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바람바람

SPACE K 과천 오픈展   2011_0729 ▶ 2011_0831 / 일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강성훈_강주현_나호 겐마 노동식_류호열_마종일_윤정원

주최 / 코오롱그룹 책임기획 / 아트레시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K_과천 SPACE K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1-23번지 코오롱타워 1층 Tel. +82.2.3677.3105 www.kolon.co.kr

『바람, 그 공기의 드라마』 ● 바람이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원질(原質)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근본 원리를 밝히고자 철학자들이 경계 없이 활동하던 고대 그리스. 이 시대 자연 철학자들은 바람을 비롯해 물, 불, 공기, 흙과 같은 자연물이 우주의 궁극적인 원질이라며 저마다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논리(logos)를 통해 학을 이루고자 했던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근거나 증명은 조리 있는 스토리텔링에 의지하는 편이었다. 일례로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는 신적인 것으로서 공기로부터 신들이 만들어지며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결합시킨다"고 말하면서, 숨이 생명의 근본이듯 공기가 우주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말에서 우리는 우주의 근본 요소보다는 신화적 상상력을 발견하게 된다. ● 이 같은 서사적 과학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轉回)'를 거듭하면서 우주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자 이내 폐기되었고, 지금에 보다시피 바람에 대한 과학적 이론은 기상학적인 관심에 한정되게 되었다. 대신 바람의 신화적 상상력은 낭만주의—좁은 의미로서의 사조가 아닌 이성중심주의에 반(反)하는—성향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으로 꾸준히 인용되어왔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봄의 전령사인 제피로스(Zephyros)가 불어넣는 미풍은 생명과 소생의 바람을 은유하는 한편, 제리코(Thodore Gricault)나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그림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광포한 폭풍과 태풍은 죽음과 공포를 상기시킨다. 특히 독일의 낭만파 화가 프리드리히(David Friedrich)는 인간이 결코 제어할 수 없는 자연의 압도적인 풍광과 파괴적인 바람 앞에 선 인물을 통해 숭고미(崇高美)라는 미적 취향의 정점을 회화화했다. 고전적 미의 범주에서 벗어난 이 숭고미의 개념은 로마시대에 롱기누스(Kassios Longinos)가 정립한 이후 조명 받지 못하다가 낭만주의를 거쳐 현대 철학자들의 관심을 새롭게 이끌었다. ● 그 가운데 바람에 대한 상상력 넘치는 수사(修辭)를 현대에 가장 잘 계승한 이는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이다. 철학과 과학, 문학을 가로지르는 그의 이채로운 학문 편력은 '운동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부제가 붙은 저서 『공기와 꿈』에서 예의 바람에 대한 단상(斷想)들을 폭넓은 시각에서 접붙이고 정교화하여 독특한 경지에 올랐다. 그렇다고 그가 바람에 대한 기계적인 정의나 닳고 낡은 통념 따위를 그저 폐기하는 데에서 손쉽게 출발한 것은 아니다. 되려 근본 질료로서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되 감각을 열어 그 "물질적 상상력"의 힘을 온전히 느껴보라고 권한다. 그에게 바람은 범속의 "수평적" 생활에서 벗어나 "수직화"시키는 몽상을 통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원소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 '바람바람바람'은 이렇게 바슐라르의 수혜를 받고 있다. 물론 고대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바슐라르까지 이어진 물질적 상상력의 계보도 함께 전제한다. 전시는 그 감각을 환기시킴으로써 "열린 상상력으로의 여행"에 초대한다.

강성훈_Wind Rhinoceros II_구리, 스테인리스 스틸_130×600×150cm_2010 강성훈_Wind Eagle_구리_8×20×80cm_2011 강성훈_Wind Hippo_구리, 스테인리스 스틸_100×240×220cm_2011

그 열린 상상력으로의 여행에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하는 작가는 강성훈이다. 일련의 '바람 동물' 연작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직접적이며 적극적으로 바람을 표현한다. 그는 구리와 스테인리스 스틸과 같은 금속재를 가다듬어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듯한 동물의 형상을 구현한다. 마치 브랜드 아이덴티티처럼 귀에 쏙 들어오는 '윈디멀(Windymal)'은 강성훈 조각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이름. 바람의 가벼운 속성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주로 평면감과 부피감을 부여하는 재료를 선재(線材)로 운용하는 수법은 그의 타고난 조형 감각과 지난한 노동이 동반되어 결코 무겁지 않되 진중한 바람 동물을 창출해낸다. 마치 허공에 손으로 그린 흔적을 그대로 동결시킨 듯한 기운은 바람의 변덕스러운 속성까지 담아내며 환각적 환영을 자아낸다. 이 같은 일루전(illusion)은 어떤 특정한 동물이 아니라 지극히 이상화된, 개별 종(種)의 이데아적 형상을 구현함으로써 한층 심화된다. 강성훈의 윈디멀은 말 그대로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흐름을 감쪽같이 시각화하며, 시간과 속도를 공간적으로 경험케 한다.

