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싹 - 그 두 번째

정희석展 / CHUNGHEESUK / 鄭熙錫 / painting   2011_0816 ▶ 2011_0830 / 일요일 휴관

정희석_소망의 싹-아모스1 The Shoot of Hope-Amos1_종이에 혼합재료_122×122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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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816_화요일_05:00pm

갤러리 우덕 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우덕 GALLERY WOODUK 서울 서초구 잠원동 28-10번지 한국야쿠르트빌딩 2층 Tel. +82.2.3449.6071

정희석의 '영원한 계절' ● 필자가 정희석의 작품을 본 것은 2년전 갤러리 이즈에서 첫 개인전을 열 무렵이었다. 작가는 화면에 봄의 새 순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담았는데 한 화면에 오롯한 새싹 하나만을 확대시켜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흑백으로 담백하고 절제된 느낌이었다. 개인전을 본 소감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정희석의 그림에서 꽃봉오리가 보인다. 갓 돋아난 꽃봉오리는 만개한 꽃에 가깝기보다는 새 순에 가깝다. 세찬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같이 연약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떻게 피어난 새 순인가. 캄캄한 어둠을 극복한 생명이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귀환한 용사'다. 그런 새 순이 두 팔을 벌려 봄빛을 맞는다. 이제는 폭설도 매서운 바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빛의 온기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기만 하면 된다." (국민일보,2009.5.25)

정희석_소망의 싹-미가3 The Shoot of Hope-Micah3_캔버스에 혼합재료_122×122cm_2011

이번 전람회의 출품작도 그의 눈길은 새싹에 맞추어져 있다. 이전과 똑같은 새싹이지만 조금씩 칼라를 넣어 계절의 정취랄지 화사한 분위기를 살려냈다. 희망찬 내일을 예감하는 새순의 의미가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일련의 새 싹만을 강조한 그림은 아니다. 그 싹은 바둑판 모양의 네모칸에 빼곡히 글자가 들어간 화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바탕의 글로 또 새 싹으로 무엇인가를 전달하려고 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의 본문임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정희석_소망의 싹-요엘1 The Shoot of Hope-Joel1_종이에 혼합재료_91.5×91.5cm_2011

그렇다면 성경본문과 새싹에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그가 쓴 성경본문은 구약의 소선지서에서 비롯되었다. 모세나 예레미야, 엘리사, 이사야, 에스겔과 같은 대선지자들보다 비교적 적게 활동한 선지자들이 예언하며 기록한 내용인데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일반적으로 백성들의 개인적 경건뿐만 아니라 사회윤리에도 관여함으로써 삶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했다. 내용적으로 소선지서는 언약 백성에 대한 경고, 권면의 의미도 지니지만 이와 함께 신구약 사이를 잇는 교량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소선지서는 선지자들의 예언에 의한 약속을 통해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희석_소망의 싹-학개 The Shoot of Hope-Haggai_종이에 혼합재료_79×79cm_2011

성경본문 중에서도 유난히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시편이다. 이 작품을 위해 꼬박 2년간이 소요되었는데 무수한 싹이 피어있는 듯한 이 작품은 성경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는 150편의 시편을 조형적으로 번안한 대작이다. 한 피스에는 한편의 시가 들어가게 조정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시편을 옮겼으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성경을 필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문장을 옮긴다는 것을 넘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마음이 글씨에 스며있는 것이고 따라서 글자 모양이 모두 정서체로 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시편의 내용 또한 그러하다. 일부분 탄원과 역사적 사실도 찾을 수 있지만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두 번째 왕 다윗이 예배용으로 특별히 기록되고 집필된 것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시편의 글들은 너무나 경건하고 아름다워 수천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깊은 울림을 준다.

정희석_소망의 싹-미가1 The Shoot of Hope-Micah1_종이에 혼합재료_122×122cm_2011

시편을 테마로 한 대작도 수법에 있어서는 소선지서의 작품들과 비슷하다. 바탕의 글자위에 새싹을 접목하였다. 흔히 미술에서 문자와 이미지의 결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희석의 경우는 예외다. 그의 작품에서 문자와 이미지는 사실상 '언약의 성취'라는 한 지점으로 모아진다. 성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을 잡는다면, 하나님의 언약과 성취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언약한 내용을 메시야의 오심으로 성취하였고, 신약에 와서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을 통해 구원의 손길을 펼 뿐만 아니라 영원한 평안과 생명을 약속하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언약은 신구약을 지탱하는 핵심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경에서 그 언약이 문자로 기록되었다면, 작가는 이를 이미지로, 다시 말해 '이새의 줄기에서 돋아난 새싹'(이사야 11:1)을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문자와 새싹의 이미지가 한 지점으로 모아지는 것이다.

정희석_소망의 싹-나훔2 The Shoot of Hope-Nahum2_종이에 혼합재료_64.5×64.5cm_2011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메시아에 대한 대망을 담고 있다. 소선지서는 두말할 것도 없고, 시편 22편, 69편, 72편, 110편에도 그러한 내용이 암시되어 있는데 이것이 시편을 쓴 이유이자 150개나 되는 모든 판넬에 '새싹'을 그려 넣은 이유가 되고 있다. ●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주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공허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실패자라고 자책하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사람들에게 띄우는 소망의 편지가 아닐까. "소망을 그림 그리고, 나누고 싶다. 말라버린 밑 등걸에서 돋아나는 싹의 모습은, 유약한 듯한 작은 것이 장차 큰 것들을 이루게 되는 역사의 대표적 예"(작가노트) 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새싹'이란 복된 소식이요 희망을 뜻한다. 우리의 영혼에 '새싹'이 심겨지게 되면 황홀한 미래를 꿈꾸고 찬란한 무지개를 보게 된다. 이 작품에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그 분의 정원이 되고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앗이 떨어질 때 우리 삶이 더 없이 비옥해지고 종국에 많은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정희석_소망의 싹-아모스3 The Shoot of Hope-Amos3_종이에 혼합재료_122×122cm_2011

옛적에 철학가이자 시인인 힐데그라트 폰 빙엔(Hildegrad von Bingen)은 "엷은 초록에서 하늘과 땅이 창조되고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창조된다"고 보았다. '초록'을 생명의 근본 에너지로 본 셈이며 그는 푸를 힘이 없다면 생명의 영원한 젊음을 취하기 어렵다고까지 했다. 만일 '초록'이 지구의 추동력이며 정신의 에너지라면 우리는 "천상의 비밀의 담은 은총"에 포옹 당하자마자 우리 영혼은 초록으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정희석은 우리 영혼이 푸른 정원이 될 수 있도록 하며 그 속에서 초록빛 꽃이 만발하기를 소원한다. 말하자면 초록빛이 시들지 않는 '영원한 계절'을 꿈꾸고 있는 셈이다. ■ 서성록

Vol.20110816i | 정희석展 / CHUNGHEESUK / 鄭熙錫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