塔의 印象 The Impression of the Pagoda

유윤빈展 / YOOYOUNBIN / 劉胤彬 / painting   2011_0803 ▶ 2011_0809

유윤빈_탑의 인상_한지에 수묵담채, 동박_146×208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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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빈 홈페이지_www.ybinbin.com

초대일시 / 2011_0803_수요일_05:3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 10:00am~06:00pm 전시 마지막 날 10:00am~01:00pm

갤러리 라메르 GALLERY LAMER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제1전시실 Tel. +82.2.730.5454 www.gallerylamer.com

탑은 과거나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생성이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이다. ● 절 또는 벌판 한가운데 무념무상하게 서 있는 탑. 탑은 누가 왜 만들었을까? ● 탑은 우리들에게 정성으로 쌓은 소망의 높이와 더불어 세월의 흐름 속에 그 곁을 스쳐 지나는 바람과 눈비, 별빛과 달빛, 피었다 지는 잎새와 꽃, 두 손을 모으고 탑돌이를 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있는 생명의 집이며 우주의 중심이다.

유윤빈_塔梅圖_한지에 수묵담채_100×100cm_2011

이런 관점에서 보면, 탑은 작가 유윤빈에게 있어서 작품의 소재를 넘어선 자신만의 소우주이며, 지난 세월의 성취와 다짐, 오늘의 좌표와 미래의 소망을 담아내는 그릇이라는 생각이다. 즉, 작가가 소재를 탑에서 가져온 것은, 탑을 기계문명의 가속도 속에 휩쓸려 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빛으로 인식하고, 예술가로서 자신이 뿌리 내리고 있는 한국적 전통을 탐색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탑은 작가에게 신앙이나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하는 회화적 조형과 미적 완성에 다다르기 위한 통로이다. 여행을 하며 뒤편에서 바라 본 작가는 작은 사물 하나에도 발길을 멈춘다. 그 순간 눈과 마음에 담아두었던 무너져가는 흙집, 세월을 안고 서 있는 옹이진 나무들, 덩굴로 뒤덮인 돌담, 이끼 앉은 기와조각, 흙에 묻힌 사금파리 조각, 그 가운데 우뚝 서있는 탑에서 받은 인상을 자신의 조형언어로 끌어들인 것이다.

유윤빈_다보탑_한지에 수묵_162×130cm_2011

재료와 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작업의 밑바탕에는 분명 그린다는 행위가 존재하지만 작품의 중심이 되는 탑의 형상은 구체적이지 않으며, 최초의 밑그림은 그림자처럼 다른 구조물에 묻혀 있다. 그 구조물은 바로 네모, 마름모,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망(網)에 한지를 얹고, 물을 뿌리고 두드려서 얻은 새로운 물성의 한지이다. 이는 한지가 물을 만나서 갖게 되는 가변성을 최대한 활용한 것으로, 이런 과정을 거친 한지는 망의 무늬가 도드라지고, 울퉁불퉁하며, 솔로 두드린 강도에 따라 얇게 늘어나 구멍이 뚫리기도 하고, 한 곳으로 밀려 두텁게 뭉치기도 하고, 엉성해지기도 하고, 낡은 천 조각처럼 너덜너덜해지기도 한다. 떠낸 한지를 붙이면 밑그림은 희미해지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밑그림의 자취가 보이지만, 밑그림은 배경에 불과해진다. 결과적으로 이 구조물이 먹과 채색을 직접 받아들이고 화면을 구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진정한 화면은 망에 떠낸 한지가 된다. 또한 망에 떠낸 한지는 화면에 서양화의 마티에르를 넘어서는 깊이와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유윤빈_탑의 인상_한지에 수묵담채_210×76cm_2011 유윤빈_탑의 인상_한지에 수묵담채_210×76cm_2011

밑그림을 따라 망에 떠낸 한지를 화면에 붙여나가는 작업은 일정 부분 모자이크 기법과 유사하지만, 바탕 그림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점, 붙이는 한지가 중첩된다는 점, 여기에 다시 먹과 채색의 농담, 붓질의 깊이와 속도에 따라 새로운 화면이 구축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독창적이란 말은 작가가 한국화가 갖고 있는 재료와 기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작가는 종이와 붓, 먹과 채색이라는 전통 재료를 토대로 그 효용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 작가가 재료를 대하는 방법은 물의 양에 따라 가변성이 극대화된 한지와 깊이와 운치를 더하는 먹과 채색의 효과를 잘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며, 작품은 바탕과 밑그림, 망에서 떠내 붙인 한지, 먹과 채색의 3중 구조를 갖게 된다. 더불어 필묵의 1회성과 순간성이라는 고전적 인식을 허물어 뜨려 화면을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가변구조로 만든다.

유윤빈_정림사지 오층석탑_한지에 채색_30×30cm_2011 유윤빈_탑의 인상_한지에 채색_ 40×40cm_2011 유윤빈_표충사 삼층석탑_한지에 채색_40×40cm_2011

망에서 떠낸 종이가 비록 동일한 무늬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붙이는 방향과 중첩의 정도, 두드린 강도의 차이, 먹과 채색을 얹는 정도에 따라 화면에서 발휘되는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한지가 겹쳐지면서 먹과 물감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지며, 붙이기의 방향과 겹침의 정도에 따라 각각의 조각이 큰 구조 속에서 새로운 관계망(網)을 형성한다. 망에 떠낸 한지 위에 구현되는 화면은 밑그림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망의 다양한 무늬와 방향에 따라 구성되는 새로운 조형이다. 특히 한지의 요철은 붓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허공에 지나게도 하여, 평면에서 구현할 수 없는 질감과 양감, 명암과 원근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밑그림과 망에서 떠내 화면에 붙인 한지, 이 위에 얹는 먹과 채색은 상호 유기적이며, 각각의 조각은 작품을 살아 숨쉬게 하는 생명체로서의 화면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면과 색으로 구체화시키는 요소이다.

유윤빈_감은사탑_한지에 수묵_30×30cm_2011 유윤빈_塔梅圖_한지에 수묵담채_30×30cm_2011 유윤빈_塔梅圖_한지에 수묵담채_30×30cm_2011

작가는 탑에서 받은 인상을 토대로 유사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를 결합하여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상상력과 연상을 통해 재구축한 것이다. 탑을 배경으로 떠오르는 달과 달빛을 배경으로 핀 매화, 탑을 휘감는 덩굴, 지는 노을 등은 무생물과 생물의 결합을 통해 탑은 과거나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생성이며,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임을 표현하고 있다.

유윤빈_塔梅圖_한지에 수묵담채, 동박_73×60cm_2011

작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점과 선의 원형을 탐구하기 위하여 붓을 잡고, 전각을 통해 문자의 공간 경영에 몰두하며, 요즈음은 매화 등 문인화를 공부하며 동양의 서화정신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는 점이 남다르다. 또한 작가는 전통을 완성된 미의 체계로, 과거는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 철학의 틀이 견고하다. 무엇보다 작가 유윤빈은 미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누구보다 뛰어나며, 쇠로 만든 방망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드는 끈기를 갖고 있다. 전통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바탕으로 그것을 깨뜨리고 떠나는 데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빈다. 또한 탑의 인상을 통해 얻은 그리고 붙이는 기법과 더불어 새기고 떠내는 작업의 원용, 탑을 넘어선 소재의 외연 확대, 색에 대한 깊은 연구를 통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완성해 나가는 작가가 되기를 빈다. ■ 고재식

Vol.20110803e | 유윤빈展 / YOOYOUNBIN / 劉胤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