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OCI YOUNG ARTIST

유현경_조민호展   2011_0727 ▶ 2011_0814 / 월요일 휴관

유현경_불면 不眠 sleepless_캔버스에 유채_181.8×227.3cm_2011

초대일시 / 2011_0727_수요일_05:00pm

유현경 '잘못했어요' 조민호 'Specter Project'

후원/협찬/주최/기획 / OCI미술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Tel. +82.2.734.0440 www.songamfoundation.org

암시장에서 건져 올린, '그런 신기루' ● 미대 학부 졸업과 함께 개인전을 두회 이상 '지원' 받는 사례는 극히 희소하다. 요즘처럼 젊은 작가와 화랑간 행복한 시너지가 유행시킨 극사실주의의 손맛이 부각된 화면도 아니고, 수려한 채색의 마법이 피어오른 화풍도 아니고, 당대 미술의 보증된 전위인 미디어 실험도 아닌, 정통 구상 회화에 가까운 평면으로 그런 대접을 받긴 여간해선 어렵다. 게다가 묘사력이 월등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20대 중반 유현경(1985生)은 제도권 화단을 통해 종합적으로 관찰되는 끌림 지수의 요건을 거의 갖추지 못한 경우 같다. 유현경이 비평적 주목을 단번에 끌어온 건 물고 늘어진 화두 덕분이다. 그 화두는 끈덕진 안료로 화면에 붙어있는가 하면, 멀건 안료처럼 화면 위를 흘러내기도 했고, 선명하지만 모호하게 재현된 그런 화두다. 내 생각은 그렇다. ● 세간의 수요지수는 항시 높지만, 그 화두를 한국 미술계가 대놓고 끌어올리는 적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하물며 여성 작가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시각 예술의 본령이자 매개는 재현일 텐데, 힘의 균형에서 유리한 쪽이 재현의 주도권을 쥔다. 비평 용어를 빌어 '재현의 정치학'은 재현 주체를 남성으로 그 객체를 여성으로 귀속시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하는 도구로 재현을 바라보는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남녀 사이 역학을 넘어 동양을 종속적으로 응시하는 서양의 시선(오리엔탈리즘)까지 연장된다. 재현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인습적 구도를 파괴하는 여성 작가가 한국에서 출연한 건 2000년대 전후로 나는 본다. 작업 완성도나 의도를 떠나 재현 주체로 20대 여성 작가가 섹스를 다룬다는 사실은 남존여비 전통이 여전히 강한 한자문화권에서 그 자체로 허투루 다룰 수 없는 사건이었다. 미술사가 팸 미첨(Pam Meecham) & 줄리 셸던(Julie Sheldon)은 생식기를 재현 대상으로 삼아 이목을 끄는 건 미술의 오랜 전략이라며, 성기 재현의 계보를 나열한 적도 있다.

