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 & Shadow

박연오展 / PARKYEONOH / 朴娫汙 / mixed media   2011_0803 ▶ 2011_0809

박연오_work3_혼합재료_91×177cm_2009

초대일시 / 2011_08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경운동 64-17번지 Tel. +82.2.733.1045~6 www.grimson.co.kr

박연오, 존재의 잔상 ● 박연오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필자는 뜻밖에도 무수한 핀들과 맞닥뜨렸다. 자그만 고깔모자를 둘러쓴 핀이 모여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고, 가만히 보니 그것들은 어떤 형태 또는 흐름을 띠고 있었다. 잔잔히 흐르는 물처럼, 혹은 창공에 떠있는 구름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많은 작가를 보아왔지만 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떻게 박연오는 핀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그에게 핀이란 과거를 기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핀을 꽂는다는 것은 과거의 순간을 고정한다는 것이며, 영원히 각인시킨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좀더 자세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작가는 주로 실재물을 카메라에 담은 다음 그 영상을 가지고 작업에 옮긴다. 사진으로 떠낸 영상은 실재물과 그림자 부분으로 갈리는데 작가는 그림자 부위를 핀으로 장식함으로써 실물에 버금가는 존재로 인식한다. 대부분이 실물에 관심을 갖는데 비해 박연오는 그림자에 관심을 갖는다.

박연오_work2_혼합재료_56×192cm_2009

그리하여 핀으로 생성된 그의 작품속의 그림자는 실제 그림자와는 달리 영롱하다. 시시하고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매우 뜻있고 소중한 존재로 다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실물보다는 그림자를 더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림자를 통해 실물에 제한되지 않고 좀 더 폭넓은 세계를 연상시키려는 작의(作意)가 반영되어 있는 탓이다. ● 그의 작품에는 길을 걷는 행인의 그림자에서부터 나무와 이파리들의 그림자,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 흔적, 두 인물의 그림자, 자전거 그림자 등이 눈에 띤다. 언뜻 보면 어떤 형체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작가는 핀을 꽂는 행위를 통해 자신이 사진을 찍는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핀에 의해 구축된 세계는 우리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펼쳐낸다. 핀은 사진으로 고정된 순간을 고정시키는 도구로서 풍부한 뉘앙스를 지닌다.

박연오_work4_혼합재료_131×181cm_2010

화면위에 핀은 산란하는 빛의 광택처럼 빛을 확산시키는데 핀을 화면에 밀어넣고 한데 모으거나 높이를 조절하면서 빛이 없는 곳에 빛을 집적시키고 오브제로 새로운 조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금속성 물질에 불과하던 핀은 물질적 속성을 잃어버리고 빛을 끌어모으거나 발산하게 됨으로써 어둔 그림자에서 벗어나 새로운 존재로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 가운데 모래사장 위에 찍힌 발자국을 형상화한 작품이 있다. 발자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래의 자국을 잃어버리고 희미해졌다. 작가는 희미해진 원상 위에 파란 핀을 꽂아 그곳을 다녀간 사람을 회상하는 동시에 공간과의 대화를 통해 새로 탄생한 이미지가 부분의 미묘한 변화와 생생한 움직임을 부여한다. 이미지가 원래 갖고 있는 의미와는 크게 달라졌지만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상상력을 활짝 열어준다.

박연오_work4_혼합재료_131×181cm_2010_부분

그의 작품은 착시효과와 조형어휘의 반복을 꾀한다는 점에서 성격상 옵티컬 아트에 가깝다. 대부분의 옵티컬 아트가 네모나 동그라미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로 화면을 구성하고 시각적인 율동감을 이끌어낸다면, 박연오는 단위체의 반복은 동일하나 규칙적인 패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과 단순한 시각효과보다 공간의 울림효과를 자아낸다는 특징을 지닌다. 종래 보아온 옵티컬아트의 철저히 계산된 방식을 견지하는데 반해 그의 작품은 훨씬 자연스럽고 감성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경우 작품제작에 있어 사전에 준비된 계획을 따르는 대신 즉흥적이며 순간의 판단이 중요시된다. 한 예로 핀을 꽂는 각도와 위치가 사전에 계획되어 있지 않다. 작가는 핀을 꽂으면서 순간의 감정과 느낌으로 각도를 정하고 빛을 받는 핀의 머리 방향을 정한다. 그리하여 "핀의 각도에 따라 마치 소묘에서 선의 방향이나 터치를 이용하듯이 다르게 느껴지는 빛의 흐름을 담아낸다.(작가노트 中)"

박연오_work1_혼합재료_30×70cm_2008

이러한 실험을 통해 작가는 핀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모습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속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이 규칙적인 형태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림자를 통해 실물에 다가서려는 독특한 태도로 읽히며, 공간의 울림효과를 자아낸다는 것은 동일패턴의 반복에 치중하기보다 단위체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거나 넓히는 등 조절을 통해 유동적인 빛의 파장을 증폭시키는 의도로 풀이된다. 유동과 울림, 그리고 반짝임과 같은 동적인 움직임이 결과적으로 마치 바람에도 미동하는 나뭇잎처럼 진동과 떨림의 효과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핀을 꽂으며 공간과 대화를 나누고 핀이 만들어내는 조형의 선율에 몸을 맡기기도 한다. 새 존재의 창출로 현실 속 그림자와 배경속의 그림자의 관계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지만 빛을 머금은 입자들과의 조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서적 청량감을 안겨준다. 그의 작품은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 싹이 올라오는 것처럼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 서성록

Vol.20110803f | 박연오展 / PARKYEONOH / 朴娫汙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