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현展 / SHINCHIHYUN / 申治鉉 / sculpture   2011_0818 ▶ 2011_0907 / 일,월요일 휴관

신치현_透-인체(1)_브론즈_180×60×5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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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가인갤러리 GAAIN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동 512-2번지 Tel. +82.2.394.3631 www.gaainart.com

지각과 존재의 역설 ● 기존의 신치현의 작업들을 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가 이번 전시회에서 내놓은 작품들에서 기존 작업들과의 양식적 연속성이나 방법적 일관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작업들이 주로 해상도가 낮은 도시 전광판이나 광학 디스플레이에서 볼 수 있었던 디지털 이미지를 3차원으로 전사시키는 방식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품들은 표면의 패턴을 통해 형상과 볼륨을 정의하는 한편, 조각 방법에 있어서도 판형들의 집적이 아닌 투조기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치현_"透"展_가인갤러리_2011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조각적 문제의식, 세계와 존재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 그리고 삶의 근본적 물음 등에서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자신의 조각들을 통해 문제 삼고 있는 것들은 지각된 이미지와 실재로 존재하는 것, 존재를 구성하는 것과 그러한 구성요소에 동일성을 부여하는 실체적 형상(Eidos, Form) 간의 불일치, 혹은 역설이다. 그의 작업들은 바로 이 역설을 해소하기 위한 여정의 결과물들이다. 그의 조각들에서는 하나의 실체가 다른 실체 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오랜 존재론적 원리, 즉 절대성의 원리라는 것은 거부당한다. 그의 조각에서 존재들에 불변적 고정성을 부여하는 실체적 형상들은 단지 지각자의 특정 관점과 위치에서만 존재하거나 패턴적 표면, 혹은 지각적 외양이나 윤곽으로서만 규정될 수 있을 뿐, 내부의 형이상학적 지지체를 함축하지 않는다. 그에게 존재의 본성은 지각 너머의, 즉 지각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자체나 이데아적 형상과 같은 초월적 실체가 아니라, 지각에 의존하면서 동시에 지각과 마찬가지로 잠재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신치현_透-상어_스테인리스 스틸_180×500×280cm_2011

존재의 본성, 혹은 존재자의 존재방식을 형이상학적 실체나 본질이 아닌 지각적 사실들로 환원하려는 그의 조각적 시도는 지각과 존재에 대한 두 가지의 관습적 오해, 즉 지각은 하나의 수동적 수용활동이며 따라서 표상적이라는 전제와 지각 너머나 혹은 사물의 내부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것, 즉 실체에 대한 일루전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가 가진 지각과 존재에 관한 잘못된 이해를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그가 기존의 작업들에서 택한 방법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도입부에서 말한 것처럼, 판형(板形)들의 외연적 집적의 방법이다. 관객은 신치현의 조각들이 판형들의 우연적 집적에 의한 만들어진 것임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내적 구조라는 것은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로부터 어떤 다른 것의 개입도 없이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내적 실체를 가정하는 일은 차단당한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은 바로 앞이나 뒤의 형태로부터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는 논리적으로 투명하며 텅 비어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작업 형태는 2002년의 「얼굴」에서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신치현_透-토끼_브론즈_100×80×60cm_2011

두 번째는 2009년의 『Error』展에서 선보였던 것으로서 인간의 부분 대상, 즉 얼굴, 팔과 다리 등이 타조, 악어, 사슴 등과 같은 전체로서의 동물형상을 구성하게 되는 방식이다. 이 조각들은 얼핏 데페이즈망의 기법과 언캐니의 감정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초현실주의적인 것으로 읽힐 수 있겠으나, 신치현의 것은 부분대상들의 이종적 결합에서 오는 무의식적 느낌을 활성화시키려고 했다기보다는 요소로서의 부분대상과 그것에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가정되는 실체적 형상(Eidos)과의 불일치에서 오는 역설의 느낌을 더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소박한 존재론적 가정들에 비춰보면 사실상 이 조각들은 전시 제목 그대로 에러다. 형상 안에 형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해서 우리가 가지는 형상에 관한 관습적 오해를 제거한다. 다시 말해 형상의 동일성은 단지 외형적인 것 일뿐, 그 내적 구조는 비동일성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이며, 어떤 존재를 바로 그와 같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서 형상이 불변의 이데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잠재적이며 유동적이고, 이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작품들에서도 판형집적기법은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어서 내적 실체로서의 형상의 관념이 차단되기는 마찬가지이다.