유현경_어떻게_캔버스에 유채_130.3×193.9cm_2011

유현경이 대학 3년생이던 2007년 작업부터 살펴봐도, 그녀가 발상에서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과단성은 희소가치를 낳을 만했다. 「일반인 남성 모델」(2008)의 제작 공정은 발상의 가상함을 넘어 창작자 개인에 대한 인간적 호기심으로 번지게 만든다. 대학을 졸업한 2009년 공모 당선으로 화단에 막 소개된 유현경의 학부시절 작업부터 살피면 크게 섹스라는 대 주제 밑으로 작은 편차의 섹스 소주제들이 출력되는 식이다. 대주제의 선명성이 본격 출범한 시점을 편의상 2007년부터로 나는 본다. 이제껏 화폭 위를 반복적으로 수놓은 남녀 정사 도상의 모태도 「그런 공간」일 테니까. 익명의 무채색 실내 공간 속에 뒤엉킨 익명의 벗은 남녀의 몸을 거친 붓질로 완성한 연작 「그런 공간」은 제목에서 보듯 지시 대상이 불명확하다. 그러나 엔간한 일반인이면 관형사 '그런'이 어떤 유형의 공간을 지시하는지 화면을 통해 대번에 알 수 있다. 광각렌즈로 바라본 듯 굴절된 「그런 공간」 연작의 실내들은 하나같이 촌스러운 좌우대칭 구조를 취하거나 고전주의를 어설프게 흉내낸 키치 장식으로 채워졌다. 어딜 보나 시중 러브호텔의 싸구려 내부 마감의 전형성을 답습한다. 앵그르의 신고전주의 회화에 나오는 누드 도상이 뜬금없이 공간 내부에 비현실적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더구나 '단위'처럼 반복 등장하는 뒤엉킨 남녀의 나신이 가세하면서 여지없이 '그런 공간'이 러브호텔임을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작가 진술에 따르면 작품의 선명성은 오리무중 해진다. 작가는 러브호텔 내부를 구경한 경험이 없고, 「그런 공간」의 실내 모습을 스탠리 큐브릭 영화 속에 나오는 공간에서 차용했다고 진술하므로. 관찰자의 추정(선명성)과 영화 공간의 재현이라는 작가의 진술(모호성)이 충돌한다. ● 명시적인 성행위가 재현되진 않지만, 대학 4학년이던 2008년 유현경이 착수한 「일반인 남성 모델」연작을 섹스라는 큰 주제로 포괄하는 데에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일반인 남성 모델」이 논쟁적인 까닭은 비전문 모델 남성의 알몸을 재현해서가 아니라, 제작 과정상의 비일반성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작가와 신원미상의 남성(들)이 동반 여행한 결과물이다. 괴상한 스케치 여행이다. 이 연작이 유현경 작업 연보에서 분수령이 될 거라 나는 본다. (남성)화가와 (여성)모델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 발로였다는 작가 의도야 어떻건, 이 연작은 제도 비판적인데, 시각예술의 존립을 남근적으로 정당화하는 재현의 정치학을 가볍게 뒤틀어서다. 하지만 추정컨대 유현경이 그런 세심한 계산과 정당한 분노에 기초해 이 작업을 수행한 것 같진 않다. 아마 '순전한 호기심'에서 발가벗은 (남성) 모델을 응시하는 화가의 위치에 섰을 게다. 이 작업은 유사한 전례가 있다. 여성주의운동이 서구에서 급부상하던 1970년대 초 실비아 슬레이(Sylvia Sleigh)가 여성 누드가 다뤄지는 인습을 비웃듯 남성 누드모델을 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약술하면 여성 모델을 관음적 시선으로 처리한 신고전주의 명화의 관례를 뒤집어, 해당 그림(앵그르의 「터키탕」)에 등장하는 집단 여성 나체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집단 남성 나체로 채워 넣었다. 호응은 뜨거웠다. 그렇지만 재현 주체와 객체의 자리바꿈이라는 문맥에선 유현경과 동일하지만, 유현경 작업의 동력은 제작 공정에서 온다. 모델 공고를 올려 연락 온 신원미상의 일반인 남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모델 사례비가 별도로 책정되진 않고 여행 경비 일체를 작가가 전담하는 게 조건이란다. 그래도 선뜻 지원한 남성이 무려 20명에 달했다나. 섹스 담론을 선명하게 포함시키지 않지만 「일반인 남성 모델」연작은 섹스라는 대 주제에 포함시키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된다. 작품의 전제가 된 동반여행을 둘러싼 집요한 속세적 상상력 때문이다. 재현된 그림 속엔 숙박업소 실내에서 옷을 벗은 살집 잡힌 중년 남성들의 나체 입상이 보이고, 벗은 몸이 반사된 거울도 보인다. 정상적인 관객이라면 재현된 화면과 거울 속에는 잡히지 않은 20대 여성작가의 모습을 선명하게 상상하며 보리라. 유현경이 모든 그림 속 신원불명의 벗은 남성과 그 자리에 동반하고 있었으므로. 일반인 남성모델과의 그림 여행이 별 탈 없는 무사한 노정이었다는 작가의 덤덤한 진술을 보는 이의 심술궂은 공상은 모호하게 짓누른다. 또 다시 보는 이의 선명성과 창작자의 모호성이 작은 접촉사고를 낸다.