강주현_SKIN SUIT Female_PVC, 레진, 디지털 프린트_170×90×50cm_2010 강주현_Drawing Female_종이에 잉크_60×40cm_2010 강주현_SKIN SUIT N.1_PVC, 레진, 디지털 프린트_70×50×50cm_2011 강주현_Drawing N.1_종이에 잉크_44×54cm_2010

선재를 운용한다는 점에서 위와 매체적 맥락을 함께 하는 강주현은 이른바 '사진 조각'이라는 장르적 실험으로 다른 접근법을 보인다. 인화한 사진을 가닥가닥 테이프처럼 가공하여, 레진으로 만든 오브제와 결합시킨 그의 사진 조각이 구현하는 것은 주로 인체와 이를 감싸는 의복과 소품들. 마치 SF영화에서 공간 이동이라도 하려는 듯 온전한 형태의 오브제를 휘감은 가닥 사진의 소용돌이는 유(有)의 공간을 향해 서서히 형체를 드러낸다. "내가 너의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라는 구약성서의 구절처럼. 하지만 들면(入) 필히 나는(出) 것이 바람 아니던가. 죽은 자를 살려내는 신의 입김이 영원히 머물진 않을진대, 어쩌면 강주현의 소용돌이는 역으로 무(無)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로 그 찰나일지 모른다. 생성이냐, 사멸이냐. 그 경계의 혼재와 모호함은 강주현이 시도해온 교차적인 장르 실험과 맞닿아있다. 사진과 조각, 평면과 입체, 인체와 의복은 생성과 사멸은 물론 나아가 현존과 부재라는 이항대립의 개념을 개입시키며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호 겐마 Genma Naho_Step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09 나호 겐마 Genma Naho_Contact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나호 겐마 Genma Naho_Head For_캔버스에 유채_91×117cm_2010

일본 작가 나호 겐마는 이번 전시의 주제와 가장 직접적으로 조응한다. 그는 바람의 종류를 예민하게 선별한다. 때로는 고무적이고 때로는 파괴적이며 때로는 위로가 되는. 바람의 '표정'을 그리고 싶었노라 조용히 고백하는 작가는 이렇게 선별한 바람을 조심스레 변주해나간다. 침착하되 대담함이 엿보이는 붓질과 무겁지 않은 색채를 일관되게 전개하는 그의 변주는 그 미묘함으로 인해 변화의 움직임이 한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무언가 직접적인 암시라도 받아야겠다면 작품의 제목을 보라. '발걸음', '평지', '접촉'. 그 꾸밈없이 간명한 단어 선택에서 우리는 작가의 배려를 발견하게 된다. 바람과 바람이 부는 그곳, 그리고 거기에 어김없이 홀로 서 있는 한 사람. 작가는 수식적 여구(麗句)를 자제함으로써 커다란 캔버스 화면 가득 펼쳐진 바람의 표정을 직접 느껴보라고 제안한다. 물론 바람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노동식_에어쇼_솜, 철사, 혼합 재료_가변설치_2007 노동식_카운트다운_솜, 철사, 혼합 재료_가변설치_2007 노동식_날아라 두근 두운_솜, 철사, 혼합 재료_가변설치_2007

노동식은 자신의 설치 작품이 유년의 기억에 대한 발로라고 말하지만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구친 그의 비행기를 보노라면 일탈이나 탈출에 대한 갈망이 시각적으로나마 시원하게 해소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조금 주의를 기울여 들여다보면 작품의 주인공이 비행기가 아니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유난히 부각된 공중의 구름과 눈, 안개, 그리고 연기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인 솜으로 재현되곤 한다. 이 의미심장한 모티브들은 어린 시절 가업이었던 솜틀집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이를 비단 자신의 유년에 한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에 남겨진 과거에 대한 흔적과 혼재된 현재로 확장시키는 하나의 촉각적 단서로 삼는다. 손에 잡힐 듯 말 듯한 부정형(不定形)의 그것을 노동식은 이렇게 표현한다. "모락모락", "몽실몽실", "사각사각"…. 은연 중 엿보이는 그의 수사적 관심은 마치 바르트(Roland Barthes)의 '뭉툭한 의미(obtuse meaning)'를 인용하는 듯하다. 비행, 그리고 기억과 무의식의 흔적들을 통해.