신치현_透-닭_브론즈_70×60×25cm_2011

한편, 지각의 문제에 있어서 그는 기존의 수동적이고 재현적 지각 관념 대신에 잠재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능동적으로 현실화하는 생성활동으로 규정한다. 신치현에게 지각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유보적이며 잠재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서 절대적 관람의 지점이나 거리는 존재하지 않게 되며, 지각의 대상으로서 그의 조각들에서 대상의 객관적 확실성이나 형상적 불변성이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예컨대, 우리가 「Walking Man-p4」(2010)를 볼 때, 만약 우리가 어떤 특정한 재현적 관점에서 머물고자 한다면, 형상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에 서서 그 조각을 보면 되는 것이고, 또 우리의 망막적 인상의 구조에 머무르고자 한다면 가장 가까이서 보거나 작품 표면 그 자체가 되어 보면 된다. 또 어떤 시점에서는 모듈적 판형들의 미니멀적 관계가 드러날 것이며, 또 어떤 시점에서는 추상적 이미지가 드러날 것이다. 만약 더 멀리서 본다면, 그것은 자코메티의 형상으로도 드러날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관점이나 위치에 있고, 또 어떤 전제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대상들은 그때마다 다르게 현실화된다. 그의 조각에서 하나의 동일한 형상(무엇)을 발견하는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보고자 원했기 때문이지, 본래적으로 그것이 그러한 대상으로 결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결국 존재는 지각에 의존하게 되고, 지각은 잠재적 존재들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하고 생성하는 활동이 된다. 이렇게 될 때, 지각과 존재는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동시적으로 생성될 수 있게 된다. 신치현이 존재를 지각으로 환원하고자 한다고 했을 때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이다. ● 투조기법을 취하고 있는 그의 근작들 역시 기존 작업들을 관류하는 문제의식과 접근방식에서 이해가능하다. 기존의 작업들에서 존재의 내적 실체나 형상은 외형적인 것으로 치환되었으며, 사실상 제거되었었다. 기존의 판형집적기법에서 내적 실체는 판들의 집적에 의해 논리적으로 투명하고 텅빈 것이 되었다면, 금번의 작업들에서 형상은 투조패턴에 의해 실질적으로 텅빈 구조로 제시되며, 단지 평면적 패턴들이 만드는 공간에 의해 부정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을 뿐이다.

신치현_透-얼굴_브론즈_45×25×30cm_2011

한편, 동일성(사람, 동물의 형상)이 비동일성(숲과 잎패턴)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에서 2009년의 『Error』전에서 보인 바 있었던 존재에 관한 접근 방식을 공유하고 있지만, 지각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 이전의 작업들과 다른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작업에서 고정된 객체에 대한 재현으로서의 지각을 문제 삼았다면, 이번 작품들은 형태심리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지각적 전제로 삼고 있는 형태와 배경의 문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지각적 사실을 통한 존재의 재해석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형태심리학에 따르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동일성을 가진 하나의 형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대상을 배경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형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외의 것이 배경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치현이 보기에 이것 역시 지각을 표상중심주의의 관점에서 잘못되게 가정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배경은 불변하는 형상 뒤에서 형상과 분리되어 그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패턴적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존재를 적극적으로 생성시키는 힘을 가진 잠재성의 지대이다. 형상은 항상 형상이고, 배경은 항상 배경인 것이 아니라, 형상과 배경은 사실상 하나이며, 모두 잠재성의 지대에 속하지만, 우리가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순간 배경이 형상으로 현실화될 뿐이다. 얼핏 이번 작품들은 단순히 위장(camouflage)의 개념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숲이나 숲의 잎패턴으로서의 배경과 사람내지 동물의 형상의 관계를 역전시켜서 배경이 형상을 정의하도록 만든 것이다. 실제 그의 조각에서 배경은 패턴적 표면으로 주어지고, 이에 의해 존재의 내적 실체는 완전히 지각적 표면으로 환원된다. 이렇게 되면 존재는 고스란히 지각으로 환원되고, 그 때 지각이란 배경 속에서 고정된 형상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잠재적 배경에 한정성의 형식을 부여해 현실화시키는 활동이 되는 것이다. 이번 작품들 역시 존재의 존재방식을 지각활동으로 일원화하려 파악하려고 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고 하겠다.

신치현_透-인체(2)_브론즈_90×25×15cm_2011

신치현에게 지각은 외부의 대상을 내적 이미지로서 복제하는 활동이 아니며, 그 자체로 존재하는 와중에 있는 활동이며 무엇인가를 존재시키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그에게 지각활동은 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이 함께 생성되는 활동이며,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되고, 미결정적인 것이 구체적으로 결정화되는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근작들을 비롯한 그의 전 조각들은 지각한다는 것, 혹은 더 특수하게 봄의 활동을 통해 존재하는 것을 이해하려는 행위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조경진

Vol.20110818j | 신치현展 / SHINCHIHYUN / 申治鉉 / sculpture