우준은 우연히 벽보 포스터를 보고 따라 그렸는데, 이 일로 반동단체와 관련해 부친이 모함을 받아 곤란에 처해 가족 모두 외부 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치우준_그림자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07

부친이 정치적으로 곤란을 겪게 되자, 집안에서 외부와 단절되어 있는 시간 그림은 감수성 예민한 성장기 소년 치우준에게 희망이 되었다. 본격적인 그림 수업은 고중(高中; 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부터 이다. 집안의 적극적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고자 입시를 반복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중앙미술학원, 중국미술학원 등에 몇 차례 지원했지만, 대학별 모집인원은 작고, 지원자는 많았다. 4년에 걸친 입시를 통해 남경예술대학 유화과에 입학 하게 된다. 당시 국내에서 1985년 New wave 운동의 영향으로 학교생활이 풍부해졌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금지된 영화와 도서 등을 비밀리에 보는 모임이 많았고, 비밀리에 이러한 모임을 가지는 클럽이 유행처럼 번져 나아 같다. 학생들은 화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빠른 팝음악에 맞춰 붉은 천을 씌운 전등 아래에서 춤을 추었다. 남경은 북경에 비해 작고,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 했지만 교수들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치우준_마스크(面具)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35.5×28cm_2010

실력을 인정 받아 졸업 후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되었다. 한편, 젊은 청년이었던 치우준은 당시 중국 사회상에 무관심 할 수는 없었다. 재학 중, 북경에 있던 친구를 통해 원명원에 여러 방면의 예술가와 화가들이 모여들어 생활하는 공동체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된다. 1989년 첫 번째로 서촌(西村)이라 불린 원명원(圓明園)을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청년 치우준은 새로운 경험과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이들과 교류하게 된다. 대학졸업 후 남경의 동남대학에서 교편 생활을 시작 한 후에도 원명원에서 작가들이 떠나기 전까지 수 차례 방문과 교류를 하였다. 하지만 청년 치우준은 당면한 현실로서의 생활 등의 이유로 함께 서촌에 동참 할 수는 없었다.

치우준_말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각 170×140cm_1999

1997년 당시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 일환으로 남쪽에서 시작된 경제개발은 동쪽 해안을 따라 빠르게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상의 지루함과 중국 내 변화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으로 갈등을 하다 중앙미술학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기존에 배웠던 방식을 뒤집어 버리기 위해 노력 하였다. 현대적 작품으로 졸업전시를 준비했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보수적인 현실에 크게 실망을 했다. 서촌과 동촌에 있던 작자들은 흩어지고, 미술관에는 친정부적인 사람들의 전시로 채워졌다. 대학원 재학 중 베이카오(北皋)에 작업실을 마련했었고, 인자오양(尹朝阳)과 함께 작업을 했다. 하지만 대학교와의 계약에 따라 남경으로 돌아가야 했다.

치우준_무제 No tile_종이에 수채_12.7×17.8cm_2010

남경으로 돌아가서도 북경에 와서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2000년에 다시 북경에 돌아와 송주앙(宋庄)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치우준의 작품 중 말(馬) 시리즈는 10살 즈음 이웃집에서 연필로 그린 말 그림을 우연히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후 성장해 내몽고에 가서 말들의 사진 촬영과 스케치 등으로 자료를 모으고, 생활습성을 관찰하면서 말들을 인간과 같이 초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와 함께 많은 수채화를 그렸다. 지금도 항상 외출을 하면 수채화물감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순간적인 풍광을 담는다. 수채화는 생각 밖의 효과를 많이 발생한다. 그리는 재료에 따라 변화가 많고, 특히 손에 닫는 종이의 촉감이 좋다. 치우준이 초기에 그린 수채화는 소박함과 순수함을 담고 있어 지금도 인기가 높다. 그림자 계열은 부친의 사망으로 인해 영향을 받았다. 부친 사망 시 송주앙 작업실에 있어 임종을 보지 못했다. 항상 자신을 믿고 지지한 부친의 죽음은 치우준에게 기존의 화풍과 다른 그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림자 계열의 그림은 오늘의 자신을 있게 한 든든한 지원자인 부친이 없는 심적 상태를 회색 톤의 어두운 분위기로 스스로의 감정상태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마스크(面具) 계열은 부친의 임종이라는 고통이 지난 뒤 최근에 시작한 시리즈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연과는 달리 사회적 인간으로 대면하는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지금도 연구 중이고, 변화 중이다.

치우준_그림자 시리즈_캔버스에 유채_80×70cm_2008

현실적 문제인 생활을 위해 유행을 좇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왔다. 바삐 움직이는 미래신지식사회에서 조금 느린 듯 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치우준은 1년 중 수업이 없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송주앙의 작업실과 캐나다에 있는 부인과 보낸다. 치우준은 관객들에게 중국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냉소적 리얼리즘, 정치 팝, 키치(kitsch) 등과는 다른, 고전과 같이 어느 시대와 관련 없이 작품성을 가진 유행을 따르지 않는 작가로 남기를 바란다. ■ 이장욱

Vol.20110718b | 치우준展 / Qiu jun / 邱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