마종일_After Having A Wonderful Dinner With Beautiful People, He Went Back To Place To The Place He Was Supposed To Belong To_채색된 나무, 로프_가변설치_2009 마종일_Wow Baby, That Sounds Fantastic and You Look So Beautiful Indeed!_ 채색된 나무, 로프_가변크기_2010 마종일_To You, A Little Bigger Than Sweet Summer Pink Peach_나무 스트립, 스트링_가변크기_2008

마종일은 얇게 편을 낸 나무와 대나무 줄기를 엮어 공간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작가 스스로 '직조 조각(woven sculpture)'이라 칭하지만 그 수공적 어감과 달리 그의 설치 작업은 상당한 스케일과 현장성을 요한다. 설치 장소의 맥락에 따라 달리 조우하게 되는 그의 작품은 장소에 반응하고 공명한다. 이 같은 장소 특정성(site-specific)은 나무 띠와 줄기를 즉흥적으로 엮고 짜고 묶어내는 역동성적 퍼포먼스와 즉흥성을 동반한다. 요컨대 직조 행위가 곧 작업이자 작품이 되는 셈이다. 기존의 건축적(실내) 혹은 환경적(실외) 상황에 탄력적으로 응하는 그의 작업은 맥락 속에서 공간을 새롭게 재편한다. 상당한 공간 점유력에도 불구하고 결코 압도하지 않는 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친자연적인 재료의 속성 때문일까. 공간에 드로잉을 하듯 전개되는 그의 작업은 머물다 이내 사라지는 바람처럼 채움과 비움이 자유롭다.

류호열_Baum_HD19201080pixels, 44100Hz 16bit stereo_00:03:00_반복_2011 류호열_Kampf_3D 프린트 RP_35×25×20cm_2009 류호열_Flughafen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05

옛 사람들은 바람을 청각적으로 인식했다고 하는데, 그 우리말 어원이 바람의 소리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어쩌면 류호열에 힘을 실어줄 지 모르겠다. 그의 영상 작품 「Baum」에서 인공적인 배경에 우뚝 서있는 창백한 나무 한 그루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며 소리를 낸다. 그는 가히 자연의 지표(index)라 할 만한 나무와 바람을 내세운 가공의 영상 이미지를 통해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간극을 더욱 넓히면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감각의 경험을 선사한다. 이 같은 바람의 디지털적 환원은 움직임에 대한 그의 집요한 천착에서 비롯되었다. 디지털 매체로 단단히 무장한 그는 영상의 '동적' 속성과 조각의 '촉각적' 물성을 동시에 성취하고자 3D 드로잉을 활용한다. 뒤샹(Duchamp Marcel)의 1913년 회화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裸婦)」를 연상시키는 그의 3D 드로잉은 움직임의 흔적과 과정을 입체적으로 촉각화한다. 그의 작품은 재현의 역사로 점철된 서양 미술사를 전복시키려는 뒤샹의 의도를 다시 불러들여옴으로써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술이 피할 수 없는 본질적인 문제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매체임을 상기시킨다.

윤정원_Make Heav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59cm_2010 윤정원_Make Heav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00×240cm_2002 윤정원_Make Heaven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4×259cm_2010

윤정원은 오브제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창작적 근원은 초기 시절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작업해온 회화에서 찾을 수 있다. 「Make Heaven」라는 일련의 타이틀로 전개되는 작품은 윤정원식의 발랄한 천국 만들기가 부유와 비행을 통해 그려진다. 이 풍경은 우주의 신비가 벗겨지기 전 에테르(ether)라는 신비의 물질로 가득 차있을 거라 믿었던 고대인들이 상상했던 바로 그 세계를 재현한 듯하다. 윤정원은 하늘 넘어선 그 높은 곳의 실체가 허무하게도 진공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 그들을 자극한, 하지만 여전히 현대인에게도 유효한 상상력을 기린다. "아주 먼 곳이나 아주 높은 곳으로 갈 때 사람은 자기 자신이 열린 상상력의 상태에 있음을 잘 깨닫게 된다. 상상력 전체가 대기의 실재들을 갈망하며, 하나하나의 인상마다 새로운 이미지들을 부여한다." 다시 한번 바슐라르를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 사전에서 정의하는 바람은 이렇다.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너무 건조한 나머지 예술과는 전혀 무관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바람바람바람'전은 고대 자연 철학자들처럼 바람의 물적 속성에서 영감을 얻었다. 뿐더러 변화나 파괴, 일탈 등과 같은, 때로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상징과 은유일지언정 이 같은 바람의 계보학을 굳이 이탈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다른 것이라면 이 같은 유산에 대한 상투적 모방과 이에 못지 않은 습관적인 혹은 관습적인 수용으로부터 바람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하고자 한다는 점일 게다. 바슐라르도 "원소들의 에너지를 깊이 체험해보지 않은 채 그 원소들의 분노에 대해 말해대는 바로 그것"에 대해 경계를 표했다. 우리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작품으로 만들기 직전의 상태, 창작의 바로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 "공기의 드라마"를 눈과 귀와 피부로 함께 느껴보기를, 그리하여 진정 우리 안에 새로운 바람을 맞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김의경

Vol.20110729f | 바람바람바람 - SPACE K 과천 오픈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