유현경_저는_캔버스에 유채_193.9×193.9cm_2010

2009년 개인전 「욕망의 소나타」를 거쳐, 2010년에 당도한 지점에 미로 형태 공간이 대형 화면 속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인상적인 몇 점이 있다. 그 시작은 초상화 연작에 몰두하던 2009년 완성된 「배산임수(背山臨水)촌」이나 더 가깝게는 「좁은 문」을 들 수 있지만, '미로 에로티즘'의 정점으로 2010년 작품 두 점을 들고 싶다. 제목마저 시사적인 「어른 세계」와 「학교」다. 「배산임수촌」부터 「학교」에 이르기까지 미로 에로티즘은 초대형 화폭에 촘촘하게 짜인 공간 구성 속에 익명인의 밀회를 무작위로 끼워 넣은 것으로 약술되리라. 밀집된 계단의 공간 처리라는 유사성 탓에 같은 해 제작된 「어른 세계」와 「학교」는 미묘한 공명으로 묶여 읽힌다. 특히 정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화면이 상향 수렴되는 「어른 세계」는 중앙 계단 양 편으로 다채로운 정사의 도식들을 화면에 흩뿌려놓고는, 중앙 계단의 정점에 십자가를 배치한다. 진부한 해석일 진 몰라도 선계(仙界)의 도상 휘하에 속계의 도상들이 분방한 난장판을 펼치는 양 보인다. 결과적으로 밀도 있게 산개한 속계의 욕망들이 성스러운 십자가의 허울을 더욱 무의미하게 몰아붙이는 형국으로 읽힌다. ● 유사한 해석은 미로형 계단으로 짜인 「학교」에도 해당될 게다. 복잡한 실내 계단 구조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지금의 서울미대 내부 구조를 보여준다. 상향식 계단들이 수렴된 지점에 문이 열린 교수 연구실로 추정되는 방이 자리 잡았다. 중앙 계단 양편으로 잿빛 계단과 닫히거나 열린 재학생 실기실 공간이 열거되어 있다. 꽉 짜인 실내구조에 괴이한 불균형을 일으키는 도상은 뜬금없이 화면 중앙에 출연한 어설픈 인체 데생이다. 남녀가 서로의 성기를 매개로 X자 형 체위로 엮인 모습이다. 유현경의 의도야 뭐건, 학내 위계상 최상단에 있는 교수(연구실)의 개방된 문은 양편에서 전개되는 학생 실기실의 침묵과 야유, 그리고 예기치 않게 등장한 정사에 밀려 위상을 대접받지 못하는 양 보인다. 이런 상상은 모호하고 불명확하지만 그래도 가능한 해석일 게다. 그녀 작업의 선명한 모호성이 그런 해석을 가능케 한다. 「어른 세계」에서 화면 정중앙 상단에 자리한 십자가 현관과 양편으로 산개한 다채로운 정사 장면으로부터, 일반적 시선은 당연히 산개한 익명의 정사 장면에 집중할 것이다. 유사한 구도를 취한 「학교」도 화면 정중앙 상단의 개방된 교수연구실(?)과 양편으로 산개한 닫히거나/열린 학생 실기실과 정중앙 정사 도상으로부터, 정중앙의 정사 도상과 미로처럼 꼬인 양편 계단 구조가 시선의 비중을 독차지할 게 분명하다. 「어른 세계」와 「학교」의 모태는 2009년 「좁은 문」으로 보인다. 근대적 벽돌 건축물 내부와 미로처럼 엮인 계단, 그리고 얼굴 없는 나체 입상들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잘 보이진 않지만 화면 정중앙 상단에 「어른 세계」와 「학교」처럼 그림 전체를 지휘통제 했던 도상과 같은 것이 놓여있다. 「좁은 문」의 중앙 도상은 살짝 벌린 여성기 같은데 잘 식별되진 않는다. 「어른 세계」나 「학교」와 유사한 해석을 유추해서 봐도 괜찮으리라.

