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효展 / SHIRGHYO / mixed media.installation   2011_0812 ▶ 2011_0828 / 월요일 휴관

설기효_의(意)_들꽃, 들풀, 흙, 소리_가변크기_2011

초대일시 / 2011_0812_금요일_06:00pm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 Insa Art Space of the Arts Council Korea 서울 종로구 원서동 90번지 Tel. +82.2.760.4722 www.arkoartcenter.or.kr

색과 소리로 갱신되는 언어 ● 소박한 들꽃과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동시에 등장하는 설기효의 작품전 제목은 이름붙일 수 없는 색의 띠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에 나오는 색 면 추상같은 단색 회화들은 언어를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같은 의미를 가지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평균 색으로 낸 결과물도 포함된다. 비슷한 색감을 가지는 정방형 판들은 다양한 언어에 깔려있는 보편성을, 논리가 아닌 감각으로 확인시켜 준다. 언어는 소리로도 치환되어 있어 전시장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하나의 언어로부터 또 다른 언어로의 전환에는 음양오행이라는 동양의 세계관과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서양의 논리가 모두 동원된다. ● 설기효의 작품은 동양철학이 깔려 있으면서도 관념적이지 않고, 복잡한 기계적 과정들을 거치면서도 새로운 장치의 현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삶과 작업을 일치시키려는 작가의 태도는 몸을 중심에 놓으며, 관객의 직관에 호소한다. 작년에 갤러리 쿤스트독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자신의 맥을 소리와 영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심신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맥이 뛰는 형태를 오행으로 분별하는 '음양오행 맥진법'이 활용되었다. 또 다른 언어로 번역된 몸의 소리는 하늘색의 변화만큼이나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전시는 살아있는 것의 본성이 운동과 변화임을 강조한다.

설기효_의(意)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_2011

이번 전시에서 설기효는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언어를 소리와 색으로 바꾼다. 미술은 언제나 어떤 내용을 조형언어로 바꾸는 것이었지만, 이 전시에서 변환은 단지 은유적인 것이 아니라, 일련의 규칙을 통과한다. 변환의 결과물은 자의적이지 않으며, 어떤 필연성을 띤다. ● 전시장 1층은 전시의 주제와 원리를 요약한 144음절과 440여 음소를 색과 소리로 치환한다. 144자의 평균색은 녹두 색으로, 바닥에 깔린 풀밭의 색과 비슷하다. 전시장 바닥에 심어놓은 들꽃과 들풀은 색으로, 피아노곡부터 펑크까지 다양하게 편곡된 소리로 나온다. 지하 전시장에는 하얀 실로 만들어진 입체 스크린에 영상이 투사된다. 공중에 붕 뜬 상자 같은 입체 스크린은 뿌연 연무의 느낌을 준다. 영상 설치작업인 「흡호」는 50개국 언어의 들숨과 날숨을 색과 소리로 치환한 것이다. 작업개념을 요약한 144자의 평균 색, 흡과 호를 나타내는 50개국 언어의 평균 색, 그리고 '간다, 온다'라는 말의 50개국 언어의 평균 색이 130x130cm 크기의 정방형 캔버스에 칠해졌다. 색의 평균값은 내는 과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지만, 언어가 일정정도의 양을 넘어서면 평균색은 대부분 누런빛을 띈다. 작가는 여기에서 땅에서 만물이 나오는 동양적 세계관을 확인한다.

설기효_흡호_실, 스테플, 영상(00:10:11)_가변크기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_2011

또 다른 층에서는 언어를 소리와 색으로 치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전시한다. 여기에서 관객은 언어의 의미는 확인할 수 없고, 소리와 색으로만 감각 할 수 있다. 언어를 색과 소리로 만드는 작업은 기호의 재현이 아닌, 마음의 운동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질서화 이전의 힘을 끄집어내는 행위라고 간주한다. 설기효가 작업 초기부터 견지해왔던 '언어의 빛, 빛의 소리, 소리의 색'이라는 다층적인 치환의 과정은 추상적인 언어를 보다 구체적인 색과 소리로 돌려놓는다. 작가는 색과 소리로의 치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색과 색이 만들어내는 대비, 소리와 소리가 모여 이루는 음률과 리듬 즉, 관계라고 본다. 모음은 음양, 자음은 오행에 기초하는 한글의 원리를 색과 소리로 바꾸어 봄으로서, 언어의 의미를 확장한다. 한글 뿐 아니라 음소문자라면 그 어떤 언어도 치환이 가능하다고 한다. 작가는 다양한 언어로 작업함으로서,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단어들이 비슷한 색감으로 나타나는 사실을 발견한다. 설기효의 작업은 추상화된 현대의 언어의 기원에 다가감으로서 언어의 풍부함을 되살리려 한다. 그 기원에는 색과 소리가 잠재해 있다. 모든 예술의 표현은 기존의 언어를 새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지만, 설기효의 경우 언어적 문제를 작품의 전면에 세운다.

