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예술가들의 친절한 전시

2011_0810 ▶ 2011_0821

오프닝 퍼포먼스 / 2011_0813_토요일_05:30pm_양반김

참여작가 김민_김한울_다락별(고유미, 심혜진)_문상원 양반김(양진영, 김동희)_윤예제_이송_최혜련

후원 / 가온갤러리 기획 / 문상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가온갤러리 INCHEON EDUCATIONAL AND CULTURAL CENTER FOR STUDENTS GA-WON GALLERY 인천시 중구 인현동 5번지 Tel. +82.32.777.9140 www.iecs.go.kr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하는 장본인 '불친절한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친절히 이야기한다. 불친절한 예술가들의 친절한 전시의 기획의도에는 다양한 층위가 내재되어있지만 표면적인 의의는 다음과 같다. ● 1# 예술이란 순수한 예술적 동기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절대적 독립성을 주장하며 오로지 예술을 위한 예술에 근거한다. 예술은 메타라는 치환된 위치에서 존재하며 탈 예술을 통해 고정된 의미의 예술을 초월한다. ● 2# 좋은 예술(Good art)은 대중들이 아닌 사상적 권위와 시대적 권위, 지적 기득권자들의 동의로 인해 형성된다. 하지만 좋은 예술이란 지각될 수 없는 하나의 현상이며, 모순적인 감각중추를(sensorium)통해 인식된다. ● 3# 예술은 대중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 창조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두며, 불친절한 전시는 바텀업 형식이 아닌 탑다운 형식으로 진행된다. 또한 불친절한 예술가들은 독해력이 떨어지는 관람객을 배제하며 배타적 입장을 고수한다. ● 4# 현대미술을 이해하려면 진화된 감식안이 필요하다. 인간의 인식능력은 지각과 상상과 사유로 구분되는데, 관념적 지각능력을 통해 현대미술을 볼 수 있는 감식안이 생겨난다. 앞서 말한 감식안은 선천적인 감각만으로는 발동되기 어려우며, 후천적 학습효과에서 비롯된 예술적 인식에 대한 진화와 미술사, 미학 그리고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 5# 대다수의 인간들이 기념비적 예술작품을 사랑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에 매료되어서만이 아니라 특정집단에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들이 사랑하는 예술의 표면에는 작품이 존재하지만 그 이면에는 타자적 욕망이 작용한다. ● 6# 불친절한 예술가들의 친절한 전시에 대한 모든 해석은 당신의 쾌락으로 귀결된다. ■ 문상원

김민_108_디지털 프린트_38.2×61cm_2011

김민은 제2의 얼굴 또는 제2의 심장이라 여겨지는 손을 사용하여 깊은 감정을 표현한다. 작품들은 그 보이지 않는 감정을 공감 할 수 있는 소수의 관객에게 무조건적인 긍정의 말 보다는 강한 무덤덤한 위로와 존재감을 일깨워주는 심심한 메시지를 건넨다.

김한울_4,月_캔버스에 유채_193.9×130.3cm_2011

김한울은 동물을 쓰다듬는 과정에서 그녀와 대상사이에 무언가 형상화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것이 인간이 언어를 통해 서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의 어떤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언어처럼 구체화되어 이해되는 것이 아닌 덩어리 그 자체로서 하나의 상태로 지각되는 것이라 말한다.

다락별_모든 경계에는 꽃이 피어난다_배려의 꽃_헌우산_350×250cm(바닥)_2010

다락별은 우산을 통해서 친절, 너그러움에 가까운 배려를 발견했고, 전하고자 한다. 그녀들의 작품은 전시장에서 보여지기 까지 짧지 않은 작업의 과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차근차근 설명해 주기보다, 정리를 우선적으로 표현하고 함께 느끼고자 할 것이며, 결과물은 바닥에 놓고 펼쳐보이고자 한다.

문상원_문상원&료_가변크기_2011

문상원과 료는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각자의 형식으로 나름의 작업을 진행한다. 이 둘의 작업에는 어떠한 개연성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작품에 대해 그 어떤 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해서 둘의 콜라보는 두 가지의 대립으로서 다시 하나로 합치되며 무엇 하나 얽매이지 않는 양극단을 달리고 있으니 결국 예술이라는 하나의 관념으로 환원된다.

양반김_末伏(말복)_퍼포먼스_2011

꿈속에서는 내가 겪은 일이 기억이지만 육체의 움직임이 없었으므로 현실에 있어선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꿈과 반대로 필름이 끊기는 순간 나의 정신은 기억과 함께 사라지지만 나의 몸은 행동을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실제이다. 정신과 육체, 어느 것이 먼저일까.

윤예제_stay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0

윤예제작품의 풍경은 현실의 풍경을 표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현실과는 조금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은 고립된 풍경이다. 이 일상적이지 않은 모호하고 비밀스러운 풍경을 통해 그녀는 인간의 본능적 관념을 실체화한다.

이송_between_캔버스에 유채_130.3×97cm_2011

이송의 작품은 개인적인 공간을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이는 작품제작 전의 물질적인 틀 안의 공간, 작품 안에서는 시각적인 공간만이 아닌 사람들의 내면의 공간, 사회적인 공간으로 의미를 확장해 볼 수가 있다. 이런 비시각적인 공간은 다차원적인 공간, 사람들의 내면이 담긴 공간으로 해석해 시각화 하여 풀어낸다.

최혜련_욕심스러운 음료수와 담요 같은 사나이_ 혼합재료(토끼, 강아지, 악어인형, 우레탄폼, 붉은액체, 플라스틱공, 나무, 천, 솜 등)_가변크기_2011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는 최혜련은 사용 목적에서 벗어나 쓸모 없어진 사물과 가치 없어 보이는 재료를 모아 '욕심스러운 음료수'라는 제목을 부여하고 작품이라 말한다. 우연한 발견과 동시에 선택된 재료들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일부들의 모임에 불과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이것들은 우연이 아니라 구하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그녀의 욕구와 개인적 취향에 의한 발견 즉 필연과 같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욕심스러운 음료수(제목)'와 '우연' 간의 어떠한 설명도 직접 하지 않기로 한다. ● 그녀는 감상자를 대표하는 타인에게 이미지와 단어를 주고 그것들이 어떠한 관계에 있을지 대신 상상하게 한다. 타인은 '욕심스러운 음료수'와 이것을 들고 있는 '담요 같은 사나이'가 등장하는 이미지 한 장 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한다. 이것은 일종의 주고 받기 놀이로 타인에게 받은 글과 그에 대한 최혜련의 대답은 다음 작업의 시작점이 된다. ■

Vol.20110810j | 불친절한 예술가들의 친절한 전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