유현경_일반인 남성 모델K_서울 마포구 합정동_캔버스에 유채_33.4×24.2cm_2009

2007년 「그런 공간」에서 시작한 익명 남녀의 정사 장면은 도식이나 단위로 간주될 만하다. 선명하지 않아 음란하지 못하고, 모호하지도 않아 정사임을 식별할 수 있는 그런 도상이다. 단위처럼 반복되는 유현경 그림의 정사는 때문에 외설적으로 느껴지기 어렵다. 도리어 정사 장면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일반인 남성 모델」이 에로틱한 잠재력을 한껏 품고 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다종의 정사 군집은 체위의 표본을 화면 위에 흩뿌려놓은 것 같다. 그로인해 유현경의 섹스 그림은 특정 개인의 선명한 경험에서 유래한 게 아닌, 불특정 다수의 섹스판타지의 모호한 집단 인상을 작가가 멋대로 각색한 결과로 파악하는 게 맞다. 작가가 화두를 어떻게 던지건 보는 이는 선명한 도상으로 수용할 게 명백하므로. ● 포르노그래피 도상은 제도 미술계 바깥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제가 더는 아니다. 영구적인 재현 객체인양 낙인된 여성이 성을 화두로 붙들어 재현 주체로 부상한 건 서구에서 이미 1970년께다. 그 후 보편적 섹스 담론에 자기 고백 코드까지 덤으로 얹은 강도 높은 여성 작가의 출연을 틈만 나면 지켜볼 수 있었다. 이들의 재현 공식은 대략 밑그림이 그려진다. 작가 개인의 과거사 나열, 거침없는 자기 노출, 여성권 회복이라는 선한 메시지 탑재(혹은 그렇게 해석하는 외부 관행).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인습에 개의치 않고 괴상한 독법을 고안해 성을 재구성하는 작가도 드물게 만난다. 그녀는 섹스를 일관된 주제로 점진적으로 다룬다.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은 초면의 일반인 남성과 그림 여행을 떠나게 그녀의 등을 떠민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유현경의 표현주의 화면은 끈덕진 안료 매질을 고스란히 살린 '그런' 주제를 꾸준히 취급했다. 안료의 거친 매질 탓일까, '그런' 주제의 선명도도 함께 높았다. 2011년 신작은 '그런' 주제의 동일성을 여전히 유지하되 화폭 위로 묽고 흥건한 안료가 흘러내린다. '그런' 주제의 선명도에선 예전 같지 않고 모호성이 증가할 게다. 그렇지만 역시 '그런' 주제를 '그런' 제작 동기로 밀어붙인 건 맞아 보인다. 암시장에서 건져 올린 소재는 보는 이의 일반적 태도와 만든 이의 비일반적 태도가 만나 신기루를 형성한다.

유현경_그런 공간 속 너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07

에필로그1. ● 육안으로 이번 출품작을 확인할 길이 없던 때, 작가에게 요청해 전송받은 이미지파일을 보자, 재현 대상보다 재현 주체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더라. 그녀가 직접 촬영해 보낸 이미지 파일은 예외 없이 초점이 빗나갔거나 살짝 흔들린 채 있었다. 고의일 턱은 없고 무심하게 찍어 보낸 결과로 보였다. 작가는 촬영한 이미지의 품질에 개의치 않고 보낸 것 같았다. 게다가 화폭 앞을 가리고 선 집기를 하나도 치우지 않고 고스란히 찍었더라. 이럴 수가! 당연히 재현 대상 보다 재현 주체를 향한 호기심 지수가 높아질 밖에. 이 일화를 통해 정상이기도 이상하기도 이 여성작가는 강도 높은 표현 주제를 반복하지만, 결과물을 대하는 태도에선 비 일반적이고 무념무상하리라 추측해봤다. 가시적으로 섹스라는 센 주제를 다루는 20대의 그런 여성 작가. 흔들린 이미지를 개의치 않고 전송하는 그런 작가. 억누르기 힘든 호기심을 동력 삼는 그런 작가. 귀납적 경험에 의존 않고도 산재된 이미지에서 충분히 창작 동기를 부여받는 그런 작가, 때문에 은밀한 정사를 도식적 단위로 반복 재현하는 그런 그림들. 에필로그2. ● 「어린 시절」은 강도 높은 작품군에 밀려 자칫 간과될 만한 게 유현경의 초상화 집착이다. 거친 붓질로 재현 인물의 캐릭터를 잡아낸 100장의 연작이 그 결과다. 비록 소품이지만 꾸준히 자화상에 몰입하는 것도 눈여겨 봐야한다. 2011년 자화상 신작은 기법에선 다르나 얼핏 프란체스코 글레멘테(Francesco Clemente)가 내놓은 대형 얼굴 그림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건 자신의 유년 시절을 그린 자화상 한 점이다. 화창한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 언덕에 우두커니 앉은 해맑은 소녀. 발갛게 상기된 얼굴은 동심의 가없는 반영 같기도, 그리던 20대 때의 심리적 혼란의 투영 같기도 하다. 이 자화상 소품이 이제껏 전개된 작업의 실마리라고 우기면 명백한 과장일 터이나, 한시적으로나마 그렇게 우기고 싶다. ■ 반이정

