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空 상像 _ 어디에나 있되 텅빈 근대의 상像

서영주展 / SEOYOUNGJU / 徐瑛珠 / photography   2011_0727 ▶︎ 2011_0811

서영주_화순 춘양초월평분교_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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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727_수요일_06:00pm 2011_0727 ▶︎ 2011_0802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초대일시 / 2011_0806_토요일_05:00pm 2011_0805 ▶︎ 2011_0811 관람시간 / 10:00am~06:30pm

전북예술회관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 1가 104-5번지 6전시실 Tel. +82.63.284.4445 www.sori21.co.kr

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초등교사로 12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농어촌 지역의 작은 학교에 근무를 자주 하였으며 학교와 그 학교 운동장에 사람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전북 지역은 폐교가 유난히 많다. 폐교란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말이다. 그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는 것은 학생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농촌 지역의 몰락을 의미한다.

서영주_영광 묘랑초_피그먼트 프린트_60×90cm_2009

폐교의 역사는 한국현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 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고 그 사람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인 6,70년대 농촌지역에 수많은 학교들이 세워졌으며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분교도 많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를 지나고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농촌지역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여 학교 입학자도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80년대 중반 산간지역 분교부터 폐교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2000년대 들어서면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전북지역의 경우 50%가 넘는 300여개의 학교가 폐교가 되었다.

서영주_진안 좌산초_피그먼트 프린트_40×60cm_2008

학교에는 사람들이 남기고 떠나간 흔적이 있다. 지우려고 해도 사람이 떠난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도록 많은 흔적을 남겨놓는다. 학교의 역사가 긴 학교일수록, 마을 주민들의 참여가 많았던 학교일수록 자취가 많이 남겨져 있다. ● 초등학교에는 유독 동상들이 많이 세워졌다.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상이 들어서며 차례로 이승복 어린이상과 건강상, 책 읽는 소녀상, 동물모형 등도 운동장에 들어선다. 초등학교의 동상들은 학교장이나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학부모와 마을주민, 성공한 모교 인사의 후원을 받아 1975년경부터 1985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조성이 되었다. ● 시골 폐교를 찾아다니다 보면 어렵지 않게 학교 건물 벽에 쓰여진 구호들도 보게 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자', '반공방첩', '정직 질서 창조' '참되고 떳떳한 한국인' 등 지금의 사회분위기와는 너무 다른 언어가 불과 얼마 전에, 특히 반공을 강조하는 구호가 학교벽면에 써진 것을 보면 그 시대가 요구하는 이념이 학교라는 공간을 통해서 쉽게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영주_고흥 도덕초오마분교_40×32cm_2009

한시대의 필요에 의해 문을 열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일찍 문을 닫아버린 학교들... 유년 시절의 꿈과 추억이 담겨있는 소중한 기억의 공간인 초등학교와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이 남긴 소중한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은 초등교사인 나에게 주어진 숙명과 같은 작업이었다. 폐교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학교가 무엇이었으며 지역 사회에 있어 학교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아직은 논의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 서영주

서영주_순창 답동초_100×150cm_2008

공空상像 _ 어디에나 있되, 텅 빈 근대의 상像 ● 서영주는 미술교육을 전공한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창작활동을 전개한 사진가이다. 지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사진가로, 자신의 몸담은 일터와 공간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사회의식의 시각적 결합에 노력해왔다. 그의 사진에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속성을 갖는 것은 그의 삶과 사진, 현실과 미술의 관계가 자신이 몸담은 공간이 출발이자 귀착지여서 일 것이다. 그래서 치기 어린 관념도, 호사도 허락되지 못했을 것이고, 주제에 대한 통찰과 고뇌가 발 딛은 일터에서 체현되니 작가의 외향만큼이나 작가의식과 매체를 운영하는 기법도 낭창하게 소통되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 『공空상像』은 한 때 그(나)가 머물렀을 곳이 사라지거나 여백(공터)으로 남아 동시대 우리의 기억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현재의 관점에서 형상화한 것이다. 무엇을 망각하고 기억하느냐는 정체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작가는 폐교의 이미지들을 통해 밀레니엄 이후 급격하게 대형화, 집중화되고 있는 현대의 삶의 공간을 그리움의 여백으로 비워내고 있다.

서영주_무주 부장초_100×150cm_2008

1979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서영주의 유년의 이미지는 아침마다 친구들이 외우는 국민교육헌장, 정오의 싸이렌 소리로 선명할 것이다. 조회 때면 국민체조로 신체단련을 하고, 왼 가슴에 오른 손을 얻고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음을 재확인했을 것이다. 세종대왕, 이순신, 이승복이 굽어보는 가운데 운동회를 치렀고「전과」와「탐구생활」을 표지가 닳도록 보았을 것이다. 1960년에서 80년대 '우리' 학교의 풍경은 대개 학교마다 세워진 동상(모뉴멘트monument)과 국민교육헌장, 국민체조로 단련된 비슷한 이미지일 것이다. 내 기억 속에선 학교 앞 네거리에 위치한 '근대화 상회'라는 가게 이름으로 이 모든 소리와 이미지가 한꺼번에 압축된다. 중․고교 시절엔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을 치르고 90년대 학번으로 대학에 입학해 '서태지'와 '서편제'를 한꺼번에 흡수하며 어느 순간 시간 개념은 다차원적으로 모호해졌다. 근대와 탈(후기)근대는 내겐 불연속적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를 보냈을 서영주도 냉전의 표상 이승복과 충효와 애국심의 상징 이순신, 새마을 운동의 산물 신작로와 양옥집의 갈라진 시멘트 틈에서 서늘하게 뿜어 나오는 바람에 대한 기억은 놓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서 설득과 공감의 힘이 분명해지나보다. '무엇을, 왜 찍었는가?'에 대한 답이 참 명쾌한 것이다. 그것은 그가 왜 '지금․여기'에서 작업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명쾌한 주제의식은 참신과 역동을 낳으며 범박한 소재주의를 아슬 하게 비껴가고 있다. 그것은 또한 사진의 폐쇄회로를 넘어 관객의 삶으로 흘러 들어와 미적 향수를 자극하게 하는 힘의 연원이 되기도 한다.

서영주_부안 보림초부림분교_60×90cm_2008

전라도의 폐교를 수년째 촬영하고 있는 서영주에게 그 땅은 유년의 고향이고 일터이자 단란한 집이 있는 곳이다. 그러니 그의 사진 속에 풍화된 시간과 공간에서 발화하는 서정과 서사는 높은 밀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출발이 그러하니 공통의 시간대를 거쳐 온 사람들에게 이해와 공감은 클만하다. 사진 속에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고, 작품을 통해 동시대인들에게 말 걸고 질문을 퍼부으면서도 조급함과 과격함이 보이지 않는다. 소음과 공해로 들끓는 도시 한 복판에서 보는 그의 사진은 마치 기억의 유적을 보는 듯하다. 또는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텅 빈 공허로, 유한한 한계상황을 보여주며 쓸쓸하기까지 하다. 구체적인 상像이었다가 거대한 추상으로, 공상空像으로 팽창되며 다시 묘한 여백으로 남을 때도 있다. 이것이 『공空상像』전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 최연하

Vol.20110727c | 서영주展 / SEOYOUNGJU / 徐瑛珠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