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세계 예찬

박은숙展 / PARKEUNSOOK / 朴銀淑 / painting   2011_0720 ▶ 2011_0725

박은숙_근원-Harmony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30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박은숙의 『ORIGIN』연작 ● 1. 1996년 이래 박은숙은 '근원'origin이라는 주제를 회화적으로 천착하는 데 집념을 쏟아왔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매 빛이 있더라'는 성서의 언급처럼, '근원'으로서 세계가 이루어지는 시초에 주목해왔다. 무엇보다 시초의 세계를 '환희', '기도', '희락', '기쁨', '영광', '하모니', '엑스터시', '찬미' 같은 작품의 부제를 빌려 다분히 부賦 ode의 양식으로 태초의 세계를 예찬하는 회화를 제작해왔다. ● 시인들은 가끔 자신이 예찬하는 사물에 대한 소회를 적어 '부'의 양식으로 시를 써온 선례를 심심찮게 보여준다. 자연예찬을 목적으로 하는 '자연부'自然賦, 조선조 백자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백자부'白磁賦가 대표적인 것들이다. 박은숙의 회화는 이러한 예찬의 회화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 이 작가가 예찬하고자 하는 건 말할 것 없이 보이지 않는 근원의 세계다. 그녀에게서 '근원'이란 세계의 최초의 것으로 간주되는 신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성서적으로는 '에덴'이고 '신국'이다. 우리나라 우리민족 역시 태초의 세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부'의 양식을 빌려 예찬했던 선례를 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군세기』와 『소도경전』에는 태초의 세계를 '크고 둥근 하나인 세계'大圓一로 묘사하거나, '극이 없는 하나'無極一也요, '눈부신 빛의 세계'昻明로 묘사한다. '밝음'을 뜻하는 '환'檀이나 '단'檀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빛의 나라'를 예찬하고자 이두어를 빌려 '풍류'風流를 말하기도 한다. 이 말들은 모두 원초이자 근원의 세계를 찬미하는 이름들이었다. 우리는 이 이름들을 까맣게 잊고 서구적인 의미의 '하늘나라'만을 전부인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은 일찍이 인간이 대지에 살면서 근원의 세계를 마음에 두고 예찬함으로써, 인간 또한 본성에 있어서 태초의 세계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믿었다.

박은숙_근원-Red Harmony_캔버스에 혼합재료_130×130cm_2011
박은숙_근원-Blue Harmony_캔버스에 혼합재료_194×130.3cm_2011

박은숙의 작품 세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태초의 세계, 빛의 세계를 예찬하고 그린다. 작품 상단에 검푸른 천공天空을 넣어 점점이 도열하고 섬광을 발하는 은하를 그리고 그 아래는 머리에 작은 써클을 이고 있는 크고 작은, 일견 산세山勢들이 빼곡한 인간세계를 그린다. 산들은 노랑 빨강 파랑 백색 회색으로 착색되고, 써클 역시 색을 띠고 크고 작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 규모 또한 다양하다. 하늘에는 푸른색 뿐 아니라 빨강 노랑이 등장한다. 종종은 붉은 빛 오커의 빛깔을 채워 텅 빈 대허大虛를 상징시킨다. ● 산세는 산이라기보다는 불특정한 선각線角의 집합을 보여준다. 크고 작은 선각의 접점에는 암호로서 써클이 자리한다. 이 암호는 분명히 로고스logos 하나님의 표지일 거다. 이러한 형상이 화면을 가득 메운 집합상을 드러낸다. 일체는 선각으로 처리 되는 일차원의 교차와 중첩, 그리고 여기서 이루어지는 융기와 하강이 천지창조의 초기상황을 엿보게 한다.

박은숙_근원-환희_캔버스에 혼합재료_45.4×106cm_2011
박은숙_근원-희락_캔버스에 혼합재료_60.6×72.7cm_2011

2. 박은숙의 근작들은 이러한 추세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그녀의 근작들은 우리의 옛 문헌이 언급하듯, '각角이란 셋이어서 극極이 크다'角者三也太極는 경구를 상기시킨다. 작은 선각들이 만드는 태극들의 올오버 이미지를 보여준다. 태극이 써클에서 발진된다는 걸 시사하기 위해, 로고스의 암호인 원점圓點을 도입하고 여기서 방출되는 빛을 강조한다. ● 로고스의 암호가 창출해내는 전체는 흡사 프랙탈 셀fractal cell의 원原象을 방불케 한다. 프랙탈 원상들이 만드는 전체의 세계상은 이차원과 삼차원의 중간 쯤에 위치하는 소수의 차원이거나 무리수의 차원이다. 혼묘일환混妙一環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체体와 용用의 분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아카샤'akasha이자 '대원일'大圓一이요, '대허'大虛로서의 세계가 아닐 수 없다.

박은숙_근원-Praise3_캔버스에 혼합재료_45.4×106cm_2011

박은숙은 이를 위해 단순하면서도 오묘한 셀패턴의 단위들을 차곡차곡 쌓아 전체상을 빚어낸다. 가까운 곳과 먼 곳을 구별해서 원근 간의 거리를 만드는 건 물론, 거리 간에 비움의 공간을 허용함으로써, 태초의 세계가 허허공공虛虛空空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허공의 여백은 단순히 비워진 게 아니라, 강한 빛으로 충만해 있음을 강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의 영광이자 축복이고, 기쁨이요 황홀의 세계를 형상화한다. ● 한마디로 박은숙의 세계는 선각과 빛이 만드는 태초의 세계요 프랙탈의 세계다. 그녀가 그리는 태초에 대한 부賦의 양식은 원초의 세계를 그 근접 선에서 응시하고, 거기서 기쁨과 기도, 영광과 찬미, 하나님과 하나 되는 황홀의 기쁨을 봉헌하고자 한다. 20년 가까이 하나의 테제 아래 자연과 우주의 근원을 응시하는 작가의 탐색여정이 치열하고 놀랍다. ● 박은숙의 근작세계는 궁극적으로 오늘날 우주시대의 담론의 형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른 바, 호킹이 빅뱅우주론에서 말하는 우주 창조의 초기에 이루어지는 우주상을 생각게 한다. 최초의 우주인 아기 우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수소들의 핵들이 충돌함으로써 핵융합이 이루어지고, 헬륨을 방출하면서 빚어지는 플라즈마가 찬란한 빛으로 천공을 채우면, 연이어 산소와 탄소가 발생하고 원초 형상의 파편들이 특정한 굴곡과 초기 자연상을 산출한다. 박은숙의 근작들은 이즈음 힘들이 임의의 방향으로 세를 구축하고 초기 우주의 자연상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엿보게 한다. ● 그녀의 우주 명상은 이러한 초기 세계상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 만남은 오늘날 예술과 과학의 만남의 일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태초의 세계를 놓고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의 조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다. ● 그래서 어떻다는 거냐고 말할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이러할 것이다. 이처럼 작은 파편들의 세계, 이를테면 미소지각micro-perception의 세계를 향해 현대의 인류가 전대미문의 상상력을 펼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말이다. 박은숙의 회화는 이를 구구 절절히 상기시킨다. 예술은 이제 태초의 세계, 극미의 세계, 요컨대 근원의 세계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걸 암묵적으로 시사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희망과 기쁨을 갖고 근원의 세계를 새삼 바라보아야 한다는 걸 완곡히 주장한다. ■ 김복영

Vol.20110720c | 박은숙展 / PARKEUNSOOK / 朴銀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