조민호_광장과 신화 The Square and the Myth_단채널 비디오_00:05:18_2011

물신 숭례문님의 재림을 보라 ● 숭례문 방화사건. 그것은 상상을 초월한 충격이었다. '대한민국 국보 1호 남대문'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일방주의에 분노하고 좌절한 한 국민의 돌발적인 복수행각으로 인해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온 국민이 목도한 그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대대적인 애도의 물결로 이어졌다. 그것은 애도의 표현을 넘어서 민족이나 애국을 상상하고 확산하는 제의였으며,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것으로 재생하고, 나아가 미래의 것으로 견인하려는 사회적 욕망의 표출로 나타났다. 숭례문 방화사건 이후에 형성된 일련의 공론장은 도시공간의 구조변동에 따라 상징적인 건축물이 도시의 행위자들에게 어떻게 상징권력으로 자리잡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해주었으며, 문화적 상징을 도구화하는 통치의 기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조민호는 숭례문 방화사건이라는 특수성을 매개로 한국인의 개별적인 사유와 심리는 물론이고 사회의 집단 서사와 집합 무의식이 내포하고 있는 보편성을 갈무리해내기 위하여 기록과 분석과 해석의 경계를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조민호_Episodes-익명의 기념비 Episodes-The Monument of anonymity_단채널 비디오_00:06:22_2011

조민호는 방화사건이 일어난 2008년 이후 지난 4년동안 숭례문 일대에서 벌어진 사후행사들을 꼼꼼하게 챙겨 사건의 단면과 내막, 현상과 본질, 역사성과 현장성을 관통하는 다양한 논점을 제시했다. 그가 작업 전체를 탄탄하게 구조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정교한 기록 작업을 진행한 덕분이었다. 그는 사진과 영상,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 등을 두루 꿰었다. 「랜드마크(Landmark)」와 「리멤버런스, 메모리얼(Remembrance, Memorial)」은 가림막 밖과 안을 담은 사진이다. 전자는 가지런한 패널구조의 가림막 외관이며, 후자는 그 내부의 복원공사 현장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참혹한 화재현장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과 가려졌던 현장을 방문한 시민들의 기념촬영이라는 안팎의 장면을 통해서 치부를 숨기려는 시각과 그 틈새를 비집고 무럭무럭 자라난 물신화의 실천 과정을 대비해서 보여주는 작업이다. ● 숭례문 방화사건이 지금까지 공론장으로 작동해온 데는 그것을 단순한 건축물 전소와 복원 공사로 보아 넘기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국민적 염원의 장으로 이끈 대대적인 퍼포먼스의 역할이 컸다. 조민호는 이 대목에 주목하여 애도의 현장을 초현실적인 퍼포먼스의 장으로 전환한 메커니즘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광장과 신화」는 49재, 1주기, 출범식, 발대식, 조인식, 국민추모제 등의 숭례문 기념행사들을 기록한 영상들을 교차편집한 것이다. 그것은 아리랑과 뽕짝, 염불, 애국가 등이 뒤섞인 초현실주의 퍼포먼스이자 전근대와 근대, 종교, 국가 등이 뒤섞인 혼성과 키치의 극치이다. '호명-구호-집합-결속'으로 이어지는 서사구조 속에서 '숭례문 만세와 대한민국 만세,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 만세'를 부르는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단면을 재구성한 이 비디오 클립은 애도의 코드로 국가와 민족을 발견하려는 기획의 실천 과정을 보여준다.

조민호_집단과 투사 The mass and the projection_단채널 비디오_00:04:45_2011

「컨폼(Conform)」은 화환으로 만든 탑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애도의 물질형식적 표현인 근조화환의 스타일을 차용해서 물신 숭례문님께 바쳐진 기념비이자, 숭례문의 신화화에 동참한 동시대인의 마음을 담은 상징조형물이다. 대나무 화환 지지대로 만들어진 6층짜리 근조화환탑은 전시기간 내내 서서히 시들어가며 개인과 집단의 욕망을 대리표상한다. 숭례문 퍼포먼스의 핵심 코드는 엄숙과 장엄이다. 「집단과 투사」는 숭례문 칸타타, 애국가, 조국찬가 등이 울려퍼지는 숭례문 복원기원 음악회의 사운드를 중심으로 숭례문 가림막의 외관과 익명의 인물들이 집중조명을 받으며 경건한 표정으로 전면을 응시하는 고화질 영상작업이다. 장엄한 사운드와 엄숙한 얼굴표정 속에서 집단정신을 직조하는 엄숙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이다. 숭례문에 대한 개인과 집단의 투사가 역으로 우리의 사유와 감성을 재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조민호_Landmark_아카이벌 디지털 프린트_75×100cm_2008

