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Ⅱ

김덕진展 / KIMDEUKJIN / 金德辰 / painting   2011_0720 ▶︎ 2011_0725

김덕진_오아시스_캔버스에 유채_45.5×33.5cm_2011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소설가 유재현 초청 이야기마당 / 2011_0721_목요일_11:15am 예술여행 공감 ART & ACT-화가와 떠나는 여행 / 2011_0723_목요일_05:00pm 문의 010-3755-4163

관람시간 / 10:00am~07:00pm

울산문화예술회관 3전시장 ULSAN CULTURE ART CENTER 울산시 남구 번영로 200 (달동 413-13) Tel. +82.52.275.9623~8 www.ucac.or.kr

이주가 정착인 풍경에서 ● 입을 다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지독한 가난이. 가장 큰 호수에 가장 작은 수상가옥이 그곳에 있다. 동양 최대의 호수라는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 이를 소재로 삼은 김덕진의 작업은 이주와 정주/ 풍경과 현실/ 정착과 부유라는 이중성을 현실 의미로 끌어내려 한다. ● 점점이 떨어져 있는 수상가옥의 거주적 특성은 사람들끼리의 물리적 거리를 보여주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표정이나 일상은 도리어 고물을 따르는 물결처럼 인간적 유대와 따뜻함을 보여준다. 물속에 박은 긴 막대를 정착의 부표로 의지한 수상가옥은 결코 정착도 이주도 아닌, 그런 분류를 벗어나 있는 풍경이다. 그곳은 바로 여기 있는 삶이며, 우리가 사는 거대한 도시는 저기인 어떤 것으로 잡히지 않는 부유 그 자체에 대비된다.

김덕진_어떤 평화 2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김덕진_정오의 휴식_캔버스에 유채_73×73cm_2011
김덕진_명상_캔버스에 유채_53×72.7cm_2011

외떨어진 배는 집이자 이동 수단 그 자체이다. 그들에게서 배는 이동이 아니라 집이다, 이동이 곧 집이자 정착인 셈이다. 움직이는 것이 집일 때, 집이야말로 움직여야 하는 공간일 때, 이주와 정착이라는 이원론적 개념은 그들에게서 무의미하다. 노마디즘 운운은 물정 모르는 우리들의 호사스러운 어휘들의 하나일 뿐이다. 거대한 호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착/이주는 세상에 대한 의문이다. 이 작업의 출발이다. ● 물이 찬 호수와 물이 빠진 호수, 그 사이 밭을 갈거나 채소를 키우기 위해 겨우 드러난 땅. 쪽배나 작은 나무상자, 플라스틱 상자 안에다 가꾸는 채소, 풍요의 접면에서 어긋나 만날 수 없는 이 상황은 결코 풍경일 수 없다.

김덕진_해질녘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1
김덕진_큰누나를 따라서_캔버스에 유채_38×45.5cm_2011

풍경은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풍경은 장소를 담을 수 없고, 장소를 의미화 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볼거리일 뿐이다. 아이를 씻기는 엄마의 모습, 바닥에 놓인 조리도구와 그릇, 옹색한 세간, 뱃전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와 예견치 못한 개들의 등장은 김덕진이 보아낸 수상가옥의 표정이다. 그 현장은 피할 수 없는 궁핍과 남루. 모자람의 풍경이다. 생존선상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이자 정착과 이동 혹은 부랑하는 남루 그 자체다. 가난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삶이다. 볼거리가 아니다.

김덕진_친구들 조심해!_캔버스에 유채_60×90cm_2010

손끝의 힘마저 빠져 달아나는 일몰의 광경에 그들의 거주가 겹쳐질 때, 그것은 풍경인가? 그런 물음마저 일몰의 풍경 위로 겉돈다. ● 수상가옥의 궁핍이 자칫 아름다움 풍경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덕진의 작업은 그 지점에서 곤혹스러움으로 이물과 고물을 오가며 모색하고 흔들린다. 그 곤혹스러움은 풍경이 아니라 메시지여야 하며, 풍경은 그것을 담아내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녀가 끌어내려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 장려한 풍경 속의 지독한 궁핍의 풍경은 풍경이 아니다. 그곳은 장소이다. ■ 강선학

Vol.20110720d | 김덕진展 / KIMDEUKJIN / 金德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