설기효_흡호_부분

상징으로 관습화된 언어로서는 새로운 것을 말할 수 없다. 설기효의 작품 속 소리와 색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상징적 언어의 밑바탕에 있는 원동력을 암시한다. 그것은 크리스테바가 언어를 생볼릭le symbolique(구성적 언어, 상징계)과 세미오틱le semiotique(본원적 언어, 기호계)로 구분한 것을 연상시킨다.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정신분석」에서 생볼릭은 문법상의 규칙, 기호기능, 기표와 기의, 지시대상 등과 논리-의미론적 분절 기능 등을 맡는 것이며, 이와 대립되는 세미오틱은 전(前)언어적, 초(超)언어적 언어라고 본다. 생볼릭은 의식의 산물로서 통사론적 질서에 따라 기호 간의 결합에 의해 형성되지만, 세미오틱은 음절형성 이전의 상태의 언어이다. 세미오틱은 육체적 충동의 힘이 의미화 내부에서 완전히 억압되지 않는다. 크리스테바는 사회적 언어의 출발 이전에 모태 속에서 교환되는 육체적 신호에 주목한다. 다른 언어학자와 달리,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기호적 관계에서 진정한 언어의 출발을 본다. 아이는 구문을 배우기에 앞서 멜로디와 음악을 배운다. 구문의 법칙을 배우기에 앞서 먼저 억양을 모방하는 것이다. 설기효는 작품을 통해 아이가 언어를 습득할 때와 같은 원초적 조건을 만든다. 그것은 언어에서 소리와 리듬을 주목함으로서, 기성의 언어 속에서 새로운 내용을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상징적 단계에서는 낱말이 의미화 하는 반면, 기호적 단계에서 낱말은 행동하고 활동한다. ● 크리스테바에게 기호계는 상징계를 초과하는 것이며, 언어의 변방과 한계에서 작용하며 효력을 발생시킨다. 언어의 생사회적(bio-social) 요소로서의 기호계는 충동의 저장소로 언어에 충동을 끌어들인다. 언어를 통한 충동의 방출에서 발견되는 쾌락은 의미와 표상을 초과한다. 언어는 결코 충동을 표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충동을 활성화시킨다. 이러한 활성화는 특히 예술적 언어에서 명백하다. 충동은 이질적 물질의 운동인데, 이를 억압하지 않는다면 상징적 통일은 없다. 그러나 충동은 상징계의 통일에 도전장을 냄으로서, 그 통일체가 과정 속의 한 순간임을 밝힌다. 언어의 다양한 구성요소로의 분석과 종합이 행해지는 설기효의 작품에서 언어는 이질적으로 나타나며, 언어적 존재인 주체 역시 이질적이다. 언어의 기원에는 이성이 아니라 육체가 있다. 설기효의 작업은 육체를 배제하지 않는 언어와 육체의 흔적을 상징화하려는 이중의 지향이 존재한다. 가령 이전 전시에서 변화무쌍한 하늘을 바라보는 자신의 맥--작가는 맥에서 몸의 기호를 알아챈다--을 색과 소리로 치환한 작품에서 이러한 이중의 지향이 분명하다.

