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세레나데

고기현展 / KOKIHYUN / 高琦賢 / painting   2011_0803 ▶ 2011_0813

고기현_사랑의 세레나데_순지에 분채_46×38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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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03_수요일_04: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_12:00pm~05:00pm

장은선갤러리 JANGEUNSUN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번지 Tel. +82.2.730.3533 www.galleryjang.com

미키의 꿈이 그린 '사랑의 세레나데' ● 고기현의 작품은 보고만 있어도 미소가 절로 난다. 담백하고 감미로운 색채와 부드러운 터치로 마무리되어 더욱 정겹다. 결이 고운 전통한지인 순지 바탕화면에, 역시 고운 가루안료인 분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채색화의 제작과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고기현의 작품이 만들어낸 색조와 층위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알 것이다. 적어도 엷은 농도의 채색과정을 몇 번에서 많게는 수십 번을 반복해야 얻어진다. 그래서 한국화 장르에서 전통 채색화 기법을 애용하는 작가의 인내력을 높이 사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점만으로 고기현의 작품이 풍기는 편안함과 정겨움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과연 고기현의 작품이 발산하는 숨겨진 매력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기현_황혼사랑-오손도손_순지에 분채_46×38cm_2011

#1. 친근한 캐릭터의 등장 ● 고기현 작품의 주인공은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다. 쥐를 의인화한 미키는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회사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심벌 캐릭터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 작가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 미키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메신저이며, 가장 순결했던 영혼의 증표이다. 가령 요즘 어린 아이들에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뽀로로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뽀로로가 뽀통령(뽀로로와 대통령의 합성어)과 뽀느님(뽀로로와 하나님의 합성어)으로 불리고 있듯, 미키 마우스 역시 지금의 40~50대에겐 절대적인 존재감이었다. ● 고기현 작가가 작품 속에서 미키를 어떤 성격으로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제 극중 미키의 성격은 덤벙대서 무언가 잘 잊어버리거나, 정의감이 강해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보면 말리고,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며, 남을 배려하는 세심한 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고 작가는 이 후자의 성격을 그림에 담고 있다. 작품에 등장한 미키를 바라보고 있으면 괜히 미소를 짓게 되고, 그림 속 주인공과 동무를 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마도 미키의 표정에서 작가가 전하는 프러포즈를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고기현_황혼사랑-알콩달콩_순지에 분채_46×38cm_2011
고기현_청산에 살으리랏다_순지에 분채_91.5×73cm_2011

#2. 넉넉한 위안의 웃음코드 ● 고기현이 그린 미키 그림의 주요 무대는 일상과 꿈의 경계이다. 엊저녁 꿈이나 얼마 전에 지나쳤을 것 같은 일상풍경에 미키 혹은 동료들이 등장한다. 들꽃과 풀숲이 우거진 길가, 온갖 꽃이 만개한 노천탕, 거대한 꽃 봉우리의 식물농원에 선 농부 미키 등 장면들은 하나같이 마치 우리 인생사를 보는 듯하다. ● 또 하나 언제까지나 젊은 유년의 벗일 줄 알았던 미키도 세월의 흐름을 빗겨가지 못해서일까, 모든 미키는 청장년에서 노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캐릭터를 연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미키가 처음 우릴 찾은 것은 1928년이고, 그때 이미 차를 운전 할 수 있었으니 지금은 적어도 90세가 훌쩍 넘었을 것이다. 바로 고기현은 꿈속만의 미키가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나이 들어가는 미키 마우스, 이런 고기현의 미키는 많은 이에게 큰 위안을 줄 것 같다.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마저 화가 지망생 시절 미키를 스케치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 작품 「건강하세요」는 노천탕에서 건강한 노익장을 과시하는 노인 미키와 그 뒤로 할머니가 된 여자친구 미니 마우스가 함께 등장한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자연인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보는 듯해 웃음이 절로 난다. 수건과 꽃을 든 미니와 활짝 웃는 미키가 서로 얼마나 신뢰하고 존중하는 지 여실히 보여준다. ● 작품 「청산에 살으리랏다」는 살맛나는 인생의 열정을 담았다. 태양처럼 붉은 꽃봉오리를 배경삼아 농부의 모습으로 선 미키는 근면성실의 결실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잘 말해준다. 또한 아무리 굵은 줄기를 가졌다하더라도 계단처럼 옆으로 뻗은 이파리는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의 이치일 것이다. 인생에 있어 정상을 향한 무한질주의 끝은 황혼기의 영광. 고기현은 부지런한 농부의 삶을 통해 무엇이 옳고 바르며, 희망하는 영광의 길로 인도할 인생의 지혜인지를 전하고 있다.

고기현_건강하세요_순지에 분채_32×41cm_2011
고기현_황혼사랑-다정다감_순지에 분채_32×41cm_2011

#3. 화해와 사랑의 세레나데 ● 고기현은 얼마 전까지 전주에서 보낸 '한옥시절'의 9년을 가장 큰 아쉬움으로 꼽는다. 물론 전주시절은 작가 자신에게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가꾸는 농부'가 없는 농촌에서 큰 활력을 기대할 수 없듯, 한옥 마당에 핀 무수한 들꽃이 전하는 진정한 의미조차 몰랐던 자신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다. ● 작품 「사랑의 세레나데」는 그림을 통한 고백이며 화해의 제스처이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사랑의 세레나데를 멋지게 부르고 있는 미키의 등 뒤 손엔 꽃송이가 들려 있다. 노래가 끝나면 그 꽃은 주인공을 찾아 갈 것이다. 전주의 한옥마당을 지극히 아꼈던 남편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왜 그때는 그 사랑의 세레나데를 듣지 못했을까. 자신의 분주함을 묵묵히 지켜주던 남편과 잊히기엔 너무나 소중한 지난 전주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 작품 「황혼사랑」 시리즈는 희망 가득한 미래의 꿈을 그리고 있다. 천도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린 나뭇가지에 누워 지난 세월을 회상한다거나, 산삼 꽃 향을 맡으며 서로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는 정겨운 장면, 오붓하게 단둘이 마시는 맥주 한 잔의 맛이 얼마나 좋은지 우주여행이라도 온듯하게 묘사한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둘만의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미키와 미니의 마음이 곧 고기현의 바람일 것이다.

고기현_황혼사랑-간질간질_순지에 분채_46×38cm_2011

살펴본 바와 같이, 고기현의 미키 마우스 연작은 매우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같은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 개개의 작품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연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스토리텔링을 지녔다. 인생의 긴 여정을 마치 미키의 성장과정에 비유하듯, 낯설지 않으면서도 일상의 편안함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지난번 전시에 비해 감성적으로 한껏 성장한 미키의 모습에서 고 작가의 작품을 통한 메시지가 잘 전해진다. ● 결국 고기현의 미키는 과거에서 현재로, 다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진행형의 이야기 구성'을 통해, 우리 삶의 한 단편을 축약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서양적인 대중 캐릭터에 작가 특유의 해석을 거쳐, 동양과 서양감성의 묘한 접점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또한 미키가 그리고 있는 미래의 꿈을 향한 열정은 고스란히 고기현 작가 자신의 독백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미키의 목소리를 빌어 그녀를 응원한 모든 이들에게 그녀만의 진심어린 사랑의 세레나데를 건네고 있는 지도 모른다. ■ 김윤섭

Vol.20110803c | 고기현展 / KOKIHYUN / 高琦賢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