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모으다 Gathering Rays of Light into a Focus

조현익展 / CHOHYUNIK / 趙鉉翼 / painting   2011_0806 ▶ 2011_0904

조현익_빛을 모으다-윈도우展 76_갤러리 진선 윈도우 갤러리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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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갤러리 진선 작가지원 프로그램

윈도우전 76 / 2011_0806 ▶ 2011_0828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갤러리 진선 윈도우 갤러리 GALLERY JINSUN Window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61(팔판동 161번지) Tel. +82.(0)2.723.3340 www.galleryjinsun.com

아트프로젝트 86 / 2011_0808 ▶ 2011_0904 관람시간 / 11:00am~11:00pm

진선북카페 JINSUN BOOK CAFE 서울 종로구 삼청로 61(팔판동 161번지) 1,2층 Tel. +82.(0)2.723.5977,3340 www.galleryjinsun.com

너를 새긴다. 매혹적인 눈빛, 아련한 몸짓, 머릿결 한 올 한 올까지 고스란히, 처절하게 철판 위에 새겨진다. 조현익의 작업에 등장하는 대상은 과거 그의 실제 연인이거나 단순한 모델들로 이루어 진다. 에로스, 그 욕망의 대상이 된 여성이 그의 작업의 근원을 이루는데, 이러한 여성은 순결하고 고귀하게 신성시된 존재인 동시에 파괴하고 거부하고 싶은 공포의 대상이 된다. ● 그의 작업은 사진 촬영에서 시작된다. 사진은 대상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지만, 결코 소유할 수 없음을 각인시킬 뿐이다. 누워있는 여성을 향한 가학적 시선은 플래시를 터트리며 촬영된 사진에 담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자연 상태로 부식되어 녹이 쓴 철판 위에 전사되어 새겨진다. 거칠게 갈아내고, 긁어내고, 새기고, 물감을 뿌리는 작업의 과정은 작가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이다. 조현익은 사진, 판화, 회화, 조각, 퍼포먼스, 설치를 넘나들며 하나의 작업을 완성시킨다.

조현익_빛을 모으다-아트프로젝트 86展_진선북카페_2011
조현익_Gathering Rays of Light into a Focus(Flash-S-1114102)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122×70cm_2011

너를 가둔다. 여성이라는 치명적인 매력 속에 갇혀버린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작가는 여성을 박제시킨다. 살아서 소유할 수 없었던 여성은 비로소 작품 안에 박제되어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철판 위에 새겨진 여성은 못과 볼트, 자동차 도료로 갇히고 봉인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아무리 갈망해도 가질 수 없다는 본질의 깨달음일 것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그의 오필리아는 영원한 심연 속에 잠들어 있다. ■ 갤러리 진선

조현익_Ophelia(Flash-S-1116104)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122×82cm_2011
조현익_Ophelia(Flash-S-1115103)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122×68cm_2011

비천함과 숭고함이 맞부딪히는 섬광 ● 녹슬고 연마되어 조성된 빛과 어둠 사이로 드러나는 대상은 흩어진 머리칼과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조현익의 작품 속 아름다운 그녀는 분명히 욕망의 대상으로서 호출된 여성이지만, 육중한 철판에 새겨진 이미지, 관객을 압도하는 거대한 크기, 촛불이 동원한 제의적인 분위기 속의 여성은 사랑과 욕망에 얽힌 간단치 않은 상징(icon)으로 다가온다. 매혹과 불길함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작품 속 여성은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반영하는 소재이자 주제이다. 그의 작품은 자신을 끊임없이 선동하는 그 문제적 대상과 대결하는 피 튀기는 전장처럼 보인다. 여성-욕망-사랑-죽음은 꼬리를 무는 연쇄 망을 이룬다. 죽음에 이르는 사랑, 또는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파멸, 이 오래되고도 늘 상 새로운 연결의 고리를 이루는 것은 표상 불가능한 타자로서의 여성이다. 작품 속, 어둠에 반쯤 잠겨 진 여성은 기표가 포섭할 수 없는 이질성을 표출한다. 상상적인 면에서 여성의 욕망은 죽음에 더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생명의 모태와 파괴의 원천이 같기 때문이다. 죽음의 충동이 약호화 된 작품 속 사랑은 에로스의 이면인 타나토스이다. 여인들은 타나토스의 기호들 사이에서 떠돈다.

조현익_Wound(Flash-S-110694)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99.2×122cm_2011

조현익의 작품에는 욕망하는 주체, 즉 결여의 주체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작품 속에서 구애되는 여성의 실재적 실체가 비워져 있다. 라깡은 '예술적 창조란 내가 오직 끔찍한 것으로, 비인간적인 파트너로서만 묘사할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정립함에 있다'고 말한다. 라깡은 이러한 고문과 고통의 정화를 통해 주체성이 탄생한다고 본다. 라깡은 재현과 사물 그 자체 사이의 조그만 차이가 실재를 구성한다고 보지만, 그 실재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서, 사랑을 텅 빈 것으로 만든다. 피와 정액 같은 체액의 범람 속에 스치는 섬광은 죽음에 이르는 희열을 보여준다. 화면 속 여성은 체액에 침수, 또는 빛의 칼에 참수된다. 동시에 그것은 화면 밖 남성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의 작품이 주는 제의적 분위기는 200호를 넘는 압도적인 스케일에 힘입은 바 크다. 그것은 종교에서부터 현대의 하위문화를 관통하는 몰입의 체험과도 연결된다. 빛과 어둠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의미론적 영역을 다루는 작품 속 여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불경과 신성함을 오간다. 무한과 허무는 그 끝자락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다.

조현익_Flash-S-100776(Memories-the head of Medusa)_패널, 철판에 혼합재료_91.5×91.5cm_2010

조현익의 작품 속 섬광은 사랑의 기반인 숭고함과 비천함이 극적으로 조우하는 지점을 표현한다. 숭고함과 비천함, 무한과 공허 사이에 놓인 사랑은 경계와 금기를 넘나든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깔려 있다. 기괴하게 번쩍이는 반사면을 포함한, 모노톤의 어두운 작품들이 담그고 있는 또 하나의 정서는 멜랑콜리이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멜랑콜리는 열렬한 사랑의 어두운 이면이다. 사랑의 충동과 죽음의 충동은 동렬에 놓여 서로의 꼬리를 문다. 죽음은 심연과 같은 신비를 내포한다. 그의 작품이 가지는 모노톤의 어두운 색조는 대상을 침수, 또는 용해시킨다. 여성들은 시간도 공간도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잠겨있다. 작업 과정이나 이미지에서, 산화시키고 뿌리고 태우고 갈아내는 행위에는 성스러움에 이르는 무한한 소모의 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의 작품에서 밝음과 어둠은 그 끝자락에서 조우한다. 눈을 멀게 할 것만 같은 밝음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동렬에 놓인다. 조현익에게 사랑은 '차이의 창조적 놀이'(알랭 바디우)이자, 하나의 사유이다. 플라톤의 『국가』가 말하듯이,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할 것'(소크라테스)이라면, 예술에 이르는 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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