숭례문 방화사건이 일어난 2008년에 만든 영상 「꽃을 멘 남자」는 조민호 자신이 몸을 쓴 퍼포먼스의 기록이다. 그는 남대문 티셔츠를 입고, 숭례문국민참여라는 문구가 적힌 화환을 등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한다. 건설현장을 지나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일산 덕은동까지 열심히 달린다. 서울에서 고양까지 가는 길에 '남대문을 기억하라'는 보상금 시위 지역 플래카드를 만나기도 한다. 대규모 택지개발 현장까지 달리고 또 달린 그는 로켓발사대에 올라 로켓 대신 자신의 몸을 자리바꿈(depaysement) 한다. 그러나 그의 탈출시도는 실패한다. 그는 최초의 출발 지점에 불시착해 옥탑집 마당에 처참하게 널부러진다. 토지수용 보상금에 불만을 품고 대한민국의 가장 저명한 문화아이콘인 국보 1호 숭례문을 전소한 방화범 ㅊ씨를 연상하게 하는 이 작품에는 자본의 자기증식 논리에 역행하는 소외된 개인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전체의 집단최면을 매개한 한 개인의 이상행동 이상으로서의 방화사건에 대한 블랙유머가 짙게 깔려있다.

조민호_꽃을 맨 남자 The man with his blossom_단채널 비디오_00:08:42_2008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파생한 다른 사건을 들춰내서 동일한 본질의 다양한 현현을 가려내는 일은 본래의 사건을 다각도의 시각으로 조명해서 그 본질을 더욱 또렷하게 보이도록 도움을 준다. 「증식된 벙커」 연작은 숭례문 인근에서 발견된 벙커를 신촌, 세종로, 마포, 인천 송도 등 도시 곳곳의 공사 현장에 합성한 사진들이다. 냉전의 추억을 대변하는 지하벙커를 동시대의 도시 여러 곳에 이식함으로써 냉전 이데올로기를 희화화한다. 그것은 숭례문 광장이 거쳐온 냉전시대의 부산물을 통해서 역사적 상징물로서의 좌표를 확인해주는 일이다. 「익명의 기념비」는 세 가지 이야기를 이어놓는다. 나로호의 발사장면과 대괴수 용가리의 대사가 결합한 '에피소드 01 밀담', 폐품으로 만든 벙커 주변의 볏그루를 불태워 억압기제로부터 탈출하려는 현대인의 심리를 표출한 '에피소드 02 불안', 그리고 박정희 흉상 보존회 등 보수인사들의 인터뷰와 벙커 내부를 줌인(zoom-in)하는 '에피소드 03 밀실' 등이 그것이다. 컬트무비 같은 낯선 서사형식으로 풀어낸 이 벙커이야기는 내면화한 냉전의 기억을 들춰낸다. ● 방화사건 이전의 숭례문은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친근한 건축물(物)이었으나, 사건 이후에는 민족을 표상하는 건축물신(物神)으로 거듭났다. 숭례문은 서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상징에서 대한민국의 민족적 정체성과 역사를 대표하는 신화로 그 지위와 역할을 전환했다. 조민호는 숭례문 방화사건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한국사회의 트라우마와 콤플렉스를 들춰냈다. 그것은 숭례문 방화사건을 둘러싼 사건들의 기록이며, 방화사건 이후에 우리사회에서 나타난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문화인류한적인 재해석이다. 그것은 숭례문이라는 물신에 대한 장대한 소셜 퍼포먼스에 대한 기록이자 분석이며 해석이고, 나아가 개인의 개별심리와 사회의 집단심리에 관한 성찰이며, 개인의 개별사유와 사회의 집단사유에 관한 통찰이다. 여기 자그마한 파편들을 주섬주섬 모아서 숭례문 사건의 전모를 밝힌 조민호의 숭례문 리포트가 있다. 물신 숭례문님의 재림을 보라! ■ 김준기

Vol.20110727b | 2011 OCI YOUNG ARTIST-유현경_조민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