설기효_언어소리색 프로그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_2011

이번 전시에서 3명이 치는 박수소리로 박자를 만든 음악에도 상징 언어의 밑바탕이 되는 원초적 리듬이 나타나 있다. 언어의 기원에는 소리가 있다. 설기효의 작품에서 언어를 분석하고 종합함으로서 만들어진 다양한 소리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음악이 된다. 장 자크 루소는 「언어 기원에 관한 시론」에서 말과 글을 구별한다. 그는 인간은 말할 때 감정을 표현하고 글을 쓸 때는 생각을 전달한다고 본다. 글을 쓸 때는 모든 낱말을 통용되고 있는 뜻의 범위 안에서 써야한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은 어조로서 뜻을 변조하고 자기 맘에 들도록 뜻을 정한다. 명확하게 표현해야할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맥락에서 보자면, 글의 개념보다는 말의 소리에 주목하는 설기효의 작품은 예술의 근본적인 충동에 충실하다. 루소는 인간의 정념은 이성에 앞서 말을 하게 했다고 본다. 언어는 생각을 표현한다. 하지만 감정과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리듬과 음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언어는 더 정확해지면서 정념적인 면이 줄어든다. 그런 언어는 감정을 개념으로 대체한다. 그것은 마음이 아닌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 그리하여 언어는 더 정밀하고 명확해지지만, 더 밋밋하고 더 희미하고 더 차가워진다.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촉구하는 루소는 기하학자의 언어와 유사한 현대가 아니라, 시인의 언어와 유사한 최초의 상태를 동경한다. 체계적 추론보다는 음악적 느낌을 중시하는 것이다. 루소가 말하듯이, 언어를 더욱 힘 있게 하는 것은 소리와 악센트와 온갖 굴절들이다. 설기효는 서로 분리된 말과 음의 관계를 다시 환기시킴으로서, 말의 힘과 음의 의미를 동시에 강화한다. 작품의 논리와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은 명확하지만, 그것은 복합적인 것을 하나로 환원시키는 것이 아니다. 작품들은 언어들 간의 치환은 절대 값보다는 관계를 중시한다. 그것은 기호 자체보다 기호적 차이를 중시한다. 메를로 퐁티는 소쉬르를 통해 각 기호가 그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각각의 기호는 하나의 의미를 표시하기 보다는 그것과 다른 기호들 간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기호들의 경계에서 의미가 생겨나듯 부분 속에서 갑자기 전체가 돌출할 수 있는 현상을 주목한다. 여기에서 기호란 서로 내포되거나 구별되는 방식일 뿐이다.

설기효_언어소리색 프로그램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미술공간_2011

이러한 상대성을 보여주는 것 중에서 색채만큼 분명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색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색의 영향을 통해 또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변화 된다'고 불평했다. 언제나 명석 판명한 개념을 중시하는 철학적 사조는 명확한 형태에 비해 불확실한 색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거둔 적이 없다. 색은 인간의 관점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가변적인 색은 시점의 고정을 통해 늘 상 분명한 것을 탐색하는 시각보다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청각과 더 잘 어울린다. 이처럼 소리와 색이 동시에 등장하는 설기효의 작품은 공감각(synesthesis)적이다. 공감각을 통해 하나의 감각은 또 다른 감각으로 번역된다. 설기효의 작품은 동양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공감각적 사고는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무려 50개국 언어를 조사하여 만든 설기효의 작품들에는 보편성을 확인하려는 의지가 있다. 가령 공감각은 '나는 모음들의 색깔을 창조했다. 그리고 각 자음의 형태와 움직임을 정리했다'고 주장한 랭보의 시부터 '나는 색깔들의 소리를 들었다. 초록 소리, 붉은 소리, 노란 소리가 전혀 다른 파동으로 다가왔다'는 테오필 고티에의 주장에 까지 이른다. ● 근대를 거치면서 감각은 분화와 자율화를 거듭했다. 그것이 낳은 생산성 이면에는 빈곤이 있다. 설기효의 작품은 언어의 소리적 측면을 강조함으로서, 근대의 시각 중심 문화를 반성 한다. 마샬 맥루한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주장하듯이, 인쇄에 바탕 하는 근대의 시각 문화는 명시성, 획일성, 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비시각적, 즉 비문자적 양식은 함축성, 동시성, 불연속성을 만든다. 시각적 관점의 세계는 획일적이고 동질적인 공간이며, 그러한 세계는 공명적인 다양성을 낳는 구어와는 거리가 멀다. 언술(speech)이란 5개 감각 모두를 한 순간 밖으로 외화 하는 것인데 반하여, 글을 쓴다는 것은 말로부터 시각적인 것만을 추출하여 외화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매체가 활용되는 설기효의 작품은 근대의 선적 언어를 전기적 정보구조라는 동시적 장(場)으로 변화시킨다. 작가는 선형적인 시각적 공간으로서의 문자에 색이나 소리같은 비문자적인 것들을 환기시킴으로서, 동시성(simultaneity)을 부각시킨다. 보다 전체적인 소통을 지향하는 융통성이 있는 동양의 사고에 뿌리를 두는 설기효의 작품은 전자매체의 시대에 되돌아온 소리의 위력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 이선영

Vol.20110813e | 설기효展 / SHIRGHYO / mixed media.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